‘<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 대표 “언더독의 승리”

칸에 이어 오스카 4관왕까지 ‘놀라운 경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부문서 ‘패러사이트’(Parasite)가 울려 퍼지자, 대한민국은 들썩였다.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성과인데, 영화산업의 종주국인 미국서 4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내 영화계 종사자들은 물론 ‘시네필’이라 불리는 영화광들 모두 한 마음이 돼 기뻐했다.
 

▲ ▲▲ 곽신애 바른손 E&A 대표 ⓒCJ엔터테인먼트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른손 E&A의 곽신애 대표다. 영화 전문 월간지 <키노>(KINO)의 창간 멤버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영화 <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자 <은교> 정지우 감독의 아내다. 이처럼 주변에 영화인들로 즐비한 그는 자신을 ‘성공한 덕후’라고 칭한다. 기자 시절부터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 영화의 제작자가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연히 자리에 앉게 된 영화 제작사 바른손 E&A의 대표가 돼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과 김래원이 나온 <희생 부활자>를 제작했지만, 성공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만든 작품이 <기생충>이다. 자신의 자질에 확신이 없었던 곽 대표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제작자가 됐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오스카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한국서 유례없었던 경험을 하게 된 그의 놀라운 과정을 들어봤다. 다음은 곽 대표와의 일문일답.

- 오스카 수상 후 소감의 시간이 짧았던 것 같은데 더 할 말이 있다면?

▲곽신애 대표(이하 곽) : 봉준호 감독님 수상 소감을 제가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시상식서 제가 받는 상은 작품상이다. 맨 뒤에 하게 되는데, 감독님 수상 소감을 듣고 겹치지 않게 말한다. 감독님이 정말 상을 받을 줄 몰랐었는지, 각본상과 국제영화상서 다 해버렸다. 그래서 남은 게 아카데미 회원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고마운 게 사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안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과 영광을 안겨준 상이다. 그것을 굳이 우리처럼 미국 내에 속하지 않은 영화에 준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본질적 가치, 곧 ‘어떤 영화가 본질적으로 좋은 영화냐’라는 것에 제가 생각하는 것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같았기 때문에 <기생충>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 공감대가 느껴져 확 가까워진 느낌이다. 전 영어도 못하고 타지서 와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작품상 받고 나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생각이 같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 수상을 어느 정도 예측했나? 네 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곽 : 많은 매체가 예측 기사를 썼다. 계속 바뀌었는데, 막판까지도 작품상과 감독상은 <1917>이 우세했다. 각본상도 <원스 어폰 어 헐리우드>와 각축전이었다. 근데 모든 상들이 모두 우리에게 와서 정말 놀랐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식 전까지 평가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영화가 좋으니까 안 주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다 받을 줄은 몰랐다.

칸에서 황금종려상 받을 땐 ‘와!’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때도 심사위원까지는 받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고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도 우리가 ‘핫’했다. 봉준호 감독이 인기스타였다. 사람들이 우리만 예쁘게 바라보고 어딜 가나 환호성이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열정적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 국제 장편 영화상 외에 뭐라도 받겠지는 했다. 우리끼리 내기할 때도 다들 감독‧각본‧작품 다 걸긴 했는데, 다 받아버렸는데 그럴 줄은 몰랐다. 송강호 선배랑 저랑 둘이 작품상 걸었다. 제작자인데 작품상 정도는 걸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냥 걸었다.

- 일각에선 <기생충>의 수상이 정치적인 해석으로 인해서라는 의견이 있다. 최근에 무역전쟁이나 트럼프의 신 자유주의와 빈부격차 등에 대해 비판을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예측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 : 그런 해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00명이 투표했는데, 그런 영향을 받고 투표한 분도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일단 영화에 놀랐고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이 영화 만든 사람이 누군가 하고 인터뷰나 공식석상서 소감을 전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봉 하이브’(봉 감독 열성 팬덤)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말 거대한 팬클럽 같았다. 봉 감독이 멘트만 하면 웃고 <기생충> 작품 설명만 해도 좋아하고, 아무튼 우리를 너무 좋아했다. <기생충>과 봉준호라는 예술가를 너무 사랑한다고 여겼다.


-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쓴 배경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곽 : 백스테이지서 한진원 작가랑 봉 감독이랑 셋이서 얘기를 나눈 시간이 잠깐 있었다. 그때 봉 감독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더라. 그때 내가 ‘나는 알겠는데요’라고 했다. 뭐냐고 물어보더라. 그때 내가 한 말이 뭐였냐면, 회원들이 언론이나 여론의 예측대로만 하면 봉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가는 걸 장담할 수 없으니 봉준호라는 이름이 들어간 투표용지에 다 찍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봉준호란 이름이 명기된 상은 다 받았다.

각본이나 감독, 장편, 작품도 다 봉 감독 이름이 들어갔다. 만약 봉 감독이 다 유력했으면 아마 상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 2~3위였다. 일종의 ‘언더독’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서 예측할 때 <기생충>을 안 본 사람들이 많아 수상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체감은 거의 못 했나?

▲곽 : 대부분 우리가 조합상이나 비평가협회를 갔는데, 비평가 쪽은 다 봤다. 맨날 하는 소리가 ‘나는 몇 번 봤다’였다. 한 번 본 게 아니라 두 번, 네 번 이런 식으로 횟수를 얘기했다. 설레발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으로 정말 애정이 극렬했다.
 

▲ ▲ ⓒCJ엔터테인먼트

- 아카데미가 수년간 변화를 해왔는데, 아카데미 내의 변화를 체감한 게 있는가.

▲곽 : 노미네이션 된 다른 작품의 PD가 “일요일에 네가 받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은 작품상을 <기생충>이 받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녀가 자기 팀에서 욕을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웃음). ‘왜 이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해봤다.

정리하면 그 사람들이 원했던 거 같다. 원했던 게 뭘까. 물론 이번에도 좋은 영화가 많았지만, 미국 할리우드 본토서 나온 최고로 좋은 작품이 나온 해에는 다른 나라 작품에 손을 들어주기가 좀 그럴 것 같다. 올해에는 <기생충>이 워낙 탁월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상황에 이런 작품이 나왔는데, 지금 아니면 언제 줄 수 있냐는 생각이 미국 내 회원들 전반에 든 것 같다.

- 봉 감독이 오스카 캠페인 초반부에 굉장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배급사 대표인 톰킨의 설득으로 마무리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옆에서 지켜보기에 어떤 것 같나.

▲곽 : 톰킨의 설득은 아는 바 없다. 옆에서 보니 감독님은 사교에 시간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통 영화 보거나 시나리오 쓰거나 같이 영화 만드는 사람들하고만 온 시간을 보낸다. 잘 돌아다니지 않고 최소한의 것들만 한다.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라, 오스카 캠페인 초기에는 ‘얘네들은 무슨 파티를 이렇게 좋아하나’며 힘들어하긴 했다.

아마 본인이 보낸 적 없는 것에 시간을 써야 하니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거기서 만난 배우나 감독들과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사랑하고 만드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위안을 찾았던 것 같다.

오스카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은 있었다. 이 영화를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의 명성을 위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긴 했는데, 하는 중에 이 힘겨움을 감내해야 하는 동력은 도저히 못 찾다가 좋은 감독 및 배우들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힘을 얻은 것 같다.


- 오스카 레이스를 마친 지금, 레이스를 처음 겪어본 것에 대한 경험과 소회를 털어놓는다면?

▲곽 : 하면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과정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웃음) 제 나름대로 정리한 건 미국 영화산업이 몇 십년 동안 자기 산업을 선진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었다. 여름이나 텐트폴 시장에 나온 영화를 제외하고 주목할만하고 힘을 실어줄 만한, 또 미래 세대를 위한 작품을 골라내고 검증해서 상을 주고, 그러면서 다시 영광을 안겨주는 시스템이다.

노미네이트 된 영화에 참여한 사람이거나 상을 받거나 하면 명성과 힘을 얻고 주목을 받는데, 그 과정이 매년 있는 것이다. 저도 미국 영화 중에 기억나는 게 텐트폴 영화라 아카데미 수상작이다. 우리나라도 여름 겨울 텐트폴 영화 말고 영화에 힘을 주는 시스템이 없는 것 같은데, 영화산업의 종주국 같은 미국이 스스로 산업을 키워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미경 부회장이 뒤에서 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식사도 하고 로비도 하는 등 100억원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설명한다면.

▲곽 : 부회장님이 식사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그랬다 하더라도 영화가 애매했다면 뽑혔을까 싶다. 그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같다. 사실 CJ 측이 목표를 높게 잡긴 했다. 나는 잘 몰라서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CJ 실무자들은 주요 부문 노미네이션까지 바라봤다. 그 계획을 잡은 것부터가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캠페인 비용은 다 썰이고 그냥 지원하는 건 없었다.

예를 들어 국내서도 마케팅 비용을 잡을 때 이 영화가 500만일 것 같은데, 돈을 좀 더 쓰면 1000만 갈 것 같다 생각되면 돈을 더 쓴다. 오스카 캠페인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내에서 벌어들일 수익을 고려해 비용을 정했다. 스폰이나 지원이 아닌 마케팅 비용이다.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만 되도 스크린 1000개가 더 늘어난다. 받으면 2000개가 늘어나고, 거기에 맞춰서 전략적으로 썼다.
 

▲ ▲▲ 기뻐하는 <기생충> 제작진 ©A.M.P.A.S.®

LA 시내의 대형 TV에 <1917>과 넷플릭스 영화만 걸려있었다. 우리도 그걸 쓰느냐 마느냐를 고민했다. 이따금 걸렸다. 광고비서 차이가 크게 나고, 일반적으로 홍보비는 비슷하게 쓴다. <기생충>이랑 <조조래빗>이 제일 조금 썼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이바지한 바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판단을 미리 하고 먼저 나서서 해보자고 한 것이다. 실제로 LA에 사시고 아는 사람도 많아 이 영화가 확산하는 데 분명 도움은 있었다고 본다.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한쪽이 무너진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나 이미경 부회장이나 CJ 모두 다 자기 역할 이상을 잘 해냈기에 이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기생충>으로 인해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곽 :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나? 김연아가 금메달 땄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저절로 다 잘 되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현장서 느낀 건 <기생충>이 좋은 분위기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잡지나 유명 블로거, SNS서 <기생충>이 재밌었으면 이것도 보라고 하면서 영화 추천이 활발하게 있었다. 넥스트 봉준호에 관한 기사도 있었고, 국내 한국 영화 감독들이 많이 언급됐다. 분명 좋은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부가 되진 않을 것 같다.

- 세계적인 제작자가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제작자로서 살아가는 데 기준이 생긴 게 있나.

▲곽 : 이렇게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을 줄 알았으면, 영어를 좀 더 준비하는 건데 쓸 데가 없긴 하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은 다른 감독들과 영화를 디벨롭(Develop)하는 건데, 거기는 또 거기라서 <기생충>하고는 상관이 없다. 홍보할 때도 절대 내 이름 쓰지 말라고 할 거다.

- 국내서 여러 감독과도 작업했었고 봉 감독과도 작업했는데, 봉 감독이 했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좋은 제작 여건서 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감독들과 갭이 있다고 여기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곽 :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 같다. 봉 감독은 지난 6편을 통해 작품도 좋은데 돈도 번다는 인식을 영화인들에게 심어줬다. 게다가 시나리오도 좋았다. 본인이 쌓은 본인의 성과일 뿐이다. 그런데 신인이 와서 ‘봉 감독은 이런 지원을 받았다’고 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시장이 바라보는 사이즈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 시장이 그런 모험을 싫어한다는 인식이 있다.

▲곽 : 꼭 그렇다는 생각은 안 든다. <가려진 시간>의 엄태화 감독이 평가를 받았다. 영화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실력에 다음 시나리오가 이 정도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첫 영화가 결과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투자사로부터 ‘괜찮은 시나리오 나오면 보여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엄 감독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다.

- 제작자의 개성이 사라지는 시대라는 말도 있다.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다.

▲곽 : 그렇다면 <가려진 시간>도 투자 받지 못했을 수 있다. 아무리 강동원이 캐스팅됐다고 해도 그랬을 수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투자배급사라는 덩어리로 혹은 그 로고로만 떠올리면 안 풀리는 부분이 많을 것다. 투자사 중에도 엄청난 시네필들이 있다. 가끔 나한테 어떤 감독을 소개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흥행을 잘한 감독도 아닌데 왜 만나게 해달라고 하냐고 물어보면 그 감독이 좋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광이 투자사에도 많은데 나보다 더하다.

영화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애매하게 갈등하다가 흥행도 안 되고 평가도 안 좋으면 그때는 진짜 답이 없는 것 같다. 해당 영화 감독을 살려낼 방법이 정말 없는데 그건 제작자의 잘못이다. 나 역시 두 편의 영화로 투자사에 손해를 끼쳤다. 그럼에도 내가 했던 감독들이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결국은 시나리오인데 잘 쓰면 의외로 쭉쭉 풀린다. 그 전까지가 힘든 것이다.

- <기생충>과 똑같은 시나리오를 신인 감독이 들고 왔다면, 과연 곽 대표는 작품을 함께 했을 것 같나.

▲곽 : 나라면 했다. 아마 투자사를 설득했을 것이다. 대신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엑시트>는 돈이 많이 든 영화지만 신인 감독이었다. 결국, 성공까지 했다.
 

▲ ▲ ⓒ문병희 기자

- 봉준호가 아니라 시나리오 때문에 <기생충>을 한 것이라는 말인가.

▲ 무슨 소리냐. 둘 다다. 한국 제작자 모두 봉 감독이 제목만 말해도 다 하자고 할 것이고 백지도 필요 없다. 그 전의 신뢰가 있지 않나. 이미 들은 얘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봉 감독이면 무슨 작품이라도 한다.

- 봉 감독은 일종의 권력이 됐다. 의견이 부딪혔던 적은 없나.

▲곽 : 권력은 잘 쓰면 좋은 것이고, 휘두르면 나쁜 건데 봉 감독은 월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나한테 상의를 구한다. 게다가 워낙 준비를 잘 해와서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하게 된다. 물에 잠기는 동네 컷을 만들 때 이미 본인이 공부를 다 해와 예산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그때 외에도 돈을 계속 줄여준다. 제작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감독이다. 워낙 합리적인 안을 갖고 오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다.

가끔 어떤 컷이 이 영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감독이 그 컷을 계속 고수하면 싸우게 된다. 항상 싸우는 게 이런 부분이다. 투자사와 제작사 간 싸울 때도 있고. 봉 감독은 CG며 뭐며 다 공부를 엄청 해서 그럴 일이 없다.

- 옆에서 봉 감독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봉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 곽 : 정말 착하다. 착하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천재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비위 상할만한 말이나 이런 건 절대 하지 않는다. 저랑 (조)여정씨랑 늘 하는 말이 ‘사람이 어떻게 저래?’다. 여정씨가 봉 감독님이랑 일하면서 사람 대하는 방법이나 상황에 대한 태도를 너무 많이 배우고 감동한다고도 했다.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태도를 보인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 대표님에게 <기생충> 전과 후는?

▲곽 : ‘영화 제작을 계속해서 해도 될까?’라는 지점서 헷갈림이 많았다. 얼떨결에 위에 계시던 대표 프로듀서가 나가서 대표가 됐다. 이후 열심히 하는데도,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 없었고, 겨우 <가려진 시간>과 <희생 부활자>를 했는데 둘 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제작하면서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기생충>을 하게 됐고, 어쨌든 감독이 큰 역할을 해서 이만큼 왔지만, 적어도 내가 폐는 끼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원초적인 질문인데, 오빠와 남편도 감독이다. 또 할 생각은 있나?

▲곽 : 절대 없다. 오빠와도 하고 남편과도 했었는데,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각자 하는 게 훨씬 좋다. 남편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좋은 파트너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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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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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