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타 전도연의 새로운 도전

다시 꿈을 꾸는 ‘칸의 여왕’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은 소위 ‘국뽕’에 취해 있다.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영화였던 것은 물론,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 앞에서 여유롭게 미국 영화계의 거장을 존경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언행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이미 13년 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전도연도 마찬가지였다. 배우로서 정점에 오른 뒤 뚜렷한 자극이 없었던 그에게 <기생충>의 활약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는 ‘칸의 여왕’ 전도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 ⓒ메가박스플러스엠<br>

영화 관객의 입장서 배우 전도연의 연기를 보는 것은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유괴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죽임을 당한 아이의 엄마(<밀양>)였고, 신분 상승을 노리는 하녀(<하녀>)였으며,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년간 가족과 생이별한 아내(<집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또 붉은 드레스를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퇴물’이 된 술집 마담(<무뢰한>)이기도 했으며,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엄마(<생일>)였으니, 힘든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렇듯 전도연이 연기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의 환경에 놓여 있었다. 

<지푸라기…> 
‘숙명’으로

앞서 거론된 영화는 어떤 사건이 발생한 뒤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극을 이끌어가는 건 늘 전도연이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전도연의 얼굴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도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대본 혹은 대사에 적혀 있는 것 이외에도, 진짜 본질에 가까운 감정을 알아내야 하는 숙제가 뒤따랐다. 거절하고 거절하다가도 결국 돌아오는 대본과 함께 “이 인물은 전도연밖에 소화할 배우가 없다”는 말이 붙었다. ‘숙명’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가 인물 중심의 서사가 아닌 사건 중심의 서사로 전개되는 신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로 관객과 만난다. 전도연은 큰돈이 앞에 나타났을 때 만나는 모든 사람을 속이고 상처 주는 연희를 연기한다. 활달하고 애교 섞인 귀여운 표정 뒤에 살벌함을 감춘 인물이다.


‘귀여운 소시오패스’가 적당한 묘사다. 극단의 감정을 절절이 쏟아내야 했던 기존 전도연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극중 전도연은 연희를 두고 “내면의 깊은 감정까지 굳이 알아낼 필요 없이 주어진 텍스트만 해석해도 충분했다”고 언급했다.

“이 영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겠다고 했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연희라는 인물 자체가 대본에 모두 세팅돼있었어요. 굳이 보이지 않는 감정을 찾을 필요가 없었어요. 예를 들어 <밀양>만 하더라도, 미쳐가는 신애의 모습을 제가 찾아야 하거든요. 연희는 전사를 쓰지도 않았어요. 지금 연희가 가진 얼굴이 과거에도 같은 연희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이미 과거에도 이렇게 살아왔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뭔가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요. 여러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연기를 하자는 생각이었죠. 굳이 부담이 있었다면, 부담스럽게 뭘 하지 않는 거였죠.”

고민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인물인 연희는 영화 내에서 놀랍다. 타인에게 아픔을 주는 데 거리낌이 없는 데다 심지어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큰 일을 저지르고도 태연하다. 전도연은 충격적인 행위를 일관하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이 인물을 즐기는 데 성공한다. 

“배우 입장에선 정말 반가운 작품이에요. 부담도 없었고요. ‘묻어갈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도 들었어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중요했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죠. 전작 모두 보이지 않는 감정이 엄청 중요했거든요. 저는 그걸 찾느라 늘 치열했어요. 이번에는 사실 연희한테 감정이입도 안 됐어요. 너무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연희를 연기하는 것을 그저 즐겼던 것 같아요. 사연이 있고 커다란 감정이 있고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소시오패스죠. 정말 재밌었어요. 새롭기도 했고요.”

애교 섞인 ‘소시오패스’
정교하고 본능적인 연기력

<지푸라기>가 신선한 점은 처음부터 전도연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무거운 얼굴로 극의 처음을 열고 끝을 맺어왔는데, 이번에는 무려 50분이 지난 뒤에야 얼굴을 비친다. 그때부터 영화는 진한 색을 입고 쉼 없이 달려간다. 절절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전도연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이어지는 가벼운 언행에도 결국 엄청난 무게감을 안겨주는 그의 연기력은 이번에도 놀랍다. 

관객을 압도하기 전에 감독부터 제압하는 게 전도연의 능력인 듯하다. 영화감독이 배우에게 애정이 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엄청난 존경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전도연이라면 예외다. <지푸라기>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에게 전도연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빠른 템포로 칭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김 감독은 전도연에 대해 “정교하면서 본능적인 배우”라며 “기술적으로는 현장서 풀샷이 ‘OK’ 사인이 나면 얼굴을 따는데, 모든 장면을 다 완벽하게 해내요. 연기적인 기술이거든요. 그것만 해도 훌륭한데, 순간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왔을 때 이미 그 인물처럼 본능을 발휘해요. 갑자기 바람이 싹 날렸는데, 연희처럼 바람을 피하더라고요. 차에 타는 장면이었는데, 헝클어진 머리를 운전석 위에 거울을 내리면서 머리를 다듬으며 대사를 던지는데, 거기서 이미 제압됐죠. 그게 첫 촬영이었어요.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해도 안 아까워요. 인간문화재로 등재할 수 있으면 그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배우의 미덕 중 하나가 캐릭터에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간의 모습을 불어넣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진짜 그럴 것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송강호나 이병헌처럼 전도연 역시 탁월하다. 이는 노력이 아닌 천재적인 재능으로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이는데 다리가 보여야 됐어요. 촬영하는데 저도 모르게 다리가 더 잘 보이게 하려고 몸을 틀더라고요. 그건 연희스러운 거잖아요. 저도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에요. 그 상황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저도 모르게 나왔죠. 많이들 칭찬했어요. 기뻤고요.”

“인간문화재로 
등재하고 싶다”

<지푸라기>는 전도연을 비롯해 정우성, 박지환, 배성우,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진경 그리고 윤여정까지 주요 배우가 많다. 각자마다 사연이 있고 스타일이 있다. 모든 인물이 적절히 설명돼야 하는데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다. 게다가 감독은 단편영화 한 작품밖에 안 한 신인이었다. 불안했다는 게 전도연의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먼저 캐스팅이 걱정이었죠. 인물이 너무 많잖아요. 사실 영화가 촬영까지 갈 수 있을까도 우려됐어요.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도 이 인물들을 한 이야기에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했어요. 막상 영화를 보고서는 만족감이 컸어요. 감독님이 정말 수고하신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애착이 생긴 전도연은 캐스팅에 전적으로 가담한다. 먼저 윤여정에게 전화를 걸어 역할을 맡아주길 요청한다. 또 이미 도장을 찍은 정우성에게도 전화해 ‘잘해보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배우가 이토록 나서기란 쉽지 않다. 

“윤여정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정말 재밌다는 얘기를 했죠. 그러면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 역할을 해달라고 했어요. 뭔가 숨바꼭질 같은 게 필요한 인물이잖아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께 ‘역할이 좋다’고 하니까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하지 그러니’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결국 해주셨는데, 저를 믿어주신 거니까 감사하죠.”

걱정이 많았던 작품, 게다가 이례적으로 중간부터 투입되는 특별한 상황까지 있었던 터라, 우려는 비교적 컸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첫 촬영 날에 감독님을 보는데 여유가 넘치는 거예요. 신인 감독이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이미 현장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도가 됐어요. 그 이후로는 쭉 달렸죠.”

연희는 태영(정우성 분)과 연인 관계다.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가 또 갑자기 태영 앞으로 찾아오는 인물이다. 전도연과 정우성, 멜로 장르서 각자의 성별로 활약한 두 배우지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만났다. 데뷔 30년 만이었다. 극중 연희가 느닷없이 태영을 찾아와 밥을 차리며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두 사람의 첫 촬영분이었는데 당황했었다고 했다. 
 

▲ ▲▲ 배우 전도연 ⓒ메가박스플러스엠

“정우성씨가 예상과 다른 연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애교를 부려야 하는데 힘든 면이 있었죠. 그래도 버텼어요. 그걸 버티고 나니까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쉬웠어요. 우성씨와 가까워졌는데, 멜로보다 코미디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멜로는 어쩌면 뻔할 것 같고, 둘이서 코미디를 하면 엄청 재밌을 것 같아요. 물론 해보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웃음)”


국내 영화계서 연기를 가장 잘하는 여배우가 누구냐고 하면 전도연이라는 답이 독보적으로 나오곤 하는데 여기엔 이견이 없다. 남자배우의 경우 송강호와 이병헌, 최민식, 한석규, 김윤석, 설경구, 하정우 등이 기호에 따라 이래저래 나뉘지만, 여배우는 전도연으로 모인다. 국내 최고라는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여전히 그가 최고를 유지하는 비결은 위치를 가리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에 있는 듯하다. 옳은 행동이라면 적극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그 명성을 만든 건 아닐까. 이번에는 신현빈이 그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됐다. 

“봉·박 감독과
같이하고 싶다”

“제가 극 중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와요. 미란(신현빈 분)과 만나는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현빈이가 머리를 자르겠다고 한 거예요. 연희를 닮고 싶은 마음을 짧은 머리로 표현하겠다는 의지였죠. 사실 딱 한 신이에요. 한 신을 위해 머리를 자른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수 있어요. 감동받았어요. 그런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자극이 돼요. 저도 더 노력하게 되고요.”

<지푸라기>는 큰돈이 담긴 돈 가방을 처절하게 쫓는 자들을 통해 ‘욕망’을 발언한다. 사회를 둘러보면 돈이라는 가치가 어떤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 되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불리는 배우에게도 돈은 중요한 가치일까. 전도연은 돈보다 일이라고 했다. 

“물론 돈 좋죠. 돈 앞에서 누가 자유롭겠어요. 돈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하지만 돈이 행복의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돈이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행복할 거고, 돈이 있다고 해도 불행한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저는 요즘에 일에 대한 욕망이 커졌어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꿈도 꾸게 됐다. 바로 ‘오스카’다. 인터뷰는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거둔 다음 날인 11일에 진행됐다. 모두가 감동으로 버무려진 날, 전도연도 똑같았다. 그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에 가는 꿈을 꾸게 됐다.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죠. 뭐라도 받으면 좋은 거였는데, 4관왕이라니. ‘악’ 소리도 안 날 만큼 큰 기쁨이었어요. 사실 오스카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현실로 만들어준 거잖아요. 제가 비록 칸 국제영화제서 상을 받긴 했지만, 또 하나의 문이 열린 거잖아요. 저도 꿈을 꾸게 됐어요. 이왕이면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요.”

왜 윤여정일까. 두 사람은 <지푸라기> 뿐 아니라 <하녀>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일까, 두 사람은 이후 교감을 나누며 진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도연은 윤여정을 사랑하는 듯 보였다.

“저는 선생님이 너무 궁금해요. 언제나 그분 연기를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만나도 즐거운 사람이고요. 나이가 있으심에도 트렌디하고 허물없이 작품선택을 하고요. 정말 놀라워요.”

국내 최고 감독으로 칭송받던 봉준호 감독은 이제 전 세계를 아우르는 감독이 됐다. ‘칸의 여왕’과 ‘오스카의 왕자’는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꽤 무거웠던 ‘여왕 왕관’
오스카 무대를 상상하다

“봉 감독님이 저랑 작품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사적으로도 많이 봤어요. <옥자>를 준비할 때,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때 ‘내가 옥자로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근데 아역 안서현에 대해서만 물어보더라고요. <하녀>서 저랑 같이 연기했거든요. 전 사심이 있었지만, 그 분은 사심 없이 얘기하셨어요.(웃음) 봉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과 한 번 같이 해보고 싶어요. 요즘 많이 어필하고 있어요.” 

꿈과 변화, 이런 단어들이 연기 경력 30년 전도연의 입에서 자주 나왔다. 그리고 내용이 비교적 가벼운 시나리오들도 그를 향하고 있다. 차기작은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이다. 송강호와 이병헌이 나오는 재난 영화다. 이 역시 사건이 중심이다. 늘 80% 이상을 차지하던 전도연의 분량이 <지푸라기>도 그렇듯 <비상선언>서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기뻐 보였다. 
 

▲ ▲▲ 배우 전도연 ⓒ메가박스플러스엠

“저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파도에 휘말린 상황이었어요. 언제나 숨쉬기조차 버거운 인물들을 연기해야 했고요. 제작하시는 분들이 제가 그런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피로도가 컸어요. <생일> 같은 영화는 홍보하기도 조심스러워요. 아무래도 웃을 수 없으니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후로는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다들 ‘연기 한 번 해봐’라는 식의 시선이 있었어요. tvN <굿 와이프> 찍을 때였는데 제가 ‘눈물의 여왕’이잖아요. 윤계상씨 앞에서 힘든 걸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는 신이었는데, 밑에서 스태프 모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거예요.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는 척만 했어요. 대사에 ‘실컷 울었네’가 있는데, 빼달라고 했었어요. 솔직하게 말했죠. 부담스러웠다고. 사실 그런 무게를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늘 칸의 여왕이라는 제일 윗자리에 있다 보니, 연기라는 직업이 무겁게 다가왔다. 13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씩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서도 전도연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비교적 작은 역할은 물론 <백두산>처럼, 카메오로도 전도연을 부르고 있다.  

오스카의 꿈
자극을 받다

“<백두산>에서처럼 카메오로만 나와도 사람들이 새롭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새로움에 목말라 있어요. 분량은 전혀 문제가 안 돼요. 이제는 조금 밝고 즐거운 작품을 연기하고 싶어요. 블록버스터에도 나가고 싶고요. 저에게 흥행은 아픈 손가락이잖아요. 개인적으로 기대도 있고 그래요. 해외진출도 때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또 모르죠. 그러면서 조금씩 오스카에 서는 저를 상상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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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