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접수한 <기생충>의 아이러니

봉준호와 <기생충>이 만든 역설적인 현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한국 영화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사가 생겼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한 것. 자본주의의 빈틈을 꼬집은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제작부터 ‘오스카 캠페인’까지 지원한 국내 콘텐츠 분야 1위 기업인 CJ ENM이 있다. CJ ENM은 그간 줄곧 외쳐온 ‘해외 경쟁력’을 <기생충>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빈부격차의 아픔을 전달한 <기생충>이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내세운 주장의 결실이 된 아이러니한 현실을 짚어봤다.
 

▲ 오스카마저 접수한 봉준호 감독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기생충>은 전 세계 영화 관련 155개 시상식서 174개의 상을 휩쓸었다. <기생충> 이전 영화들이 유수의 영화제서 거둬들인 상의 총합(약 150개)보다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전 세계 영화인은 물론 비평가들마저도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후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국제영화상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석권했다. 

한국영화 
100년 쾌거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은 작품은 1955년 <마티> 이후로 <기생충>이 두 번째다. 비영어권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최초며, 아시아계 최초 각본상 수상 등 최초로 세운 기록도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기생충>이 남긴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전망이다. 

<기생충>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영화의 힘에 있다. ‘익숙한 것에서 낯섦을 추구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의도가 영화 곳곳에 놓여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잡지인 <카이에 뒤 시네마>서 ‘삑사리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예측대로 흘러가는 부분이 없다. 영화의 중점적인 사건이 예고 없는 실수와 실책으로부터 시작해서, 또 다른 우연을 맞이하며 나아간다. 그런데도 개연성은 탄탄히 유지된다. 

모든 국가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부익부 빈익빈’을 주제로 한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도 깬다. 매우 중립적인 관점으로 부자와 빈자를 바라본다. 이전부터 부자는 옳지 못한 행위로 부를 축적하는 나쁜 인물로 묘사됐으며, 가난한 자는 선하거나 게으른 인물로 표현됐다.


하지만 극 중 부자로 나오는 박 사장(이선균 분)은 성실한 노력으로 부를 쌓았으며, 딱히 악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누구보다 순진하다. 빈자로 등장하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게으르지도 않다. 그러면서 문서를 위조하는 것이나 남을 속이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부자보다 악한 행동을 잘한다.

‘빈부격차’에 대한 기존 ‘영화적 질서’를 두 가족의 이야기로 완전히 무너뜨린 이 영화는 마치 축구 경기처럼 전·후반부로 나뉜 형태로 구성됐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의 가족 곁으로 투입되는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로 이어지던 전반부를 지나, 문광(이정은 분)이 돌아오는 기점부터 마지막까지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갖춘다.

<기생충>의 영화 같은 시작과 끝 
전 세계가 인정한 ‘봉준호 장르’ 

풍자와 해학, 드라마와 공포,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장르의 혼종 형태를 보인다. <기생충>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을 두고 여러 말이 돌자 한 외신 기자는 “<기생충>은 그냥 봉준호 장르다. 생각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겨 화제를 모을 정도로 <기생충>은 ‘이상한’ 영화다. 

독특한 구성과 장르,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에 이어 본질에 접근한 주제 의식, 기존 인식을 깬 빈부를 바라보는 관점, 아울러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한 빈부격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정에 가까운 슬픈 엔딩까지, 이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수준의 작품으로 꼽힌다.

또 봉준호 감독이 보였던 인간존중의 태도 역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각종 시상식서의 그의 수상 소감은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서 미국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를 존경한다는 소감은 전 세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유머와 해학을 섞어 촌철살인과 같은 핵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은 그의 영화와 닮아있다. 봉 감독과 함께 그의 뇌에서 나온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던 통역 담당자까지 덩달아 화제에 올랐다. 제작 초기부터 ‘오스카 작품상’으로 귀결되기까지, 그 긴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왔다. 


현재 한국 사회 전체가 <기생충>의 쾌거에 취해있다. 하지만 한국 영화 미래는 그리 밝지 않으며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 박 사장의 잔디밭이 받아내는 태양광과, 기택의 반지하에 겨우 떨어지는 빛의 양처럼 닮았다. ‘포스트 봉준호는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인물이 없다. 이는 감독 개개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해석된다.

세계가 감동
매력에 흠뻑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개봉한 2003년도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 식사>,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이 함께 개봉했다.

이들 감독들은 현재 한국 영화의 거장으로 대표되고 있다. 흥행과 무관하게 당시 영화들은 지금까지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수작으로 회자된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당시 영화 제작자들이 작가주의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일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필성 감독은 유튜브 채널 ‘직격탄’과의 인터뷰서 “그때를 생각하면 서부개척시대 같은 느낌이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와 배우, 장르의 영화를 감독이나 제작자, 배우, 투자사 모두가 만들어 내보자는 폭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희 세대 수많은 감독이 데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 중심의 거대 자본 투입과 함께 수많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고 국내 영화산업서 경제적 파이가 늘어나면서, 영화는 제작자 중심서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작품을 중시하는 풍토서 흥행을 중시하는 풍토로 그 흐름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소위 ‘양산형 영화’로 불리는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들이 한국 영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늘어났지만, 200만서 500만 관객을 모으는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은 줄어들고 있다. 호평을 받는 영화도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받은 영화는 <기생충>과 <극한직업> <엑시트> <사바하> 정도에 그친다. <벌새>와 <메기> 등 좋은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은 대부분 저예산 독립영화계서 탄생했다.

봉 감독이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한국 영화 위기론’은 지속될 전망이다. 

‘제2의 봉’
찾아보니…

작품 중심서 흥행 중심으로 변화된 풍토 속에서 영화인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대목은 수직 계열화다. 국내에서는 CJ와 롯데가 해당한다. CJ는 영화 유통 플랫폼 CGV와 투자·배급을 하는 CJ ENM을 갖고 있다. 롯데는 롯데시네마와 롯데컬처웍스를 보유하고 있다. 

1938년 미국서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로 세계적으로 제작·배급과 상영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독과점을 막기 위해 스크린 15∼27개를 보유한 멀티플렉스서 한 영화는 최다 4개 스크린만 점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크린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완전 무방비 상태다. 

실제로 4대 배급사로 불리는 영화들은 첫 주에 상영점유율과 좌석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이하 반독과점 영대위)에 따르면 <백두산>은 개봉일 상영점유율 44.5%, 좌석점유율 50.6%를 기록했다. 이는 총 상영작 128편의 상영 횟수 중 44.5%를, 좌석 수 중 50.6%를 차지한 것.
 


반독과점영대위는 “올해만 해도 영화 13편이 스크린을 독과점했고 3사 극장 체인이 매출 97%를 독차지하는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산업 내에서 자율적 정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영화산업은 개봉 후 극장서 벌어들이는 수입 외에는 다른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개봉 후 관람 비용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별히 입소문을 얻고 역주행을 하지 않으면 첫 주에 흥행 여부가 판가름난다. 대다수 스타가 출연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4대 배급사 작품은 작품성과 별개로 각종 영화관으로부터 수많은 스크린을 확보한다.

약 2600개의 스크린서 한 영화가 1800개까지 확보한 예도 있다. 반대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다양성 영화관으로 밀려나거나, 새벽과 심야에만 대관이 되는 일명 ‘퐁당퐁당 상영’을 하게 된다. <기생충>의 박 사장과 기택 가족처럼 영화계 내 양극화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기대하기 힘든 ‘포스트 봉’ 
영화계 양극화 짚어야 할 시점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해 CJ와 롯데를 향한 수직계열화 관련 지적은 이전부터 지속됐다. 그럴 때마다 두 기업은 ‘해외경쟁력’을 내세워 수직계열화의 명분을 찾으려 했다. 2016년 열린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서 당시 CGV 대표였던 서정 CJ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대표는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적인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 물론 문화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서 더욱 산업적인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J의 이 같은 방침은 4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고 있다.

빈부격차의 슬픈 현실을 노골적으로 직시한 <기생충>은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화계 내 빈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는 CJ로부터, 전폭적으로 지원받아 자본의 중심에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서 작품상을 수상함으로, 그동안의 CJ 측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려를 낳게 됐다. 일각에선 이번 수상이 이재현 CJ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지속적인 투자로 인해 얻어진 결실이라는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봉준호의 역설’이 함의하는 핵심이다. 
 

▲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직후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봉준호 감독

그런 가운데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의 쾌거가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영화계에 존재하는 양극화 문제를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봉준호 감독이 일궈낸 쾌거는 한국 영화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들 쾌거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제2의 봉준호 등장이 가능해지려면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환경과 생태계, 곧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영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급의 문제를 다룬 이 영화가 대기업과 대자본의 후원으로 세계 영화계에 알려진 건 의미 있고, 반가운 현실이지만, 영화산업의 문제나 왜곡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여긴다. 쾌거 이면에 독립예술 영화계나 창작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측면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봉 감독의 쾌거가 순기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일 뿐?
순기능 하려면…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서 “제작과 투자, 배급이 모두 1000만 관객에 매달리는 현상을 타파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제2, 제3의 봉준호를 못 만든다”며 “왜곡된 시장과 독점 상황을 바로잡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게 혈맥을 뚫어주는 제도가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적 화법’ 봉준호의 말말말 

영화를 만드는 능력만큼 봉준호 감독은 뛰어난 언변을 갖고 있다. 전 세계를 비롯해 미국 전역을 돌면서 수백번의 수상 소감 발표 및 기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국 MC들의 수많은 질문에 위트와 재미, 존중과 배려, 솔직한 진심을 담은 그의 말솜씨는 감동적이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이 스피치 강사로도 손색없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으며, 시사평론가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서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말하는 것도 영화적”이라고 평가했다. 듣기만해도 미소가 번지는 봉 감독의 어록들을 모아봤다. 

▲BAFTA 영국 아카데미 백스테이지 인터뷰 = “어느 나라나 가난한 자와 부자들이 있고 그들 사이에 되게 가파른 계단이 있다. 여기 로얄 앨버트 홀에도 계단이 많아서 땀이 나려고 한다.(웃음) <기생충>도 계단에 관한 영화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계단을 올라가려던 한 가난한 남자가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우리 시대가 담고 있는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HCAA 할리우드 비평가협회 각본상 수상소감 = “습관이 이상하게 들어 시나리오를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서 쓴다.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 가보면 그 커피숍이 망해서 없어졌다.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조용하다는 것은 장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해준 그 커피숍 주인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또 저의 파트너가 있다. 오늘 약간 변호사나 회계사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변태적인 아이디어로 가득찬 저의 멋진 공동작가 한진원씨를 소개한다.”

▲피트 해먼드와의 인터뷰 = “정치적인 주제나 사회적인 코멘트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장르적인 흥분 내지는 재미가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대신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까, 인물들에 대해 파내려갈수록 사회, 역사와 저절로 연결되는 것 같다. 무인도서 평생 사는 사람이 영화를 찍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산타바바라 영화제 감독상 수상 후 인터뷰 = “이 영화와 함께 한국서 혁명이 시작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혁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혁명은 부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혁명의 대상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는 영화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소감 = “어렸을 때 영화 공부하며 계속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은 마틴 스코세이지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내가 상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중략) 오스카 측이 허락한다면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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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