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문정부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

남은 2년 반 ‘확실한 변화’를 그리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문재인정부의 경자년 새해는 정부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집권 4년차를 맞이한 문정부가 경제·외교·안보 등에서 성과를 내어 국정운영의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확실한 변화’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일요시사>는 2020년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분석했다.
 

▲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 갖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확실한 변화 대한민국 2020’을 주제로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혁신·포용·공정·평화 등 여러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대한민국의 확실한 변화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집권 4년차
엇갈린 평가

그는 신년 기자회견서 “전반기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준 국민에게 감사하다. 정부는 국민을 믿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혁신·포용·공정·평화 등 여러 분야서 만든 희망의 새싹이 확실한 변화로 열매 맺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년차를 맞는 문정부가 직면한 국내 정치·경제적 여건은 녹록치 않다. 외교·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국정운영서 경제 분야와 외교 분야를 가장 중요한 방점으로 찍었다. 신년사를 통해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서 ‘평화’와 ‘경제’를 각각 17번 언급했다. 평화를 강조한 문 대통령은 남북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 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해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공동번영 의지를 재확인했던 평양공동선언 이후 처음으로 김 위원장의 답방을 제안한 것이다. 북미관계의 교착상태를 깰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문정부가 가장 주력해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미 정상회동 등 대형 이벤트로 이어졌으나,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소강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이다. 신년 기자회견서 “외교란 것은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다”며 “북미관계의 교착 상태와 맞물리면서 남북관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협력을 늘려나가려는 노력들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충분히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면서 추진해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평화·경제 신년사서 가장 많이 언급
남북협력으로 북미관계 고착화 해결

이에 따라 통일부 역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제는 남북 간에도 북미 대화만을 바라보지 않고 남북협력을 증진하면서 북미 대화를 촉진해나갈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를 놓고 북미 정상 간의 신뢰만을 바라보며 관망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남북관계의 현실적 개선안으로는 남북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협력 사안인 ▲개별 북한 관광 ▲접경지역 협력 ▲도쿄 올림픽 공동입장식 및 단일팀 구성 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접경지역 협력, 개별관광 같은 것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 많은 스포츠 교류도 있을 수 있다. 도쿄올림픽의 공동입장식, 단일팀 구성뿐 아니라 나아가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 개최도 이미 합의한 사항이다. 그 부분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 협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문정부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제3국을 통한 개별 관광 형태로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다만 북한이 얼마나 적극적일지는 관측이 어렵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번에 거론한 협력 사안이 북한의 관심을 끌기에는 다소 작은 사안인 만큼 북한의 호응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문정부는 동맹인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어가면서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출구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비핵화를 위한 대화 모멘텀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를 풀고 다시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당면 과제로 보인다.

남북 협력
포인트는?

남·북·미관계 외에 일본의 수출규제로 야기된 지소미아 등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어갈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올해 외교 분야의 중대 과제로 예상된다. 지난달 중국 청도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공감대를 이뤘지만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의견차를 보인 바 있다.

신년 기자회견서 문 대통령은 경기에 대해 나아질 것이란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거시경제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 국민 개개인이 삶에서 체감하는 경제가 곧바로 좋아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질적인 삶의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내 경제에 대해 “부정적 지표가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인 지표가 늘어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전망은 국내외적으로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성장률은 작년보다 더 높아지고, 수출액은 늘어나고, 주가도 기분 좋은 출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체감경기는 문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것과 경제지표 사이에 여전히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은 문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낮은 점수를 줬다. 기업들은 문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현실에 맞지 않은 정책을 부동산 정책으로 꼽았고, 소득주도성장과 주 52시간제 도입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데일리>가 국내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현 정부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학점으로 평가를 내린다면’이란 질문에 ‘C학점’이라고 답한 기업이 37.6%로 가장 많았다. 신년사서 문 대통령이 고용률과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하자, 야당서 ‘대통령이 달나라 인식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서민 살리기
부동산 안정

특히 문 대통령은 민생 문제와 직결된 일자리 문제, 부동산 문제 해결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왔다. 지난 2년간 문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54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할 만큼 정권의 우선 국정과제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일회성 단기 일자리에 집중돼있어 국민들의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평가가 잇따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서 “단 하나의 일자리, 단 한 건의 투자라도 더 만들 수 있다면 정부는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앞장서 달라”며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 경제의 중추인 40대와 제조업의 고용부진을 해소하겠다”며 40대 퇴직자·구직자에 대한 맞춤형 종합대책을 마련, 규제혁신 및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 여성·청년·어르신의 노동시장 진입도 촉진 등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지명한 데에서도 이런 의지가 잘 드러난다. 정 총리가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자원부장관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경제형 총리’의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문정부는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경제의 활력을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드는 데 사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정보통신기술(ICT)과 과학기술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기반 혁신 성장에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따라,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를 2020년도 1호 업무보고 부처로 지목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힘으로 미래 일거리를 확보하고 혁신적 포용국가 시대를 앞당겨야 한다”며 “성장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부동산 정책의 고강도 규제 역시 계속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서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을 언급하며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지금의 대책이 조금 실효를 다했다고 판단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 자신감 ‘혁신적 포용국가’
공정사회 강조…검찰 개혁 마무리

이외에도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이나 다주택에 초점이 맞춰져 9억원 이하 주택 쪽의 가격이 오르는 풍선효과를 예의주시하면서 보완 대책을 강구해나갈 계획임을 함께 밝혔다. 초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인 ‘부동산 매매 허가제’ 카드까지 꺼낼 가능성도 보인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 정부가 검토해야할 내용이지만, 비상식적으로 폭등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부동산 매매 허가제를 둬야 된다는 발상을 하는 분도 있다”며 “부동산을 투기적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매매허가제까지 도입하자는 주장에 우리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공정 사회를 향한 개혁과 함께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신년 합동인사회서 지난해의 여러 국정과제 성과들을 열거하면서 “새해에는 더욱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며 “권력기관 개혁과 공정사회 개혁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 법안 등이 통과됐다. 문정부는 이를 동력 삼아 검찰의 수사 관행 등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서 “검찰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정원, 국세청, 경찰 등 모든 권력기관들은 끊임없는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며 “법적 권한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권한이나 지위를 누리기 쉽기 때문에 그런 것을 내려놓으라는 게 권력기관 개혁 요구의 본질”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과 ‘감찰무마’ 의혹 등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의 흐름에 따라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과 검찰 사이의 대립관계가 한층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은 정권 출범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작업이고 청와대 수사는 오히려 그 이후에 끼어든 과정에 불과하다”며 “두 가지를 결부시켜서 생각해주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고 일축했다. 결국 수사는 수사대로, 개혁은 개혁대로 철저하게 분리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지만, 결국 수사 과정서 불필요한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엄정하게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
성패 달렸다

4월로 예정된 21대 총선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한다면 문정부의 각종 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여당이 패배할 경우 국정장악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정부의 구상을 국회가 어떻게 입법으로 뒷받침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총선 결과에 따라, 또 문 대통령이 야당과의 협치를 어떻게 모색하느냐에 따라 하반기 문정부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