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코앞인데…’ 미투 악몽 속 민주당 X맨 흑역사

‘젠더’ 내세운 여당 뚫렸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데이트폭력 의혹으로 사퇴한 원종건씨 영입 논란의 후폭풍을 잠재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당이 앞세우고 있는 젠더 이슈 논란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투명한 영입 인사 선정·검증 시스템에 대해 당 안팎서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은 데다 미투 논란이 있었던 인물들의 이번 선거 출마 의지로 인해 당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 최근 데이트 폭력 의혹 제기로 인재영입 2호로 발탁됐던 원종건씨가 탈당하는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 깜짝 영입한 원종건(27)씨의 ‘데이트 폭력’ 의혹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있다. 당은 총선서 젠더 이슈의 파급력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당 지도부가 잇따라 사과하고 ‘젠더 폭력 무관용’ 원칙을 다시 천명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선 상태다.

페미니스트
이미지 와르르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인해 민주당은 페미니스트 정당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게다가 당은 이미 안희정 전 충남지사, 민병두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에 대한 미투 폭로로 여러 차례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지난달 27일 원씨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한 여성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원씨는 여자친구였던 저를 지속적으로 성 노리개 취급해왔고 여성혐오과 가스라이팅(세뇌를 통한 정서적 폭력)으로 저를 괴롭혀왔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원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창 캡쳐와 폭행 피해 사진 등을 함께 게재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원씨는 이번 폭로가 나온 지 하루 만인 지난달 28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한때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저와 관련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논란이 된 것만으로도 당에 누를 끼쳤다. 그 자체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라온 글은 사실이 아니다. 허물도 많고 실수도 있었던 청춘이지만 분별없이 살지는 않았다”며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려 참담하다”고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이후 원씨는 지난달 30일 탈당계를 제출한 뒤 당을 탈당했다. 이로 인해 민주당은 당내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필요 시 제명 등 추가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지만 당이 탈당계를 처리함에 따라 당 차원의 조사는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

데이트 폭력 의혹 원종건 전면 부인 후 탈당
지도부 사과…감동 앞세운 민주당 검증 논란

원씨의 이번 논란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29일 국회서 “어제 영입인재 중 한 분이 사퇴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사실과 관계없이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에는 사전에 좀 더 철저히 검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 갖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2호 원종건씨

이 대표에 앞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실관계를 차후에 더 확인할 부분도 있겠지만 당에서 좀 더 세심하고 면밀히 살피지 못해 국민들께 염려를 끼친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영입인재의 검증에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원씨의 영입 이후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이 공공연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실제 원씨를 영입인재로 발표한 후 그의 연관검색어에 ‘미투’가 등장했을 정도다. 원씨의 대학 동기인 <중앙일보> 남궁민 기자는 SNS를 통해 ‘원종건씨 미투가 이제야 나왔다. 그 얘기들을 처음 들은 게 2015년이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그런 부분들이 공식적으로 접수되고 확인이 됐다면 대처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렇게까지는 확인을 못한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추구하는 청년이나 여성 정책에 걸맞는 인재 검증의 부족함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입인재의 경우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 산하의 ‘젠더폭력검증소위원회’의 검증도 받지 않는다. 영입인재의 경우 검증위 신청을 아무도 하지 않았기에 심사 대상이 아니며, 원칙적으로 영입인재는 당에서 필요에 따라 데려온 인물들이기에 검증을 생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투로 떠오른
4년 전 악몽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인재 검증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원씨와 관련한 문제제기는 사태가 터지기 전 항간에 회자된 바 있다. 검증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는 뜻이다. 여당 지도부가 이 같은 문제를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새로운보수당 권성주 대변인은 “민주당의 감성팔이 인재영입 쇼가 결국 화를 불렀다”며 “정치판을 교란시키며 국민 분노만 자아내는 감성팔이 인재영입 쇼를 중단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당 내부서도 영입인재에 대한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는 원씨의 영입 철회를 촉구하는 당원들의 항의 글과 함께 인재영입위원회 위원장인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영입인재 한 명에게서 불거진 파문이 당의 총선 공천을 진두지휘하는 지도부에게까지 번진 셈이다.

스토리 있는 ‘정치쇼’와 보안에만 신경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평판 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실제 인재영입에 관여하는 한 민주당 인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내가 추천해서 영입한 모 청년 인사의 경우 뒷말이나 폭로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영입 전 페이스북을 살펴본 정도였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을 물색해 사생활과 같은 평판을 조회하다 보면 인재영입 정보가 노출돼 깜짝 이벤트 효과가 사라진다는 당의 우려가 결국 화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극소수의 비공개 위원들만 영입 절차에 개입하다 보니 총선 국면에서 당에 큰 악재를 불러 일으켰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현재 이 대표는 비공개로 꾸린 인재영입위원들과 함께 외부 인재영입을 전담하고 있는 상태다.

민주당은 향후 영입인재에 대해 철저한 검증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검증 미흡 지적에 대해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원씨 본인은 사실관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으로 안다”며 “유사 사례가 있는지 조사하겠다. 인재영입 검증을 보다 철저히 할 계획”이라고 했다.

보여주기식
영입 무리수

당 지도부는 원씨 논란에 총력을 다해 수습하고 있는 상태다. 젠더 이슈와 관련된 악재는 총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는 특히 민주당이 심혈을 기울여 추구하는 젠더 정책들의 가치에 완전히 위배되기도 한다.

실제 민주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민병두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에 대한 미투 폭로로 이미 여러 차례 역풍을 맞은 이력이 있다. 지난 19대 총선 때는 김용민씨의 막말 파문을 적기에 수습하지 못해 선거판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나오기도 했다.


민 의원은 2018년 미투 의혹에 연루돼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뉴스타파>는 민 의원이 2008년 총선 낙선 이후 알게 된 여성 사업가 A씨를 노래방에서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알고 지내던 민 의원이 노래방서 블루스를 추는 과정서 갑자기 키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 의원은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히면서도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약 두 달 뒤, 민 의원은 “당과 유권자의 만류에 따라 사퇴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사퇴쇼’라는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민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했고, 현재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여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에는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2심에서는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으며 상고심 판결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은 안 전 지사에 대한 미투 폭로 이후 당시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즉각 사과 및 당사자 출당과 제명 조치를 취했다.

말 많은 민병두·정봉주 총선 뛰나
지지층 대거 이탈한 전 선거 재현?

정봉주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017년 특별사면됐다. 이후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했으나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되며 출마를 철회했다. 정 전 의원은 1심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민주당에 복당했다.

당시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기자 지망생에 대해 호텔에 방문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다 당일 호텔서 카드 결제내역이 확인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 전 의원의 미투 논란으로 당시 추미애 당시 대표는 복당을 불허해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당이 정 전 의원의 복당을 허용하면서 당 안팎으로 비난이 일게 됐다. 정 전 의원을 둘러싼 미투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이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섣불리 복당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현재 금태섭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당에서는 불출마를 우회적으로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불출마를 통보받은 일이 없다”며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당 내부서도 정 전 의원이 무죄 판결까지 받은 마당에 경선까지 배제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출마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민주당은 이훈 의원을 검증위의 ‘정밀 심사’ 대상으로 분류했다. 이 의원의 부적절한 사생활 논란 때문이다. 검증위 간사인 진성준 전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이 의원의 경우 피해를 주장하는 제보자로부터 추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들에 대한 심사는 검증위에서 공천관리위원회로 옮겨 진행된다. 검증위가 최소한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한다면, 공관위는 정무적 판단까지 더해 공천 여부를 확정한다.

몰랐다?
타격 불가피

실제 민주당은 ‘나꼼수’ 김용민씨를 노원갑 지역구에 전략공천했다 곤욕을 치룬 바 있다. 선거 막판에 김씨의 음담패설과 여성 비하 발언 등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다.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정부 말기 레임덕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에 과반의석을 내주고 패배했다. 정치권에선 김용민 막말 파동으로 전국서 20∼40대 지지층이 대거 이탈해, 결과적으로 수도권과 충청의 박빙 지역 여러 곳을 내주게 됐다는 뼈아픈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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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