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추미애 VS 윤석열 파워게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2.16 11:37:08
  • 호수 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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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강’ 센 남녀가 붙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전운이 감돈다. 청와대가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추미애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그 대척점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기다리고 있다. 추미애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곧 있을 검찰 정기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여권과 검찰이 대립하는 가운데, 두 수장의 ‘파워게임’은 불가피해 보인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와대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후임으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을 지명했다. 조 전 장관이 가족을 둘러싼 의혹으로 사퇴한 지 52일 만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판사와 국회의원으로서 쌓은 법률적 전문성과 정치력을 비롯해 그간 추 후보자가 보여준 강한 소신과 개혁성은 국민이 희망하는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내정 사유를 설명했다.

'조’ 가고
‘추’ 왔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중단 없는 검찰 개혁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사 출신의 개혁성향인 추 후보자는 국회에 입성하기 전부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1986년 춘천지방법원서 근무하던 시절 군사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념 서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이후에도 소신 있는 판결을 이어가 ‘껄끄러운 판사’ ‘운동권 판사’로 불렸다.

이러한 성향은 정치권에 진출해서도 이어졌다. 제15대 대선이 열리자 김대중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들어간 추 후보자는 자신의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금보다 지역감정이 훨씬 심하던 때였다. 진보 측 인사에게 돌을 던지던 행위도 서슴지 않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추 후보자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며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었다. 이러한 저돌적인 모습에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추 후보자의 강단과 고집은 정치권서도 정평이 났다. 대안신당 소속 박지원 전 대표는 지난 9일 KBS1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서 추 후보자에 대해 “고집도 세고, 조 전 장관보다 더 센 분”이라며 ”검찰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분이고 현 정부와도 코드가 맞는 분”이라고 말했다.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범여권은 추 후보자의 지명을 반기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법무·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받들 경륜 있고 강단 있는 적임자라 평가한다”고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벼른’ BH, 조국→추미애로 정공
‘추’ 인사권 ‘윤’ 수사권 칼자루

정의당은 “율사(법률가)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두루 거친 경륜을 가진 후보라는 점에서 법무부 장관 역할을 잘 수행하리라 예상된다”며 “무엇보다 검찰개혁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기대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당 대표 출신 5선 국회의원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추미애’라는 고리를 통해 아예 드러내놓고 사법부 장악을 밀어붙이겠다는 대국민 선언”이라며 “청와대와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궁여지책 인사고, 문재인정권의 국정 농단에 경악하고 계시는 국민들께는 후안무치 인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추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 첫 출근길서 강도 높은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검찰 인사를 통한 조직 장악 가능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이후에 적절한 시기에 말씀 드리겠다”면서도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검찰 개혁을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가 더 높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가장 시급한 일은 장기간 이어진 법무 분야의 국정공백을 시급히 메우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추 후보자가 검찰 인사권 행사를 통해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검찰의 인사권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쥐고 있다.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인사권에 영향을 미치지만, 의견만 개진할 수 있다. 사실상 정권 인사에게 인사권에 대한 전권이 주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권 쥐고
검찰 잡나?

검찰 정기인사는 내년 2월로 예정돼있는데 추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한 뒤 현재 공석인 ‘검사장급 여섯 자리’에 대한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는 앞서 지난 7월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윤 총장의 취임 이후 일부 검사들이 사표를 내면서 만들어진 자리다. 당시 법무부는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일부 자리를 비워뒀다.

바로 검사장급 여섯 자리다. 대전·대구·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부산·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연수원 기획부장이 그것이다. 이들 검사장급 여섯 자리는 차관급으로, 모두 검찰 고위직이다.

추 후보자가 이들 여섯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고리로 검찰을 압박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는 인사권이 곧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서 인사권은 무소불위의 힘이다. 조직서의 생사가 인사권으로 결정된다. 물론 검사도 예외일 수 없다.

추 후보자의 부상으로 최근 큰 조명을 받고 있는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2011년 문 대통령(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통해 인사권의 힘을 설명한 바 있다.
 

▲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그는 책에서 “내가 법무부에 가서 자리를 잡은 것은 인사를 통해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중략)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보다 장관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니 검찰이 완전히 충성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마음대로 개혁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문 대통령과 김 교수 역시 책에서 “검찰의 인사는 검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고, 법무부장관이 검찰 행정과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무기이기도 하다”며 “자존심이 강한 공무원일수록 인사에 민감한데 검사들은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
BH 겨냥

청와대·여권에게 ‘인사권’이 있다면, 검찰에게는 ‘수사권’이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추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에 대한 수사 강도와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최근 이들 의혹들과 관련해 친정부 인사들을 소환조사하고 있다. 딸의 입시비리 등 가족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 전 장관은 지난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세 번째 소환조사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조 전 장관이 개입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조 전 장관 외에도 다수의 친정부 인사가 검찰청을 오가고 있다.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지난 10일 민주당 임동호 전 최고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검찰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사무실과 집 등을 압수수색한 당일(지난 6일) 송 부시장을 소환했다. 압수물품을 분석하지 않고 관련자를 소환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최근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최측근 인사다.

윤 총장 역시 추 후보자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 강단을 보여준 바 있다. 추 후보자가 ‘추다르크’라면 윤 총장은 ‘적폐 청산의 칼’로 불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과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의 일등 공신이자, 문재인정부 집권 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수사 등을 주도했다.

친정부 인사 줄소환돼
이해찬 강력 대응 예고

고민정 대변인은 윤 총장을 지명했을 당시 브리핑을 통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며 “윤 내정자(현 검찰총장)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과 동시에,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소개했던 바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강 대 강’ 대치를 예상하고 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의 발언은 그가 장관의 힘에 눌리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기수문화’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윤 총장은 문무일 전 검찰총장 후임으로 지명 받았을 당시 문 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였다.
 

▲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검찰 내 파장은 컸다. 15명이 넘는 검사장들이 줄지어 사퇴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검찰이 ‘기수파괴’에 반발해 윤 총장을 흔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검찰은 윤 총장 임명 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 총장이 추 후보자보다 9기수 후배임에도 현재의 수사를 흔들림 없이 진행할 것이라 예상되는 이유다.

청와대·여권 대 검찰의 뒤가 없는 갈등은 이미 전조를 보이고 있다. 앞서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수색,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바 있다. 지난 4일, 청와대에는 검사와 수사관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드나들었다. 고민정 대변인은 즉시 “비위 혐의가 있는 제보자(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진술에 의존해 검찰이 국가중요시설인 청와대를 거듭해 압수수색한 것은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검찰에 즉각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설훈 의원을 필두로 ‘검찰 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이해찬 대표는 특정 검찰 간부의 정치 개입이 적발될 시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경고했다.

후퇴 없는
전면전?

이 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본청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엄중 대응하겠다. 검찰 간부들이 우리 당 의원들에게까지 와서 여러 개혁 법안에 부정적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 활동을 한다면 실명을 공개하겠다”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 난 단호한 사람이다. 다시 와서 그런 행위를 한다면 정치 개입한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같은 듯 다른 강금실-추미애 운명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역대 두 번째 여성 법무부장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앞서 2003년 강금실 전 장관이 첫 번째다.

두 사람은 모두 판사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안았다는 점에서도 같다.

차이점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을 당시의 경력이다. 강 전 장관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비교적 짧은 판사·변호사 경력을 갖고 장관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추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에 당대표를 지낸 거물 인사다.

강 전 장관은 검찰의 수사권 독립 토대를 마련하고, 인사시스템의 변화,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상명하복 규정 삭제 등 검찰 개혁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핵심 과제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는 실패했다.

추 후보자가 이를 완수할 수 있느냐가 검찰 개혁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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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