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LG '기술유출' 진실공방 전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7.23 11:21:54
  • 댓글 0개

"도둑맞은 사람은 있는데 도둑은 없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도둑맞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도둑질 했다는 사람은 없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유출 공방을 한 마디로 줄인 말이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법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텐데 삼성과 LG는 제품보다는 말로써 경쟁사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다. '빼앗겼다는 자'와 '안 빼앗았다는 자'가 서로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조치를 예고한 상태에서 이 둘의 난타전은 어느 때보다 강도가 셀 전망이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길수)는 지난 13일 삼성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로 조모씨 등 삼성 전현직 연구원 6명과 정모씨 등 LG디스플레이 임직원 4명, LG협력업체 임원 1명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조씨를 통해 관련기술을 컨설팅 방식으로 넘겨받았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과정에서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OLED TV 제조기술을 담은 보고서도 함께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OLED기술 유출 공방
법정 싸움 예고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LG디스플레이의 책임있는 조치와 사과,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심재부 삼성디스플레이 커뮤니케이션팀장(상무)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수사결과를 접하고 LG디스플레이 전사 차원의 조직적 범죄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피해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에 유출된 기술개발을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입했다"며 "피해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OLED 기술력 부족을 단기간에 만회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이 삼성의 기술과 핵심인력 탈취를 조직적으로 주도했다"고 밝혔다.


LG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이방수 LG디스플레이 전무는 기자회견을 통해 "독자적 기술을 통해 55인치 TV용 OLED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해당 패널이 들어간 TV가 대통령상을 받는 등 기술력을 공인받고 있다"며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 삼성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TV의 핵심 기술은 TFT 위에 유기물질을 고정시키는 증착기술이며 유기물질을 증착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정이 필요하고, 공정별로 수십번 이상의 시행착오를 거쳐 취득한 삼성의 노하우가 담겨 있는 보고서가 유출됐다"며 "이는 화이트(W) OLED TV에서도 꼭 필요한 핵심기술"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증착 등 OLED 관련 핵심 기술을 가져 온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업계나 시장에 알려진 수준 정도의 경쟁사 동향을 영업비밀이라고 해서 기소한 것은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 현실을 외면한 처사로 부당한 결정이라고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삼성은 아직까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확정된 범죄인 것처럼 자료까지 배포하면서 경쟁사를 흠집 내고 있다"며 "적절한 시점에 삼성디스플레이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논문 등 학술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면서 "경찰수사에선 LG쪽 임직원이 총 10명이 입건됐는데 최종 검찰기소에선 6명으로 줄어든 것만 봐도 이번 사건은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OLED 기술유출 두고 '진흙탕 싸움' 본격화
가전·IT소품·광고 등 끝없는 '감정싸움'

이에 대해 삼성디스플레이는 "생산기술센터 전무와 OLED 사업전략 담당 임원이 직접 전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에게 수차례에 걸쳐서 문자와 이메일 등을 통해 삼성에서 정보를 빼낼 것으로 요청했다"며 "널리 알려진 정보라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빼낼 필요가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또 "명백한 부정행위인 만큼 사법당국에서 나올 결과를 자신한다"며 "그 결과에 따라 민사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OLED 기술은 현 LCD를 대체할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지난 2007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고, 10인치 이하 중소형 패널을 생산하며 전 세계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TV용 55인치 대형 패널 개발에 나섰고 올초 시제품을 내놓았다. 비슷한 시기에 LG디스플레이도 55인치 패널 시제품을 선보이며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LG는 삼성의 RGB(적농청 색을 내는 유기물을 얇게 유리판에 입혀 색을 내는 기술)방식과는 달리 W-OLED(유기물 위에 컬러필터를 덧씌워 색을 내는 기술)방식으로 대형화가 쉬운 것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이 와중에 삼성은 LG가 공정 기술을 훔쳐 개발 기간을 단축시켰다고 의심하고 LG는 삼성 측 기술과는 방식부터 다르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 둘은 2년 전에도 비슷한 다툼을 벌인 바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10년 AMOLED 핵심공정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A씨 등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금지 및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삼성 "소송불사"
LG "과장됐다"

당시 삼성 측은 "A씨가 퇴사 후 2년 이내에 다른 경쟁업체에 취직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 이를 어겼다"며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AMOLED 기술이 경쟁사에 들어가면 막대한 손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A씨는 중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만큼 신청인 회사는 A씨의 전직을 금지할 이유가 있다"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소비자가전 분야에서도 양사는 끊임없이 부딪쳐 왔다. 최근에는 냉장고에서 '10ℓ 크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는 2010년 3월부터 본격적인 냉장고 크기 대결을 벌여왔다. 당시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800ℓ를 돌파하는 대용량 냉장고를 선 보였고 같은해 9월 삼성전자는 840ℓ를 출시해 맞불을 놨다.

지난해에는 LG전자가 850ℓ, 삼성전자가 860ℓ를 출시하면서 10ℓ 전쟁이 시작됐고 지난 4일 삼성이 세계 최대 용량이라면서 900ℓ급 지펠냉장고를 내놨다. 이후 12일 만에 LG전자가 910ℓ 디오스 냉장고로 응수하면서 세계 최대 용량 타이틀을 다시 가져갔다. 삼성은 국내 최초 상(上)냉장·하(下)냉동 방식을 처음 도입하고 910ℓ냉장고를 신규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 텐데 양사는 왜 크기를 두고 다투는 걸까? 전문가들은 크기가 곧 기술력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에서 보는 냉장고 크기는 mm 단위로 최소한으로 늘리면서 냉장고 내벽의 두께를 최대한 줄여 숨어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러면서 업체들은 벽이 얇아지는 만큼 고효율의 단열재를 써야하고 구석구석 냉기 전달력을 높이기위해 보다 나은 컴프레셔를 개발해야 한다. 즉 크기 전쟁이 기술력 전쟁이라는 것이다.


양사가 주력 TV로 키우고 있는 3D TV 광고와 관련해서도 세계시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고 ?기는
대용량 냉장고 경쟁

첫승은 LG가 챙겼다. LG전자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자사 TV 기술인 액티브 3D 방식이 LG전자의 기술인 패시브 3D 방식보다 우수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미국에서 반영하자 전미광고국(NAD)에 이의를 제기해 광고영상 사용중단을 권고하는 결정을 받아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도 LG전자가 미국에서 '3DTV 테스트에서 소비자 5명 중 4명이 소니와 삼성보다 LG를 선택했다'는 문구의 광고를 반영하자 NAD에 이의를 신청했고 NAD는 LG전자에 광고영상 사용중단을 권고했다.

영국에서는 LG전자가 'LG 시네마 3D TV'가 풀HD 3D, 풀HD 1080p 영상을 제공하며, 어느 각도에서나 같은 수준의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인쇄광고, 웹사이트, 세일즈 프로모션 등을 진행하자 삼성전자가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에 LG전자를 허위광고혐의로 제소, ASA는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06년에는 LG전자가 삼성전자가 홍보물을 통해 자사의 "하드디스크 내장형 PDP TV에 대해 허위·비방광고를 펴고 있다"며 법원에 광고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해 승소를 받아냈다.


지난 2월에는 호주에서 삼성전자의 광고 중단이 결정되기도 했다. 당시 호주 광고심의위원회(ACB)는 LG전자가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를 상대로 제기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광고 중단을 결정했다.

ACB는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가 과장광고에 해당 된다며 TV, 전단지, 언론홍보 등에 관련 표현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삼성 "피해사실 규명하고 응분의 책임 물을 것"
LG "경쟁사 흠집 내기, 명예훼손 고소예정"

LG전자는 삼성전자의 버블세탁기 광고 중 일부가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광고에서 버블세탁기가 절전효과, 탁월한 세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는데 LG전자가 근거 없는 과장광고로 이의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차세대 첨단 IT소품이 될 무선충전기를 놓고 벌이는 전쟁도 가관이다. 이번에는 LG전자가 삼성전자를 향해 ‘선빵’을 날렸다. 무선충전기 분야에서 LG가 삼성에 비해 앞서있으며 현재 삼성이 추진 중인 무선충전기술이 안전하지도 않고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것.

무선충전은 전기를 전파를 통해 전송하는 방식으로 접촉식인 자기유도 방식과 근거리 전송 방식인 자기공진 방식이 있다.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자기공진 방식은 패드와 스마트폰이 일정거리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하다. LG전자가 상용화한 자기유도 방식은 충전패드 내부의 코일이 자기장을 만들어 충전패드 위의 휴대폰에 유도전류를 흘려주면서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LG전자 관계자는 "공진방식이 상용화되려면 충전패드와 휴대폰의 거리가 최소 1~2m는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공진방식이 지원하는 거리는 여기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기유도 방식은 충전 효율성이 기존 케이블 대비 약 90% 수준으로 높다"며 "유해성 문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공진방식에 대해서는 "충전 효율성도 문제지만 공진방식은 충전패드와 휴대폰의 주파수를 동일하게 맞춰야만 하고 국제 표준이 없다 보니 아직 유해성 측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LG-삼성 '티격태격'

삼성은 기술력으로 맞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LG가 사용하는 자기유도 방식은 예전부터 있던 방식이라 표준 제정이 먼저 진행된 것일 뿐"이라며 "자기유도 방식은 지난 2010년 7월에 확정됐고 삼성의 공진유도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방식이라 표준화가 조금 늦어진 것인 뿐"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의 공진유도 방식은 올 4월에 무선충전협회(WPC) 확장 표준으로 확정됐다"며 "최신 방식인 만큼 기술적으로는 더 우수하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