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세대 ‘초등학교 신설’ 기준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1.18 11:11:39
  • 호수 1245호
  • 댓글 0개

“8살, 버스 태워 학교 보낼 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초등학교 신설 기준을 두고 다양한 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1년부터 개정된 해당 법규에 따르면 최소 4000세대가 있어야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4000세대의 문턱을 낮출 수는 없을까.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제주, 청주, 화성 등 다양한 곳에서 초등학교 신설 기준을 맞추지 못해 설립이 무산되고 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이유로 2011년 학교 설립 기준을 최소 2000세대서 4000세대로 높였다.

학교 신설을 두고 이를 억제하려는 교육부와 요구하는 지역사회 사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서 현재의 학교시설이 적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실정에 맞춰 학교를 신설하라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교육계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학교 신설
요구에도…

지난 9월 청주 중앙초의 잇따른 증축공사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학교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의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빚어지고 있는 과대·과밀 해소를 위해 증축공사를 벌이고 있다”며 ‘학군 조정’과 ‘학교 신설’을 요구했다.

충북도교육청·청주교육지원청과 학부모들에 따르면 청주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학생 수가 2000여명서 97명으로 급격히 줄어 폐교 위기에 놓인 중앙초는 율량2지구가 개발되면서 2015년 2월 문화동서 율량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개교 당시 838명(30학급) 이었던 학생 수는 현재 1729명(57학급)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도 교육청은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학교 신설계획(안)이 통과된 후 아파트 추가 건설과 인구 유입 변화 등으로 48학급(1680명) 규모의 증축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6년 3월 46학급서 2017년 11개 교실을 증축, 2018년 3월 57학급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학급당 학생 수 기준 변경 등으로 지난 6월부터 10개 교실 증축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잇단 증축 공사로 인해 학교 운동장 절반을 빼앗기고 공사 소음과 등·하교에 불편을 겪고 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당초 학급당 학생 수 기준이 35명이었으나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28명으로 바뀌면서 학급 수를 늘릴 수밖에 없어 증축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2017년 학구 조정을 심도 있게 검토해 학부모 의견을 수렴했으나, 중앙초 학부모 대부분이 학구 존치를 원하는 상황서 임의적 통학구역 조정은 비민주적 행위로 판단 및 시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교 신설은 4000∼6000세대, 학생 수 1000명 이상이 교육부 심사 기준이어서 현 상황으로는 학교설립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2011년 개정
교육부 vs 지역사회 다른 입장

지난 8월 제주도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제주도교육청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하 JDC)에 따르면 제2첨단과기단지 내 2만1000㎡에 들어설 예정인 초등학교가 기본 설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향후 개교가 어려워졌다. 2022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제2첨단과기단지 내 공동주택이 들어서도 최대 2000세대에 머물러 초등학교 신설 기준인 4000세대를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초등학교 신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8월9일 제주도의회 행정 사무조사특별위원회의 증인신문서 제기됐다.

바른미래당 한영진 의원은 “JDC는 2016년 첨단과기단지 내 아파트 분양 당시 초등학교 신설을 약속했다”며 “입주민들은 지금도 학교 신설을 믿고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분양 사기’나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첨단사업처 관계자는 “제2첨단과기단지 주택 수요를 고려해도 법령상 기본요건인 4000세대 입주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교 설립 여부를 떠나 학교 용지는 남겨둔 상태”라고 말했다. 도 교육청은 현 여건상 초등학교 설립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성서도 초등학교 신설을 두고 한 지역주택조합과 교육청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남양지구는 2008년부터 진행된 남양지구 사업은 2010년 도시 관리계획은 고시가 됐다. 화성시는 남양지구 남양동 371-○○일원의 공동주택건립을 위한 도시 관리계획결정에 대해, 도시관리계획 결정과 지형 도면을 승인했다.

2011년 9월7일 마도1초등학교(가칭)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가 통과돼 최초 부지로 확정을 받았다. 이때 세대수는 2133세대로 18학급이었다. 약 2개월 뒤인 11월1일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 구조 및 설치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개정 내용에는 최소 4000세대서 최대 6000세대 당 초등학교 1개소가 설치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수차례 시도
결국 무산

주택조합 관계자는 “당시 시공사를 여러 군데 물색해봤지만,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찾지 못했다. 금융 조건 등 다양한 문제로 사업이 진척되다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이 적정승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지체되자 학교 설립 자체도 무산됐다. 착공이 승인받은지 3년 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적정승인 받은 것이 무효가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 관계자는 “법이 바뀐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교육청 입장에선 공문을 보냈다고 하지만 사전에 전달받은 적이 없다. 학교 설립하기 위한 예산을 원래 사용하지 않으면 3회 연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자동폐기 후 취소가 됐다는 것이다. 아무 얘기가 없길래 학교 설립은 당연히 추진되는 줄 알았다. 교육부에 확인해보니 3년이 지나니까 자동으로 폐기됐다는 것이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2018년에 10월8일 주택조합 측은 지구 내 학교 유치를 다시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18일 교육청이 인근 학교는 증축이 불가하다는 답을 보내자, 주택조합은 4000세대 미만으로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12월13일 인근 세대수를 학교 반경으로 포함해 재협의를 해달라고 공문 발송, 12월24일 인근세대수 포함한 계획안 제출에 따른 협의를 진행했다. 

해를 넘겨 ▲1월8일 남양2지구 계획 예정 사항을 포함한 공문 제출 ▲2월25일, 28일 2지구 내용을 제외했을 시 학교설립 가능한 사항 ▲3월 5~8일 2지구를 제외한 채 1지구에만 단독으로 학교 배치가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3월26일 교육청은 당초 의견을 동일하되, 세대수를 충족하면 재검토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6월11일 2지구 공식협의 요청 및 검토 이후 회신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지난 6월21일 남양1지구 옆인 남양2지구(1825세대)를 입원 제안에 따른 학교 용지 이동 및 학교설립이 가능한지 회신을 요청했다. 


현재는 남양 1지구와 2지구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학교설립이 추진될 것이며 학교 위치는 아직 확정이 어렵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시흥시
예외 규정

교육청 관계자는 “남양 1·2지구가 합쳐지면 4000세대가 넘는다. 그렇다면 학교를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에 설립하려던 학교 위치를 옮길 필요가 있다. 그 위치는 1지구 세대 자녀들만 통학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1지구와 2지구 중간쯤인 곳을 정한 다음에 설립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남양 2지구의 사업 속도가 아직 1지구에 비해 못 미치기 때문에 좀 더 상황을 지켜보고 난 뒤 학교 설립추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4월 국민청원에는 ‘변경된 초등학교 신설기준을 완화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옛날에 지어진 초등학교들과 그 이후 도시개발사업, 역세권개발사업, 재개발사업, 택지지구 신설 등 여러가지 이유로 세대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학교 용지 부담금은 걷고 있으면서 학교 신설기준은 점점 높아진다. 계획된 초등학교 부지는 법이 바뀌었으니 취소한다고 하고 세대수 기준이 더 높아졌으니 설립이 불가하다고 한다’고 게시했다. 

이어 ‘아이들은 먼 길을 걸어 먼 곳으로 초등학교를 배정받아 큰 도로를 건너다녀야 한다. 어느 특정 지역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문제를 겪는 곳이 많다’고 덧붙였다. 화성남양지역주택조합은 지난 7일 ‘학교설립기준완화 요구에 대한 탄원서’를 경기도 교육청에 제출했다. 

탄원서 내용에는 ‘2014년 해당 사업이 취소돼 당시 투자가 취소된다는 것을 공지받거나 전달받은 사항이 없었다. 연장신청할 기회에 대한 정보조차도 모른 상태서 사업을 추진했다’며 ‘지구단위계획변경을 하는 과정인 2018년 12월13일 설립기준이 4000세대로 변경돼 재협의가 시작됐다. 당시는 2010년 11월 도시관리계획 결정 고시 이후 2014년을 개교 목표로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득하고 교부금도 지청으로 된 상태였다. 공동주택사업의 지연으로 설립추진이 취소됐다. 교육청은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유효기간 3년이 지나면 자동반납 된다는 규정이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이런 규정 사실을 전혀 알지도 못했으며 미리 고지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년동안 화성시와 오산교육지청이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서로 미루는 과정서 수천명의 우리 아이들은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교육권을 명백히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인구 감소로 인해 규정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현재 화성시는 인구 유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아이들이 받아야 할 의무교육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재검토를 해 초등학교 설립을 허가해 주기를 간곡해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업 진척되자 학교 설립 무산
교육청 요구사항 계속 추가

또 ‘관련법 제 89조 학교의 결정기준 2항에는 분명히 근린주거구역의 필요에 따라 주변 여건을 고려해 설정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교육청이 방법을 강구해달라. 현행법으로 어렵다면 현실성 있는 방법이라도 고지해달라. 현재 학교가 필요하며 학교 설립 요건에도 충족된다는 교육부의 뜻을, 단서나 조항 없이 화성시로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화성남양지역주택조합과 교육청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인해 취소된 것은 공문을 따로 발송 안 했을지 모르지만 ,구두로라도 했을 것이다. 교육청은 현행법을 따라야 하므로 절차대로 이행한 것”이라며 “남양 2지구와 합쳐지면 4000세대를 넘겨 학교 설립 추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남양 2지구 개발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지구 단위계획은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양 2지구 사업 관계자는 “현재 남양 2지구는 주민제안 참여인 상태로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화성시서 일부 보완해달라는 요청에 11월 말까지 기한을 줬다. 이후 화성시 심의를 거치고 나면 탄탄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현재 2지구는 1지구에 비해 진행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확한 시기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 1지구 관계자는 “교육청이 원하는 대로 수정을 해와도 매번 새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행정도 좋지만 학교 인원을 작게 하는 게 추세지 않느냐. 학교를 작게 만들었다가 나중에 증축하는 방법도 있다. 또 새로운 대안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의 위치를 옮기는 것도 불가하다. 교육청이 원하는 곳에 학교를 짓는기도 쉽지 않다. 농경지인 데다 토지 비용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성 있는
대안 제시해야”

한편, 시흥시는 이 예외규정을 적용해 4000세대 미만이라도 통학로 등 지리적 특수성을 고려해 학교설립을 승인해 줄 것과 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고 학교를 증설해줄 것을 요구했다. 경기도시장 군수협의회는 시흥시 제안 안건에 학교 준공시기를 택지개발지구 입주 시기에 맞출 수 있도록 하는 건의안을 더해 ‘수정 동의’했다.
 



배너

관련기사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