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차기 국무총리 물망 오른 4인방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11 10:15:44
  • 호수 1244호
  • 댓글 0개

부담되는 자리 ‘포스트 이낙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거론되고 있다. 연일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이 총리가 조만간 당의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와 맞물리면서 차기 국무총리에 대한 하마평도 무성해지는 분위기다. 김진표·정세균·원혜영·박지원 등이 유력 총리 후보로 등장하고 있다. 
 

▲ (사진 왼쪽부터)차기 총리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진표·원혜영(더불어민주당)·박지원(대안정치연대) 의원

이 총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김황식 전 총리(880일)의 기록을 넘어서는 2년5개월 동안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과 노련한 정치 감각을 보여왔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서 대선후보 선두주자를 지키고 있어 이 총리가 총리 출신 첫 번째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차기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장수 총리
대체할 사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김종필·고건·이회창 등 다수 총리 출신 인사들이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됐지만, 대통령이 된 총리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총리의 임명은 호남 출신 인물의 발탁이라는 탕평 인사의 의미가 컸지만 ‘사이다 답변’ ‘내각 군기반장’ ‘막걸리 회동’ ‘깨알 수첩’ 등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등 꼼꼼한 성격답게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을 했다. 

이 총리는 문재인정부의 2인자로서 지난해 7월 이후 1년 이상 여권의 차기주자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한 관심은 총선 국면으로 접어드는 올 연말과 내년 초까지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에선 차기 국무총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이 총리를 대체할 만한 국무총리가 누가 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기 총리가 될 수 있는 인사는 누구일까. 정가에선 청문회·내년 총선·지역 상징성 등이 총리의 조건으로 고려된다. 
 


우선 문정부의 첫 번째 고려 요소는 청문회 통과 여부다. 얼마 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진통을 겪었던 바 있다. 이런 상황서 청문회를 무사 통과할 수 있는 인사로는 현역 중진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진표·원혜영(더불어민주당) 의원, 대안정치연대 박지원 의원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선 중진의원들로 현 정국 상황을 고려할 때 파격과 혁신보다는 경륜과 전문성에 어울리는 인물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세균 = 차기 총리설로 물망에 오른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다. 지난달 31일 정치권서 총리로 유력하다는 설이 퍼졌다. 

정 전 의장이 이 총리의 후임으로 임명되고, 이 총리는 정치적 무게감을 고려해 정 전 의장의 지역구인 종로에 출마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일각서 제기됐다. 이 경우 종로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중구성동구을서 총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 나왔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은 이를 “근거 없는 추측”이라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정 전 의장은 ‘총리설’에 대해 “그냥 근거 없는 추측인 것 같다. (청와대 등에서)이야기를 들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종로 재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총리 퇴임 시점 주목…여권 권력지형 흔들 
‘이낙연 나비효과’ 내년 총선 민주당 전략?

국가의전 서열 2위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까지 지낸 상황서 행정부를 총괄하는 총리로 가는 것이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다는 의미다. 여기다 이 총리가 정 전 의장의 지역구에 출마하고, 정 전 의장은 이 총리의 후임으로 가는 것도 서로 자리를 놓고 맞바꾸는 형식으로 비쳐지는 게 부담이다.


정치권도 정 전 의장의 총리설에 대해 국정운영과 4·15 총선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6선의 정 전 의장은 전북서 4선을 지낸 후 대한민국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서 19대,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또 노무현 대통령 시절 산자부장관과 집권여당의 당 대표를 지냈다.

정 전 의장은 1950년 11월 5일에 전라북도 진안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과 오지의 환경서 자란 탓에 전주공고에 진학해야 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주신흥고로 전학해 1970년에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이하 DJ)의 정계 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에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6선까지 역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진표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김진표 의원도 총리 하마평에 올랐다.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를 지냈으며,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등을 거쳤다. 문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9월부터는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문정부 집권 후반기 국정과제인 경제살리기·교육개혁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권 후반기
경제통으로?

김 의원은 경기도 수원서 초·중교를 졸업하고 경복고를 거쳐 1971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재무부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공직생활 중 능력을 인정받아 정권에 상관 없이 두루 활약했다. 문민정부에선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비밀리에 금융실명제 시행을 추진할 때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DJ정부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노무현정부 시절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을 역임하며, 당시 카드대란 수습에 결정적 기여를 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장관(교육부총리)를 역임했으며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2011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출마해 3선 의원이 됐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낙선 후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국정자문위원장을 맡았다. 이때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열린 정책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능한 경제정당, 정책정당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새롭게 신설된 경기도 수원시 무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여권 중진들 
국무총리로?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려 했으나 불출마를 선언하고 전해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2018년 7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예비경선 컷오프를 통과해 이해찬, 송영길과 민주당 당 대표직을 놓고 겨뤘으나 3위로 낙선했다.

▲원혜영 = 풀무원 식품 창업자이자 5선 중진인 원혜영 의원도 차기 국무총리 후보군으로 올랐다. 원 의원은 야권 인사들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경제 등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의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원 의원은 1951년 경기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현 부천시 도당동)서 풀무원 공동체를 일군 원경선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씨는 풀무원농장의 창업주다. 이후의 식품 기업 풀무원은 출소 후 생계유지를 위해 강남 지역서 유기농 식품 가게를 운영하던 원 의원이 창업했다. 

부천북초교(당시 부천소사북국민학교)와 중동중, 경복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제적 및 복교)를 졸업했다. 1971년에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학생회장을 하던 시절 유신 헌법 반대 시위를 하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강제 징집됐다. 

전역 후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75년 민청학련 사건 미석방자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기소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6년 동안 친구 남승우 풀무원 대표와 함께 풀무원서 일했다. 
 

▲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중구 을(현 옛 오정구 지역)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서 활동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으며, 이듬해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아 부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수도권서 새천년민주당이 고전하는 와중 무려 55%의 득표율로 재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정세균, 김진표, 원혜영, 박지원…
4선 이상 중진 의원들 유력 후보 

재선 후 1년6개월 정도의 임기를 수행한 뒤 사임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8년 만에 국회 복귀 및 3선 고지에 올랐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4선 의원이 됐다. 당선된 해에 선거법 위반 문제로 1심서 벌금 500만원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으나, 대법원서 무죄 선고를 받는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5선을 달성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 의원은 5선 중진 의원으로 한 때 이석현 의원(6선)과 같은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유력했으나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박지원 =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도 총리 하마평에 올랐다. 청와대 내부서도 박 의원을 ‘검토 대상’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총리설에 대해 “일부 보도 등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내 목표는 내년 4월 지역구인 목포의 총선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총선서 승리하고, 그 이후 호남의 몫과 가치를 찾는 일에 뭐든지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야당 소속이긴 하지만, 최근까지 ‘조국 지키기’에 앞장서는 등 친여 행보를 이어왔다. 박 의원은 1942년 6월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서 출생했으며, 4선 의원으로 2019년 기준 77세로 20대 국회 내 최고령이다. 

목포시 문태고, 광주교육대, 단국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대학 졸업 후 LG 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등 기업서 근무했다. 이후 미국서 성공적으로 가발 수출 사업을 운영하면서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을 지냈다. 그러다 DJ와 인연을 맺으면서 정치 행보를 함께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돼 초선의원이 됐다. 1996년에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최소·최대한 
안정감 고려

하지만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대변인으로 대언론 소통창구를 맡았으며, DJ정부 출범 후에는 공보수석, 문화관광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중용됐다. 2009년 DJ 장례식 때는 북한 측이 조의화환과 함께 공개적으로 보내온 편지의 수신자 두 사람(임동원, 박지원) 중 1인이었을 만큼 그의 최측근이었다. 2019년 현재에도 이희호 여사의 병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장일 정도로 사후에도 10년째 완벽한 ‘DJ의 심복’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종합특검 ‘검사 파견’ 대폭 줄인 이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2차 종합특별검사팀 출범했다. 이제 수사팀을 꾸린 뒤 내란 관련 혐의 17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내란 외에도 김건희·채 해병 등 각 특검팀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건들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번 특검팀은 과거 특검팀과는 사뭇 다르다. ‘검사 파견’을 대폭 줄였다. 이는 일부 특검팀에서 야기된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차 종합특별검사팀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해병) 수사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과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블랙리스트, 부정선거 관련 유언비어 의혹 등을 재수사한다. 사무실을 정하고 수사팀을 꾸리는 데만 한 달여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분주한 움직임 윤석열·김건희에 의한 내란·외환 및 국정 농단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종합특검법)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추천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특검을 임명해야 하기에 지난 5일 특검을 임명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2일 특검 후보자에 전준철 변호사를, 조국혁신당은 같은 날 특검 후보자에 권창영 서울대학교 법전원 겸임교수를 각각 추천했다. 전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수원·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인권수사자문관 등을 거쳤다. 반면 권 교수는 판사 출신으로 대법원 노동법실무연구회 편집위원 및 간사, 중대재해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검팀 사무실 구성과 인력 파견 요청 등 출범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고 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이 광범위한 만큼 초반에는 사건별 우선순위와 수사 분담을 정하는 정리 작업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대상을 총 17개로 규정했다. 크게 보면 기존 3대 특검이 다뤘지만 규명이 미진했던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한편, 당시 특검 범위에 없던 의혹을 추가로 다룬다. 구체적으로 ▲12·3 불법 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 7개 ▲김건희씨 관련 1개 ▲채 해병 관련 1개 ▲관련 고소·고발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안 2개 등으로 분류된다. 종합특검팀도 앞선 특검팀들과 마찬가지로 인지수사가 가능해 수사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 과거 특검수사 못한 대상 총 17개로 규정 주로 12·3 내란 사안…‘정보기관’도 포함 종합특검팀이 다룰 불법 계엄 관련 의혹 상당수는 내란 특검팀 수사 과정에서 다뤄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거나, 내란 특검팀이 무혐의·각하로 종결했던 사건들이다. 대표적으로 ▲무장 헬기의 북방한계선(NLL) 위협 비행 의혹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 회동 ▲일부 지자체의 계엄 동조 의혹 등이다. 이 밖에도 종합특검팀은 내란 특검팀이 마무리하지 못해 채 군검찰로 이첩한 일부 외환 의혹, 계엄 준비 정황이 담겼다는 ‘노상원 수첩’ 의혹, 국군 방첩사령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을 재수사할 계획이다. 종합특검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건들로는 계엄 당일 계엄사령부 구성을 위해 육군본부 간부들이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서울로 이동하려 했다는 이른바 ‘계엄 버스’ 의혹이 있다. 국방부가 최근 당시 버스 탑승 간부들에게 일제히 중징계를 내린 만큼 종합특검팀은 이 사건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지시·보고 라인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김씨 관련 의혹에서는 이전 특검팀이 정해진 기간 내 수사를 끝내지 못해 경찰에 넘긴 사건들이 종합특검팀에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관저 이전 의혹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등이 꼽힌다. 종합특검팀은 관저 이전 의혹과 관련해 김씨와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을 윗선으로 봤지만 수사 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조사가 이뤄지면서 윤 의원은 기소 여부를 결론 내지 못했다. 종합특검팀이 윤 의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수사 막바지에 착수해 핵심 관련자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른바 ‘김건희 수사 봐주기’ 의혹과 사실상 손을 대지 못했다는 창원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과정의 부당 개입 의혹 등도 수사 대상이다. 또 김건희·채 해병 특검팀에서 중복 수사 대상이었지만 규명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 역시 종합특검팀이 결론을 내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계산 확연한 차이 종합특검팀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검사 파견 규모의 축소다. 과거 특검팀이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여명의 현직 검사를 파견받아 운영됐던 것과 달리, 종합특검팀은 검사 파견을 최소화하고 외부 인력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사 구조를 택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 이후 시대를 염두에 둔 구조적 실험”이라는 평가와 “수사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킨 선택”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단순한 인력 운용의 변화라기보다, 종합특검팀의 성격과 권한, 검찰과의 관계 설정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특검은 형식적으로는 독립기구였지만, 실제 운영은 검찰 조직에 크게 의존해 왔다. 수사 실무와 기획, 영장 청구와 공소 유지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파견 검사들에 의해 이뤄졌고, 특검은 사실상 ‘검찰의 별도 수사본부’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거셌다. 검찰로부터 검사를 파견받으면 대형 수사를 빠르게 진행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수사 대상에 전·현직 고위 공직자, 검찰 출신 정치인, 혹은 검찰이 과거 불기소하거나 수사했던 사안이 포함될 경우 “검찰의 셀프 수사”라는 비판이 지속됐다. 특검이 검찰의 판단을 다시 들여다보는 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번 종합특검팀의 수사 대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고위 권력층, 과거 검찰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검사 파견을 대규모로 유지할 경우,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의식했나 종합특검팀은 검사 수를 최소화하는 대신, 특검보를 중심으로 한 지휘 체계와 외부 수사 인력을 대폭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경찰, 국세청, 감사원, 금융·회계·디지털 포렌식 전문가 등 비검찰 인력 비중을 확대해 복합 사건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히 인력 구성을 바꾼 것이 아니라, 검찰 권한 축소 이후 특검의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검찰이 더 이상 모든 대형 수사의 중심이 아닌 상황에서, 특검마저 검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검찰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이 아닌 방식으로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사 파견 축소에는 분명한 정치적 계산도 담겨있다. 종합특검팀은 출범 단계부터 ‘정치 보복’ ‘선택적 특검’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검사 중심 특검은 가장 공격받기 쉬운 지점이다. 여권으로서는 ‘검찰이 주도하지 않는 가장 독립적인 특검’이라는 명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검사 파견을 줄이면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최소한 절차적 중립성에 대한 방어 논리는 강화된다. 이는 향후 수사 과정이나 결과 발표 시 정치적 공방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반대로 야권은 이미 “검사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특검은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꺼내 들고 있다. 검사 파견 축소가 수사의 공정성이 아니라 수사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무적으로 보면, 검사 파견 축소는 분명한 부담 요소다. 대형 특검 수사에는 압수수색영장 청구, 구속영장 판단, 법리 구성 등 고도의 형사법 경험이 요구된다. 검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외부 인력 중심 구조에서는 수사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검 아닌 경찰·국세청·감사원 조사관 비중 확대 “정보사 의혹 수사 시간 오래 걸릴 수도” 우려 특히 수사 이후 공소 유지 단계에서 검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특검들이 검사 파견을 중시했던 이유는 ‘기소와 유죄 입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건희 특검팀에서 벌어졌던 내부 갈등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됐던 검사들의 ‘원대 복귀 희망’ 입장문 파동이 종합특검팀에서 재발할 경우 내부 수습에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당시 입장문이 외부에 유출되며 ‘항명’ ‘집단 반발’ 등으로 알려졌지만, 특검팀 지휘부와 수사팀장들은 ‘하소연 취지’였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파견 검사들을 겨냥해 “징계와 형사 처벌 대상”이라고 비판하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국민에게 항명했다”고 규정한 것과 달리, 실제론 태업이나 이탈 없이 수사와 공소 유지를 차질 없이 진행했다. 파견 검사들은 검찰에서부터 최대 1년 넘도록 동일한 사건을 수사하며 피로감에 쌓였다. 이들은 검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수사를 매듭지으려 노력했다. 다만 재판에 넘겨진 주요 피고인들의 공소 유지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일선 검찰청의 민생 사건 적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직관(수사 검사가 공판에 직접 관여) 제한’ 방침 ▲기존 특검 관례 등을 고려하면 최소 인력만 공소 유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검 지휘부도 공소 유지 단계에선 복귀를 희망하는 검사들을 강제로 붙잡을 순 없다고 보고, 효율적인 인력 운용 방안을 고심했다. 지휘부가 입장문을 작성하기 2~3주 전부터 김건희 특검 내 일부 수사팀에선 ‘진행 중인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 후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로 뜻을 모으기도 했다. 종합특검팀은 수사 결과 이전에 이미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검찰 없이도 대형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수 있는가, 특검이 검찰개혁 이후의 사법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실패하면 역풍 불가피 만약 종합특검팀이 의미 있는 수사 성과를 낸다면, 향후 특검은 검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표준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과가 미진할 경우, “그래서 결국 검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 파견 축소는 정치적 선택이자 제도적 실험인 셈이다. 이번 종합특검팀은 단순히 몇 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검찰 이후 한국 사법 시스템이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그 성패는 수사 대상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