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최장수 총리’ 이낙연의 887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05 09:06:52
  • 호수 1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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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만 잘 넘기면 청와대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재임 887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됐다. 역대 총리 중 가장 안정감 있게 국정을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총리의 887일을 돌아봤다. 
 

▲ 최장수 국무총리 타이틀을 갖게 된 이낙연 국무총리

 

지난달 2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날은 재임 881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총리실은 역대 총리들의 취임 1·2주년 등에 맞춰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이 총리와 관련된 보도자료 등을 일절 내지 않았다. 한껏 몸을 낮춘 셈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인데, 특별히 소감이라고 할 건 없다”면서도 “그런 기록이 붙었다는 것은 저에게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 총리는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이날부로 민주화 시대 역대 국무총리 중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김황식 전 총리(880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3공시절엔 정일권 총리(1964년 5월10일∼1970년 12월20일) 등이 장기 재임했지만, 당시는 대통령 단임제가 아니었던 만큼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 총리는 1기 내각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소회에 대해 “나름대로 놀지 않고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잘된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없지 않다”며 “지표상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래도 삶이 어려우신 분들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국민들의 고통에 대해선 늘 저의 고통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국무총리로서 이 총리의 887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하다. 발탁 당시만 해도 ‘호남에 대한 배려’로 임명된 인사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취임 이후에는 국무총리로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 총리의 ‘사이다 답변’이 큰 주목을 받았다. 언론 및 정계에 오래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야당 및 언론 등의 공세에도 매우 능수능란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정부질문 때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와 경륜을 보여주며 ‘품격 있는 총리’라는 인상을 심었다. 

민주화 후 김황식 887일 기록 넘어
‘사이다’ ‘군기반장’ 이미지 구축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복지 공약을 비판하자 “복지 내용은 자유한국당 포함 5당의 대선 공약이었다”고 응수했다. 김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 대통령이)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문 대통령을 비판하자, 이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발언해 침묵하게 했다.

이 총리는 취임 일성서 “국민, 그리고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와 부단히 소통할 것”이라고 했던 약속도 충실히 지키고 있다. 과잉 의전 논란으로 빈축을 샀던 전임 황교안 총리(현 자유한국당 대표)와 달리 시민들에게 다가가며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과 함께 언론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TV 뉴스 생방송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문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현안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또 문정부가 ‘책임 총리’를 공언한 만큼, 기존의 대독 총리, 의전 총리를 넘어 각종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중량감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첫 정부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을 대신해 직접 주재했다. 국무총리가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책임 총리를 공언한 만큼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대리 업무 보고를 시켰다고 해석했다.


이 총리는 외교나 국방을 제외한 민생과 관련된 일상적인 국정 운영의 총책임자는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리스마로 
내각 장악

자신이 밝힌 소신대로 이 총리의 행보는 민생으로 정리된다. 취임 이후 이 총리는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가뭄, 수해,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숨 가쁜 민생 현장을 찾으면서 자신이 민생 현안의 최종 책임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JTBC <썰전>의 박형준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허점을 보일 때마다 이 총리가 깔끔한 조정 능력으로 이를 수습해 민심의 실망이 적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강한 통솔력과 카리스마로 내각의 ‘군기반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총리는 고위 관료들에게 업무 파악을 대단히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미숙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불호령을 날린다. 취임 초기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미숙한 모습을 보여준 류영진 식약처장에게 “이런 질문은 국민이 할 수도 있고 브리핑서 나올 수도 있는데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거라면 브리핑을 하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질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깐깐한 이 총리 때문에 장관들이 총리 주재 국무회의가 돌아올 때마다 ‘보고 노이로제’에 시달린다고 한다. 장관들 사이서 ‘대통령은 자모, 총리는 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또 다른 일화로 이 총리는 국무회의서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무안한 미소만 짓던 A장관을 향해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A장관은 사색이 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는 일본을 방문해 과거사 배상 및 무역 갈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치 중인 한일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달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관련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약간의 변화 기미가 엿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지난달 22일부터 2박3일간의 방일 기간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 아베 총리와 회담 등 공식 일정만 14개를 소화했다. 비공식 정계·학계·언론계 인사 면담도 3차례 이상 진행했다.

특히 아베 총리와의 회담은 예정됐던 10분을 훌쩍 넘겨 21분간 진행됐다. 중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아베 총리가 전날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과 19분간 회담한 것을 고려하면 한일 총리회담이 상당히 비중 있게 진행된 셈이다. 또 일본 정부서 면담이 아니라 회담이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해 양국의 총리 만남을 격상시켰다.

한일 간 대화의 물꼬를 튼 이후에도 당장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몸값이 금값이 되고 있다. 이 총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각종 여론조사서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 1위에 올라 있다. 

다음 대권?
지지율 1위

지난달 30일 ‘알앤써치’의 차기대선주자 지지도 조사결과, 조국 파동 후 이 총리 지지율은 9월보다 1.8%포인트 오른 27.2%로 종전 최고치를 경신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보다 5.6%포인트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 총리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청와대에선 이 총리를 대체할 만한 차기 총리 후보감을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여당은 이 총리가 당으로 돌아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 총리는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화롭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총리가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고,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로 꽉 막힌 한일 관계를 뚫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 데는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취임 초만 해도 문 대통령과 특별한 개인적 인연이 없는 ‘비문’인 이 총리가 문 대통령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국정의 오랜 ‘길동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총리는 ‘내각 군기반장’으로 국정 운영에 있어 안정감과 균형감을 보여 주면서 문 대통령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청와대는 물론 당 안팎서 총리를 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반면 조국 사태 이후 위기를 맞은 여권에선 ‘이낙연 역할론’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이 총리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온다. 이 총리가 총선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당내 요구는 제각각이다.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총선 역할론 힘 받아
선대위원장·험지 출마 등 여권서 러브콜 쇄도

우선 선거대책위원장 등 당의 간판으로 나서 총선을 진두지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이해찬 대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 이 총리가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나서면 민주당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험지에 직접 출마하거나 종로·세종 등 격전지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총리가 높은 지지율로 여권 내 대선후보 1위 자리를 거머쥐면서 대중적 지지도가 높기 때문이다. 
 

▲ 고 이완구 전 총리

‘총선 차출론’은 이 총리의 향후 대권 행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총리 체제로 치러진 총선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이 총리의 단점도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비문이나 당의 혁신을 요구하는 소장파가 이 총리를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선거 과정 인지도를 높일 수 있으며, ‘호남 출신 한계론’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정치권은 이 총리가 당으로 복귀한다면 어떤 시기에, 어떤 자리로 복귀할 것이냐를 두고 여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총리의 향후 거취는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부터 내년 총선에 출마할 공직자들의 사퇴 기한인 내년 1월16일 사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후임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다. 총리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통과된다. 조국 사태로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감이 높아진 탓에 마땅한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점도 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법무부장관 외에는 달리 개각을 예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사퇴 언제?
총선 차출설

이 총리도 지난달 28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눈치 없이 오래 머물러있는 것도 흉할 것이고, 제멋대로 (처신)해서 사달을 일으키는 것도 총리다운 처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만큼 여당은 이 총리의 총선 전 당 복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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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