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이 노리는 최고의 포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0.28 10:36:54
  • 호수 1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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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 앞으로’ 장기말이 움직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문(친 문재인)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총선판에 대한 구상이다. 당정청의 핵심 인사들을 가장 적절한 곳에 배치, 최대 효과를 누리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정황은 당내 곳곳서 포착된다. <일요시사>는 총선이라는 무대서 친문이 노리는 최고의 포석을 추적했다.
 

▲ (사진 왼쪽부터)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채동욱 전 검찰총장,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친문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인 이른바 ‘3철’의 한 명인 양정철 민주연구원(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원장이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등과 회동을 가졌던 사실이 알려졌다.

3철 중 2철
총선 나서나

네 사람은 지난 10일 광화문의 한 식당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의 인재영입을 위한 만남이 아니냐는 반응을 내놨다. 

양 원장은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을 주도한 바 있다. 이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서 밝혀졌다. 지난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열린 윤 후보자 청문회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2015년 양 원장의 (20대 국회의원)총선 인재영입 과정서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이 맞느냐’고 질의하자 윤 후보자는 “맞다”고 답했다. 

윤 후보자는 가까운 선배가 서울에 올라오면 한 번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양 원장도 그 자리에 나와 있었다고 회상했다. 양 원장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함께 지난 7월부터 인재 물색에 나선 상태다. 그는 향후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 활동을 도울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때문에 양 원장이 포함된 네 사람의 만남은 정치권의 큰 이목을 끌었다. 특히 채 전 총장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다. 그는 박근혜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좌천되다시피 검찰총장직서 물러났다. 보수정권의 찍어내기 피해자라는 상징성을 지녔다는 측면서 민주당에게 적합한 인재로 평가된다.

실제 채 전 총장의 전북 군산 출마설이 올 초부터 대두된 상태다. 그는 서울 출생이지만, 부친이 군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채 전 총장의 친척들도 군산서 다수 거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의 필요와도 맞아떨어진다. 군산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지역이지만, 지난 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 김관영 후보에게 내줬다. 민주당 입장에선 군산뿐 아니라 호남 전역으로 ‘민주당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채 전 총장처럼 중량감 있는 후보가 나와주길 희망하는 눈치다. 

‘3철’ 양정철-채동욱 만남 왜?
군산 출마설 솔솔∼가능성은?

그 외에도 전직 검찰총장 출신인 채 전 총장이 국회에 입성한다면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검찰 개혁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양 원장을 비례대표로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단 양 원장은 채 전 총장 영입설에 대해 선을 그은 상태다. 네 사람의 만남은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신 전 실장을 환영하기 위한 자리였지 인재영입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양 원장과 민주연구원 측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공개적인 곳에서 만났고, 그런 자리서 영입 문제나 민감한 검찰 관련 조언을 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 원장과 함께 3철의 한 축인 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차기 법무부장관으로 거론된다. 이는 전 의원 본인의 의사보다 민주당 내부의 요구라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 의원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친문계서 전 의원의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여러 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민주당은 이른바 ‘조국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복수의 여론조사서 한국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졌다. 한때 오차범위 내까지 좁혀진 적도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당초 민주당 내에서는 총선 승리는 물론, 내심 과반 이상의 의석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조국 사태가 있기 전 <일요시사>를 통해 “선거는 최대한 나쁜 쪽을 예상하고 임하는 것이 맞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당내에서는 130석 플러스알파를 얘기하는 쪽이 우세하다. 150석까지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호남 선봉장
채동욱 거론

그러나 상황은 급변했다. 낙관론은 사라졌다. 이런 위기감은 특히 부산·울산·경남(PK) 등 한국당과의 접전이 예상되는 지역서 두드러진다. 이러다간 PK를 한국당에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PK 지역 친문계서 제기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 14∼18일 전국 성인 2505명을 대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를 조사하고 21일 발표한 결과, 지역별로 대구·경북을 비롯해 대부분의 지역서 전주보다 상승한 반면 PK는 긍정평가가 35.0%서 33.2%로 하락했다(자세한 여론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만약 PK서 민주당이 밀린다면, 이는 PK친문의 위기뿐 아니라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민주당은 20대 총선서 부산 6석, 경남 3석, 울산 1석을 확보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물론 부산시의원 47명 중 41명, 경남도의원 58명 중 34명을 배출하는 압승을 거뒀다. 

그럼에도 1년 사이 PK친문계에서는 양산·김해도 힘들 수 있다는 비관론이 새나온다. 양산엔 문 대통령이 사저가 있고, 김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이 있다.

그렇다고 친문계 입장서 문재인정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검찰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해철 카드’다. 이는 특히 PK친문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PK친문은 전해철 카드로 조국 사태를 정면 돌파, 검찰 개혁서 성과를 내 민심의 반전을 노릴 계획이다. 전 의원은 조 전 장관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있어 검찰 개혁의 추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 이낙연 국무총리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민주당 내 역할론도 눈에 띈다. 이 총리는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 타이틀을 갖고 있다. 2017년 5월31일 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임기를 시작한 이 총리는 이전의 최장수 기록이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기록(880일 재임)을 경신했다. 이는 반대로 이 총리가 언제 자리서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을 의미한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총리의 연말 사퇴를 높게 점친다.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이때까지는 자신의 정치적 거취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문 내부에서는 조국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인물로 이 총리가 거론된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서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이 총리가 ‘당의 얼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국 출마
기정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다. 이 총리의 국정운영에 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책임 총리’ ‘일하는 내각’ 등을 실현시킨 인물로 꼽힌다. 문 대통령도 이런 이 총리에게 그간 힘을 실어줬다. 이 총리의 해외 순방 때 문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내주기도 했다. 이런 점은 향후 친문계와 그 지지자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요소다.

이 총리 역시 총선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당시 이 총리는 “지금 이 위치(국무총리)에 있지만, 여전히 내 심장은 정치인”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4일에는 지인들과 이 총리가 막걸리 만찬을 즐기던 중 한 참석자가 “조국 사태에 대해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 질문하자 이 총리가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의 출마 예상 지역으로는 서울 종로와 세종이 꼽힌다. 종로는 ‘정치1번지’, 세종은 ‘행정수도’로 불릴 정도로 상징성이 큰 지역이다. 친문은 이 총리가 세종으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종로로 나서는 상황을 최선으로 본다. 중량감 있는 대선주자들이 경선서 붙을 경우 자칫 내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은 지난 6월 일찌감치 종로로 이사하며 당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서 이 총리가 종로로 나선다면, 1명의 대선주자급 인물이 본선서 뛰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불명예 퇴진한 조국 전 장관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역할론’이 대두됐다.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지만, 정치권의 말을 들으면 일면 납득이 간다. 조 전 장관이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민주당은 ‘서초동 집회’를 통해 조 전 장관의 총선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서초동서 ‘조국 수호’를 외쳤다. 친문 핵심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인물로 검증된 것이다.

임종석 종로? 이낙연 세종?
조국 vs 나경원 빅매치 성사?

조 전 장관의 총선 역할론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기 전부터 부산 지역 출마설의 중심에 있었다. 문정부의 사명인 검찰 개혁을 연말까지 마무리 지은 조 전 장관이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다. 

부산시당위원장인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지난 4월 “인재 영입 가이드라인을 부산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정 운영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정했다”며 “이 기준에 맞는 대표적인 인물이 조국”이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홍영표 의원도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단 민주당 내부에서만 제기됐던 사안은 아니었다. ‘정치9단’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지난 6월 “(조 전 장관이)내년 2월까지 장관을 수행하고 사퇴한 뒤 부산서 총선에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

조 전 장관이 실제 총선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불명예 퇴진을 한 상황서 섣부른 총선 출마는 자칫 민주당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한경비지니스>와의 인터뷰서 “지금 이 상황서 그런(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 얘기를 하는 것이 과연 (민주당에)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지금 판단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친문 진영에서는 대안으로 조 전 장관의 수도권 출마설이 나온다. 조국 사태의 근원지인 부산을 벗어나 수도권에 출마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다. 조 전 장관 딸의 특혜 논란과 조 전 장관 일가가 운영하는 웅동학원을 둘러싼 여러 의혹은 모두 부산서 일어난 일이다.

수도권 출마설 중 조 전 장관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에 출마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학과 82학번 동기며, 최근 자녀 특혜 의혹으로 동시에 주목받았다. 

나경원과
한판 붙나

지난 21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종합감사에선 다시 한 번 이 문제가 불거졌다.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조 전 장관 딸의 특혜 논란과 “표창장 위조 등에 대한 대책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따졌다. 반면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유력 정치인의 딸이 대학에 입학할 때 입시 전형이 급히 만들어진 것에 교육부가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왔다”며 나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같은 당 박경미 의원 역시 나 원내대표 아들이 서울대 의대 연구 포스터 제1저자가 된 것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조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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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