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잃은 박원순계 운명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7.20 10:14:55
  • 호수 1280호
  • 댓글 0개

상주가 보이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 수장을 잃은 계파가 표류하고 있다. ‘박원순계’ 이야기다. 정치권에선 21대 총선을 통해 박원순계가 20여명으로 늘었다고 본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일요시사>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원순계’는 선장을 잃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박원순계는 21대 국회 들어 순항할 듯 보였다. 지난 총선서 다수의 박원순계가 합류해 세를 불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홍근·남인순·기동민·진성준 의원이 총선서 승리했으며, 여기에 김원이·민병덕·윤준병·천준호·허영 의원 등 초선이 합류했다. 정치권에선 20대 국회서 10여명 정도였던 박원순계가 21대 국회서 20여명으로 약 2배가량 세를 불렸다고 본다.

분위기
좋았는데…

세부적으로 따지면 이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범친노인 정세균계는 10여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유력 대권·당권주자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NY계’는 이 의원의 ‘식사정치’ 등으로 세 확장에 성공, 박원순계와 비슷한 수준의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내부서 박원순계는 촉망받는 계파 중 하나였다.

순항할 것 같던 박원순계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돌연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생을 마감하며 던진 숙제가 계파의 존립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를 받던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즉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박 전 시장의 유고로 공소권 없음 처분 대상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곳곳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원순계 인사들은 대부분 박 전 시장과 함께 서울시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박 전 시장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경우에 따라 불똥이 박원순계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원순계가 곧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 즉 박원순계 인사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같은 신호는 벌써부터 감지된다.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박 전 시장에 대한 입장이 박원순계 내부에서도 갈리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갈래로 입장이 나뉜다.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받지 않는 일이 급선무라는 입장도 존재한다.

한순간에 초상집…20명 어디로?
각자도생이냐, 새 얼굴 옹립이냐

민주당 윤준병·진성준 의원은 앞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각을 세우며 논란을 불러왔다.

먼저 진 의원의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는 지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피해 호소인이 얘기하는 바도 물론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박 (전)시장이 (성추행)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을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일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장례식 자체를 시비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장 ⓒ사진공동취재단

진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성추행 혐의 고소 사건을 정치적 쟁점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했다. 진 의원은 박 전 시장 밑에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의 발언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는 자신의 SNS에 “고소 진위에 대한 정치권 논란과 그 과정서 피해자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서 답한 것”이라며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윤 의원 역시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 근무하면서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서(성추행 피해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 내용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있었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내부서도
의견 갈려

윤 의원은 자신의 글이 논란이 되자 이를 해명했다.

자신의 글을 인용해 일부 언론서 가짜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 근무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하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일상과 안전이 조속히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자세를 낮췄다.

고소인의 상처를 헤아리는 일이 급선무라는 박원순계 인사들도 있다. 민주당 박홍근·천준호·남인순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박 전 시장의 과오를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 전 시장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박홍근 의원은 지난 14일 장례를 마치고 “고인으로 인해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는 고소인의 상처를 제대로 헤아리는 일은 급선무”라며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언급을 하는 것조차 고소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거나 유족이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 봐서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이어 “고인이 스스로를 내려놓은 이유를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정치인 중에 가깝다는 제게도 자신의 고뇌에 대해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저는 고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은 아닐까 라고 추측할 뿐”이라고 했다.

천준호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에 “그의 과오에도 마음을 열고 경청하고 성찰해 극복하려 노력하겠다”며 “나에겐 누구보다 존경하는 선배였고, 친구였고, 동지였던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과 공을 계승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단, 왜곡된 정치적 선동과 비인간적 행태에는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비상 걸린 
전 비서실장

대표적인 박원순계 중 한 명인 남인순 의원은 지난 1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반복되는 사건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피해 호소인이 현재 느낄 두려움과 당혹감에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호소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 자리서 서울시에 피해 호소 묵살 및 엄폐 여부, 성평등 조직문화 저해 요소 조사 등을 위한 진상조사 및 재발 방지 대책 기구 구성을 요청했다. 국회에서는 성희롱이나 차별 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 제정에 앞장서겠다는 것이 남 의원의 입장이다.

현재 남 의원은 민주당 젠더폭력대책태스크포스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계인 민주당 허영·박상혁 의원 등은 성추행 의혹에 말을 아꼈다. 대부분 초선 의원들이다. 허 의원은 서울시 비서실장, 박 의원은 정무보좌관 출신이다. 

지난 15일 서울시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비서였던 만큼, 전직 비서실장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지난 2015년부터 4년 동안 서울시장 비서실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등을 비롯해, 국회 진출에 성공한 전직 비서실장 출신 박원순계 의원들에게까지 조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

전당대회 역할론 부상
GT계 모델? 손학규계?


박원순계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8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와 차기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서 일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이른바 ‘GT(김근태)계 모델론’이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을 중심으로 뭉쳤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별세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GT계’의 결속력은 흔들렸다. 한때 거대 계파였던 GT계의 당내 영향력이 약해져갔고, 결국 친노(친 노무현)에게 추월당했다. 계파의 수장을 잃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박원순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그러던 GT계는 김 전 의장의 아내인 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남편의 뒤를 이어 국회에 입성, 구심점을 찾았다. 이는 GT계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모임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더 나아가 GT계는 당정의 요직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우원식 전 원내대표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장 박원순계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서 적지 않은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규모다. 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김부겸 전 의원은 박양숙 전 서울시 정무수석을 캠프 대변인으로 영입, 박원순계를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박원순계가 단일대오를 이뤄 김 전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은 낮지만,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공산은 크다. 일각에선 내년 4월 열리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계가 뭉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손학규계’처럼 와해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손학규계는 손 전 대표의 탈당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찬열 전 의원이 손 전 대표를 따라 탈당했지만, 강훈식·전혜숙·고용진·김병욱 의원 등은 당에 남았다. 당에 남은 이들은 친문과 교류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와해 VS
단일대오

손학규계처럼 박원순계가 와해될 것이라 전망하는 쪽은 박원순계가 수평적이 아닌 방사형 구조라는 점을 이유로 든다. 계파 내 인사들이 서로 인연을 맺어온 구조가 아닌, 박 전 시장을 중심으로 모인 구조라는 것. 박 전 시장이 사라진 마당에 서로를 향한 끈이 사라진 박원순계는 자연스레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