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류’ 친문의 분화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19 10:40:28
  • 호수 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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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문!” 슬슬 쪼개지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문이 분화하고 있다. 비문을 흡수하는 데 성공, 단일대오를 이룬 친문이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는 것. 정치가 생물이라면, 세포분열에 해당한다. <일요시사>는 친문 분화의 모든 것을 취재했다.
 

▲ (사진 왼쪽부터)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유은혜 교육부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

“지금 민주당에 있는 사람들은 다 친문(친 문재인)이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친문-비문(비 문재인)으로 접근하면 민주당 계파를 파악할 수 없다는 조언도 건넸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의 친소관계를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각자도생
선택한 3철

‘친문=3철’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3철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민주당 전해철 의원을 일컫는다. 세 사람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연스레 3철이 내각에 중용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권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 의원을 제외한 2명은 문 대통령 당선 직후 아예 해외로 떠났다.

3철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 지난해 있었던 6·13지방선거 때다. 3철이 지방선거에 출마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전 수석은 부산시장 출마설에 휩싸였다. 그러나 곧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전 의원이었는데 그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상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였다. 두 사람은 민주당 경선서 맞붙었다. 전 의원은 친문 프리미엄에 힘입어 나름 선전했지만, 이 지사의 인지도를 넘지 못하고 패했다.


각자도생은 계속됐다. 지방선거 후 두 달이 지나 열린 전당대회 당시 3철은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서 회동을 가졌다. 전 의원의 북콘서트 이후 첫 회동이었다. 그들은 전당대회와 관련해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이날 회동서 이 전 수석과 양 원장은 ‘중립’을 선언했던 반면 전 의원은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현역 의원으로서 당내 문제에 중립을 지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전당대회 키워드는 ‘진짜 친문’, 바로 ‘진문’이었다. 출마한 송영길·김진표·이해찬 후보 모두 ‘내가 진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3철이 큰 영향을 미칠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전 의원의 선택은 김 후보였다. 물밑서 김 후보를 지원하던 전 의원은 3철 회동이 있고 10여일 후에 ‘경제 당 대표’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김 후보의 당시 슬로건이었다. 전 의원이 간접적으로 김 후보 지지에 나선 것이다.

‘친문-비문’ 이분법은 옛말
친문=3철? “지금 1철 시대”

당시 전 의원과 함께 움직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엉이 모임’이다. 부엉이처럼 밤새도록 ‘달’(문 대통령)을 지킨다는 뜻이다. 주로 민주당 내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들로 구성됐으며 규모는 20∼30여명 정도다. 전 의원을 구심점으로 권칠승·김종민·황희·홍영표 의원 등이 주요 구성원이다.

18대 대선 때 결성된 부엉이 모임은 19대 대선 때 정기모임의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모임은 전당대회 개입설에 휘말려 해산을 선언했다.


부엉이 모임은 친문 분화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전 의원과 부엉이 모임이 김 후보를 지지하자 세간의 관심은 과연 이들의 지지가 ‘이해찬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느냐로 모아졌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이해찬 대표는 김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21대 총선을 이끌 민주당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친이해찬계와 부엉이 모임이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와 전 의원의 사이가 이전만 못하다는 말도 나왔다. 이 대표가 지난 2012년 경기 안산 상록갑에 선거사무실을 낸 전 의원에게 축하 영상을 보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였다고 한다. 전당대회는 두 사람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갈등설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원내대표 경선을 했을 때다. 이인영·김태년·노웅래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치권은 김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봤다. 김 후보는 이 대표의 측근으로 대표적인 친이해찬계다. 21대 총선의 지휘봉을 잡고 있으며, 여권 내 위상이 상당한 이 대표가 버티고 있어 김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다.
 

▲ (사진 왼쪽부터)전해철·황희·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후보가 김 후보와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점 끝에 승리한 것이다. 범친문인 이 후보는 당초 당선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인영 당시 후보를 지지한 건 민주평화국민연대(이하 민평련), 더좋은미래, 그리고 부엉이 모임이었다. 다시 말해 부엉이 모임이 전당대회서 복수에 성공한 셈이다. “선거서 졌던 조직인데, 표를 모아올 수 있겠느냐”는 당내 일각의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이해찬과
척졌나?

부엉이 모임보다 최근 더욱 주목받는 모임이 있다. 바로 이 후보를 원내대표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인 민평련과 더좋은미래다. 민평련과 더좋은미래, 부엉이 모임은 문재인 대선캠프서 실무급으로 함께 선거를 치른 경험과 함께 ‘친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민평련은 소속 의원들 모두 ‘김근태계’다. ‘민주화 운동의 전설’ 고 김근태 전 의원의 정신을 받들어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재야 운동권 출신들이 모임의 주축을 이룬다. 인재근 의원을 비롯해 우원식·이인영·정춘숙 의원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더좋은미래는 지난 19대 국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내 진보개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 만든 정책모임이다. 김현권·남인순·신경민·우상호·제윤경·홍의락 의원 등을 비롯해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 등이 이에 속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목해야 할 모임은 더좋은미래다. 주목받는 신친문이 다수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를 여럿 배출하기도 해 당내 주목도가 높다. 대표적으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장관, 김현미 장관,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진선미 장관,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더좋은미래 출신이다.

20대 국회 들어서 지도부도 다수 배출했다. 민주당 1기 원내지도부인 우상호 전 원내대표, 박완주 전 원내수석부대표가 더좋은미래 소속이다. 2기 원내지도부인 우원식 전 원내대표, 박홍근 전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3기 원내지도부에서는 진선미 의원이 여성가족부로 입각하기 전,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다. 지난해 전당대회서 선출된 남인순 최고위원도 더좋은미래에 속해 있다.

더좋은미래는 현안에 대한 목소리도 내왔다. 대표적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관한 발언이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쉽사리 접점을 찾지 못할 당시 더좋은미래는 기자회견을 열어 “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당내 일각서 제기된 ‘기소권 양보’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친문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최재성 의원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승리했을 때 친문에 합류했다. 그는 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을 도와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그때 최 의원이 추진한 것이 바로 ‘디지털 정당화’다. 이후 ‘온라인 권리당원’으로 들어온 많은 이들이 문 대통령 지지자로 활동 중이다. 

뜨는 신친문
면면 보니…

그는 지난해 재보궐선거로 국회에 재입성했다. ‘실세 친문’답게 굵직한 명함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당 전략기획자문위원장직이다. 내년 총선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다. 최 의원은 당내 ‘전략기획통’으로 분류된다.

또 다른 굵직한 명함은 바로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문재인정부가 맞닥뜨린 최대 암초다. 민주당은 이러한 중책을 최 의원에게 맡긴 것이다.

최 의원은 계속해서 일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일본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서 일본 기자들이 국내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관제 반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최 의원은 “(문재인)정부가 국민에게 일본 제품을 사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일본 정치에 올림픽을 끌어들이지 말라” “원인 제공은 아베 정부의 조치 때문이다” 등 참석한 일본 기자들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다.
 

▲ (사진 왼쪽부터)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최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일본 경제보복과 관련해 일본 여행, 2020도쿄올림픽, 일본으로의 D램 수출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닌 국민의 안전, 그리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임을 강조했다. 이는 정부 차원서 발표하기 어려울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다.


최 의원과 함께 최근 가장 주목받는 친문이 있는데 바로 양 원장이다. 당내 일각에선 “지금은 1철 시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3철 중 가장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해외에 있다가 지난 5월 민주연구원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그간 뉴질랜드 등 해외서 머물렀다. 그랬던 그가 복귀해 민주연구원의 ‘병참기지화’를 선언했다. 선거 전선에 뛰어들어 민주당의 총선 승리에 일조하겠다는 각오였다. 

부엉이모임 친문서 분화
들뜬 ‘재수회’ 이유는?

이후 그는 자신의 말을 실현하고 있다. 잇따른 광폭행보가 그것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의 단독 면담을 시작으로 서훈 국정원장과 심야 회동을 가졌다. 민주당 대권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과도 잇따라 자리를 가졌다.

특히 서 원장과의 심야 회동은 뒷말을 낳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즉각 국정원의 총선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서 브리핑을 통해 “가까이 할 수도, 가까이 해서도 안 될 두 사람(양 원장, 서 원장)이 4시간에 걸친 밀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국가 정보기관의 내년 총선 개입이 본격화한 것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연구원의 병참기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 또 하나 있다. 한일 갈등이 제21대 총선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취지로 작성된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가 논란이 됐다. 해당 보고서에 사용된 데이터가 비공개 자료였다는 점까지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낳았다.

양 원장이 맡고 있는 민주연구원은 연구소라는 성격상 크게 주목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양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친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은 양 원장과 부엉이 모임의 관계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총선 후 ‘친문의 분화’가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어서다.

만약 총선 후 부엉이 모임이 지금보다 더욱 세를 확장한다면, 이해찬 체제 이후 새로운 지도부를 꾸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부엉이 모임의 핵심인 전 의원이 직접 당 대표 선거에 나설 수도 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앞서 전 의원은 이해찬 대표가 당선된 전당대회 때 김진표 의원과 단일화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권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만약 차기 당권에 전 의원이 도전한다면 부엉이 모임의 지지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때 양 원장 등 친문 핵심과의 관계 설정이 관전 포인트다.

양 원장은 또 다른 친문 모임인 재수회의 멤버다. 재수회는 지난 18대 대선 후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이란 취지로 문 대통령의 측근들이 결성했다. 18대 대선서 낙선한 문 대통령의 야인생활을 가장 지척거리서 보좌한 모임으로 꼽힌다.

부엉이 모임
당권 노릴까

재수회 멤버는 양 원장을 비롯해 서 원장,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윤제 주미대사, 신현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민주당 박광온 의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멤버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조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만약 그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재수회의 당내 위상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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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