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명단’ 검사 블랙리스트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0.21 13:50:08
  • 호수 1241호
  • 댓글 0개

윤석열도 노트에 올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2012년부터 법무부가 검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리스트에는 윤석열 검찰총장도 이름이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직 검사도 검사 블랙리스트를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신빙성이 더해졌다. 검사 블랙리스트가 사실이라면, 판사 블랙리스트에 이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 윤석열 검찰총장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지난 15일 법무부의 ‘검찰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 의원은 이날 오전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서 올해 2월 폐지된 법무부 내규상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지침’을 언급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12년 6월 시행
지난 2월 폐지

이 의원에 따르면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6월 제정·시행됐다가 지난 2월28일 폐지됐다. 이 지침은 검사들 가운데 ▲평소 행실 등에 비춰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자 ▲업무 관련 법령이나 지침 등을 위반한 자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자 ▲동료검사나 직원과 자주 마찰을 일으키는 자 ▲기타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를 관리대상으로 지정, 명단을 작성해 대검찰청이 감찰하도록 규정했다.

이 의원은 “업무수행이 불성실한 검사를 집중 관리하겠다는데 법을 다루는 법무부서 가능성만 가지고, 또는 불성실하다는 것만 가지고 집중 관리 대상이 된다는 게 기가 막힌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명단을 법무부 검찰국장이 매년 정해서 대검에 보낸다는 건데, 규정을 보면 검찰국장은 긴급해 집중 관리가 필요한 검사를 발견할 때 언제든지 관리 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돼있다”며 “또 집중 감찰 결과를 적격심사 및 인사에 반영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 검찰국장이 기관장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기관장도, 인사권자도 아닌 검찰국장이(관리대상) 명단도 지정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인사에 반영한다는 것인가”라며 “법무부가 대놓고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질 당시 한동운 대검 반부패부장이 실무에 참여했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게 왜 만들어졌는지 (한 부장에게)확인해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명단을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명단을 확인해서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 극소수를 관리했는지 아니면 정치적 의도 때문에 누군가가(명단에) 들어갔는지”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기 들어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없어졌다고 해서 덮고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2012년부터 리스트 작성
말 안 듣는 검사 집중 관리 대상?

국감 증인으로 나온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해당 내규가)무슨 취지인지는 알겠는데 추상적인 것 같다. 경위를 파악해서 보고하겠다”며 “(명단)보고 여부는 개인의 인적사항이 오픈되는 것으로 본인이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검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요구해 이 의원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임 부장검사는 “수사관들이 하이에나처럼 나에 대한 나쁜 말들을 찾아 헤맸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 16일 임 부장검사는 SNS에 “법무부, 대검(대검찰청), 고검(고등검찰청)의 수사관들이 세평 수집 명목으로 제 주변 동료들을 얼마나 탐문하고 다니던지(모른다)”며 이같이 밝혔다. 
 

▲ 임은정 검사

이어 “올해 초 법무부와 대검에 검사 블랙리스트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요구하고,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며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사건 수사로 법무부 검찰과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제 이름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임 부장검사는 자신이 과거사 재심 무죄구형 사건으로 검사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임 부장검사는 “(지난 2012년) 과거사 재심 무죄구형건으로 이름을 올린 후 계속 명단에 머물렀다(고 들었다). 검찰을 바로 세우자고 거듭 말했을 뿐”이라며 “법원·문체부 블랙리스트를 만든 사람들이 처벌 받듯 검사 블랙리스트를 만든 이들도 처벌받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치외법권은 없다, 진상규명과 수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세평 수집 명목
탐문하고 다녔나

검찰은 이 의원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대검 관계자는 “적법하게 제정된 근거 규정에 따라 관련 업무가 진행됐고, ‘집중 관리 대상 검사’가 선정 및 관리됐다”며 “이같이 관리된 명단이 '블랙리스트'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침 제정과 명단 작성 과정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를 지휘하는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참여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대검 관계자는 “한 검사장이 2012년 당시 해당 지침을 제정한 실무부서인 법무부 검찰과서 근무한 것은 맞지만, 제정은 물론 명단 작성에도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2012년 제정됐다가 올해 2월 폐지된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은 법무부 검찰국장이 해마다 집중 관리 대상 검사를 선정해 대검에 보고하도록 한다. 집중 관리 대상은 ▲평소 성행 등에 비춰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자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 또는 해태하는 자 ▲근무 분위기를 저해하는 자 등이다. 대검은 이 명단을 토대로 감찰을 실시해 검사적격심사 및 인사 등에 반영해왔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도 해당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윤 총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윗선의 수사 개입을 폭로한 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는데 이후 집중 관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침에는 중징계를 받으면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도록 돼있다. 

중징계 받으면
관리 대상으로

검찰 내부 비판을 꾸준히 해 온 임 부장검사도 박근혜정부 시절 수년 동안 관리 대상에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법무부의 지침이 감찰 강화가 아닌 정권이나 검찰 조직에 눈엣가시 같은 검사를 견제하는 데 악용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총장은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 의원으로부터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을 받고 “저는 그런 지침이 법무부나 대검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 총장은 “통상 대검은 공판송무부서 무죄평정을 하고 감찰부서 정기 사무감사와 개별 세평 등 정보에 의한 감찰을 하고 있다”며 “그런 결과들을 다 기획조정부를 경유해 법무부 검찰국에 보내서 검사 인사에 반영해오고 있는데, 그게 아마 시기적으로 당시 스폰서 검사 사건 등 때문에 검사들의 복무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만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랙리스트라고 밖에서 오해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정상적인 예규 규정, 법무부 훈령에 의해서 만든 것”이라며 “나중에 적격심사 등 제도가 생겨서 그것이 실제로 큰 사용가치가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고 부연했다. 이어 “하여튼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검사들이 나름대로 정당하게 일을 했는데, 소위 시쳇말로 ‘문제 검사 리스트’로 관리돼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검 “아니다”라 하지만…
판사 블랙리스트와 판박이?

이번 검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앞서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전국 법원장들에게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과 비슷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선 법원장들까지 동원해 판사들의 기초자료를 수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2일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장들은 근무평정표 이외에 소속 판사들이 사법행정을 비판하거나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내용 등을 정리한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2013년부터 해마다 작성했다. 법원장들은 대법원장 신년 인사차 대법원에 방문할 때 이 보고서를 ‘인비’(人秘·인사비밀)라고 적은 봉투에 담아 법원행정처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처서 매년 작성된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즉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기초자료가 됐다.

‘물의야기 법관’은 원래 음주운전이나 성추행 등 비위를 저지른 판사를 뜻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2012년 정기인사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사법행정 방침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 대법원 입장과 배치되는 하급심 판결을 선고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등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법관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용 가치
없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차장은 정기인사 때 물의야기 법관 현황 보고서와 언론·국정감사서 문제가 된 사안, 법원장들에게서 보고받은 인사관리 상황보고 등을 종합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하도록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문건에 담긴 인사조치 방안에 수기로 'V'자 표시를 하거나 구두로 부임지를 정했다. 완성된 판사 블랙리스트는 작성 때와는 반대 방향, 즉 법원행정처서 각급 법원으로도 건네져 개별 법관의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