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감사 묵살한 바른미래당 ‘검은 세력’ 실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26 10:12:53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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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도 막고 자료도 막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른미래당 김유근 전 당무감사관이 같은 당 손학규 대표를 징계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당 윤리위원회에 제출했다. 4·3보궐선거 당시 당헌·당규를 위반한 것은 물론 특정 여론조사 업체와 결탁한 정황이 있다는 것. <일요시사>는 징계 청원서의 근거인 김 전 감사관의 당무감사보고서를 입수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김 전 감사관의 조사를 방해한 일부 인사들의 정황이 담겨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최근 당무위원회로부터 4·3보궐선거 당시 당헌·당규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4·3보궐선거 당시 바른미래당의 싱크탱크인 ‘바른미래연구원’은 ‘조원씨앤아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김 전 감사관이 쓴 당무감사보고서의 결론 중 하나는, 손학규 대표가 여론조사 업체를 조원씨앤아이로 선정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는 것이다. 연구원과 조원씨앤아이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3회 실시하는 대금으로 6600만원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보고서
내용 보니…

실제 여론조사는 2회만 실시됐다. 조원씨앤아이는 여론조사 2회에 따른 4400만원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실시된 2회 중 1회는 조원씨앤아이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조사해 3월27일 공표한 결과와 같았다. 

당시 오신환 사무총장(현 원내대표)과 총무국은 연구원을 상대로 특별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3월16일부터 17일까지 조원씨앤아이가 실시하고, 4월1일에 제출한 2차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는 <쿠키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3월25일부터 26일까지 실시, 3월27일 공표한 여론조사의 결과 값과 동일하다. 

이 때문에 당 내부에선 “조원씨앤아이가 실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2200만원을 부당하게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사건은 현재 금천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 당은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6월 당무감사관 3명을 임명해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보고서는 감사관 3명 중 김유근 전 당무감사관이 작성한 것이다.

김 전 감사관은 지난 6월4일 오후 3시16분 당 총무국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당무감사관으로 임명됐다는 내용이었다. 활동기간은 문자를 받은 4일부터 같은 달 18일까지였다. 2주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6월 작성된 감사관 보고서 입수
조사 요구에 감사위원장 ‘불허’

그러나 실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그것보다 짧았다. 6일 현충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물리적으로 김 전 감사관에게 주어진 기간은 10일부터 18일까지 단 일주일이었다. 김 전 감사관은 “사실상 깊이 있는 감사를 실시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김 전 감사관은 지난 6월7일 바미당 당사 8층서 열린 첫 감사관 회의에 참석했다. 주대환 당시 당무감사위원장도 참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 위원장의 회의 참석은 애초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 주대환 바른미래당 당무감사위원장

피조사 범위가 이날 회의서의 핵심 논의사항이었다. 일부 참석자들은 앞서 실시된 특별 예비조사서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된 박태순 전 바른미래연구원 부원장, 실무담당자인 박모 연구원,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로 한정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최종 결론은 이와 달랐다. 피조사 범위를 한정하면 자칫 부실 감사가 될 우려가 있어서였다.

이후 본격적인 면담 조사가 진행됐다. 6월11일에는 연구원 소속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12일에는 바른미래당 이재환 전 창원성산 후보자와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13일에는 김대진 대표를 비롯해, 창원성산 보궐선거 당시 중앙당서 파견된 태스크포스팀이 대상이었다.


김 전 감사관은 1차 조사 이후 조사 대상을 추가할 필요성을 느꼈다. 바미당에선 이모 소장과 김모 국장, 박모 국장, 조원씨앤아이에선 송모씨와 이모씨가 대상이었다. 

감사관 3명
보고서 작성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당무감사 차원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모 소장을 조사하기 위해 주대환 위원장에게 동의를 구했으나, 그는 이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조원씨앤아이의 송모씨와 이모씨에게는 출석을 요구했으나, 당사자들의 거부 의사가 명확하고 김 대표가 항의해 조사가 불가능했다. 

이후 전화 면담을 요구했으나 당사자들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김 전 감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향후 수사기관의 조사가 이뤄질 경우 세 사람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의견을 달았다. 

또 김 전 감사관은 박태순 전 부원장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선거기간 동안의 행적과 추가 공모자를 밝히는 데 핵심적인 증거가 될 것으로 판단, 자료요청을 했으나 주 위원장의 불허로 자료확보에 실패했다고 보고서에 기술했다. 그는 손 대표와의 면담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내렸다. 1차 조사 과정서 손 대표에 대한 진술이 여러 번 나왔기 때문이다. 

홍경준 바른미래연구원장은 지난 2월20일 박 전 부원장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손) 대표님께서 창원 보궐선거 후보(로) 출마하는 이재환 후보 지원을 위한 여론조사와 기타 활동에 대해 연구원이 담당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김대진 대표도 손 대표의 지시로 여론조사가 시작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 일요시사가 입수한 바른미래당 당무감사 보고서

“이재환 후보의 요청도 있었고, 그 상황에 맞춰서 (손)대표님과 이야기도 되고, (바른미래)연구원서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조사가 진행되면서…(중략)…그러면서 대표님의 지시로 연구원서 여론조사 기능을 수행했고…(중략)…당시 박태순 부원장이 저희한테 대표님이 이제 연구원서 조사를 진행해라 그렇게 지시가 왔다고 얘기했다.”

당 대표
지시라고?

오신환 원내대표(당시 사무총장)는 박 전 부원장이 자신에게 손 대표가 조원씨앤아이에게 여론조사를 맡기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를 어떻게 조원씨앤아이와 하게 됐나?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기관을 경쟁시켜 선별해 견적 받아서 하라고 했더니, 부원장이 ‘당 대표님 지시입니다’, 그랬던 것 같다.”


세 사람 진술의 교집합은 ‘손 대표가 바른미래연구원에 창원성산 보궐선거 지원을 위한 여론조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 전 감사관은 손 대표와의 면담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손 대표와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주대환 당시 당무감사위원장이 조사가 필요 이상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기 때문이다. 김 전 감사관은 주 위원장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손 대표에 대한 면담조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경우 자칫 당무감사가 파행될 수 있다고 판단해 당 대표에 대한 조사를 포기했다.

김 전 감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했다. 연구원의 부원장이 손 대표의 지시라는 이유로 여론조사 업체에 대한 검증 절차 없이 계약하고, 2차 여론조사가 시행되지 않았음에도 대금을 지급하는 초유가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처음부터 3회의 여론조사를 실제 실시할 의도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사건이 오신환 원내대표(당시 사무총장)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다면 총 6600만원의 대금이 전액 입금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냈다.

자료 요청해도 가로막아
대표측 “보고서는 허위”


김 전 감사관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지난 20일, 당 윤리위원회에 손 대표에 대한 징계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보궐선거와 관련 당헌·당규를 위반한 것은 물론 당 대표로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섰다”며 “특정 업체와의 결탁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 부당한 행위가 있었다는 당무감사 내용과 이로 인해 당과 연구원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할 것이므로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 김유근 전 바른미래당 당무감사관

손 대표가 위반했다는 당헌은 제7장 정책연구원의 제74조(정책연구원의 설치와 기능)와 75조(정책연구원의 조직과 운영)다.

74조엔 “당의 정강·정책의 실현, 중장기 정책 및 전략의 수립, 정책네트워크 구축 등을 위해 독립된 재단법인으로 정책연구원을 설치·운영한다”고 규정돼있다. 75조는 “정책연구원은 객관적인 연구를 위해 인사와 조직의 독립성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 전 감사관은 “당무감사 결과 손 대표는 연구원에 지난 보궐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 업체 선정 시 특정 업체를 선정하게 지시 혹은 압력을 행사했다”며 “이는 연구원의 당연직 이사장인 당 대표의 권한을 넘어선 명백한 월권행위다. 특정 업체와 손 대표의 유착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진짜냐?
가짜냐?

이어 “여론조사를 하지 않은 것을 알고도 지급된 정황이 있는 2200만원은 도대체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는지 당무감사관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국민으로서 매우 궁금하다”며 “손 대표가 이번 의혹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제3의 길’을 간다면, 당원과 국민들 귀에 손학규 선언도 공염불로 들릴 것이다. 손 대표께서는 제3의 길을 가시기 전에 금천경찰서에 먼저 가서 의혹을 깨끗하게 해명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당사자인 손 대표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손 대표 측은 지난 22일 <일요시사>는 통해 “징계청원서와 관련한 입장은 없다”며 “징계청원서의 근거가 된 김 전 감사관의 보고서는 허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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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