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바른미래당 혁신위 장지훈 간사

“‘바미’ 지나면 해가 뜰 겁니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슬프다. 그럼에도 혁신은 계속되어야’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 장지훈 간사의 카카오톡 알림말이다. 90년생인 장 간사는 취업 대신 대학원을 택했다. 정치인이면 공부해야 한다며 막걸리를 사주던 손학규 대표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르던 손 대표를 향한 존경심은 혁신위 활동으로 산산조각 났다. 장 간사와 바른미래당은 현재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다.
 

▲ 장지훈 바른미래당 혁신위 간사

지난 6월,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21대 총선을 위해 당의 방향과 혁신 과제를 수립하는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혁신위원들은 모두 40대 미만인 ‘정치 신인’들로 구성되면서 당이 ‘아픈 곳’을 진맥해 원동력이 되고자 했다. 문제는 ‘당 지도부 검증안’이었다. 이를 두고 비당권파와 당권파가 대립해 갖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면서 당의 ‘내분’이 고스란히 국민들께 조명됐다.

혁신위는 9명이었으나, 현재 5명만 남았고, 활동은 오는 15일이면 끝이 난다. 혁신안은 의결이 됐음에도 그 어떤 것도 상정되지 못했다. 당은 ‘말 잘 듣는’ 혁신위가 필요했나. 당에서 말하는 ‘검은세력’은 또 누구인가. 장지훈 간사에게 혁신위를 둘러싼 내막에 대해 들었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바미당 혁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장지훈입니다. 90년생으로, 현재 대학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혁신위 출범 때 계파색이 옅은 청년들이라 기대가 된다는 반응과 혁신위도 계파 갈등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 공존했는데. 실제 어떠신가요. 
▲혁신위분들 중 김소연·이기인·구혁모 시의원님 등 다 권력에 대항해 바른말 하다 유명해지신 분들이에요. 계파색은 씌여진 거지 저희가 입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혁신위 사람들은 말을 잘 듣는 편도 아니고, 소신 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젊은거지 어리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근 당권파 추천 인물인 주대환 전 위원장을 포함해서 혁신위원들이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 혁신위 이대로 활동 가능한가요.
▲혁신위는 당규상 독립기구고, 아홉 명 이내면 충분히 굴러갈 수 있습니다. 다만 회의는 위원장이 소집하게 돼있어요. 근데 저희에겐 전원 의결을 통해서 선임된 간사가 있으니 간사대행체제로 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선 위원장 공백 시에는 간사가 원래 위원장 대행을 맡게 돼있어요. 


-회의는 어려운 상황이군요.
▲사실상 무력화돼있는 상태지만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계속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어떤 모종의 의도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면 진짜 분노할 일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검은세력’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소신 없는 사람이 됐어요. 농담을 조금 섞어서 얘기하자면 학창시절에 선생님 말씀도 안 듣고, 엄마 말도 잘 안 들었는데. (웃음)‘누구’의 말을 듣는다는 식으로 낙인 찍어 버리는 게 마음 아프죠.

-최근 유승민, 이혜훈 의원이 혁신안에 개입됐다는 임재훈 사무총장의 폭로가 있었습니다.
▲유승민 의원님께서 주대환 전 위원장님을 만났다고 들었어요. 근데 이건 저희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주 전 위원장께서 혁신위 운영 당시에 따로 불러서 “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유승민 의원도 만났다. 거기서 야권 체제 개편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말해주셨거든요. 그걸 (사무총장이) “너희들 몰랐지? 이거 굉장히 대단한 내용이고, 나는 지금 큰 발표를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기자회견을 하셨어요. 사무총장으로서 중립성을 지켜야 되는 본분도 잊어버린 행동이라 생각하고요. 헛다리를 짚으셔도 진짜 단단히 짚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으로 ‘독립성이 훼손됐다’ 이런 평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혁신위원은 독립성을 존중받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강요나 협박을 했다면 독립성이 크게 훼손된 것인데요. 저도 당 혁신 방향에 많은 분들로부터 제안은 많이 받았거든요. 결국 자신이 들은 내용을 전위대 격으로 행사를 하게 되면 그게 독립성을 해치게 되는 거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주대환 전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당을 깨려는 검은세력에 분노’한다고 하셨는데요.
▲주 전 위원장님께서 사퇴하시고 나서 문자를 개인적으로 드렸어요. “제가 혹시나 언행으로 기분 나쁘게 해드렸다면 죄송하고 배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은세력 발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슬프고 유감스럽다”고요. 향후 (언론서)나오는 내용을 보면 자꾸 검은세력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상의, 바지, 신발 심지어 속옷까지 검은색으로 입고 다니고 있어요.

-페이스북 라이브 이름도 ‘검은세력들’ 이더라고요.
▲(웃음) 오히려 그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정말 아니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검은 안경을 쓰고 보니까 검은세력인 거지. 프레임을 씌워 사람을 몰아가는 건 굉장히 구태정치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방법이 정치 신인들에게 쓰였다는 게 굉장히 슬프고, 우려스럽고, 두렵고, 화가 나요. 현재 많은 감정들이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검은안경 쓰고 보니 검은세력
‘바미스러움’을 아이덴티티로

-언론에선 혁신위로 오히려 바미당의 내분이 심해졌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저희는 내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내분이 생길 여지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절차와 규정대로 저희는 진행했는데, 그 규정과 절차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무시됐잖아요.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은데 저희 의도는 아니었죠.


-민주적인 절차로 표결한 후 의결된 혁신안인데 상정되지 않는 이유는요.
▲상정되지 않는 이유는 사실 손 대표님께 물어봐도 답을 해 주지 않으세요. ‘혁신위는 위원장이 없으니까 이게 절차상 상정되지 않는 게 맞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시는데, 원론적이지도 않아요. 위원장이 계시는 상태서 의결했습니다. 혁신위 당규에 보면 토론으로 의결된 안건은 자동으로 상정이 되고요. 그러니까 이건 지켜져야 하는 절차가 맞아요. 

-다른 조치를 취하셨나요.
▲의도적으로 의결을 미루고 있어서 사무총장님께 제가 (안건을)직접 뽑아서 들고 들어가기도 했어요. 직접 당 대표님과 최고위원님들 앞에서 보고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계속 손을 들고 발언권을 달라고 얘기를 해도 안 주시더라고요. 저희가 혁신안을 상정하게 된 이유나 배경에 대해 설명을 좀 들어달라. 내용을 들으시면 생각이 바뀌실 거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들으시더라고요. 이후에 손 대표님이 저희를 찾아오셔서 ‘저희가 퇴진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사퇴를 주장하는 게 아닌데요.
▲당규에 보면 회의 내용을 의결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고 돼있어요. 저는 속기록을 공개하고 싶어요. 회의서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들으면 명백하게 밝힐 수 있잖아요. 
 
-손 대표 포함 당 지도부 검증이 혁신안에 포함됐는데 이를 상정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내년 총선을 대비한 당의 방향과 비전이 제시된 게 지금 하나도 없거든요. 그러므로 당의 주인인 당원들에게 평가를 받자. 그래서 강제성이 없는 여론조사로 ‘이 지도부의 비전은 확실한가’를 묻고, 믿음직스럽다고 하면 우리가 다시 재신임을 해줘서 확실히 추진력을 얻어 나가고 그게 아니라면 어떤 체재로 가는 게 맞을지 당원들에게 물어보려는 거였어요.
 

(당 지도부 검증안이)당의 어려움을 진맥해서 고질적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이 아픈 이유를 모르면 뭐가 바뀐다 한들 사람들이 바미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똑같잖아요.

-바미당의 내분이 심상치 않습니다. 당의 문제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당의 문제를 세 가지로 진단해요. 첫째는 당의 내홍, 당에서 맨날 싸워서 ‘바미하다’ ‘바미스럽다’라고 불리잖아요. 둘째는 정체성의 모호성, “너네 뭐 하는 정당이냐?” “그래서 진보냐? 보수냐?” 그리고 세 번째는 곧 없어질 당이라는 의심이요. 이번 혁신안이 그런 부분들을 분명히 건드려주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맨날 싸우면 ‘바미당이 또 바미했네’라는 말을 듣잖아요. 사실 정치인들은 항상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 위해 싸워야 되거든요. 길거리서 멱살 잡고 싸우면 불법이지만, 글러브를 끼고 링에서 싸우는 건 스포츠가 돼요. 지도부들이 공개적으로 검증받게 해서 싸울 수 있게 하는 그 ‘바미스러움’을 아이덴티티로 만들어 내홍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면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 수 있어요. 싸울 거면 문 닫아 놓고 싸우지 말고, 문 열고 싸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당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혀야 돼요.

-바미당을 지켜보는 국민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정말 죄송하고요. 갓 돌이 지난 바미당은 지금 과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싸우거나 결정을 못 내릴 때 ‘바미당이 바미했다’ ‘바미스럽다’라는 이런 말을 하시는데 저는 밤이(바미) 지나면 해가 뜰 것이고 밤이(바미) 있기에 아침도 밝다고 생각해요. ‘바미’하는 것들이 지나게 되면 정치에 다당제나 중도개혁이라는 큰 해가 뜰 수 있다고 저는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그날까지 저는 당을 떠나지 않고 분골쇄신할 각오가 돼있고요. 제가 당에 진 빚을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갚을 겁니다. 국민 여러분들도 앞으로 바미당에 큰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angmi@ilyosisa.co.kr>


[장지훈 간사는?]

▲1990년생 
▲전라남도 순천 출생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정치학 석사 과정 
▲전 국민의당 부대변인 
▲전 바른미래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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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