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한국 사회상

서점에 가면 대한민국이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한 권의 책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 이 책은 교보문고, 예스24 등에서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반일 불매운동과 맞물려 높은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옮겨 붙어 대중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취미로 꼽는다. 오프라인 서점은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 아이디를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중고서점은 책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규모 주는데
신작 늘어나

한국의 출판시장은 독특한 구조를 띤다. 전체 시장 규모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새로 나오는 책의 종류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내놓은 2017년도 출판산업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서적출판업 규모는 201312490억원, 201412238억원, 20151840억원, 201611732억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361548종서 2015791종으로 처음 7만종을 넘어선 데 이어 2017년에는 8130종으로 8만종을 돌파했다. 2년에 1만종씩 늘어나는 추세다. 말 그대로 매일 새 책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쏟아지는 책들 사이서도 사회 상황에 따라 일정한 흐름이 생긴다는 점이다. 교보문고나 예스24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서 1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서 내놓는 한 해 결산 자료를 보면 그런 흐름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매년 열풍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판매 순위가 형성되는 것.


최근 반일 불매운동이 국민들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서점가에서 일본 관련 서적이 영향을 받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대표적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지난 7월에 출간됐지만 그때보다 현재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서 한일 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이 과정서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친일 발언을 이어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치권으로 번진 책에 대한 논쟁은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반일 종족주의>는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에서 1주일간(8511)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떠올랐다. 반일 불매운동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은 셈이다.

실제 베스트셀러는 사회의 상황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이 많다. 시대상을 알고 싶으면 그해 베스트셀러를 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베스트셀러를 시대상의 거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새 책 쏟아져도 일정한 흐름
사회 상황 따라 쏠리는 현상

지난해 출판시장을 먹여 살린 장르는 에세이다. 특히 힐링 에세이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서점에 가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한 책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괜찮아라며 독자를 위로하고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들이 지난해 최고 인기를 누렸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11, 11일부터 11개월 동안 에세이 도서 판매량이 같은 기간보다 171%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후속작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의 힐링·공감 에세이가 지난해 서점가를 달궜다.

실제 교보문고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등극했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간 베스트셀러 결산자료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외에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6종의 힐링 에세이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힐링 에세이 열풍은 올해 상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에세이 도서 출간 종수는 1220종으로 1102종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여종 이상 늘었다. <연필로 쓰기> <여행의 이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등 소설가와 시인이 쓴 에세이가 다수 출간됐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에 6번이나 이름이 올라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3위를 차지했다. 혜민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2위였다. 지난해 출간됐던 힐링 에세이도 여전히 강세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힐링 에세이 열풍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등의 사회 현상과 결부시킨다. 많은 젊은이들이 급변하는 사회 상황에 불안정함을 느낀다. 또 좁아진 취업시장으로 인해 빈번하게 상처받는다. 이런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힐링 에세이로 치유 받는다는 것.

힐링 에세이
위로 필요해

특히 최근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종교인 등이 내놓은 에세이보다 친구나 동료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듯한 말을 담은 책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이 읽은 힐링 에세이의 일부 구절이나 표지 등을 공유한다. SNS를 통해 확산된 정보는 판매량으로 직결된다.

20162017년 사이에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 서적 열풍은 이제 서점가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서 따온 메갈리아가 등장했고, 서울 강남역 화장실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에 출간됐다가 대중의 관심에 밀렸던 책들도 재조명됐다.

특히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에 이어 스테디셀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201610월에 출간한 <82년생 김지영>201811월 누적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 1982년생 김지영의 탄생과 성장, 연애와 결혼, 사회생활, 출산과 육아 등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담았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출판계를 강타한 것은 마이클 센델 하버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한 인문학이다. 당시 출판계는 유례없는 불황 상태였고 인문학은 여러 장르 중에서도 독자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장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서점가에 불어 닥친 정의 열풍은 역설적으로 정의에 대한 결핍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 행태, 인사청문회 과정서 불거지는 후보자의 비위,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 등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실망이 센델 교수의 책으로 분출됐다는 분석이다.

페미니즘·정의
시대상 반영

자기계발서 열풍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힐링에도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려고 생각할 때쯤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린다. 2013년 서점가에 불었던 힐링 열풍이 잠잠해진 틈을 타 2015년 자기계발서 열풍이 다시금 불기 시작했다.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시도를 넘어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계발로 이동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

교보문고는 지난 2017, 1980년대 이후 베스트셀러 분석을 통해 시대상이 독자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소개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대중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억압을 느끼던 시대다.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대표적이다. 22살의 법대생 장총찬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누적 판매 560만부를 기록했다.


1980년대 하반기는 시와 소설의 전성시대였다. 이해인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5,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년과 1988년에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88년에는 종합 베스트셀러 1~3위가 모두 시집이었다.

교보문고는 출판물에 대한 검열과 탄압의 수위가 올라가던 시기에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는 시가 시대정신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이 시기의 베스트셀러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독자들의 니즈가 다양해졌다. 문학에 쏠려 있던 독자의 관심이 인문, 자기계발, 컴퓨터, 실용서 등으로 확대됐다. <반갑다, 논리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8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에는 에세이가 흥했다. 가정이 붕괴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사회 전체가 어두운 때였다. 따뜻한 느낌의 소설이나 위로를 담은 에세이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가시고기> 등이 판매량 부분에서 호조를 보였다.

힐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

2000년대에는 부자성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2006<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스토리형 자기계발서가 크게 늘었다. 2007년과 20082년에 걸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시크릿>은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자기계발서로 꼽힌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자기계발서 열풍은 이어졌다.


2009년에는 <엄마를 부탁해>, 2012년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2013년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교보문고는 “2010년 하반기부터는 정치 이슈가 베스트셀러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 ▲▲ ▲ 이영훈 교수가 쓴 &lt;반일 종족주의&gt;와 신경숙 장편소설 &lt;엄마를 부탁해&gt;

서점가에선 매년 반짝 특수를 누리는 시기가 있다. 노벨문학상 선정 시기나 국내작가가 해외서 큰 상을 탔을 때다. 20165월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국내 작가가 탄 건 한강이 처음이었다.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판매량이 폭발하면서 2016년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노벨문학상 발표는 매년 10월경 이뤄진다. 후보자조차 공개하지 않고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수상작을 비롯해 이전 작품들까지 높은 관심을 받는다.

반짝 특수
미디어셀러

방송을 통해 언급되거나 유명인사가 추천한 책의 판매량도 반짝치솟는다. 미디어와 베스트셀러를 합쳐 미디어셀러라고 부른다. 2004년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는 지난해 4월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 소개되면서 방송 직후 판매량이 12배 이상 뛰었다드라마 <남자친구>서 언급된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스카이캐슬>에 등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도 미디어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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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건진법사·노상원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여러 비선 실세가 있었다. ‘V0’ 김건희씨의 최측근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군 인사를 좌지우지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이들에게는 ‘무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씨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기일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이 서로 일면식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씨와 전씨는 김건희씨 및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했다. 노 전 사령관만이 김씨와 윤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알았는지가 드러나지 않았다. 김건희 일가를 잘 아는 이들은 위의 인물들이 각자의 존재를 인지해 왔다고 한다.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비선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범하자 기웃기웃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부터 논란을 달았다. 지난 2021년 TV 토론회 당시 그의 손바닥에서 ‘王’ 자가 세 차례 포착됐다. 이는 김씨의 무속 의혹과 겹치면서 지지율 폭락을 가져왔다. 전씨는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1월 윤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씨가 윤 전 대통령의 등에 손을 올리고 사무실을 소개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전씨가 ‘고문’으로 네트워크본부의 실질적인 지휘를 담당했다는 의혹과 함께 ‘무속인’이 캠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거대책본부는 “(전씨는) 고문으로 임명된 바 없다”고 해명한 뒤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전씨의 영향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최근 검찰 수사에선 전씨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최소 3명의 공천 청탁을 했고, 비슷한 시기 통일교 전 고위간부 윤영호씨가 전씨에게 김씨에게 줄 선물용 목걸이를 전달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전씨는 당시 ‘윤핵관’으로 꼽혔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 선거 운동에 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확보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2021년 12월 윤 의원은 전씨에게 ‘권성동 의원과 제가 빠지는 게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라고 묻는다. 전씨는 ‘후보는 끝까지 같이 하길 원하는데 빠진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검찰 조사에서 전씨는 “사람들이 제가 힘 있는 줄 안다”며 이런 의혹들을 부인했다. ‘무속인 논란’ 이후 기자 등을 피해 숨어 지냈다고도 했다. 전·노 윤석열 캠프 외곽 그룹서 활동 “정권 초기부터 셌다” 일면식 있었나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과 달리 전씨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윤 전 대통령 당선 후 더 커졌다. 검찰은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를 전후해 전씨가 받은 경북 영주시장·경북도의원 등의 공천에 영향력을 발휘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들을 확보했다. 또 전씨가 경북 봉화군수·경남 합천군수·경기 성남시장 후보 등과 관련해 윤 의원에게 청탁을 시도한 정황도 파악했다. 청탁을 한 사람 중 일부는 실제로 당선됐다. 전씨는 검찰에 “공천 부탁이 아니라 추천”이라고 답했다. 김건희 특검팀은 최근 전씨 휴대폰을 포렌식하며 ‘건희2’로 저장된 인물과의 대화 내역 일체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19일 ‘건희2’로 저장된 번호로 8명의 이름과 근무 희망 부서를 적은 명단을 보냈다. 8명은 대부분 윤 전 대통령 대선캠프 내 ‘네트워크 본부’에서 일했다. 전씨는 “사모님께 말씀드렸다. 꼭 해주시라고 당부했다”는 취지의 문자를 이어 보냈다. 그러자 ‘건희2’로 저장된 인물은 다음 날 전씨에게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김씨 측은 전씨가 ‘건희2’로 저장한 번호의 실제 사용자는 김씨의 ‘문고리 3인방’으로 꼽히는 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다. 특검팀은 지난달 25일과 31일 두 차례 정 전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 전 행정관을 상대로 전씨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전씨가 보낸 메시지를 김씨에게 전달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검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 및 김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다수의 공직 희망자로부터 인사 청탁과 공천 청탁을 받고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그는 윤석열 캠프서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특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은 주로 출근하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제의로 캠프에 몸담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의 역할이 국방·안보 정책 자문을 뛰어넘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 5월 단독으로 보도했던 노 전 사령관 기사를 보면 그는 2020년~2021년 사이 ‘식목일행사계획’ ‘YP(윤 전 대통령 추정)작전계획’ ‘YR(와이알)계획’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압수한 노씨의 유에스비(USB)에 있던 문건으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가 주된 내용이다.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식목일행사계획 파일에는 ‘분노와 정의’라는 제목 아래 ▲(검찰총장) 퇴임 시 행동 ▲퇴임 후 동력 유지 방안(예) ▲퇴임 이후 정치 참여 방안(2~3개월 야인 생활 후) ▲대선 카드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퇴임 시기에 대해 “자의로 퇴임 시 지금의 몸값을 최대한 유지하여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 직전이 유리, 기자회견은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여 퇴임합니다’라고 간명하게 함”이라고 적었다. 2021년 4월 치러졌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에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인데, 윤 전 대통령은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 한 달여 전인 3월4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해서 노 전 사령관은 문건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우려와 인식을 공유하여 지도자급으로서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재래시장, 청계천, 남대문, 지하철 등에서 몰래카메라의 형식으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냄새를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깜짝 행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았다. 또 “현 정치체제와 일정 기간 거리 두기를 하다가 내년 9월을 목표로 국민의힘에서 모셔가는 형식으로 영입” “AN(안철수 추정) 등 여타의 후보군을 모두 참여시켜서 경선을 하고 여타의 후보군이 꼼짝없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사전에 정리 작업”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사퇴 4개월 뒤인 2021년 7월 영입 제안을 받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YP작전계획’ 문건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이라는 ‘Y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연예인, 중도좌파도 끌어들이는 과감한 인물 영입”을 통해 “후원 지지 그룹 구성”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어 “친박, 비박을 포용하는 탕평책”을 사용하고 “좌파 중량급을 영입”해서 “당권 장악”을 한 뒤 “대선 성공”을 하는 단계를 순서도 형식으로 그렸다. 막강한 영향력 아울러 “좌파 정권이 추진한 경제정책을 좌파 적폐 척결 차원에서 폐지”하고 “한미일 안보 축을 기본으로 하고 한일관계를 적폐 청산과 국민적 인기 영합 차원에서만 다룰 것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정책적 내용이 적시됐다. ‘YR계획’에는 “국립묘지 참배,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두루 참배” 등 내용이 적혔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10월26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박정희·김대중·이승만·김영삼 전 대통령 순서로 묘소에 참배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11일에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 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 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책·현안 모두 비선 실세 말대로 실현 김·노 라인 물적 증거 없어 수사 필요 전씨와 노 전 사령관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의외로 ‘일본’과 무속이다. 김건희 특검팀 관계자 4~5명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전씨의 법당으로 들이닥쳤을 당시 ‘일본 신상’의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전씨의 법당은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 면적만 279㎡(약 84.4평)에 이르는 단독 주택 2층에 있다. 2층(90.18㎡)엔 거실과 큰방, 작은방, 화장실이 있고, 1층(134.02㎡)은 일반 가정집 형태 생활공간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이 설치돼 있다. 2층 거실과 큰방에 각각 부처상과 일본 신화에 나오는 아마테라스상을 모신 불당과 신당이 한 개씩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씨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이자 신도(神道)의 주신으로 일컫는 아마테라스를 모신 건 한국 전통 무속이 일제 시대 신사 참배 등 일본 신도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은방은 테이블과 방석이 깔려 있는 응접실 형태의 손님 대기실인데, 전씨는 이 방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제기된 2018년 자유한국당 영천시장 예비후보와 사업가 이모씨, 축구선수 이천수 등을 만났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일본어를 매우 잘한다. 육사 졸업 후 일본에서 수년간 거주한 까닭이다. 노 전 사령관이 일본 동북대 석사 위탁교육을 받는 동안 그의 딸들은 현지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이 일본에 오래 거주하지는 않았다. 일본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신사에도 자주 갔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2019년부터 경기도 안산 본오동 ‘아기보살’ 점집에 얹혀살았다. 등기부 등본에는 이 점집의 소유주가 아기보살 윤모씨로 돼 있다. 왜 하필 일본? 윤씨와 노 전 사령관을 잘 안다는 한 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기보살 점집에 가보면 노씨가 트레이닝복이나 잠옷 차림으로 있기도 했다. 점 보러 오는 손님이 많은 집이라 노씨가 손님들 줄도 세우고 그랬다. 1년쯤 지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씨가 실은 자기가 장성 출신이라고 그러기에 ‘웃기지 마라, 나도 군대 ‘장’ 출신’이라고 대꾸해 줬다, 병장. 그런데 몸집도 탄탄하고 해서 장군 출신이 무슨 사연이 있어 이런 데 사는구나 짐작했다. 노씨는 후배 군인들을 데려와 점을 보게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