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파란만장 풍운아 정두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7.22 10:09:01
  • 호수 1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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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할 말은 했던 ‘왕의 남자’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두언 전 의원이 세상을 등졌다. 향년 62세. 그는 그동안 진정한 ‘보수의 품격’을 보여주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이명박정권의 일등 개국공신서 가수, 음식점 사장, 시사평론가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쳤던 풍운아였다. 
 

▲ 고 정두언 의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두언 전 의원이 지난 16일, 북한산 자락길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2시30분쯤 자신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북한산 자락길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3시42분쯤 집에서 정 전 의원의 유서를 발견한 부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오후 4시25분쯤 정 전 의원을 찾아냈다.

4선 도전 실패
극심한 우울증

경찰은 가족에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가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정 전 의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의원의 갑작스런 비보에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날 사고 현장을 직접 찾은 자유한국당 김용태 의원은 “동료 의원으로서 정 전 의원의 명복을 빌면서 한 말씀 드리겠다”며 “정 전 의원이 우리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참으로 깊고도 선명하게 남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였고, 현장 정치를 떠나고도 정치에 도움이 되고자 평론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며 “정 전 의원이 정치발전을 위해 꿈꿨던 꿈을 동료 의원들과 후배 정치인들이 꼭 이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구두 논평을 내고 “2016년 정계은퇴 이후 합리적 보수 평론가로서 날카로운 시각과 깊이 있는 평론으로 입담을 과시했던 그를 많은 국민들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정 전 의원은 새누리당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정권 핵심 중의 핵심이었던 노련한 전략가였다”며 “이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 사유화를 비판하며 이명박정권과 등을 지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정치인이기도 했다”고 고인의 삶을 평했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역시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바미당 김정화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하던 정치인,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맹활약하던 시사평론가로서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이 비통하기만 하다”고 애도를 표했다. 이어 “부디 하늘에서는 걱정과 고민 없이 편히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다시 한 번 고인을 애도하며,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에게도 각별한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진짜 합리적 보수 정치인이었다. 저와는 절친도 아니고 이념도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였다”고 회고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우리는 MB(이명박)에게 잘못 보인 탓에 저축은행 비리에 연관됐다며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무죄로 명예회복돼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때때로 부인과 개업한 식당에 가면 예의 쑥스러운 웃음으로 감사해하던 정두언 의원. 영면하길”이라고 덧붙였다.

총선 낙마 이후 우울증 앓아
홍은동 야산서 숨진 채 발견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 전 의원 측에 조문 메시지를 전했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든 개국공신이자 저격수였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은 장례식장을 찾아 근조화환을 전달했다. 

이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원래 평소에 (정 전 의원과)한 번 만나겠다는 이야기를 감옥 가시기 전에도 했다”며 “이 전 대통령께서 오늘 조문을 오려고 생각을 했는데, 병원 이외에 다른 곳에는 보석으로 출입과 통신을 하는 것이 제한돼있어 변호사를 통해서 대신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는 “조문을 하려면 재판부에 신청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며칠이 걸려서 못 오게 돼서 아주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가까웠던 이들은 “정 전 의원이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했다. 그의 우울증은 4선 의원에 도전했던 서울 서대문구(을) 지역서 낙선한 뒤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 전 의원은 이 지역구에서만 내리 3선에 당선된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일명 ‘왕의 남자’로 불릴 만큼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주도하며 MB와 사이가 틀어졌다. 그는 MB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이상득 전 의원을 겨냥해 ‘권력을 사유화한다’며 출마 포기를 권유했다.

당시 총선에 출마하려던 29명의 총선 후보자는 정 전 의원 주도로 ‘이상득 불출마’에 서명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이 전 의원에게 총선에 나가지 말 것을 권유한 배경에 대해 “그 길만이 진정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손해를 보는 것은 참아도 이치에 안 맞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내 미래가 불투명해져도 후배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들이 하는 일에 명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MB정부 개국공신
권력사유화 비판 

정 전 의원을 포함한 29명의 총선 후보자가 지속해서 이 전 의원을 설득하자 그는 결국 ‘2선 후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정 전 의원과 이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 경선캠프서 기획본부장, 대선 당시엔 전략기획총괄기획팀장 등을 지내며 얻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후광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2012년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대법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고 정치적으로 재기했지만, 당내 입지가 줄어든 정 전 의원에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4선 도전에 실패한 정 전 의원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바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서 그는 “내가 악몽을 꾼 건가. ‘여기가 어디지’ 싶더라고”라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오니까 정말로 힘들더라고. 지옥 같은 곳을 헤매다가 눈을 떴어. 한동안은 여기가 어딘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 말했다.
 

▲ 고인이 된 정두언 전 의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인간이 본디 욕심 덩어리인데, 그 모든 바람이 수포로 돌아가 ‘이 세상서 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삶의 의미도 사라진다. 내가 이 세상서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급성 우울증이 온 거지”라며 우울증이 심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털어놨다.

구치소서 출소한 뒤의 심경에 대해서는 “세상에 나오니 점점 도루묵이 되더라. 나를 기다리는 건 배신이었다. ‘이제 정두언은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평온이 깨지고 분노와 증오가 서서히 생겨났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1957년 3월6일 서울서 운전기사인 아버지와 공사장 잡일을 하던 어머니 사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방 후 만주서 귀국, 사촌 형과의 인연으로 서울에 정착하게 됐다. 

신민당의 정치인이자 6·3사태 당시 한일협정 반대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던 정성태 전 국부회의장은 아버지와 같은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같은 항렬의 친척이었다. 정 전 국회부의장은 그의 아버지를 각별히 여겼고 정 전 의원은 그를 큰아버지라 불렀다고 한다. 

정 전 의원은 청소년기에 가정이 불우한 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서대문 모래내 시장에 좌판을 펴서 5남매를 교육시켰다. 정 전 의원은 “아버지는 늘 밖으로 도셨고 수시로 어머니를 구타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너무 두렵고 싫어서 자기애 또는 자존심을 드러냈다”며 자신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고백했다.

그는 1972년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부터 화장실서 30분~1시간 정도 노래를 부를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으나 가수의 꿈을 접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록밴드를 결성했다. 보컬그룹명은 ‘spirit of 1999’였는데 세기말을 염두에 둔 작명이었다. 정두언은 학과서 스타급이었다. 술자리나 회식 또는 연수회를 가면 언제나 사회를 맡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 뒤 진로를 고민하며 도서관을 다니던 중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고시 성적은 우수했지만 실습점수가 0점이었다. 구청 인사 담당자와 시비가 붙어 해당 관계자가 앙심을 품고 영점 처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다른 인사 담당자가 그를 합격시켰다. 


계속된 변신
굴곡진 인생

그 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합격자들에게 부여되는 특혜인 장교 복무 대신 사병으로 자원입대해 강원도 양구의 부대서 복무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행정 사무관시보에 임용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무 제2장관을 지내던 시절 보좌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20여년간 정무장관실, 문화체육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국무총리 비서실 등을 거쳤다. 노 전 대통령이 문화체육부장관으로 발령나자 정 전 의원은 그를 따라 문화체육부에 배속돼 올림픽 개최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1985년 1월에는 국무총리실로 발령, 청소년대책반서 근무했다. 그 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비서관으로 있을 때 그는 상사의 순직을 봤다.

1987년 4월에는 4·13 호헌 결사 반대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해 정 전 의원은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KBS 방송의 드라마급 주연을 뽑는 KBS 탤런트 공채에 응시, 4단계 최종 시험까지 합격했지만 아내와 가족들의 만류로 스스로 포기했다.

1991년 미국으로 특별 유학을 간 그는 2년간의 연수를 받았으며 이 기간 중 조지타운 대학에 다니면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국무총리 비서실로 옮겨 국무총리실 정무 비서관, 정보 비서관, 공보 비서관 등을 지냈다.

2000년 정 전 의원은 이회창의 권고로 정계 입문을 결심했으나 같은 해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장재식 후보에게 2000표 차이로 낙선하고 만다. 이듬해 그는 공무원 생활의 경험을 근거로 총리 등 행정부 고위 관료의 부끄러운 실태를 공개하고 비평한 책인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를 발간했다.

정치권 충격에 빠져
여야 애도 물결 쇄도

같은 해 교통사고로 2개월간 병상에 입원했던 그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찾아와 캠프 합류를 권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그에게 “공직생활 20년을 채워 연금을 타도록 해주겠다”며 영입했다고 한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콘셉트가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서울시장 출마를 거의 혼자 준비했다. 

민선 3기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당선으로 정 전 의원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돼 2002년 7월1일부터 2003년 11월1일까지 일했다. 2003년 서울특별시 프로축구단 추진위원장에 위촉됐고, 2004년 서대문(을)구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후보 캠프의 선대위 기획본부장과 전략기획 총괄팀장으로 활동하며, 이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2007년 12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 전 의원은 17대 대통령 당선자 보좌역으로 지명받았다. 
 

2008년에는 18대 총선에 재선한다. 2010년 7·14전당대회서 지도부에 입성, 최고위원으로서 중도개혁과 보수혁신의 길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에는 가수로 4집 앨범까지 냈다.

주호영과 박형준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며, 대선 이후 여당의 지도력에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이 됐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정권 초기부터 ‘형님(이상득 의원)의 권력 사유화’를 정면서 거론했고, 줄기차게 당내 실세(이재오 전 의원)를 공격했다. 

그는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지도부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 몇 안되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고,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MB정권 내내 변방서 머물러야 했다. 

정치인·가수
평론가·사장

정 전 의원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박근혜 국정 농단이 터진 2016년 11월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후 정치를 접고 시사평론가로 종횡무진 활동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초 “17대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큰 실수를 해서 각서까지 써주고 무마했다”고 주장해 MB와의 악연을 이어갔다. 지난해 재혼한 그는 서울 마포구서 일식집을 개업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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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