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고 이희호 여사의 97년을 돌아보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6.17 10:04:59
  • 호수 12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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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지 ‘인동초’ 곁으로 떠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9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 여사의 인생은 ‘정치인 김대중의 부인’이나 ‘퍼스트레이디’라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일제강점기·한국전쟁·민주화운동 등을 거쳐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 여사는 격변의 한국 현대사를 오롯이 온몸으로 이겨낸 여성운동가였다. 
 

▲ 고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평화센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운동가·민주화운동가로 평생을 보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졌다. 지난 14일 이 여사의 장례예배는 평생토록 다닌 신촌 창천교회서 치러졌다. 이 여사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의 김 전 대통령 묘소에 합장됐다. 

여야·각계 망라
추모·애도 물결

이 여사는 올해 들어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감기 등으로 수차례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지난 4월엔 ‘위중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같은 달 20일에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을 때도 주변에선 이 여사에게 아들의 임종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이 여사의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는 “이희호 여사님은 모든 가족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다가 지난 10일 밤 11시37분께 편안하게 소천하셨다”고 밝혔다. 김 상임이사는 “이 여사님이 입 모양으로 찬송가를 따라 부르셔서 가족들이 깜짝 놀라고 좋아했다”며 이 여사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가족들은 평소 이 여사가 좋아하던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을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상임이사는 고인이 남긴 유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유언을 통해 “국민들이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적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여사는 생전 거주하던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써달라고 유언했다.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상금도 고인의 유지에 따라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 여사는 유언 집행에 대한 책임을 김 상임이사에게 맡기며 “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과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김대중평화센터 사업을 잘 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이 여사와 가족들은 지난해부터 유언장 작성을 준비해왔다.

이 여사의 타계 소식에 사회 각계층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 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며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라는 글을 남겼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여야5당은 이 여사의 타계 소식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이었던 여성지도자 이희호 여사의 삶을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추모한다’고 논평했다.

홍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로서, 독재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서, 매섭고 엄혹한 격정의 세월을 함께 헤쳐오셨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사였다”고 했다. 이어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도,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두 분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고 했다.


격변의 현대사 온몸으로 이겨낸 여성운동가
퍼스트레이디이자 민주주의·인권운동의 거목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도 서면 논평을 통해 “이희호 여사는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여성문제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으며 가족법 개정 운동, 혼인신고 의무화 등 사회운동에 헌신했다”며 “고인께서 민주주의, 여성, 그리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열정과 숭고한 뜻을 기리며,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서면 논평서 “꼭 쾌차하시어 따뜻한 햇살이 간지럽도록 다시 함박웃음 주시리라 간절히 믿었건만, 여사님께서는 그리운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실 기대가 더 크셨던가 보다”라며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민주의 열망을 온 하늘에 퍼뜨리던 그날을 어이 맞추신 듯, 6월 민주항쟁의 32주기 뜻깊은 날에 소천하셨다. 깊은 애도와 함께 고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한다”고 전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의당은 고인의 위대한 삶을 계승하는 데 노력하겠다”며 “특히 고인의 필생의 신념이었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6.15공동선언을 계승 실천하고,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평화 협치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 ⓒ김대중평화센터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도 전날 논평서 “우리 모두는 여사님이 걸었던 여성, 민주주의, 인권, 사랑의 길을 따라 전진하겠다. 이희호라는 이름은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동교동계 인사들과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지난 12일 이 부회장은 10시50분경 이 여사의 빈소를 찾아 5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르다 나갔다. 

앞서 한 시간 전에는 김 전 대통령과 ‘악연’이었던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도 빈소를 찾았다. 이씨는 이 여사의 아들 김홍업씨에게 짧은 인사말을 건네고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고려대 특임교수)도 빈소에 나타났다. 김 이사는 “이 여사님한테 매 신년 1월1일이 되면 인사를 드리러갔다”며 “반갑게 대해줬고 몇 년 동안 동교동을 찾아뵙고 인사드렸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는 고인을 추모하며 “이 여사님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대모셨다”며 “한중관계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해주신 점에 대해서 깊이 평가하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명수 대법원장, 고건 전 총리, 정동영·장병완·유성엽 의원 등 민주평화당 인사, 방송인 김제동씨 등이 고인을 기렸다.

전두환 부인
이순자 조문

이 여사는 남편 김 전 대통령과 더불어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험난한 여정을 걸었다. 일제 치하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결혼 전에는 독신을 고집하며 유학을 다녀온 뒤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정치인 아내의 길에 들어선 후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며 험로를 걸었지만, 대통령의 영부인이라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내조자를 넘어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곁을 지켜 정치적 동지라는 평을 받았다. 


남편이 떠난 후에도 동교동 178-1번지 자택에 걸려 있던 ‘김대중 이희호’ 문패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이 여사도 파란만장한 삶을 접고 ‘인동초’ 김대중의 곁으로 돌아갔다. 

이 여사는 3·1운동으로부터 3년이 지난 1922년 서울 수송동서 6남2녀의 넷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 이용기씨가 ‘국내 의사면허 4호’였을 정도로 가정환경은 유복했다. 이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이순이씨의 영향으로 모태신앙을 가졌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이화여전을 다녔지만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에 따라 이화여전을 졸업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했다. 1946년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해 1950년 교육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활달한 성격의 이 여사는 대학 재학 중 서울대 총학생회서 사범대 대표를 맡는 등 당시 강요되던 ‘얌전한 여학생’ 딱지를 거부했다. 발랄하고 활동적인 리더 타입으로 남학우·여학우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시절 이 여사의 별명은 중성을 뜻하는 독일어 ‘다스’(das)였다.

남녀공학서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처음 마주한 그는 곧 사회운동과 페미니즘에 몰두한다. 그리고 여학생의 동등한 권리와 처우를 주장하는 데 앞장섰다.

대학 졸업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서도 이 여사는 여성운동가들과 어울리며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피란지 부산서 이태영, 김정례 등 1세대 여성운동가들과 대한여자청년단을 조직했다. 2년 뒤에는 여성의 인권과 법적 권리를 도모한 ‘여성문제연구원’ 발족의 실무를 도맡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 여사가 처음 선거운동을 경험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1954년 5월 3대 민의원 선거서 박순천 캠프를 도운 그는 지프차를 타고 거리를 누리며 외쳤다. “여성은 여성 대표를 찍읍시다!”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도 이 무렵이었다. 이 여사가 활동하던 대한여자청년단은 1·4후퇴 당시 피난민들을 배로 후송하기 위해 인천에 있는 해운회사 사장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부산으로 사업 거점을 옮긴 김 전 대통령과 대한여자청년단 간부들이 만나는 자리서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도 이뤄졌다. 

이 여사는 서울 지역 대학생 모임이었던 면학동지회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간헐적으로 김 전 대통령과 교우했지만 곧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램버스대서 사회학 학사 학위, 스카릿대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58년 귀국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서른일곱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이 여사는 여성운동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여성계를 선도하던 엘리트 집단인 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YWCA)의 총무를 맡아 축첩 반대, 혼인신고 하기 등 각종 여권신장운동을 벌였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운명적인 만남
끝까지 바라지

여성운동에 매진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김 전 대통령과 운명적 결혼을 하면서 ‘정치인 아내’의 길로 들어섰다. 김 전 대통령은 1945년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 홍업씨를 얻었지만 차씨는 1959년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서는 ‘정치 낭인’에 불과한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두 아들과 노모, 아픈 여동생을 거느린 정치 재수생이었다. 운도 매번 그를 비켜가 1954년 민의원 선거서 낙마했고 58, 59, 60년 선거서도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1961년 강원도 인제의 보궐선거에 당선돼 4전5기에 성공했지만 사흘 만에 5·16쿠데타가 일어나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여사의 주변에서는 그런 김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말리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여사는 연인의 비범함을 알아봤다. 그를 도와 남녀가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됐다”고 이 여사는 자서전서 밝혔다.

1962년 결혼 열흘 만에 김 전 대통령이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는 등 이 여사는 ‘민주화 운동가의 아내’로서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을 눈엣가시로 여긴 박정희, 전두환 군부정권은 끊임없이 그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을 벌였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73년에는 중앙정보부 요원이 도쿄 시내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을 납치해 대한해협에 수장시키려고 했다. 기적적인 생환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재야활동을 계속했고, 가택연금과 투옥(1973∼1979년)이 반복됐다. 

“하늘나라 가서 
평화통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혐의는 ‘광주사태’를 배후 조종한 내란음모죄. 거짓 모함이었지만 이 일로 아들들까지 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어야 했다. 이 여사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온 힘을 다해 남편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이 여사는 가계를 홀로 꾸려나가면서도 남편의 심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옥바라지에도 지극정성이었다. 이 여사는 옥중의 김 전 대통령에게 600권이 넘는 책을 보내 공부를 돕는가 하면, 청와대 안가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독대해 남편의 석방을 당당히 요구하기도 했다. 

남편의 수감 시절 면회시간이 한 달에 20분밖에 되지 않자 이 여사는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이 시절 가족이 보낸 900여통의 편지와 김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각각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미국 망명시절과 이후 54차례 이어진 가택연금 때도 이 여사는 남편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참모로 묵묵히 곁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이후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섰지만 1987, 1992년 대선에서 줄줄이 낙선했다. 당시 이 여사는 남편의 정치활동에 일체 개입하지 않았지만 여성 문제에 한해서는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김 전 대통령은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정책을 국회에 제시했다.

상속과 이혼문제에서 남녀차별 요소를 삭제한 가족법 개정안이 89년 통과된 데에도 이 여사의 공로가 숨어 있었다. 

1992년 대선 이후 은퇴를 선언한 김 전 대통령은 3년 뒤 지방선거 지원 유세를 계기로 정계에 복귀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5월 당내 경선서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대통령이 될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이 여사는 여느 선거 때처럼 남편의 유세를 적극 지원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여성단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과거 분열로 낙선의 쓴맛을 봤던 김 전 대통령은 15대 대선서 자민련의 김종필, 박태준씨와 손을 잡아 3전4기의 신화를 완성했다. 헌정 사상 처음 평화로운 정권교체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청와대 안주인이 된 이 여사는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김대중정부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되자 ‘국민의 정부 여성 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여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남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이 여사도 2000년 펄 벅 인터내셔널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이희호는 
이희호다

이 여사는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47년 동안 함께했던 ‘동지’와 작별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동교동계의 구심점이자 재야인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2011년 말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조문단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동행>서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문득 돌아보니 극한적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극적으로 체험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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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에테르노 압구정 아파트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 차준영이 영화배우 김모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준영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준영이 어떻게 워커힐 카지노 VVIP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카지노 출입설’이 단발성 풍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M 전문가로 알려진 차준영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준영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에테르노 간 큰 베팅 최근 차준영은 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누어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현재 차준영에게는 DL이앤씨 등과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채무가 있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그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준영이다. 압구정의 모 샤브샤브 전문점 사장에 따르면 “최근 연예인 해외원정 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차준영이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미국 영주권자인 차준영은 국내 카지노를 활보하면서 한 연예인의 해외 도박을 제보한 셈이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동종업계 종사자와 나눈 카카오 메시지에서 넥스플랜 차준영의 요청으로 가수 겸 배우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준영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카지노 업계에서 차준영은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큰 손”이라고 표현했다. MC몽도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차준영은 나에게 10~20억원 정도는 배팅해야 된다며 도박을 권유했던 사람”이라며 “시행사 투자금 들고 카지노 쫓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차명 통장으로 분양금 받아 차준영 회사로 황정음·손흥민 에테르노 분양 대금의 행방 다만 대한민국 카지노 출입 기준은 ‘VIP 여부’가 아니라 ‘국적’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내국인은 원칙적으로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외국 국적자에 한한다. 카지노 멤버십 등급, VIP·VVIP 여부, 이용 금액, 단골 여부 등은 출입 적법성 판단에 어떠한 법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VVIP의 요청이라서 김씨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설명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카지노 사업자가 출입자 신분 확인 의무를 완화하거나 소홀히 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에 가깝다. “VIP 요청이라 허용했다”는 표현은 김씨의 출입 허용 판단의 기준이 ‘법’이 아니라 고객의 경제적 가치였음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준영의 도박 자금의 출처도 궁금해진다. 차준영은 ‘에테르노 압구정’을 분양하는 과정에서 친형이자 피아크 그룹 차가원 회장 아버지인 차대영의 계좌로 분양계약금 등 수백억원을 받은 뒤, 자신의 회사인 넥스플랜 계좌로 25억원을 입금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통장 이체 내역을 살펴보면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수탁자인 A 신탁에서 차대영의 통장으로 30억원이 이체됐다. 이어 3월24일 오전 10시43분 넥스플랜으로 5억원이 이체되는 방식으로 총 25억원이 넥스플랜으로 직접 흘러갔다. 앞서 차준영은 2024년 9월 DL이앤씨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 패소하면서 518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통장과 제반 금융에 압류가 설정되자, 차준영은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는 목적으로 차대영이 개설한 통장을 빌렸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대영은 2024년 10월경 “예금채권 압류로 정상적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정을 호소한 동생에게 생활비 등 기본 거래용이라며 하나은행 저축예금 계좌 1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러나 2025년 7월경 거래내역을 확인하자 잔액이 0원이었고, 생활비 용도와 무관한 거액 거래가 다수 발견돼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통장을 재발급받은 뒤 2025년 7월25일 내용증명으로 사용허락 철회를 통지했다는 것이다. 꿀꺽한 ‘셀럽 마케팅’ ‘신탁형 PF’ 구조인 에테르노 압구정은 분양수입금이 신탁계약상 A 신탁사 명의 관리계좌로 수납돼야 하는데 ‘차준영→넥스플랜’으로 직접 받으면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납부효력이 문제될 수 있고(미납 취급 위험), 신탁사가 보호해줄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는 논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형사상 “업무상 횡령” 및 “자금세탁”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에 차대영은 동생을 상대로 계약서 위조 및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차준영은 차대영의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계약을 지난 2024년 30억원에 체결하기도 했다. 차준영과 A 신탁사 직원이 공모해 계약명의자인 차대영의 동의 없이 분양계약서를 위조하고 거액을 이체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대영은 지난해 12월3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차 회장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총 3명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시행사는 차준영의 회사인 넥스플랜, 신탁사는 A 신탁, 시공사는 장학건설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준영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3명은 2024년 10월25일께 차대영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한 채의 공급계약서를 위조했다. 위조계약서를 A 신탁, 장학건설 관계자에게 진정하게 성립한 것처럼 교부했다는 게 차대영 측 주장이다. 이어 2025년 3월12일께 같은 방법으로 차대영 명의의 공급계약 해제합의서를 다시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통장 거래내역을 보면 2024년 10월25일 오후 2시39분 차대영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에서 A 신탁 계좌로 30억원이 ‘에테르노 압구정 102호 분양대금 일부’ 명목으로 이체됐다. 오후 2시44분 이 거래는 취소됐고 다시 오후 2시50분 같은 금액을 재이체했다. 이후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공급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 명목으로 30억원이 계좌로 반환됐다. 날아간 통일 동산 차대영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내 계좌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며 “나는 분양계약을 체결한 적도, 그에 대한 동의를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A 신탁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신탁사가 수십억원대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는 계약자 본인의 신분증 확인, 본인 서명 또는 날인, 본인 통장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친다. 대리인이 계약하더라도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는 필수다. 에테르노 압구정은 축구선수 손흥민, 황정음 등 연예인들이 2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아파트로 관심을 끌었다. 이와 반대로 분양대금은 차준영이 친형에게 빌린 통장으로 입금돼 관리되고 있던 것이다. 배우 출신 황정음의 에테르노 압구정의 수상한 계약도 눈길을 끈다. 2025년 3월20일 황정음은 압구정 모 부동산에서 총 분양금 230억원에 달하는 ‘에테르노 압구정 501호’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통상 총 분양금에 10%에 달하지만, 황정음의 계약금은 4억원이라는 점도 특혜성 계약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황정음 측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계약금이 아니라 청약금인 줄 알았다”며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 철회 의사를 밝혔으나 현재까지 4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에테르노를 분양받은 손흥민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차준영을 직접 만나 거래하기도 했다. 차준영이 친형의 통장을 빌린 결정적인 이유는 파주 통일동산 개발사업의 실패다. 2024년 9월 DL이앤씨는 파주 통일동산 콘도 사업과 관련해 넥스플랜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5000억원대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 금액, 공사 중단 경위, 청구 내역(공사비·구상금·대여금 등)과 같은 구체 항목까지 드러났다. <비즈한국>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박준민)은 2024년 9월10일 DL이앤씨가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 시행사이자 차준영이 운영하던 ‘시티원’을 상대로 낸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시티원이 DL이앤씨에 518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분양가 230억인데···황정음 계약금 4억 어디로? 시티원에서 넥스플랜으로…법인 바꾸고 자금 회수 인용된 청구 채권은 하자보수금을 제외한 기성 공사비 611억원과 구상금 3524억원, 대여금 1000억원, 지연손해금(법정이자) 50억원 등이다. 앞서 DL이앤씨는 ​2020년 8월 공사비 등 이 사업에 투입한 비용 총 5781억원을 정산해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청구 채권 상당액을 인정한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셈이다. 소송 당사자인 시티원과 DL이앤씨는 각각 이 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로, 2006년 12월 공사 기간을 28개월, 공사비를 4125억원, 지체상금을 1일당 공사비 0.1%(최대 5%)로 정하는 공사 도급계약을 맺었다. 공사대금은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맞춰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공정률 33%에서 18년째 멈춰 있다. 결국 DL이앤씨는 2020년 8월 사업비용을 정산해 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된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에서 상계 채권을 제외한 총 578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는 이 사업 시공자로서 공사비를 직접 투입한 것은 물론 시티원 측에 사업비를 직접 대여하거나 연대보증인으로서 시티원이 갚지 못한 사업비 원리금 등을 대신 갚아왔다. 시티원은 오히려 DL이앤씨가 사업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과 사업 손해를 물어내야 한다며 2022년 4월 반소를 제기했다. 양측이 맺은 도급 계약에 따라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 공사 현장은 20년 동안 방치돼 흉물이 됐다. 공사 재개에는 2691억원이 필요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DL이앤씨가 현장을 철거하고,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 5%)과 미래 분양 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차준영의 자금 운용 건전성에 적신호는 해소되지 못한 반면, 카지노에선 VVIP로 불렸다. 정작 부동산시장에서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불과 수개월전까지 워커힐 카지노를 출입한 셈이다. 차준영에게 제기된 문제는 초고가 주택 분양 계약의 공정성, 대형 개발사업의 책임 귀속, 그리고 국내외 카지노 출입 논란까지 확장되고 있다. 법인 바꿔 타짜 행세 쟁점 중 하나는 ‘에테르노 압구정 직접 계약’이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이 에테르노 압구정과 관련해 시행사 대표와 직접 계약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분양 절차의 투명성과 이해상충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통상 초고가 주거상품의 분양은 다층적 심사·중개·검증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이 축약되거나 개인 간 직거래로 처리됐다면 ‘특혜’ 또는 ‘절차 생략’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