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시험대 오른 조원태·박세창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4.16 11:10:21
  • 호수 12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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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없다’ 불안한 홀로서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퇴진으로 항공업계에 ‘3세 경영 시대’가 열리게 됐다. 한진·금호 그룹은 각각 총수 별세와 재무리스크 등의 악재로 강제적인 경영 승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승계의 핵심인 두 아들, 조원태·박세창 사장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육(한진)·해(한진해운)·공(대한항공)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물류기업인 한진그룹서 2세 경영이 본격화된 것은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이 별세한 2002년부터다. 당시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은 항공과 육운사업을, 차남인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중공업을, 삼남인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은 해운을, 사남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계열사를 각각 물려받았다. 

강제적 승계
쏠리는 관심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둘러싸고 형제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각 회사는 남과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분쟁 이후 한진가는 영욕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2세 중 먼저 퇴장한 것은 2006년 별세한 삼남 고 조수호 회장이다. 경영권은 아내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게로 넘어갔지만, 한진해운은 해운업계 불황의 파고를 뚫지 못하고 2017년 파산했다.

차남인 조남호 회장 역시 한진중공업의 경영권을 잃었다. 조선업 불황에 직면한 한진중공업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자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6784억원에 이르는 출자전환을 단행한 데다, 지난달 말 주주총회서 사내이사직의 재선임에 실패했다.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은 승계 후 20년간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잇따른 자녀들의 갑질 논란은 그의 말년을 괴롭혔다. 정치권·시민사회의 비판이 잇따르면서 지난달 27일엔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연임에 실패하며 경영권을 상실했다.

한진가 2세 중 유일하게 경영권을 지키고 있는 이는 막내인 조정호 회장이다.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이 창업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84년 2세 체제 출범 이후 약 25년간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왔다. 장남인 고 박성용 회장, 차남인 고 박정구 회장, 삼남인 박삼구 전 회장까지 형제경영은 순탄하게 이어졌다.
 

▲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금호가의 2세 경영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삼남인 박삼구 전 회장이 사세확장에 나서면서부터다. 박 전 회장은 2006년엔 대우건설, 2008년엔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을 인수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7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같은 사세확장은 무리한 차입을 반대한 사남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같은 시기 형제 간 작성됐던 공동경영합의서도 수차례 변경되며 형제경영이란 아름다운 전통도 깨졌다. 

양대 항공 재벌 3세 경영 전면
나란히 경영체제 변화 ‘급물살’

무리한 사세확장 결과,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워크아웃 상태에 빠졌다. 박 전 회장은 10년간 그룹 재건에 매달렸지만, 악화된 재무구조는 지난달 22일 아시아나항공의 부실 회계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지난달 28일 경영 일선서 물러났다. 


영욕을 겪었던 양대 항공사의 2세들이 물러나면서 세간의 관심은 3세 경영인에게 쏠리고 있다. 한진가의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금호가의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다른 대기업들이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경영 승계를 받아온 것과 달리, 이들 기업은 갑작스레 ‘3세 경영체제’를 맞게 됐기 때문이다. 

박 사장과 조 사장의 인생도 묘하게 겹친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결정된 두 사람은 그 행보가 비슷하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각각 아버지 회사에 입사한 후, 2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알짜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들은 적잖은 업적을 냈고 재계의 평가도 비슷하다. 심지어 하루 차이로 퇴진한 아버지 때문에 갑작스레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하는 예상치 못한 운명까지 서로를 닮았다.

두 사람은 일찍이 후계자로 지목됐다. 박 사장은 금호가의 계열분리 과정서 조 사장은 한진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미래 항공 업계를 이끌 3세 경영인으로 낙점됐다. 단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올해 각각 입사 17년, 16년 차로 금호가와 한진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했다.

박 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거푸 인수하며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라서던 때를 몸소 경험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 규모는 26조원으로, 1946년 택시 회사로 시작한 이래 가장 성장했던 시기였다.

영광의 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승자의 저주’란 말이 금호 일가의 꼬리표가 될 정도로 회사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사들인 대가를 치렀다. 계속 쌓여가는 빚에 인수한 회사를 도로 내놔야 하는 상황이 초래됐고, 그룹의 양대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워크아웃까지 몰아갔다.

재계 순위 7위를 찍은 지 불과 1년도 안 돼 회사는 산산조각이 났다. 박 사장은 입사 8년 만에 회사의 극단을 모두 경험했다.
 

▲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사장

지난달 말 박삼구 회장이 퇴진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이원태 부회장을 필두로 한 비상경영위원회가 운영되며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향후 외부서 전문경영인을 발탁한다는 방침이 세워졌으나 아직 후보나 시기 등에서 결정된 바가 없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이다.   

업계는 전문경영인보다 사실상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행보에 주목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박 사장은 사실상 지배력을 갖춘 금호고속의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다. 부친인 박 전 회장의 지분을 더하면 52%에 달한다.  

두 아들에게 
남겨진 숙제

하지만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발목을 잡는다. 올해 당장 1억7000억원의 부채를 해결하고 나면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1조원가량의 빚을 갚아야 한다. 현재 파악되는 부채 규모만 6조원에 이른다. 돈이 될 만한 자산을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리조트와 에어부산은 물론이고 박 사장이 이끌고 있는 아시아나IDT까지 매물로 검토 중이다.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룹의 중추인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사실상 해체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부채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박 사장의 향후 경영 행보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룹을 이끌기에는 경험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 자금팀에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한 박 사장은 금호타이어 기획관리총괄 부사장 및 아시아나세이버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쳤다. 지난해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해 상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못했다. 아직 경영 수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 사장은 1975년 7월16일 서울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서 MBA 과정을 마쳤다. 2003년 한 살 아래인 김현정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김씨는 박세창의 중학교 동창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가계의 혼맥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만큼 김씨와의 결혼이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연세대학교 입학 뒤 6년여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전략경영담당 이사, 전략관리부문 상무, 금호타이어 전무를 거쳤다. 이사가 된 지 6년 만에 금호타이어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룹 전략경영실 사장을 맡아 서재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 사장과 투톱체제를 구축했다. 아울러 아시아나세이버 대표이사 사장 자리도 맡았다. 
 

▲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사장

2017년 4월 숭의초등학교서 벌어진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박 사장의 둘째 아들이 지목돼 논란이 일었다. 숭의초등학교 수련회서 동급생 4명이 1명을 집단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박 사장의 둘째 아들이 폭행에 가담했고 학교 측의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를 받았다는 의혹이 나온 것.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는 2017년 8월 조사를 통해 박 사장의 아들이 폭력사건에 가담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둘째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3명에 대해서만 피해 학생에게 ‘서면사과’를 하도록 했다.

박 사장은 2015년 4월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로 선임됐지만 주주협의회가 ‘사전협의’라는 절차상 문제를 제기해 3일 만에 사임했다. 당시 언론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오너 3세의 경영참여 과정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보도했다. 박 사장은 2015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서 당시에 대해 “단순 실수였다”며 “현재 회사는 죽느냐 사느냐의 순간으로 경영권 승계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외형확장에 힘쓰던 한진그룹이 2000년대에 들어서며 내실 경영에 중점을 둠으로써 사세확장에 따른 리스크는 크게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진해운의 파산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다. 

동갑내기 3세
비슷한 운명

한진해운은 세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국내 유일의 선사였다. 2008년 리먼사태 여파로 운임료가 호황기의 절반으로 떨어지는 등 해운업의 불황이 시작됐고, 용선료로 인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한진해운은 10년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결과 한진해운은 지난 2017년 창립 40년 만에 간판을 내렸고 수송보국을 이루겠다던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꿈도 꺾였다.

조 사장이 대한항공 사장에 오른 지 불과 한 달 만의 일이였다.

한진그룹은 장남인 조 사장의 경영 승계가 유력시된다. 2003년 한진정보통신으로 입사한 조 사장은 2017년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뒤 조 전 회장과 함께 회사 경영을 이끌어왔다. 조 사장은 현재 한진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유일한 오너가 일원이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갑질’ 이슈로 경영서 손을 뗐다.

당장 오는 6월 서울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제75회 연차 총회’에 부친을 대신해 의장직을 수행하는 ‘데뷔전’도 앞두고 있다. IATA가 ‘항공 업계의 국제연합(UN)’으로 불리는 만큼 이 총회서 ‘조원태 체제’가 공식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상속과 이에 따른 천문학적인 세금도 납부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28.95%다. 이 중 별세한 조 회장의 지분 17.84%와 한진그룹 9개 계열사의 지분 가치는 약 3728억원으로 추정된다. 비상장 주식과 부동산 등을 감안하면 상속세만 2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전망이다.

상속세 신고는 사망 이후 6개월 안에 국세청에 해야 하며, 규모가 클 경우 5년 동안 나눠낼 수 있다.

대한, 지분과 상속세 주주들 견제
아시아나, 경험 더 쌓아야 하는데…

재 2대 주주(13.47%)인 행동주의 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는 한진칼 주식을 13.47%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함께 향후 추가 지분 획득을 선언한 가운데 오너 일가가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진가가 주식담보대출과 배당 등의 방법을 통해 상속세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주식담보대출은 주식 평가 가치의 50% 수준까지 가능하다. 

조 사장은 1976년 1월25일 서울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마리안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대학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인 김미연씨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있다.

한진정보통신에 입사한 뒤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입사 10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승진했다. 한진그룹의 IT 계열사인 유니컨버스의 대표로 선임되면서 경영책임을 맡기 시작했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진칼의 대표를 겸직했다. 대한항공서도 핵심분야인 경영기획, 화물영업, 여객사업을 맡아왔다.
 

▲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조 사장은 개인적인 일로 세간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2000년 6월 차선을 위반하려다 이를 적발하고 단속하려던 교통경찰을 치고 100여m 정도 달아나다가 뒤쫓아온 시민들에 의해 붙잡혀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당시 이 사건이 “과실로 인한 상해가 아니다”라며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공무집행 방해 혐의만 적용했다.

2005년 3월22일 조 사장은 자신의 현대 그랜저 XG 승용차를 몰고 연세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던 중 태모씨가 운전하던 현대 스타렉스 차량 앞으로 끼어들었다. 놀란 태씨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같이 타고 있던 태씨의 어머니도 크게 놀랐다. 태씨는 조 사장의 그랜저 차량을 따라가며 멈추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조 사장은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가다가 200m 정도 떨어진 이화여대 후문 앞에서 차량 정체 때문에 멈췄다. 

차에서 내린 태씨는 조 사장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요구했으나 조 사장은 차 안에서 욕설을 하며 버텼다. 태씨의 112신고로 20여분 뒤 경찰이 도착하자 조 사장은 그제서야 차에서 내렸다. 

사건·사고
구설에 올라

이때 손주를 안은 채 차에서 내린 태씨의 어머니(77세)가 조 사장에게 다가가 “무슨 운전을 그렇게 하느냐”며 나무라자, 조 사장은 태씨 어머니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태씨의 어머니는 아이를 안은 채 도로 한가운데로 넘어졌고, 이를 본 태씨가 격분해 조 사장을 밀치는 등 몸싸움을 벌이다가 같이 경찰서로 연행됐다. 땅바닥에 뒷머리를 강하게 부딪친 태씨의 어머니는 인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조 사장은 2012년 인하대 운영과 관련해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폭언을 한 일로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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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