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십년감수한 여영국 창원성산 당선인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4.09 09:05:37
  • 호수 12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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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대역전’ 극적으로 여의도 입성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개표 마감을 불과 0.02% 남겨둔 상황서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결과가 뒤집혔다. 끈질긴 추격 끝에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결국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정의당이 극적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자리를 지킨 것이다. 
 

▲ 여영국 당선인 ⓒ정의당 캠프

지난 3일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서 정의당이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성산 탈환에 성공했다. 노회찬 재단의 이사인 여영국 후보는 막판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에 따르면 여 당선인은 개표가 완료된 오후 11시30분 기준 4만2663표를 얻어 득표율 45.75%를 기록하며 당선됐다. 한국당 강기윤 후보는 4만2159표를 얻어 득표율 45.21%로 2위로 내려앉았다. 

4만2663표
4만2159표

4·3국회의원 보궐선거 창원시 성산구 결과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3일 저녁 8시30분께 개표가 시작된 이후 밤 11시24분까지는 줄곧 강 후보가 앞섰다. 최대 2000표 이상 앞서기도 했다. 단 한 차례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밤 11시24분 개표율 99.98%를 기록하는 순간 순위가 뒤집혔다. 계속 2위를 달리던 여 당선인이 강 후보를 역전해 1위로 올라섰다. 결국 여 당선인이 4만2663표를 얻어 4만2159표를 얻은 강 후보를 504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투표율은 0.54%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굳은 표정으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여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쏟았다. 함께 지켜보던 당직자들은 “여영국”을 소리쳐 부르며 환호했다. 


앞서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오후 10시가 넘어도 역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리의 힘이 부족해 승리를 안겨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라며 패배를 인정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여영국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 승리는 위대한 창원 시민의 승리이다. 권영길, 노회찬으로 이어온 진보정치의 자부심에 여영국을 넣어줘서 감사하다. 총선을 1년 앞둔 이번 선거를 통해 제1 야당으로 교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선거 결과는 반칙 정치, 편가르기 정치에 대해 창원 시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국회서 가장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국회를 개혁하겠다.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바치겠다. 오로지 국민과 민생만 바라보고 전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줄곧 한국당 후보에 뒤지다
개표 0.02% 남겨두고 역전승

이번 보궐선거서 창원시 성산구의 유권자는 18만3934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9만4101명이 투표해 투표율 51.2%를 기록했다. 민중당 손석형 후보(3540표·3.79%), 바른미래당 이재환 후보(3334표·3.57%), 대한애국당 진순정 후보(838표·0.89%), 무소속 김종서 후보(706표·0.75%) 순이었다. 

경남 통영고성 지역구의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정점식 후보는 개표율 80%을 넘은 오후 11시45분 기준 3만7711표(59.19%)를 득표해 당선이 확실시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문석 후보는 2만3306표(36.58%)로 2위를 차지했다. 정 후보와 양 후보는 개표 시작부터 끝까지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이날 함께 치러진 기초의원 보궐선거에서 경북 나·라 선거구는 한국당이, 전북 전주 라 선거구는 민주평화당이 승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표 현황에 따르면 오후 10시30분 기준 전북 전주시 라 선거구서 민주평화당 최명철 당선인은 총 투표수 7157표 중 3104표(43.65%)를 획득하며 전주시의원 배지를 거머쥐었다. 2위인 민주당 김영우 후보자(2143표·30.14%)를 961표 차로 따돌렸다. 

경북 문경 나 선거구에서는 한국당 서정식 당선인이 총 투표수 8900표 중  5069표(57.25%)를 얻어 당선됐다. 이어 무소속 신성호 후보(2258표·25.50%), 민주당 김경숙 후보(1057표·11.93%)가 뒤따랐다. 

문경 라 선거구에서는 한국당 이정걸 후보가 당선됐다. 총 투표수 6723표 가운데 62.03%(4137표)를 얻었다. 무소속 장봉춘 후보는 2532표(37.96%)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4·3보궐선거는 사실상 무승부로 끝났다. 경남 창원성산에선 민주당과 정의당의 단일 후보인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경남 통영고성에선 한국당 정점식 후보가 승리했다. 보수와 민주진보 진영이 나란히 1석씩 나눠 가졌다. 득표수와 정국 등을 고려하면 정당별 셈법이 복잡하다는 분석이다. 

노회찬 정신
이어받는다

4·3보궐선거 결과는 범여권과 야권이 각각 1대 1로 마무리됐지만 여권에서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비토(Veto: 거부권)  표심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한 경남 창원성산의 경우 진보 진영 후보가 크게 앞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신승을 거뒀다. 보수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 통영고성에서는 예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한국당은 이번 보궐선거를 일찌감치 ‘문재인정권 심판’으로 규정하고 선거 기간 내내 정부·여당의 실정을 파고드는 데 전력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통영고성 지원 유세서 거듭 ‘경제 폭망론’을 꺼내며 “정점식 후보를 뽑아 망가진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역구에만 국회의원 후보를 낸 민주당은 양문석 후보 지원을 위해 ‘예산 폭탄’ 공약 등 집권당 메리트로 승부했지만 끝내 표심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창원성산에서는 정의당과 민주당이 ‘정치공학적 단일화’라는 비판 속에서도 여 당선인을 단일 후보로 내세워 합동 작전을 펼쳤다. 낙승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숨을 죽이며 개표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개표 중반까지 밀리던 여 후보는 개표 막판에서야 극적인 역전을 이뤘다.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서 정의당 후보로 단일화했음에도 고전한 것이다. 탈원전 정책 등 정부의 경제 실정이 지역 경제를 망가뜨렸다는 한국당의 심판론 공세가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선거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우리로선 선전한 선거”라고 자평했다. 

사실 이 선거구는 한국당에게 불리한 요소가 있었다.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당은 막판에 ‘축구장 선거유세’ 논란에 휩사이며 수세에 몰리기도 했다. 
 

이번 선거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을 검증하는 첫 번째 무대이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패배하면 황교안 책임론 나올 것(4월3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란 예측이 나올 정도였다. 여기서 한국당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황 대표는 체면을 세우게 됐다. 

여당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됐다. 민주당에겐 민생 법안 처리와 청와대의 인사검증 논란 등 야당을 넘어야 풀 수 있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선거 결과와 관련해 민심을 잘 살피겠다”고 했다. 


옐로카드를 받은 여권은 국정운영 기조에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서 전국적인 압승을 거둔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민심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당장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경제 정책에 대한 일부 전환 또는 대대적인 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당내서 나온다. 앞으로의 현안을 두고 당내 여러 계파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공개적으로 쏟아져나올 가능성도 있다.

진보 정당서 
한 우물만… 

이번 보궐선거에서 여야,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서 총선까지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당장 한국당은 인사 참사의 책임을 물으며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인사 검증 라인의 교체와 장관 후보자 지명 철회 요구를 이어갈 전망이다. ‘진보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창원성산에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득표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여 당선인이 승리하면서 정의당은 다시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하게 됐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나면서 원내교섭단체(20석)의 지위를 잃었던 정의당은 다시 민주평화당(14석)과 정의당(6석)으로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해졌다. 향후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이 다시 부활해 국회는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과 함께 4당 교섭단체 체계로 국정 전반에 대한 캐스팅보트를 쥐고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6년 노회찬 전 의원이 창원성산 국회의원 후보일 때 상임선대본부장으로 활동한 여 당선인는 “노회찬 정신을 이어받아 책임지고 노 전 의원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며 “민주평화당(14석)과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면 20대 국회의 가장 개혁적인 교섭단체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 당선인은 정의당 소속 정치인. 민선 5·6기 경상남도의원을 지냈으며, 제20대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현재 정의당 경남도당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1965년 1월28일(양력) 경상남도 사천군(현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서 태어난 그는 구호국민학교, 축동중학교,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창원대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노회찬 지역구 정의당이 지켰다 
여야 무승부…총선까지 힘겨루기

여 당선인은 1983년에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에 입사했으나 일상적으로 많은 문제를 겪었다. 동료들이 겪는 부당함을 모른 채 할 수 없었던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 당선인은 노조 활동으로 구속 및 해고됐다. 

여 당선인은 당시 노동운동을 하면서 고 노회찬 의원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87년 8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만나 금속연맹, 금속노조에서 함께 활동하며 노동문제를 해결해왔다. 1989년 금성사(현 LG전자)와 효성중공업 노조 투쟁지원으로 다시 구속됐다. 

여 당선인은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하다 수배된 후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투쟁으로 또 다시 구속됐다. 하지만 1986년 통일중공업과 1990년 금성사, 효성중공업 노조 투쟁 지원으로 구속된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조직국장을 맡아 노조활동을 펼쳤던 그는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정치권에 발을 담갔다. 여 당선인은 2000년대 초 경남지역 ‘노동자 정치 실천단’으로 진보정치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2010년 제9대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소속으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후 2014년 제10대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와 경남도의원에 당선됐다. 제10대 경남도의회에서는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 도의원이었다. 단 한 명에 불과한 진보정당 정치인이었지만 기득권 정치인과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여 당선인은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지, 무상급식 폐지, 교육감 소환 허위 서명 사건에 맞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특히 무상급식 중단을 막아내고 고등학교까지 확대하는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청년발전기본조례를 제정해 경남 청년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고, 장애인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고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경남의 도시가스 요금 인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부 비토 표심
범여권 빨간불

도의원 시절에는 홍준표 전 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교육감의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 홍준표 전 지사가 임명한 경남도의 고위 공직자, 산하기관장 등 공무원이 개입된 불법 서명 사건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당시 단식농성을 하던 여 의원에게 홍 전 지사는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냐,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막말을 내뱉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그는 홍 전 지사와 무상급식 폐지 철회 요구 등 사사건건 대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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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