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친부 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3.11 09:42:06
  • 호수 12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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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 죽이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던 김신혜씨의 재심이 열렸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19년 동안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그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을까. 
 

▲ 김신혜씨

지난 6일 오후 3시55분 무기수 김신혜씨가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를 타고 광주지법 해남지원에 들어섰다. 김씨는 베이지색 코트 차림에 2개의 서류봉투를 가슴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 19년 만에 하이힐을 신은 탓인지 호송차량서 내리면서 발을 삐끗하기도 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용자는 원하면 사복을 입고 재판을 받을 수 있다.

반인권적 수사
법원 결정 영향

김씨에 대한 재심은 2000년 3월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지 19년 만, 2015년 1월 청구한 재심이 확정된 지난해 9월 말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한 김씨는 이제 40대가 됐다. 취재진이 ‘한마디만 해달라’고 요구하자 “네, 이기겠습니다”라는 짧은 심경을 전했다. 그동안 김씨가 느낀 고통과 분노, 억울함과 절망이 이 한마디에 함축돼있었다. 그는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이날 해남지원 제1호 법정서 형사합의 1부 심리는 비공개로 50여분간 진행됐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 절차에 앞서 주요 쟁점과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하는 절차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첫 준비기일을 마친 김씨는 재판서 진실을 꼭 밝히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김씨는 부당한 수사로 수집된 증거를 재판에 사용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모두 배척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석방 상태서 재심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김씨 측은 아버지의 수면제 30알 복용 과정과 정확한 사인 등을 놓고 다퉈야 할 쟁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영장 범죄사실 기록에는 수면제를 갈아서 먹였다고 적시됐으나 검찰 기소 단계에서는 알약 30알을 먹였다고 바뀐 점에 주목했다.

수사기관 감정 결과 알약을 갈았다는 그릇과 그 그릇을 닦았다는 행주서 약물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던 점, 술 취한 사람이 알약 30알을 한 번에 털어 넣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재심 결정 4년 만에 법정에
19년 동안 무죄 주장 받아져 

김씨는 2000년 3월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2001년 3월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거짓 자백을 했다며 2015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한 점, 압수수색에 참여하지 않은 경찰관이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점, 김씨의 거부에도 영장 없이 현장검증을 한 점을 강압수사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열심히 해서 재심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재심을 준비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억울한 옥살이가 계속되지 않도록 열심히 싸워서 꼭 이기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변호인인 김학자 변호사는 “재판부가 재심 결정을 하면서 형 집행정지를 하지 않아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공판 과정서 다시 형 집행정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염된 증거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기 때문에 수사기관 측 증거는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오후 2시 한 차례 더 비공개로 공판준비기일을 갖고 쟁점을 정리하기로 했다.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7일 오전 5시50분쯤 전남 완도군 정도리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은 전남 완도의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을 발칵 뒤집었다. 죽은 남성이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나 시신에는 아무런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약물에 의한 사망’이었다.

시신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됐다. 이틀 후 범인이 검거됐는데 놀랍게도 사망한 남성의 친딸 김씨였다. 그는 수면제 30알을 양주에 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아빠 죽은 그날
존속살해로 체포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가 성추행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씨의 이복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자신이 중학생 시절 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한 기억을 떠올리고 살인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살해 목적은 사망 보험금. 김씨가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살해계획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도 발견됐다. 증거도 증언도 확실했다.

하지만 김씨는 현장검증을 앞두고 “절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돌연 범행을 부인했다. 무엇보다도 성추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의 무죄보다 아버지의 불명예를 벗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수사 과정서 “폭행, 폭언 등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수사를 받았다” “사건 당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가 교도소의 모든 출역을 거부한 채 무죄를 호소한 사실은 <오마이뉴스>의 10만인리포트, 다음카카오 뉴스펀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실제로 당시 수사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찰은 김씨가 자신의 고모부에게 자백했다는 사실을 범인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정작 김씨 본인은 자신은 고모부에게 자백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3월8일 밤 11시20분경 고모부가 자신을 불러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은데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큰일난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찰서로 갔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목적으로 보험금을 들었지만 그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였다. 범행 도구인 수면유도제와 양주 등의 물증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가 수면제를 갈 때 사용했다고 진술한 행주와 밥그릇서도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신서 독실아민 13.02㎍/ml이 검출됐다.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에 의하면 이 정도 양이 검출되려면 경찰이 발표한 30알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3배에 달하는 100알 정도를 먹어야 나오는 수치라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사건을 수사하는 데 경찰 측의 강압수사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수면유도제나 양주 같은 결정적 물증도 없었을 뿐더러 수사 과정 중 김씨는 경찰로부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드사진을 퍼트리겠다는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증거
“인정 못해”

경찰은 영장도 없이 그의 집을 수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인 1조의 규칙도 어겼다. 하지만 정당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며 문서를 조작했다. 문제가 된 살해계획서는 김씨가 연극배우를 하며 써놓은 극 시나리오로 밝혀졌다. ‘완전’ 일치한다던 살해계획서는 어느샌가 ‘근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2014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김씨를 만나 들은 바에 의하면, 경찰이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서 억지로 현장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도 드러났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이 종이 한 장을 자신 앞에 내놓더니 지장을 찍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를 치고 뺨을 막 때리면서 빨리 찍으라고 독촉했다. 당황한 김씨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경찰이 억지로 자신의 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게 했다는 것이다. 서명을 하라고 닦달하는 과정서도 김씨의 머리와 뺨을 때렸다.

만약 김씨의 말이 사실일 경우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해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각각 기각되면서 2001년 3월23일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계속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도소 내 기결수들이 하는 노역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서 “나는 죄가 없는데 나라서 시키는 노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 내에서는 그를 ‘독한년’이라고 부른다.

모두가 “한국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살인사건의 재심은 가당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대한변호사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신혜 사건’에 대한 15년 전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경찰의 수사 위법성 인정 
사상 첫 무기수 재심 시작 

사건 당시 수사 경찰이 영장 없이 김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에서 억지로 현장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도 드러났다. 이에 대한변협은 김씨에 대한 재심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협은 형사재판 과정서 제출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에 문제가 있고,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자백 진술 이외에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공소사실에 의문을 갖게 하는 증거가 존재함에도 이는 재판 과정서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서 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판결이 과연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왜 피고인은 14년 넘게 홀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밝히겠다는 것이다.

김신혜 사건은 2001년 6월1일 SBS 시사프로그램 <뉴스추적>, 2003년10월21일 MBC <PD수첩>, <신동아> 2003년10월호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었다. 하지만 언론보도 이후에도 법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진 바 없이 십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에 대한변협은 법률적 지원의 필요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재판기록은 중요사건으로 분류됐고, 약품 처리되어 영구보존 중이다. 대한변협은 재판기록, 재판 이후 발견된 증거들, 재판 이후 보다 인권적으로 바뀐 적법절차와 관련된 판례 등을 검토했다. 

그 결과 15년 전 수사경찰의 반인권적인 수사가 형법상 직무상 범죄에 해당하고, 당시 재판 과정서 채택된 증거들이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 증거로 쓰여질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재심 청구를 한다고 전했다. 

지금의 교도소는 개인이 필요한 만큼 노트를 소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노트를 한 권밖에 소지할 수 없었고, 새 노트를 받으려면 다 쓴 노트를 가위로 잘라버리거나 찢어버리는 등 폐기처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김씨는 본인이 당했던 억울한 수사 및 재판을 속옷이나 양말 바닥 등에 기록해가며 쉼 없이 세상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꼭 이기겠다”
대장정 돌입

그리고 2015년 11월18일, 마침내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로 재심이 결정됐다. 국내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2017년 2월11일 광주고법서 항고를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3일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최종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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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