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망신살 뻗친 손석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2.12 08:37:16
  • 호수 1205호
  • 댓글 0개

스캔들에 휘말린 ‘국민 앵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민 앵커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스캔들에 휘말렸다.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를 폭행해 경찰에 입건됐다. 이 둘은 언론계 선·후배 사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두고 당사자 간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 더불어 두 사람의 갈등 배경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 JTBC <뉴스룸> 진행자 손석희 대표이사

프리랜서 기자인 김웅씨가 손석희 JTBC 대표이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손 대표 측은 “상대방 신고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당사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12월10일 오후 11시50분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일본식 주점서 손 대표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지구대를 방문해 근무일지에 이 신고 내용을 남겨달라 요청했고, 이틀 뒤인 13일 다시 지구대를 찾아 정식 신고 절차를 밟았다.

폭행 사건서 
온갖 논란으로

김씨는 당시 주점서 손씨와 단둘이 식사를 하던 중 얼굴을 수차례 폭행당했다고 주장하고, 전치 3주의 상해 진단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양측은 정반대 주장을 하는 중이다. 김씨는 손 대표에 관한 제보를 받고 취재하던 도중 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서 손 대표가 JTBC 일자리를 제안했으나 거절하자 폭행을 당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건 당시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파일에는 손 대표로 추정되는 남성이 “아팠다면 폭행이고 사과한다”고 말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 대표 측은 “상대방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김씨가 손 대표에게 불법적으로 취업을 청탁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오히려 손 대표를 협박한 게 이번 사안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주장하는 폭행 사실에 대해선 “‘정신 좀 차려라’ 하고 손으로 툭툭 건드린 게 사안의 전부”라고 설명했다. 

서울서부지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저녁 늦게 손 대표 측이 김씨를 공갈 미수·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마포경찰서에서 병합해 수사할 예정이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손 대표와 김씨 측의 경찰 출석 일정을 조율 중이다. 김씨는 이메일을 통해 폭행 당시 상황을 담은 진술서와 전치 3주 상해진단서, 사건 당일 손 대표와의 대화를 녹음한 음성 파일 등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폭행 신고 관련 추가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앞서 김씨는 손 대표에 관한 제보를 취재 중이었다고 밝혔다. 어떤 제보였을까. 김씨는 손 대표의 뻥소니 사건을 제보 받아 취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의 발단은 2017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대표는 한 주차장에서 후진을 하다 견인 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손 대표는 접촉 자체를 모고 자리를 떠났지만, 차에 닿았다는 견인 차량 운전자의 말을 듣고 자비로 쌍방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운전자는 접촉사고 발생 후 손 대표가 사고 처리를 하지 않고, 현장서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2.5km 정도를 추격해 도로변서 손 대표의 차를 멈추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명함을 주고 받으며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했다. 


프리랜서 기자 폭행해 경찰에 입건
내막 두고 양측 주장 첨예하게 갈려

이런 일이 있은 이후 김씨는 “손 대표가 경기 과천의 한 주차장에서 뺑소니 사고를 낸 뒤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로 찾아가 손 대표를 직접 만났다고 한다.

김씨는 이후 손 대표에게 전화해 “당시 (피해자들이) 손 대표가 차를 받고 도망갔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김씨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손 대표은 “난 (차를) 받은 줄도 몰랐다. 그래서 경찰을 부르자고 했는데 경찰이 오고 있는 상황서 ‘보험으로 할 거냐, 현금으로 할 거냐’ 해서 난 그냥 ‘현금으로 해도 된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손 대표로부터 받은 손 대표 명의 계좌 내역을 보면, 2017년 4월17일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A씨에게 15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돼있다. 

그런데 사건의 논란은 다른 방향으로 옮겨붙었다. 당시 손 대표와 ‘동승했던 인사가 누구였느냐’다. 김씨는 당시 손 대표와의 통화서 “접촉사고 당시 차량의 조수석에 동승자가 있었다”는 제보의 사실 여부를 물었다.

손 대표은 “동승자는 없었다. 그들이 (뺑소니라고) 협박해서 돈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약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그마한 것으로 침소봉대 돼서 공격당할 수 있고 여러 모로 타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JTBC는 보도자료를 통해 “동승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며 “이를 증명할 근거도 수사기관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또 “김씨가 이번 사안을 의도적으로 ‘손석희 흠집내기’로 몰고 간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 당시
동승자 누구?

논란은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김씨는 손 대표가 자신을 회유·배임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까지 5개월가량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수십건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주로 김씨의 채용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손 대표가 김씨에게 “이력서를 하나 받아뒀으면 한다” “내가 밀어넣으려 한다고 말들이 많을 거야. 그런데 그렇게라도 해보지 않는 건 내가 너한테 미안한 일인 것 같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씨는 “손 대표는 저를 통해 세상에 사실이 알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며 “저를 회유하기 위해 JTBC 작가직 등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고, 폭행 당일에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 합류시키겠다고 했다가 또다시 거절당하자 이에 격분해 폭행했다”고 했다.


김씨는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2017년 4월16일 심야 시간에 손 대표가 경기 과천의 한 교회 인근 공터서 접촉사고를 내고 현장을 이탈해 도주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라며 “사고 직후 피해자들에게 추적당해 4차로 도로변에 정차했고,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사고 피해자들은 조수석에 젊은 여성 동승자가 있었다고 전했다”고 언급했다.

이 젊은 여성은 손 대표와 함께 뉴스룸을 진행하는 안나경 앵커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JTBC는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현재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포되고 있는 안나경 앵커에 대한 각종 소문은 모두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 작성되고 유포된 근거 없는 SNS 글과 일부 매체 기사를 수집하고, 이를 작성하고 유통하는 모든 개인과 매체를 상대로 강력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손 대표의 배임 의혹도 나왔다. 김씨에 따르면 손 대표는 지난달 19일 김씨의 변호인에게 월 1000만원을 보장하는 2년 계약의 용역 체결을 논의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본인의 교통사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기자직 등 회사 일자리를 제공하고 회삿돈을 용역비 형태로 주려고 했다면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 자유청년연합은 손 대표를 배임 및 배임미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부지검이 사건을 배당받았으며 관련 수사는 마포경찰서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젊은 여성?
명백한 허위?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시민단체 자유청년연합이 손 대표를 배임 및 배임미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사건을 서부지검에서 배당받을 예정”이라며 “이후 마포경찰서로 보내 수사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대표는 1956년 서울서 출생해 2남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방송반원이 됐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79년 군대에 입대하고 부산에 있던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 배치됐다. 군 시절 동안 10·26사건, 12·12군사반란, 5·18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사건을 겪는다.

손 대표는 1984년 MBC에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조선일보> 판매국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을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MBC의 대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지다가 1986년 앵커 이미지가 강렬해지는 것을 우려한 MBC 사측서 보도국으로 발령 내 기자가 됐다. 하지만 본인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9년 4월23일 새로 신설된 일요일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으며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손 대표는 1989년 10월까지 토요일 <뉴스데스크>와 일요일 <뉴스센터>를 진행한다. 1990년에는 저녁뉴스 앵커를 맡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뉴스를 진행했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법에 맞서 쟁위가 발생했다.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방송 리본을 달기로 했지만 모두 빼앗긴다. 손 대표는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으며, 당시 이 문제로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이에 대해 손 대표는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고소·고발로 이어진 진실공방

손 대표는 1992년 가을, MBC 노조 활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정권은 여당에게 비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했다.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 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손 대표는 이때 주동자로 몰려 동료들과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당시 손 대표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언론은 그가 포승줄에 묶인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손 대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는 말을 남겨서 대중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2년 뒤 귀국해 MBC <아침뉴스 2000>를 통해 방송에 복귀. 2000년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을 맡았다.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에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뒤를 이어서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가 됐다. 손 대표는 2009년 11월19일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MBC 아나운서 국장으로 재직했으며, 2006년 MBC를 퇴사 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3년 5월 <시선집중> 진행자와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직서 사임하고 JTBC 보도부문 총괄 사장을 맡았다. 2013년 9월16일부터 2014년 9월까지 JTBC <뉴스 9> 주중 진행을 담당했으며 2014년 9월22일부터 1시간40분 동안 진행되는 JTBC의 메인뉴스 <뉴스룸>을 진행하고 있다. 

신뢰도 1위
여기서 끝?

손 대표는 JTBC를 종합편성채널을 넘어 지상파와 경쟁하는 매체로 만들었다. 이제 7년 차에 접어든 JTBC가 전통을 자랑하는 유력 언론매체들을 따돌리며 쾌속질주를 펼치고 있다. 올해로 29회째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언론매체 조사에서 JTBC는 영향력·신뢰도 부문서 2위와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열독률 부문서도 1위 네이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2위에 올랐다. 손 대표는 더불어 <시사저널>의 ‘2018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서 14년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