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조 토지보상금 어디로?

올해와 내년 전국적으로 풀리는 거액의 토지보상금이 부동산 시장 투자의 향배를 가를 큰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내년 25조원 이상의 역대 최고 수준의 토지보상금이 풀린다.

토지보상금이란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을 위해 소유주 협의나 수용 절차를 거쳐 취득한 토지에 대해 한국토지주택(LH)공사, 서울주택도시(SH)공사 등이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되 실거래 가격, 보상 선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한다. 높은 지가로 인해 작은 사업지라도 수조원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대규모 토지보상금이 풀리면 인근 부동산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게 된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2006년 29조원의 보상비 중 40~50%가 인근 토지로 재유입되거나 투자성이 높은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중소형 빌딩 매입에 재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 수준
불쏘시개 역할

2000년대 중반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 폭등도 당시 추진됐던 판교신도시와 행정복합도시 토지보상금이 강남, 분당 등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부해진 유동자금은 개발사업 주변 토지나 강남 재건축 단지, 상가, 중소형 빌딩 등 인기 지역의 부동산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매우 커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성남 금토지구 등 수도권 신규 공공주택지구는 내년 하반기부터 토지보상에 들어간다. 한 부동산개발 정보업체에 따르면 연말까지 공공주택지구, 기업형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 산업단지, 도시개발사업 등 16개 사업지구에서 총 3조7307억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릴 예정이다.


16개 사업지구 전체 면적은 8.5㎢로 서울 여의도(2.9㎢)의 약 3배 규모다. 올해 전체 토지보상금은 16조원으로 집계될 예정이다. 수도권에서는 9월달부터 서울 수서역세권 공공주택지구(38만6390㎡)에서 3600억여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 11월에는 올해 전국에서 보상금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경기 고양 장항 공공주택지구(156만2156㎡)가 보상을 시작한다. 보상금은 1조732억원이다. 

지방에서는 대구 금호워터폴리스 일반산업단지(111만6754㎡)가 최근 토지보상을 시작했다. 사업을 추진한 지 5년 만이다. 토지보상금 6900억원을 포함해 총 7500억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당초 5000억여원의 보상금이 예상됐으나 높은 땅값이 반영되면서 토지보상금 규모는 6900억원으로 늘었다. 

2009년 후 최대 규모…인근 시장 파장
투자 향배 가를 큰 변수로 떠오를 전망

2019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25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09년(34조8554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과 9·21대책에 따르면 수도권 3만가구 건설계획이 내년부터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대 정권별로 토지보상금 추이는 어땠을까. 정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정권은 공약대로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힘쓰게 된다. 주택공급을 늘리려면 신도시나 택지개발이 필수다. 신도시 하나를 짓기 위해 주택, 상업시설, 도로 등 관련 용지를 모두 확보해야 한다. 이에 정부가 해당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토지보상금을 지급하고 대규모로 토지를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신도시나 택지개발을 위해 보상비를 가장 많이 푼 역대 정부는 이명박정부다. 총 117조원이 넘는 보상비를 쏟아부었다. 특히 집권 2년 차인 2009년 약 34조8000억원이 풀렸다. 이는 이명박정부 내 가장 큰 규모일 뿐 아니라 역대 최고치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4대강 사업, 보금자리주택 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토지보상을 실시했다. 집권 1년 차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 전반이 침체 국면에 놓이자 건설경기를 살리려고 투입 자금을 늘린 측면도 있다.

하지만 건설경기는 계획만큼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집값 상승세가 꺾이고 불안 요소가 많아 ‘부동산 불패론’에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내외적으로 악재가 거듭돼 토지보상으로 풀린 자금들이 부동산, 주식, 금융 등 전통적인 투자처로도 흘러들어가지 않는 형국이었다.

두 번째로 토지보상금을 많이 푼 때는 노무현정부다. 5년 동안 103조원이 풀렸는데 임기 말인 2006년 29조9000억원, 2007년 29조6000억원으로 후반기에 집중됐다. 집권 초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집값은 2006년과 2007년 정점을 이뤘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많은 데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아파트, 토지, 금융권 등 유입
규제 자유로운 수익형도 주목

참여정부는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 신도시, 택지개발 사업과 전국 10개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해 토지보상금을 대거 풀었다. 당시 서울 강남 아파트 가격은 고점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매매차익이 크지 않으리란 추측에 토지보상금으로 풀린 자금은 주택보다 수익형 부동산과 토지 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택지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집권 2년 차인 2014년 1·2기 신도시를 조성하는 근거가 됐던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했다. 대규모 신도시 건설 정책이 실질적으로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책 방향은 공동주택관리법과 도시개발법을 통해 중·소형 택지를 공급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절반 이상이
수도권 집중

문재인정부는 초반에 전임 정부의 이런 기조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집권 초부터 계속된 수도권 집값 상승의 근본적 원인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말 ‘주거복지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박근혜정부 시절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해 택지 공급을 중단하겠다’던 정책 방향을 바꿔 정부 주도로 토지를 공급하고 도시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수도권 4~5개 미니 신도시 공급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처럼 올해와 내년에 풀리는 대규모 토지보상금이 아파트, 토지, 금융권 등 다양한 곳에 보상금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달라진 부동산 투자 환경을 보면 규제에서 자유로운 수익형 부동산 시장으로 향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초강력 주택 규제 강화와 저금리의 지속으로 인해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올해와 내년 전국에 풀리는 토지보상금 29조원 중에서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는데, 규제가 적은 수익형 부동산이 반사이익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람 많은데 
공급은 부족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직 최종 집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내년 역대 최고 수준 토지보상금이 풀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토지보상금을 자녀의 주택 구매 용도로 증여하거나 노후를 대비해 도심의 상가건물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전반적으로 일대 부동산 시장 열기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토지보상금으로 주목받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 녹번역 래미안 베라힐즈

▲녹번역 래미안 베라힐즈(상가)=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9번지 일대에 근린형 단지 내 상가인 ‘녹번역 래미안 베라힐즈’ 유치원 및 근생시설이 분양 중이다. 연면적 2471.14㎡,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다. 근린생활시설(소매점)은 지하 1층~지상 1층이며, 교육연구시설(유치원)은 지상 2~4층에 입점한다. 11월 준공을 앞두고 있는 후분양 상가로, 층별 권장업종은 지하 1층 대형마트, 지상 1층 7개 점포(업종지정 가능), 지상 2~4층은 유치원으로 구성된다. 


분양방식은 지하 1층(대형마트, 전용면적 475.99㎡)과 지상 2~ 4층(유치원, 전용면적 1057.36 ㎡)은 최저가(내정가 각각 28억원) 공개입찰방식으로 한다. 지상 1층은 확정가 선착순 입금방식이다. 분양가는 1층 기준으로 3.3㎡ 당 1500만~2300만원 선(부가세 별도)이다. 전용률은 지하 1층(대형마트) 72.03%, 지상 2~4층(유치원)은 78.67%, 지상 1층은 67.39%다. 지상 1층은 전면에 테라스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올 12월 입주하는 녹번동 래미안 베라힐즈 1305세대 및 10월 입주인 힐스테이트 녹번 952세대, 기입주(2015년 7월)한 북한산 푸르지오 1230세대 등 녹번동 재개발 아파트 3500여 세대 배후로 하고 있다. 납부방식은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총 분양가로 계약 시 10%, 중도금(계약일로부터 한 달 후) 30%, 잔금 60%는 1금융권 대출로 대체가 가능하다.
 

▲ 의정부역 베스트뷰

▲의정부역 베스트뷰(오피스텔·도시형 생활주택)=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138-6 일원에 의정부역 초역세권 오피스텔·소형 아파트·근린생활시설로 구성된 ‘의정부역 베스트뷰’가 분양 중이다. 1호선·GTX(예정) 환승역세권인 의정부역 초역세권 입지(의정부역 7번 출구 도보 2분 이내)로, 12월 준공을 앞둔 후분양 수익형 상품이다. 

대지면적 498.00㎡, 건축물 연면적 5198.13㎡, 1개동으로 지하 1층~지상 19층 규모다. 건축물 공급규모는 업무시설(오피스텔 93실), 공동주택(다세대원룸형 26세대), 근린생활시설(3호)이다. 전용면적 기준으로는 오피스텔은 20.3382~47.2㎡, 도시형 생활주택은 18.32~19.59㎡, 상가는 22~29.6㎡다. 

지상 2~4층은 소형 아파트인 도시형 생활주택 26세대가, 지상 5~19층은 오피스텔 93실이 공급된다. 소형 아파트는 분양가는 9000만원대부터 시작하며 계약금 10%, 중도금 10%, 입주 시 잔금 80% 납부조건이다. 오피스텔 및 상가도 납부조건은 동일하다.
 

▲ 수원 인계 엘리시아

▲수원 인계 엘리시아(오피스텔·상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019-6번지 일대에 ‘수원 인계동 엘리시아’오피스텔 7실(회사보유분)과 상가 1호(선임대)가 선착순 분양 중이다. 오피스텔 7실은 모두 5층으로 4층 주차장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도 계단을 통해 이동이 용이하다. 이 중 4실은 서비스 공간인 테라스가 제공되어 공간활용도가 높다.


분양가는 부가세를 제외한 1억3800만~1억4900만원 선이다. 오피스텔의 경우 현재 보증금 500만원에 월 60만~70만원선에서 임대가 확정되어 있다. 상가는 104호를 공급 중인데 현재 중국요리전문점으로 선임대가 확정이 되었다. 

지하 1층~지상 13층으로 설계되며 2018년 2월 준공으로 지상 1층에는 상업시설 5실로 구성된다. 원스톱 쇼핑시설을 누릴 수 있고 지상 5층에 오피스텔 13호실, 6~13층은 도시형 생활주택 104호실로 조성된다.
 

▲ 오산 골드 스페이스

▲오산 골드 스페이스(상가)= 수익형 부동산 전문 시행사인 우주디자인컴퍼니가 경기도 오산시 원동 214-1 5번지 일대에 복합상가인 ‘오산 골드 스페이스’를 분양 중이다. 건축면적 492.95㎡, 연면적 3213.30㎡,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다.

노후 대비해
투자할 예정

지상 1~3층은 근린생활시설, 지상 4~7층(4층 오피스텔 10실, 5~7층 도시형 생활주택 29세대)으로 구성된다. 상가는 지상 1층에 8개 점포로 권장업종은 편의점, 약국, 유명 프랜차이즈, 중개업소, 커피전문점 등이 지상 2층과 3층은 각각 1개 점포로 권장업종은 전문병원 전문학원, 대형음식전문점 등이다. 

분양가는 3.3㎡ 당 1100만~ 2530만원 선(부가세 별도)으로 2층과 3층은 각각 122㎡, 62㎡의 서비스 면적인 테라스 공간이 제공된다. 상가는 계약금 10%, 중도금 10%, 잔금 80%이며 2019년 10월 준공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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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