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②정치입문

하늘이 점지한 나랏님은 누구?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와 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출생과 성장과정을 살펴본데 이어 두 번째로 정치입문 과정과 배경을 들여다봤다.

흔히 ‘나랏님은 하늘이 점지한다’고 했다. 이는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져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민심이 곧 천심’임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능력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 때문에 잠룡들은 민심 속으로 파고들며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특히 자신이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인생스토리는 민심을 동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갖가지 다른 인생역정을 걸으며 대망을 향해 나아가는 잠룡들. 이들은 과연 어떤 연유로 정계에 첫발을 내딛게 됐을까.

<모락모락> 이회창과 비밀회동 후 달라진 박근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처음부터 정계에 발을 담갔던 것은 아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1979년 10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자 청와대를 떠나 재단운영에 전념했다. 그는 1980년 영남학원?1982년 육영재단?1994년에 정수장학회 등을 위임받아 운영한 것. 당시 박 전 위원장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정치적 발언은 삼가며 은둔생활을 했다.

하지만 각 재단마다 운영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남대학은 전형적 사학비리가 터졌고, 육영재단은 운영권을 두고 혈육 간의 암투가 벌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박 전 위원장은 재단에서 전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단의 비리전력은 후일 박 전 위원장의 아킬레스건으로 계속해서 따라붙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 1997년 대한민국의 초유의 사태인 IMF시대를 맞이했다. 이에 박 전 위원장은 “아버지가 일으켜 세운 나라가 IMF 사태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본격 정치권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정계 입문배경을 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이 중론이다.

15대 대선 당시 TK(대구?경북)의 표심을 흔들 적임자로 박 전 위원장이 지목됐다. 이에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박 전 위원장을 포섭하기에 이른다. 1997년 12월2일 박 전 위원장과 이 후보는 비밀회동을 가졌다.

회동내용은 비밀에 부쳐졌지만 이듬해 2월 박 전 위원장이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달서군에 공천을 받으며 그 내용을 짐작케 했다. 그해 4월 박 전 위원장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와 더불어 차떼기 사건이 불거지며 지지율이 유례없는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이 당 대표로 추대되며 17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한나라당은 원내 1당 자리는 내주었지만 121석을 차지하여 예상외의 선전을 하였다. 이때부터 박 전 위원장은 ‘선거의 여왕’으로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무럭무럭> 2002월드컵 광풍 등에 업은 정몽준

‘7선 파워’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대학과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가 창업한 기업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전형적인 재벌2세 코스를 밟았다. 그런 그가 정치권의 문을 두드린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버지가 정 의원의 정치적 재능을 발견하고 권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에 정 의원은 1984년 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무소속 출마를 용납하지 않으며 정 의원은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정세를 체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정 의원은 13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져  당선됐다. 그는 계속해서 울산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대한축구협회장과 피파(FIFA) 부회장으로 2002년 월드컵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국민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1위로 치솟았다. 월드컵의 광풍을 업고 한순간 신드롬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 정 의원은 내친김에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정 의원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

여론조사에서 패한 정 의원은 노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지만 대선 바로 전날 밤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갑작스레 철회했다. 이것은 그의 정치생명에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오점으로 남은 상태다. 

<기세등등> YS 손잡고 제도권 안착한 김문수

서민의 아들로 잡초처럼 자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가로 활약해왔다. 80년대 이후 독재정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재야에서 활동하던 운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제도권 내로 진입할 때 김 지사도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90년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민중 중심의 좌파정당을 지향한 민중당을 만든 것. 여기서 김 지사는 민중당 구로갑지구당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민중당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되고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러던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눈에 띈 김 지사는 “혁명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남기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에 입당했다. 1994년 창당한 민자당은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신한국당으로 개명한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선거패배로 당을 쇄신하기 위해 구 민정당, 공화당계 인사를 몰아내고 이재오·김문수 등 민중운동, 노동운동 출신 인사들과 홍준표·맹형규 등 당시 스타급 신인정치인들을 영입한다. 김 지사도 이때 함께 영입됐다. 

지사는 이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부천시 소사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후 당이 김영삼 체제에서 이회창 체제로 바뀌고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계속 활동하였다.

<꿈틀꿈틀> 친노진영 대안론에서 대망론 꿰찬 문재인

‘노무현 그림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은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다. 문 고문은 사법시험 동기생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당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했다. 이때 맺은 인연을 계기로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과 30년 가량 가장 가까이에서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진입해 ‘청문회스타’가 된 뒤에도 문 고문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지난 2002년 6?13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몇 차례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자신을 참모용에 빗대며 한사코 출마를 고사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문 고문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이후 그는 네팔 산행 도중 영자신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달려와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 의원은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자 장례절차에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으며 주목받았다. 특히 6?2 지방선거에서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낙선하자 친노진영에서는 유 전 대표의 ‘표의 확장성 한계’로 문 고문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어 ‘문사모’ ‘젠틀재인’ 등 팬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며 대망론까지 일었다. 한사코 정치를 거부하던 문 의원은 MB정권 심판과 정권교체를 위해 PK 공략을 진두지휘하겠다며 지난 4월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서 당선된 문 의원의 현실정치도 본격 시작됐다.

<차근차근> 이장?군수에서 장관?도지사 누빈 김두관

‘리틀 노무현’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민통련에 가입하고 간사 활동 중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김 지사는 감옥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동아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낙향해 남해농민회를 조직하며 농민운동을 했다.

그는 고향 이어리에서 이장을 맡았고, 곧 <남해신문>을 창간해 직접 신문을 배달하며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해 나갔다. 이 같은 행보는 이후 김 지사가 37세의 최연소로 남해군수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1995년 초대 지방선거와 1998년 2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남해군수에 당선된 것.

김 지사는 지난 2002년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권유로 고심 끝에 민주당에 입당해 경남도지사에 출마했다. 당초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출마하려 했으나 노 후보의 끈질긴 설득 끝에 민주당에 입당했고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출범하며 이장 출신의 김 지사는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파격 인사로 관심을 끌었다.


이후 김 지사는 계속해서 PK지역에 출사표 내던졌지만 고배를 마셨다. 수차례 실패에도 결코 영남을 포기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행보와 닮았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그를 '틀 노무현'로 부른다. 마침내 김 지사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로 경남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PK경쟁력을 확보한 탓에 그는 여권의 강력한 경계를 받는 잠재적 대선후보로 분류되고 있다. 

<반짝반짝> 투사에서 교수까지…화려한 스펙 자랑 손학규

민주화 투사였던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크리스천 에이드’라는 교회단체의 장학금을 받아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손 고문은 귀국한 뒤 인하대?서강대에서 정치학 교수를 역임했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손 고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손 고문은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며 민자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지난 14대 총선 보궐선거를 통하여 경기도 광명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YS 문민정부에서 최연소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손 고문은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3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민주화 투사경험과 정치학 교수?3선 의원?장관?경기도지사까지 화려한 이력은 그를 차세대 지도자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빅3로 꼽히던 손 고문은 전격적으로 탈당을 감행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탈당전력은 이후 손 고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며 오점으로 남은 상태다.

한나라당과 결별한 손 고문은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는 데 역할을 하였으나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시 정동영 후보에게 석패했다. 하지만 손 고문은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데 이어 지난 2010년 10월에도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두근두근> 열렬한 국민적 지지로 떠오르는 안철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정치권 인사가 아니면서 정치권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인물이다. 난공불락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데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정치권에 메가톤급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안 원장은 그간 의사에서 프로그래머, 벤처사업가이자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지속적인 변화와 끊임없는 노력을 거듭했다. 그는 1990년 최연소인 만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사생활을 하면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어 무료로 제작·배포해 명성을 쌓았다. 안 원장은 의대 학과장을 그만두고 1995년 2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여 아예 백신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뒤,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정신을 겸비한 안 원장은 그간 지속적인 강연 ‘청춘콘서트’를 통해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희망을 심어주며 남다른 배려와 존중의 소통 방식으로 젊은 계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윤여준 전 장관이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 알렸고 단숨에 지지율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안 원장은 2012년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굳건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식지 않는 국민적 열망에 그의 대선 출사표가 언제 던져질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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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에테르노 압구정 아파트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 차준영이 영화배우 김모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준영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준영이 어떻게 워커힐 카지노 VVIP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카지노 출입설’이 단발성 풍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M 전문가로 알려진 차준영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준영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에테르노 간 큰 베팅 최근 차준영은 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누어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현재 차준영에게는 DL이앤씨 등과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채무가 있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그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준영이다. 압구정의 모 샤브샤브 전문점 사장에 따르면 “최근 연예인 해외원정 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차준영이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미국 영주권자인 차준영은 국내 카지노를 활보하면서 한 연예인의 해외 도박을 제보한 셈이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동종업계 종사자와 나눈 카카오 메시지에서 넥스플랜 차준영의 요청으로 가수 겸 배우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준영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카지노 업계에서 차준영은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큰 손”이라고 표현했다. MC몽도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차준영은 나에게 10~20억원 정도는 배팅해야 된다며 도박을 권유했던 사람”이라며 “시행사 투자금 들고 카지노 쫓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차명 통장으로 분양금 받아 차준영 회사로 황정음·손흥민 에테르노 분양 대금의 행방 다만 대한민국 카지노 출입 기준은 ‘VIP 여부’가 아니라 ‘국적’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내국인은 원칙적으로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외국 국적자에 한한다. 카지노 멤버십 등급, VIP·VVIP 여부, 이용 금액, 단골 여부 등은 출입 적법성 판단에 어떠한 법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VVIP의 요청이라서 김씨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설명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카지노 사업자가 출입자 신분 확인 의무를 완화하거나 소홀히 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에 가깝다. “VIP 요청이라 허용했다”는 표현은 김씨의 출입 허용 판단의 기준이 ‘법’이 아니라 고객의 경제적 가치였음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준영의 도박 자금의 출처도 궁금해진다. 차준영은 ‘에테르노 압구정’을 분양하는 과정에서 친형이자 피아크 그룹 차가원 회장 아버지인 차대영의 계좌로 분양계약금 등 수백억원을 받은 뒤, 자신의 회사인 넥스플랜 계좌로 25억원을 입금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통장 이체 내역을 살펴보면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수탁자인 A 신탁에서 차대영의 통장으로 30억원이 이체됐다. 이어 3월24일 오전 10시43분 넥스플랜으로 5억원이 이체되는 방식으로 총 25억원이 넥스플랜으로 직접 흘러갔다. 앞서 차준영은 2024년 9월 DL이앤씨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 패소하면서 518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통장과 제반 금융에 압류가 설정되자, 차준영은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는 목적으로 차대영이 개설한 통장을 빌렸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대영은 2024년 10월경 “예금채권 압류로 정상적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정을 호소한 동생에게 생활비 등 기본 거래용이라며 하나은행 저축예금 계좌 1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러나 2025년 7월경 거래내역을 확인하자 잔액이 0원이었고, 생활비 용도와 무관한 거액 거래가 다수 발견돼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통장을 재발급받은 뒤 2025년 7월25일 내용증명으로 사용허락 철회를 통지했다는 것이다. 꿀꺽한 ‘셀럽 마케팅’ ‘신탁형 PF’ 구조인 에테르노 압구정은 분양수입금이 신탁계약상 A 신탁사 명의 관리계좌로 수납돼야 하는데 ‘차준영→넥스플랜’으로 직접 받으면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납부효력이 문제될 수 있고(미납 취급 위험), 신탁사가 보호해줄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는 논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형사상 “업무상 횡령” 및 “자금세탁”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에 차대영은 동생을 상대로 계약서 위조 및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차준영은 차대영의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계약을 지난 2024년 30억원에 체결하기도 했다. 차준영과 A 신탁사 직원이 공모해 계약명의자인 차대영의 동의 없이 분양계약서를 위조하고 거액을 이체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대영은 지난해 12월3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차 회장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총 3명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시행사는 차준영의 회사인 넥스플랜, 신탁사는 A 신탁, 시공사는 장학건설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준영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3명은 2024년 10월25일께 차대영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한 채의 공급계약서를 위조했다. 위조계약서를 A 신탁, 장학건설 관계자에게 진정하게 성립한 것처럼 교부했다는 게 차대영 측 주장이다. 이어 2025년 3월12일께 같은 방법으로 차대영 명의의 공급계약 해제합의서를 다시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통장 거래내역을 보면 2024년 10월25일 오후 2시39분 차대영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에서 A 신탁 계좌로 30억원이 ‘에테르노 압구정 102호 분양대금 일부’ 명목으로 이체됐다. 오후 2시44분 이 거래는 취소됐고 다시 오후 2시50분 같은 금액을 재이체했다. 이후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공급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 명목으로 30억원이 계좌로 반환됐다. 날아간 통일 동산 차대영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내 계좌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며 “나는 분양계약을 체결한 적도, 그에 대한 동의를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A 신탁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신탁사가 수십억원대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는 계약자 본인의 신분증 확인, 본인 서명 또는 날인, 본인 통장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친다. 대리인이 계약하더라도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는 필수다. 에테르노 압구정은 축구선수 손흥민, 아이유, 황정음 등 연예인들이 2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아파트로 관심을 끌었다. 이와 반대로 분양대금은 차준영이 친형에게 빌린 통장으로 입금돼 관리되고 있던 것이다. 배우 출신 황정음의 에테르노 압구정의 수상한 계약도 눈길을 끈다. 2025년 3월20일 황정음은 압구정 모 부동산에서 총 분양금 230억원에 달하는 ‘에테르노 압구정 501호’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통상 총 분양금에 10%에 달하지만, 황정음의 계약금은 4억원이라는 점도 특혜성 계약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황정음 측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계약금이 아니라 청약금인 줄 알았다”며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 철회 의사를 밝혔으나 현재까지 4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에테르노를 분양받은 손흥민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차준영을 직접 만나 거래하기도 했다. 차준영이 친형의 통장을 빌린 결정적인 이유는 파주 통일동산 개발사업의 실패다. 2024년 9월 DL이앤씨는 파주 통일동산 콘도 사업과 관련해 넥스플랜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5000억원대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 금액, 공사 중단 경위, 청구 내역(공사비·구상금·대여금 등)과 같은 구체 항목까지 드러났다. <비즈한국>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박준민)은 2024년 9월10일 DL이앤씨가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 시행사이자 차준영이 운영하던 ‘시티원’을 상대로 낸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시티원이 DL이앤씨에 518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분양가 230억인데···황정음 계약금 4억 어디로? 시티원에서 넥스플랜으로…법인 바꾸고 자금 회수 인용된 청구 채권은 하자보수금을 제외한 기성 공사비 611억원과 구상금 3524억원, 대여금 1000억원, 지연손해금(법정이자) 50억원 등이다. 앞서 DL이앤씨는 ​2020년 8월 공사비 등 이 사업에 투입한 비용 총 5781억원을 정산해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청구 채권 상당액을 인정한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셈이다. 소송 당사자인 시티원과 DL이앤씨는 각각 이 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로, 2006년 12월 공사 기간을 28개월, 공사비를 4125억원, 지체상금을 1일당 공사비 0.1%(최대 5%)로 정하는 공사 도급계약을 맺었다. 공사대금은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맞춰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공정률 33%에서 18년째 멈춰 있다. 결국 DL이앤씨는 2020년 8월 사업비용을 정산해 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된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에서 상계 채권을 제외한 총 578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는 이 사업 시공자로서 공사비를 직접 투입한 것은 물론 시티원 측에 사업비를 직접 대여하거나 연대보증인으로서 시티원이 갚지 못한 사업비 원리금 등을 대신 갚아왔다. 시티원은 오히려 DL이앤씨가 사업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과 사업 손해를 물어내야 한다며 2022년 4월 반소를 제기했다. 양측이 맺은 도급 계약에 따라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 공사 현장은 20년 동안 방치돼 흉물이 됐다. 공사 재개에는 2691억원이 필요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DL이앤씨가 현장을 철거하고,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 5%)과 미래 분양 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차준영의 자금 운용 건전성에 적신호는 해소되지 못한 반면, 카지노에선 VVIP로 불렸다. 정작 부동산시장에서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불과 수개월전까지 워커힐 카지노를 출입한 셈이다. 차준영에게 제기된 문제는 초고가 주택 분양 계약의 공정성, 대형 개발사업의 책임 귀속, 그리고 국내외 카지노 출입 논란까지 확장되고 있다. 법인 바꿔 타짜 행세 쟁점 중 하나는 ‘에테르노 압구정 직접 계약’이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이 에테르노 압구정과 관련해 시행사 대표와 직접 계약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분양 절차의 투명성과 이해상충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통상 초고가 주거상품의 분양은 다층적 심사·중개·검증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이 축약되거나 개인 간 직거래로 처리됐다면 ‘특혜’ 또는 ‘절차 생략’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