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주역 릴레이 인터뷰⑤] 강단과 소신의 사나이 황주홍 의원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6.05 09: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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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유일척도’는 국민이고 민심이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일요시사>가 황주홍(민주통합당· 강진 영암 장흥)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강진군수 재임 당시였던 지난해 4월이었다. 경찰의 ‘강진군민장학재단’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그를 둘러싼 악의적인 정치적 음모를 낱낱이 파헤친 것이다. 그 결과 황 의원은 불기소 처분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말끔히 씻어냈다. 우직하고도 강단 있는 황 의원은 많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이겨낸 뒤 19대 국회에 당당히 입성했다. 한결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황 의원을 서울시내 모처에서 다시 만나봤다.

황주홍 의원을 만난 시간은 4시가 훌쩍 넘은 늦은 오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못 했다며 함께 빵을 먹을 것을 권했다.

의정활동 준비, 각종 모임 참석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였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활기차고 밝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황 의원은 소탈했지만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밝힐 때는 강단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시점이다.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는 좋은 정치인이 돼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황 의원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의정활동 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황 의원과의 일문일답.

▲ 국회의원을 오래할 생각 없고 짧고 간결하게, 국민의 여망을 좇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는데?
- 3선 단체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현행 선거법은 3연임 밖에 못하지만 국회의원은 무한정 하게 돼 있다. 국회의원도 3선까지 허용하는 것이 법의 형평성 차원에서 맞다 생각한다. 실제 12년이면 자신이 가진 철학과 비전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라 생각한다. 길게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질 높은 입법활동을 하며 국정개혁과 쇄신을 견인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데 입장은 어떠한가.
- 여야 간 유리한 배분을 갖기 위한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만 매번 되풀이 되는 것이 대해 국민들은 식상해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그것이 정치 불신의 한 요인이다. 19번째 국회인데 이제까지 해온 관행과 전통과 과거의 선례들에 비추어 원만하게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어야 됐다. 민주통합당 소속이긴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 한때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를 일관되게 주장하셨는데, 그 이유와 타당성은?
- 평소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정치의 ‘유일척도’는 국민이고 민심이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70% 이상이 기초단위 정당공천제도의 즉각 폐지를 원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니까 해결해야 한다. 정치선진국들은 정당공천을 하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며 가장 잘못된 제도이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이기에 반드시 폐지시켜야 할 대표적인 정치악법 중 하나다.

▲ 해결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악법을 폐지시키기 위해 여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기득권 수호라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이해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국회 내에서 노력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 국민과 함께 더불어 악법이 폐지되는데 최일선에서 노력하겠다.

▲ 상임위 활동 계획은?
- 지역구가 전형적인 농업지역이다. 전반기는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활동하고 후반기는 전문관과 적성을 살려 교육과학기술위원회나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일해보고 싶다.

▲ 강진군수를 3번이나 역임할 만큼 지역민들의 신임이 두터운데 강진군수 시절을 회상해 본다면?
- 대한민국 최초·유일의 공직사회 팀제를 도입하고 시행했다. 팀제는 성과 중심이다. 성과는 ‘주민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정성껏 일했냐는 것’과 ‘주민 소득증대에 얼마나 기여하고 성과를 냈는지’ 두 가지 기준을 뒀다. 그 전의 연봉서열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능력에 따라 팀장을 맡을 수 있도록 운영했다.

▲ 그 결과는?
- 고소득 농가 순위가 전남의 22개 시군 중 17위였던 강진군이 4년 만에 2위로 치솟는 괄목한만한 성장과 발전이 있었다. 교육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강진의 고등학교 5개 전체가 정원미달이었다. 3년 만에 완전 정상화됐고 한 고등학교는 한 학급이 증설이 되는 믿기 힘든 변화를 이뤄냈다. 팀제를 시행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고 잊지 못할 일로 기억하고 있다.

▲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뤄낼 만큼 군수직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정치적 음모론에 휩싸이는 억울한 일도 있었는데?
- 정치적인 음모가 있었던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강진군민장학재단 감사와 수사로 사전구속영장까지 받고 경찰에서는 나를 구속시키려 했지만 다행히 검찰에서 기각되고 불기소 돼 무사히 어두운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강진군민 여러분들과 전국의 의식있는 시민과 시민단체에서 함께 해줘서 순조롭게 명예회복 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 주변 반응은 어떠한가?
- 여담이지만 당시 싸우며 고통 받고 힘들었던 것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고 그런 분위기를 타면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라”며 격려해줬다. 약이 됐다 생각한다.


▲ 임기가 남은 군수직을 사퇴해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군민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 지난해 11월 초에 군수 사직 때와 출마 기자회견을 하며 몇 차례에 걸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4년 간 일할 것을 기대하며 지지해 주셨는데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지금도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69.7%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다. 참으로 감사하다. 국회의원으로서 맡겨진 소임을 충실히, 성공적으로 수행해 유례없는 지역발전과 국정 쇄신을 이뤄내는 것으로 성원에 보답하며 군수로서 못한 일들을 해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낡은 권위주의와 관행 모두 없애야!”
“국민만이 유일한 벼슬자리에 있다”

▲ 대표적인 공약은 무엇인가.
- 군수시절 “왜 농촌지역이 공업이나 상업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 되어 있을까”라는 고민을 항상 해왔다. 이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8~9개월에 이를 정도로 긴 농한기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방안을 모색해 농한기를 없애고 365일 내내 농번기를 누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입법 하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국의 80여 개 농촌 지역이 도시권과 같은 새로운 번영과 풍요의 시대가 도래 할 것으로 믿는다. 농정입법 시대를 여는 것이 대표적이고 핵심적인 공약이다.

▲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되는데?
-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대기업 지원과 외환위기 이후 벤처기업들에게 소요된 재원에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이다. 5년간 2~3조가 소요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원 조달에 실질적인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농업이 처한 상황이 참담하다.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재원이라 생각한다.

▲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지도부 구성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 좋은 분들이 예측불허의 경합을 벌이고 있다. 민주정당의 통상적인 모습이고 바람직한 모습이다. 다만 그것이 계파 간 겨룸, 파벌간의 배타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흐른다면 국민에게 외면 받을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18대 대선을 전망해 본다면?
- 결국에는 어느 정당을 국민이 더 신뢰하느냐, 어느 후보가 더 믿을만한 대통령 후보감이라 생각하느냐 일 것이다. 민주당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민주당에 의해 정권교체가 되어 10년 만에 민주정부를 출범시키길 기대한다.

▲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 보는가.
- 국민의 관점에서 볼 때 후보로서 매력이 있으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적 지위와 배타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보여야 한다. 단순히 국가의 돈을 사용하는 공약 경쟁만으로 승부를 보려 해서는 안 된다. 공약 제기가 무의미 하다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은 국민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진짜 승부는 후보자의 자질과 정당의 그릇에서 날 것이다. 그 그릇이란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를 하려는 진지한 의지를 어느 정당이 가지고 있느냐다. 낮은 자세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노력을 늘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후보들의 메시지가 잘 정리돼야 한다. 국민을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은 국회의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에 대해 답안지를 내놓고 그것에 대한 채점과 평가를 국민들에게 받아야 할 것이다. 그 감동의 정치가 개인적인 소신이기도 하다.

▲ 안철수 원장의 관계 설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입장은 어떤가?
- 당 입장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좋은 대통령 후보를 어떤 단계에서든지간에 함께 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런 후보를 많이 갖는 것은 당의 자산이 되기 때문에 안 원장 같은 후보는 많은 공을 들여서라도 민주통합당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 임기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지역발전·좋은 의정활동에 못지않게 해야 할 큰 책임과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정치쇄신’이다.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지탄받고 있는 정치를 변화시켜야 한다. 고질적인 것은 낡은 권위주의와 과거의 관행에 안주하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한계다. 우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불필요한 권위주의가 없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의원배지를 떼는 것으로부터 정치쇄신과 국회개혁이 시작된다 보고 있다. 정치인들도 이제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안일함을 버려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지혜롭게 바꿔 나가겠다. 황 아무개라는 사람은 정말 다른 모습으로 잘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의 벼슬아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 기관의 공익요원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벼슬자리는 없다. 있다면 오직 국민만이 유일한 벼슬자리여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희망이 열릴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국회가 그런 방향으로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 황주홍 개인 소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직설적 또는 암시적으로 “그래 이런 국회를 원했던 거야” 라고 동의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황주홍 의원 프로필>

▲ 광주일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
▲ 미국 미주리대학교 정치학 석·박사
▲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학과장
▲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복역
▲ 아태평화재단 연구실장/기획조정실잘/부총장
▲ 김대중 대통령 후보 방송전략기획팀장
▲ 국회 정책연구위원 실장(1급)
▲ 새천년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부의장
▲ 새천년 민주당 강진·완도 지구당 위원장
▲ <대한저널> 발행인 겸 대표이사
▲ 강진군수(3선)
▲ 전남 시장군수협의회 회장
▲ 정당공천제폐지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 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럽 공동대표
▲ (현) 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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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