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대선주자 7인 검증 ①출생(가정환경)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6.07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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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환경은 다르지만 이제는 같은 대권주자!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봤다.


각 주자별 사상과 정치 색깔이 다르듯 검증의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한 출생과 가정환경 또한 판이하게 달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부터 대통령의 딸까지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마치 현재 보이고 있는 지지율 격차처럼 말이다.

자신이 살아오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는 있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현재 대중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자신이 개척해온 삶의 이미지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숨기고 왜곡하려해도 변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하고 근본 된 본질이다.

이것이 대선주자들에게는 ‘스토리’로 활용 될 수도 있는 반면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선주자 7인의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보자.


‘대통령의 딸’에서 ‘퍼스트레이디’까지

범상치 않은 유년시절 보낸 박근혜
 
먼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새누리당의 유력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육군 정보학교장 박정희 대령(당시)과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육 여사에게는 첫 딸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은 이혼경력과 전처의 자제가 있었으므로 박 전 대통령에게는 차녀였다. 형제자매로는 언니 박재옥과 동생 박근령(훗날 박서영으로 개명), 박지만씨가 있다.

박 전 위원장의 본관은 고령박씨로 신라 경명왕의 왕자군 중 한사람인 고령대군 박언성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의 소론 정치인이자 정조 때의 암행어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했던 어사 박문수는 그의 8대 방조였다.

그 후 그의 가문은 몰락했지만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해 육군대장에 이르렀다.

육 여사는 소학교 가정교과목 교사였는데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농토와 수많은 하인과 첩을 거느린 대지주 육종관씨의 외손자였다. 외할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을 사위로 삼는 것을 반대했으나 외할머니 이경령과 육 여사가 박 전 대통령의 대구 관사로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 전 위원장이 태어났을 무렵 박 전 대통령은 겨우 여순 사건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후 한국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귀국했다.

육 여사의 사후 박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고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서거에 이어 아버지 또한 암살되었지만 박 전 위원장은 의연하게 대응했고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남동생인 박지만이 2002년까지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윤락녀와 어울리며 상습적인 마약 투약에 빠져 지낸 것 등으로 인하여 맏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노동운동으로 해고·고문·구속
입지전적인 인물 김문수

새누리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951년 8월27일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평범한 가정의 4남3녀 중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경북 영천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유학하여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노동운동을 벌이다 제적됐다.

제적 뒤 고향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고 80년 광주항쟁의 여파로 회사는 노조해산 정책을 추진해 해고당했다. 이후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해 경찰의 추적을 받다가 체포, 연행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기소유예로 석방되어 복직했고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구로2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낸 부인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 후에도 노동운동을 계속해 나갔으며 노동운동가 전태일 기념 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1985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출범하자 그는 심상정(현 통합진보당 의원)과 함께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위장 취업노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노동계몽운동을 하던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 그로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영등포공장 이야기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던 비화 등을 접하며 한국노동계의 현실을 체험하기도 했다.

1986년에 인천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1988년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복학해 입학 25년 만인 1994년 뒤늦게 졸업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6남

보기 드문 엘리트 코스 밟은 정몽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51년 10월27일 부산에서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8남1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서울 장충동 집에서 삼촌과 형제들이 함께 살았다. 워낙 식구가 많은 집안이었기 때문에 단체 생활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치워지고 없는 것이었다.

장충초등학교를 다닌 정 전 대표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 동기생이자 박 전 위원장의 동생 지만씨의 선배다. 1차 지망인 경기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당시 2차였던 중앙중에 입학했고 3학년 때 반장이 되자 부친인 정 회장이 시멘트 1만 포대를 기증했다.

그는 중앙고에 진학했으며 고교 시절부터 축구·농구·복싱·승마를 했다. 승마와 스키 실력은 대학시절 전국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을 정도다.

고2 때 그는 11일이나 결석했다. 사유는 ‘질병’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복싱을 배운 그는 학교 유도부 선수와 싸워 두들겨 팬 적이 있다. 그 뒤 유도부의 보복이 두려워 병을 핑계로 1주일 이상 결석한 것이다.

그는 “이런 일에는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었고 결국 등교해 많이 얻어맞고서 매듭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진학한 그는 ROTC 학군단 13기로 병역을 이행했다.

병역을 마친 정 전 대표는 유학길에 올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정 전 의원은 유학을 생활을 통해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의 리더인 미국과 일본을 이해하게 된 것을 최대 성과로 생각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시절
유치장서 사법시험 합격통지서 받은 문재인

야권의 유력대선주자 문재인 의원은 1952년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출신으로 지역 명문인 함흥농고를 졸업한 수재다.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 흥남철수 때 미군 군용함정에 몸을 실어 북한에서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피난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계란행상을 한 어머니의 걱정은 늘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갔다.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서 울어야 했던 일화와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 의원을 데리고 영도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갔지만 차마 아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며 토마토 한 입으로 허기를 달랬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문 의원은 “가난은 자신을 강하고 따뜻하게 키운 또 하나의 스승”으로 회고한다.

남항초등학교, 경남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후기로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 재학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제적당했다.

강제 징집되어 특전 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수중폭파요원으로 활동했다. 복무 중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조로 투입되기도 했으며 표창도 수차례 받는 모범병사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한 문 의원은 사시 22회에 합격하고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의원은 과거의 구속 및 수감의 전력으로 그가 원하던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합격했지만 등록금 없어 대학 포기
형들의 도움으로 학업 마친 김두관

김두관 경남지사는 1959년 4월10일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5남1녀 중 다섯 째로 태어났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의 아들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더욱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며 가세는 더욱더 기울었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감당했지만 집안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만 갔다. 운동화를 신어 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역사책과 위인전 읽기를 좋아했던 김 지사는 고등학교 때 관람 차 들른 <MBC장학퀴즈>에 현장 응모로 참가해 차석을 차지한 수재였다.

국민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2년간 마늘 농사를 지었다. 학업의 뜻을 접지 못한 김 지사는 경상전문대학(현재 경북 전문대학) 행정학과 입학 후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세 형들 덕택이었다. 고등학교를 나온 큰형은 서독의 광부로 갔고,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둘째형은 남해의 논밭을 지켰으며, 중학교를 나온 셋째형은 기술을 배워 이라크 노동자로 일했다. 형들이 보내준 돈으로 김 지사는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그는 고려대학교 운동권이었던 친동생의 영향으로 민통련 가입, 간사 활동 중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3개월간의 감옥생활 중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귀향해 남해 농민회를 조직했고 아내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끝없는 사회운동과 오랜 수배기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손학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를 4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여의고 손 고문과 그의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매동초등학교와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손 고문은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2학년 때에는 삼성그룹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에 데모를 해서 또 무기정학을 받았다.

연이어 무기정학을 받은 손 고문은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학교로 돌아온 손 고문은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해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손 고문은 육군 병장 만기 제대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구로공단에 작은 자취방을 얻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오랜 수배생활 도중 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손 고문은 체포될 것을 알고도 주저 않고 어머니의 영정을 찾아 불효의 눈물을 흘렸다.

1979년 부마항쟁 진상 조사시 계엄사령부에 체포되어 김해보안대에 수감. 48시간 취조 없이 구타로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박정희 사망으로 유신체제가 붕괴되며 목숨을 건졌다.

'책벌레'의 평범했던 학창시절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 안철수

비정치권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 시절에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고 운동 등 특별하게 잘하는 게 있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을 대부분 다 읽을 만큼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스스로 “활자 난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밝힐 정도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 한 그는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대학생 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안 원장은 한 TV프로에서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려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군대 가는 날 까지 만들어 V3 최초 버전을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안 원장의 아내가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더니 허둥지둥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밝힐 만큼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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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