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대선주자 7인 검증 ①출생(가정환경)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6.07 10: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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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환경은 다르지만 이제는 같은 대권주자!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여(박근혜·김문수·정몽준)·야(문재인·김두관·손학규) 6인과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검증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봤다.


각 주자별 사상과 정치 색깔이 다르듯 검증의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한 출생과 가정환경 또한 판이하게 달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부터 대통령의 딸까지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마치 현재 보이고 있는 지지율 격차처럼 말이다.

자신이 살아오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는 있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현재 대중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자신이 개척해온 삶의 이미지지만 출생과 가정환경은 숨기고 왜곡하려해도 변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하고 근본 된 본질이다.

이것이 대선주자들에게는 ‘스토리’로 활용 될 수도 있는 반면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선주자 7인의 출생과 가정환경을 살펴보자.


‘대통령의 딸’에서 ‘퍼스트레이디’까지

범상치 않은 유년시절 보낸 박근혜
 
먼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새누리당의 유력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1952년 2월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육군 정보학교장 박정희 대령(당시)과 부인 육영수의 딸로 태어났다.


육 여사에게는 첫 딸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은 이혼경력과 전처의 자제가 있었으므로 박 전 대통령에게는 차녀였다. 형제자매로는 언니 박재옥과 동생 박근령(훗날 박서영으로 개명), 박지만씨가 있다.

박 전 위원장의 본관은 고령박씨로 신라 경명왕의 왕자군 중 한사람인 고령대군 박언성의 후손이다. 조선 후기의 소론 정치인이자 정조 때의 암행어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했던 어사 박문수는 그의 8대 방조였다.

그 후 그의 가문은 몰락했지만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5·16 군사 정변에 참여해 육군대장에 이르렀다.

육 여사는 소학교 가정교과목 교사였는데 충청북도 옥천군의 대농토와 수많은 하인과 첩을 거느린 대지주 육종관씨의 외손자였다. 외할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을 사위로 삼는 것을 반대했으나 외할머니 이경령과 육 여사가 박 전 대통령의 대구 관사로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박 전 위원장이 태어났을 무렵 박 전 대통령은 겨우 여순 사건의 회오리를 벗어나 대구에 집을 마련한 상태였다. 이후 한국 전쟁이 끝나자 아버지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후 프랑스에서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피격으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귀국했다.

육 여사의 사후 박 전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고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서거에 이어 아버지 또한 암살되었지만 박 전 위원장은 의연하게 대응했고 며칠 뒤 청와대를 떠나 동생들을 데리고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남동생인 박지만이 2002년까지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윤락녀와 어울리며 상습적인 마약 투약에 빠져 지낸 것 등으로 인하여 맏딸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노동운동으로 해고·고문·구속
입지전적인 인물 김문수

새누리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951년 8월27일 경북 영천시 임고면에서 평범한 가정의 4남3녀 중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경북 영천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로 유학하여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노동운동을 벌이다 제적됐다.

제적 뒤 고향에서 4H운동, 야학 등 농민운동을 했으며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고 80년 광주항쟁의 여파로 회사는 노조해산 정책을 추진해 해고당했다. 이후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해 경찰의 추적을 받다가 체포, 연행돼 고문을 받기도 했다.

기소유예로 석방되어 복직했고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구로2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낸 부인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 후에도 노동운동을 계속해 나갔으며 노동운동가 전태일 기념 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1985년 서울지역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출범하자 그는 심상정(현 통합진보당 의원)과 함께 지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함께 서울 구로구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위장 취업노동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노동계몽운동을 하던 고대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을 만나 그로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 영등포공장 이야기 등 언론에 보도되지 않던 비화 등을 접하며 한국노동계의 현실을 체험하기도 했다.

1986년에 인천시 5·3직선제 개헌투쟁 주도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고 2년6개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1988년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복학해 입학 25년 만인 1994년 뒤늦게 졸업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6남

보기 드문 엘리트 코스 밟은 정몽준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51년 10월27일 부산에서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의 8남1녀 중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서울 장충동 집에서 삼촌과 형제들이 함께 살았다. 워낙 식구가 많은 집안이었기 때문에 단체 생활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치워지고 없는 것이었다.

장충초등학교를 다닌 정 전 대표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 동기생이자 박 전 위원장의 동생 지만씨의 선배다. 1차 지망인 경기중학교 시험에 떨어져 당시 2차였던 중앙중에 입학했고 3학년 때 반장이 되자 부친인 정 회장이 시멘트 1만 포대를 기증했다.

그는 중앙고에 진학했으며 고교 시절부터 축구·농구·복싱·승마를 했다. 승마와 스키 실력은 대학시절 전국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을 정도다.

고2 때 그는 11일이나 결석했다. 사유는 ‘질병’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복싱을 배운 그는 학교 유도부 선수와 싸워 두들겨 팬 적이 있다. 그 뒤 유도부의 보복이 두려워 병을 핑계로 1주일 이상 결석한 것이다.

그는 “이런 일에는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었고 결국 등교해 많이 얻어맞고서 매듭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진학한 그는 ROTC 학군단 13기로 병역을 이행했다.

병역을 마친 정 전 대표는 유학길에 올라 경영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정 전 의원은 유학을 생활을 통해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세계의 리더인 미국과 일본을 이해하게 된 것을 최대 성과로 생각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시절
유치장서 사법시험 합격통지서 받은 문재인

야권의 유력대선주자 문재인 의원은 1952년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출신으로 지역 명문인 함흥농고를 졸업한 수재다.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 흥남철수 때 미군 군용함정에 몸을 실어 북한에서 남쪽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피난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막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

계란행상을 한 어머니의 걱정은 늘 끼니를 때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갔다.

태풍 때는 지붕이 날아가 뻥 뚫린 천장 아래서 울어야 했던 일화와 이른 새벽 암표장사를 해보려고 어린 문 의원을 데리고 영도에서 부산역까지 걸어갔지만 차마 아들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못하고 돌아오며 토마토 한 입으로 허기를 달랬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문 의원은 “가난은 자신을 강하고 따뜻하게 키운 또 하나의 스승”으로 회고한다.

남항초등학교, 경남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후기로 4년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 72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 재학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을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제적당했다.

강제 징집되어 특전 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수중폭파요원으로 활동했다. 복무 중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조로 투입되기도 했으며 표창도 수차례 받는 모범병사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한 문 의원은 사시 22회에 합격하고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의원은 과거의 구속 및 수감의 전력으로 그가 원하던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변호사의 길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합격했지만 등록금 없어 대학 포기
형들의 도움으로 학업 마친 김두관

김두관 경남지사는 1959년 4월10일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마을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5남1녀 중 다섯 째로 태어났다.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민의 아들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더욱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며 가세는 더욱더 기울었고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감당했지만 집안 형편은 더욱더 어려워만 갔다. 운동화를 신어 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역사책과 위인전 읽기를 좋아했던 김 지사는 고등학교 때 관람 차 들른 <MBC장학퀴즈>에 현장 응모로 참가해 차석을 차지한 수재였다.

국민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2년간 마늘 농사를 지었다. 학업의 뜻을 접지 못한 김 지사는 경상전문대학(현재 경북 전문대학) 행정학과 입학 후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세 형들 덕택이었다. 고등학교를 나온 큰형은 서독의 광부로 갔고,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둘째형은 남해의 논밭을 지켰으며, 중학교를 나온 셋째형은 기술을 배워 이라크 노동자로 일했다. 형들이 보내준 돈으로 김 지사는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그는 고려대학교 운동권이었던 친동생의 영향으로 민통련 가입, 간사 활동 중 개헌추진본부 충북지구 결성대회 주도 혐의로 구속됐다.

3개월간의 감옥생활 중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귀향해 남해 농민회를 조직했고 아내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끝없는 사회운동과 오랜 수배기간

고문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손학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47년 11월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를 4살 되던 해 교통사고로 여의고 손 고문과 그의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매동초등학교와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손 고문은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2학년 때에는 삼성그룹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에 데모를 해서 또 무기정학을 받았다.

연이어 무기정학을 받은 손 고문은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학교로 돌아온 손 고문은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해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손 고문은 육군 병장 만기 제대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구로공단에 작은 자취방을 얻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오랜 수배생활 도중 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부음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손 고문은 체포될 것을 알고도 주저 않고 어머니의 영정을 찾아 불효의 눈물을 흘렸다.

1979년 부마항쟁 진상 조사시 계엄사령부에 체포되어 김해보안대에 수감. 48시간 취조 없이 구타로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박정희 사망으로 유신체제가 붕괴되며 목숨을 건졌다.

'책벌레'의 평범했던 학창시절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 안철수

비정치권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 시절에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고 운동 등 특별하게 잘하는 게 있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을 대부분 다 읽을 만큼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스스로 “활자 난독증이었던 것 같다”고 밝힐 정도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 한 그는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대학생 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안 원장은 한 TV프로에서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려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해 군대 가는 날 까지 만들어 V3 최초 버전을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안 원장의 아내가 “군대 가는 날 아침까지 백신 프로그램 업데이트하더니 허둥지둥 지하철 타고 서울역으로 달려가더라.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고 밝힐 만큼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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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