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③사회 10인

웃고 울었던 2011년엔 “내가 제일 잘나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2011년은 사회 전반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나꼼수’ 열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무상급식 투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낳았다. 또 자살한 60대 여성의 사체를 성폭행한 고등학생의 범행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지하철의 막말녀, 막말남 등장과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성문제를 되짚어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2011년을 뒤돌아봤다.

‘가카’와 정권의 실정에 ‘똥침’ 쏘는 ‘나꼼수’와 ‘더반의 여신’ 나승연
국민적 관심·공분 이끌어낸 <도가니> 공지영 작가와 ‘고공농성’ 김진숙

<대한민국 뒤흔든 ‘나꼼수’ 4인방>

2011년 대한민국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열광했다. 팟캐스트 방송 부동의 1위에 이어 토크콘서트 전석매진 기록까지….

4명의 나꼼수 출연자(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는 몇 달 사이에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사가 되어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책들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일제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지금은 나꼼수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부터 등장한 나꼼수는 ‘2040세대’를 중심으로 키워져 온 불만과 분노를 외면하고 방치해온 무능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나꼼수는 평균 다운로드 200만 건, 조회 수 600만 건을 기록하면서 팟캐스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쫄지마’와 같은 유행어를 양산하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나꼼수의 인기와 영향력은 기성언론의 대항마를 넘어 ‘신드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상을 음모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무책임한 폭로와 조롱, 편파성에 대한 우려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책임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나꼼수는 ‘이명박 가카 헌정방송’을 목표로 2013년 3월까지 한시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동안은 나꼼수 인기가 계속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각종 논란 속에서도 나꼼수 ‘4인방’ 잘~나가니 이런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도가니> 신드롬 공지영>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와 관련 실화를 다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를 일으켰다는 뜨거운 반응으로 화제의 10인에 선정됐다.

지난 9월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2009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지영 작가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도가니>는 몇 년 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가 갖는 극적인 요소와 유명 작가의 글 솜씨는 차치하더라도 <도가니>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분노를 사기에 충분할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이랄 수 있는 장애인, 그것도 어린 장애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인권 유린을 당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감성과 이성 모두를 흔들어 놨다.

도가니 열풍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사람들이 승자독식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를 보고 분노했지만 양상은 파편화돼 있었었는데 영화에서 약한 아이들까지 짓밟히는 것을 접하고는 분노가 결집했다”면서 “나의 분노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역 나승연>

지난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호소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펼쳐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주역을 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승연(38) 평창유치위 대변인이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 대변인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더반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프레젠테이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나 대변인은 유창한 영어와 불어를 구사하며 IOC 위원들에게 올림픽을 향한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빼어난 미모와 매끄러운 연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4월 평창 유치위의 대변인으로 채용된 나 대변인은 1년 넘게 각종 국제 행사에서 ‘평창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아리랑TV 앵커 출신인 나 대변인은 영어와 불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재원이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1년간 근무했지만 1996년 아리랑 TV가 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 기자에서 평창의 입으로 변신한 나 대변인은 지난 IOC 총회에서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펼침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평을 듣게 됐다.

<자서전 <4001> 출간한 신정아>

지난 2007년 학력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지난 3월, 자전 에세이를 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 <4001>은 신씨의 수인번호다. <4001>은 지난 2007년 일명 ‘신정아 사건’ 직후부터 최근까지 약 4년간 쓴 일기들 중 일부를 편집해 만든 에세이다.

신씨는 이 책에서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부터 파국,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불교계와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자기 고백이 아닌 개인의 ‘복수’라는 지적 속에 출간 목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신씨의 자서전 <4001>은 세상에 공개된 지 2주 만에 수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수억원이 넘는 인세를 올리는 등 4년전 학력위조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씨는 또 한 번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당시 신씨는 학력 위조로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지난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

‘대도(大盜)’ 조세형이 60만원을 훔치는 강도짓을 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것도 출소한 당일 현장에서 다시 체포된 것.

조세형은 한 때 부유층의 재산만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등의 행위로 ‘현대판 의적’이라 불리며 민심을 얻었던 인물이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씨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도둑질을 했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졸범’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고작 6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도 10인의 이슈인물에 꼽혔다. 석 선장은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돼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석 선장이 속해있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피랍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여명 속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도전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 세상을 깨운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잠들다’

이후 피랍지점에서 2000km 떨어진 아덴만에서 활동 중이던 최영함을 급파해 인진 구출작전에 나섰고 수시로 경고사격, 심리전 등을 펼쳐 피랍 6일 만에 선원 및 인질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석 선장은 퇴원 후 처음 가진 강연에서 “청해부대 작전이 시작되고 기관사가 엔진을 끄고 발전기도 멈췄다. 곧 비상전원이 들어왔고 이마저 나가는 순간 해적이 나를 쏴 빗맞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며 “최영함으로 이송되고 오만 현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여기서 정신 놓으면 난 죽는다. 아프지만 어떻게든 병원까진 간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참았다”고 피격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라진 불멸의 산악인 고 박영석> 

산을 사랑하고, 산과 벗하고, 산에서 삶을 배우고, 그러다 결국 산으로 돌아간 영원한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 그가 7번째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좌와 7대륙 최고봉(最高峰), 3극점(極點)을 모두 정복했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모두 달성한 것을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한다. 박 대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12일 히말라야 3대 거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원정길 도전에 나선 것. 박 대장 일행은 9월17일 안나푸르나 남벽 밑으로 이동, 18일 등정에 나섰으며 해발 6500m 지점에서 비박을 한 뒤 4일간 절벽에 매달린 채 식사와 잠을 해결하는 ‘알파인’ 방식으로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서벽 출발점 근처에서 눈사태와 낙석을 만나 연락이 두절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즉시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 추정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고 수색작업이 종결됐다.

무전기 속 거친 숨소리가 산사나이 박 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결국 산사나이는 산에 잠들었다.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노동운동의 대모’ 고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노동의 자유를 외치며 민주화운동 선봉에 나섰던 젊은 청년 전태일. 1970년 11월 그는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화형식이 거행된 거리 시위에서 불속에 투신해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기억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역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 여사는 1970년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며 노동운동의 대모로 불려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모아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과 고문을 맡았으며 최근까지 노동운동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내 노동자들을 격려했고 40여년을 민주화 헌신에 힘쓴 인물이다.

<고공 크레인 위 309일 김진숙>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조활동을 주도하다가 1986년 직장을 잃었던 25년차 해고 노동자인 김 위원은 그동안 한진중공업 문제를 사회이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위원이 수백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김여진, 김제동 등의 ‘소셜테이너’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가 부각됐으며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이후 손학규, 정동영 의원 등 유력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까지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일약 이슈로 떠올랐다.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투쟁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역사는 김 위원의 309일을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과 노동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트위터 대통령’ 작가 이외수>

화천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는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는 그는 국내 트위터 사용자 1위, 작가부문 1위, 팔로워 보유자 1위, 리스트 된 순위 1위에 올라있다.
 
트위터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낳고 있는 이외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 가벼운 문체, 내용이 없다란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난해하지 않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들은 ‘140자 세상’ 트위터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온 인간에 대한 사랑론,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인터넷 폐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트위터에서 가감 없이 전해지며 공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각박하고 올바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는 세태에서 수많은 이가 그의 트위터를 찾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외수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맞물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2011년 화제의 인물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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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