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일요시사 선정> 2011 이슈메이커 50인③사회 10인

웃고 울었던 2011년엔 “내가 제일 잘나가~”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2011년은 사회 전반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나꼼수’ 열풍으로 전국이 떠들썩했고 무상급식 투표는 정치·사회적 문제로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낳았다. 또 자살한 60대 여성의 사체를 성폭행한 고등학생의 범행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지하철의 막말녀, 막말남 등장과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성문제를 되짚어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인물을 중심으로 2011년을 뒤돌아봤다.

‘가카’와 정권의 실정에 ‘똥침’ 쏘는 ‘나꼼수’와 ‘더반의 여신’ 나승연
국민적 관심·공분 이끌어낸 <도가니> 공지영 작가와 ‘고공농성’ 김진숙

<대한민국 뒤흔든 ‘나꼼수’ 4인방>

2011년 대한민국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에 열광했다. 팟캐스트 방송 부동의 1위에 이어 토크콘서트 전석매진 기록까지….

4명의 나꼼수 출연자(김어준,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는 몇 달 사이에 연예인 뺨치는 유명인사가 되어 초절정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책들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일제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니 ‘지금은 나꼼수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부터 등장한 나꼼수는 ‘2040세대’를 중심으로 키워져 온 불만과 분노를 외면하고 방치해온 무능한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 나꼼수는 평균 다운로드 200만 건, 조회 수 600만 건을 기록하면서 팟캐스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쫄지마’와 같은 유행어를 양산하는 등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나꼼수의 인기와 영향력은 기성언론의 대항마를 넘어 ‘신드롬’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상을 음모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무책임한 폭로와 조롱, 편파성에 대한 우려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책임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나꼼수는 ‘이명박 가카 헌정방송’을 목표로 2013년 3월까지 한시적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동안은 나꼼수 인기가 계속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각종 논란 속에서도 나꼼수 ‘4인방’ 잘~나가니 이런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도가니> 신드롬 공지영>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 공지영 작가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와 관련 실화를 다뤄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를 일으켰다는 뜨거운 반응으로 화제의 10인에 선정됐다.

지난 9월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2009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지영 작가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도가니>는 몇 년 전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가 갖는 극적인 요소와 유명 작가의 글 솜씨는 차치하더라도 <도가니>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분노를 사기에 충분할 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계층이랄 수 있는 장애인, 그것도 어린 장애 학생들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인권 유린을 당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감성과 이성 모두를 흔들어 놨다.

도가니 열풍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사람들이 승자독식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를 보고 분노했지만 양상은 파편화돼 있었었는데 영화에서 약한 아이들까지 짓밟히는 것을 접하고는 분노가 결집했다”면서 “나의 분노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역 나승연>

지난 7월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호소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펼쳐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주역을 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승연(38) 평창유치위 대변인이다.

평창이 세 번째 도전에서 ‘환희의 눈물’을 흘리면서 나 대변인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더반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프레젠테이션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나 대변인은 유창한 영어와 불어를 구사하며 IOC 위원들에게 올림픽을 향한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빼어난 미모와 매끄러운 연설도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 4월 평창 유치위의 대변인으로 채용된 나 대변인은 1년 넘게 각종 국제 행사에서 ‘평창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아리랑TV 앵커 출신인 나 대변인은 영어와 불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재원이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서 1년간 근무했지만 1996년 아리랑 TV가 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 기자에서 평창의 입으로 변신한 나 대변인은 지난 IOC 총회에서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펼침으로써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는 평을 듣게 됐다.

<자서전 <4001> 출간한 신정아>

지난 2007년 학력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지난 3월, 자전 에세이를 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 <4001>은 신씨의 수인번호다. <4001>은 지난 2007년 일명 ‘신정아 사건’ 직후부터 최근까지 약 4년간 쓴 일기들 중 일부를 편집해 만든 에세이다.

신씨는 이 책에서 연인 관계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만남부터 파국, 동국대 교수 채용 과정과 불교계와의 관계, 정치권 배후설과 청와대와의 인연,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단순히 자기 고백이 아닌 개인의 ‘복수’라는 지적 속에 출간 목적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신씨의 자서전 <4001>은 세상에 공개된 지 2주 만에 수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수억원이 넘는 인세를 올리는 등 4년전 학력위조 파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씨는 또 한 번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당시 신씨는 학력 위조로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고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2007년 10월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지난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

‘대도(大盜)’ 조세형이 60만원을 훔치는 강도짓을 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것도 출소한 당일 현장에서 다시 체포된 것.

조세형은 한 때 부유층의 재산만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등의 행위로 ‘현대판 의적’이라 불리며 민심을 얻었던 인물이다.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조씨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 도둑질을 했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졸범’으로 전락했다. 그것도 고작 6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58) 선장도 10인의 이슈인물에 꼽혔다. 석 선장은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돼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석 선장이 속해있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에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피랍됐다.

‘잡범’으로 전락한 ‘대도’ 조세형…여명 속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도전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 세상을 깨운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잠들다’

이후 피랍지점에서 2000km 떨어진 아덴만에서 활동 중이던 최영함을 급파해 인진 구출작전에 나섰고 수시로 경고사격, 심리전 등을 펼쳐 피랍 6일 만에 선원 및 인질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석 선장은 퇴원 후 처음 가진 강연에서 “청해부대 작전이 시작되고 기관사가 엔진을 끄고 발전기도 멈췄다. 곧 비상전원이 들어왔고 이마저 나가는 순간 해적이 나를 쏴 빗맞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며 “최영함으로 이송되고 오만 현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여기서 정신 놓으면 난 죽는다. 아프지만 어떻게든 병원까진 간다’는 생각으로 고통을 참았다”고 피격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라진 불멸의 산악인 고 박영석> 

산을 사랑하고, 산과 벗하고, 산에서 삶을 배우고, 그러다 결국 산으로 돌아간 영원한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 그가 7번째 화제의 인물로 꼽혔다.

박 대장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좌와 7대륙 최고봉(最高峰), 3극점(極點)을 모두 정복했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14좌와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모두 달성한 것을 ‘그랜드 슬램(grand slam)이라고 한다. 박 대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정신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12일 히말라야 3대 거벽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원정길 도전에 나선 것. 박 대장 일행은 9월17일 안나푸르나 남벽 밑으로 이동, 18일 등정에 나섰으며 해발 6500m 지점에서 비박을 한 뒤 4일간 절벽에 매달린 채 식사와 잠을 해결하는 ‘알파인’ 방식으로 정상에 올라 반대편으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나푸르나 남서벽 출발점 근처에서 눈사태와 낙석을 만나 연락이 두절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즉시 사고대책반을 꾸려 실종 추정지역에 대한 수색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닷새가 흘렀고 수색작업이 종결됐다.

무전기 속 거친 숨소리가 산사나이 박 대장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결국 산사나이는 산에 잠들었다.


<‘노동자의 어머니’ 고 이소선>

‘노동운동의 대모’ 고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노동의 자유를 외치며 민주화운동 선봉에 나섰던 젊은 청년 전태일. 1970년 11월 그는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화형식이 거행된 거리 시위에서 불속에 투신해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기억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역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 여사는 1970년 아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적극 나서며 노동운동의 대모로 불려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유족을 모아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과 고문을 맡았으며 최근까지 노동운동이 현장마다 모습을 드러내 노동자들을 격려했고 40여년을 민주화 헌신에 힘쓴 인물이다.

<고공 크레인 위 309일 김진숙>

한진중공업 사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 용접공으로 일하며 노조활동을 주도하다가 1986년 직장을 잃었던 25년차 해고 노동자인 김 위원은 그동안 한진중공업 문제를 사회이슈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위원이 수백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고 김여진, 김제동 등의 ‘소셜테이너’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가 부각됐으며 시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이후 손학규, 정동영 의원 등 유력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까지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며 한진중공업 사태는 일약 이슈로 떠올랐다.
 
목숨을 건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투쟁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준 희망버스. 역사는 김 위원의 309일을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과 노동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트위터 대통령’ 작가 이외수>

화천 감성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소설가 이외수는 ‘트위터계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는 그는 국내 트위터 사용자 1위, 작가부문 1위, 팔로워 보유자 1위, 리스트 된 순위 1위에 올라있다.
 
트위터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낳고 있는 이외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의 작품은 평단에서 가벼운 문체, 내용이 없다란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난해하지 않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들은 ‘140자 세상’ 트위터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여기에 그의 수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온 인간에 대한 사랑론,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인터넷 폐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트위터에서 가감 없이 전해지며 공감과 감동을 전해준다.

각박하고 올바름에 대한 판단기준이 흐려지는 세태에서 수많은 이가 그의 트위터를 찾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외수는 스마트폰 대중화와 맞물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의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2011년 화제의 인물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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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