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사죄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로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사과가 충분치 않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합의를 다시 협의해야 합니다.”
지난 2일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부산대를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이 대학 본관 3층서 열린 기자간담회서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 뉴욕서 만난 일본 아베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의 사실상 해체를 주장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위안부 합의
다시 협의해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과가 한국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2015년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총리는 ‘이 합의를 끝으로 더는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고압적인 태도가 한국인에게 충분한 사과로 전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정부 때인 지난 2015년, 한일 간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해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서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민들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의 학위 수여식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였던 이용수 할머니가 축사를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하토야마 전 총리와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해준 일본 총리는 처음이었다”며 “하토야마 전 총리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고맙다”고 울먹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는 완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주변국과의 협치를 강조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반도의 종전을 위해서는 북미 간 평화협정을 맺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북한도 핵을 완전히 폐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부산대 명예 박사학위 받고 회견
위안부 사죄 충분치 않다고 주장
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역시 높이 평가할 부분이 있다”며 “한두 번 정상회담으로 모든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주변 국가들이 회담이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전쟁 종식을 위해서는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중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북한도 완전히 핵 폐기를 각오하고 실행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남한과 북한, 미국 등이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소외돼있는 것은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력을 에둘러 비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아시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공동체 구축’을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다. 이날 강연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동북아시아를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든다면 평화로 쉽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방한해 일본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을 위로 했다. 그는 학위 수여식에 앞서 유엔평화공원을 찾아 추모했다. 이어 2001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부산 출신 의인 이수현씨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더불어 3일에는 경남 합천군 원폭피해자복지회관서 무릎을 꿇은 채 원폭 피해자들의 손을 잡으며 사죄와 위로했다. 합천은 국내 원폭 피해 생존자 2000여명 중 가장 많은 피해자(600여명)가 살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오전 합천군 합천읍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있는 위령각을 참배했다. 참배를 마친 뒤에는 복지회관서 피해자 30여명을 만났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원폭 피해자들에게 먼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토야마 유키오라고 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일본어로 “식민지와 미국 원폭 투하에 의한 이중 피해자인 여러분께 사과 말씀을 드리고 한다”며 “일본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일본 정부가 제대로 배상이나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 상당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일본 고위급 중
위령각 최초 참배
그는 “2·3세 분들도 피해가 크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여러분의 고민을 들으며 여러분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무릎을 꿇고 피해자들의 손을 잡으며 위로를 전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합천 원폭 자료관과 원폭 2세 환우 쉼터인 합천 평화의집도 찾았다. 그는 평화의집에서 “일본서 피폭자 후손 문제에 관해 질의했지만 법 정비가 안 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현직에 있지 않아 제약이 있지만 가능한 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현직을 통틀어 일본 고위 인사가 국내 원폭 피해자 위령각을 참배한 것은 하토야마 전 총리가 최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정계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93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지역구는 홋카이도며, 민주당의 대표로서 2009년 8월30일에 치러진 총선서 압승을 거둬 2009년 9월16일에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됐다.
2010년 6월2일,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과 함께 사임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1947년 2월 11일 도쿄도 고이시카와 구에서 태어났다. 하토야마 가문은 100년이 넘는 정치 명문가로 일본의 케네디가로 불린다.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조부는 2차 대전 이후 일본 정계를 이끈 토야마 이치로다. 자민당의 산파역으로서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부친은 하토야마 이이치로로 전 외무장관이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도 유력 정치인으로 여러 부처의 장관을 지냈다. 또 모친은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 창업자의 장녀이며,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는 일본의 권위 있는 다카라쓰카 극단 출신이다.
외가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다. 민주당 창당 때는 동생과 함께 15억엔을 내놓는 등 사실상 ‘오너’ 역할을 해왔다.
100년 정치명문가
일본판 케네디가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도쿄대 공학부 출신으로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도쿄공대 조교를 거쳐 센슈대서 조교수를 역임했다. 1984년 퇴직 후 부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뒤 다케시타(죽하등)파서 정치를 배웠다.
1986년 자민당에 입문하면서 정계에 진출했고, 당시 홋카이도 선거구서 중의원으로 첫 당선됐다. 1988년에는 '유토피아 정치 연구회' 라는 초파벌적 정치집단을 결성, 리쿠르트 뇌물수수 사건 등의 당내 비리를 폭로했다.
이 집단은 신당 사키가케로 이어졌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참여했고, 55년 자민당 체제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호소카와 내각에서는 내각 관방 정무부장관에 올랐다. 이후 성립된 자사사 연립정권 하에서는 사키가케의 간사장을 맡았다. 1996년에는 사키가케를 새롭게 창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해 간사장을 맡았다. 1999년의 당 대표 선거서 승리하며 당수가 돼 1999∼2002년까지 당 대표로 재직했다. 2002년 총선거서 자민당에게 참패를 당하며 당 대표를 사직했으나, 대표 사직 후에도 당내 최대 파벌인 하토야마 그룹의 대표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편 중의원 선거에 계속 당선돼 2005년 총선서 7선을 기록했다.
2007년의 참의원 선거의 대승 이후에도 간사장 직을 유지했다. 2009년 5월에 오자와 이치로 당 대표가 정치 자금 스캔들로 사퇴하면서 열린 당 대표 선거서 오카다 가쓰야를 꺾고 승리해 7년여 만에 당수로 돌아왔다.
대표 취임 후 여러 보궐 선거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아소 다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했다. 이에 따라 2009년 8월30일에 치러진 총선서 민주당이 총 480석 중에서 308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다.
원폭 피해자들 찾아 위로
“죄송” 진정성 있는 사과
이로써 1955년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가 54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2009년 9월16일에 열린 특별 국회서 총리로 지명됐다.
총리 취임 이후에는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의 이행을 놓고 자민당 등과 대립, 연립정당인 사민당, 국민신당 등과도 마찰을 빚었다.
주요 공약은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등인데, 이중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인해 미국의 심기를 자극, 대미관계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주범이 됐다. 5월 말까지 이전지를 확정짓지 못하면 총리직을 사임한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으며, 1년을 채우지 못한 2010년 6월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문제로 사퇴했다.
이외에도 전 비서의 정치자금 비리 등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큰 정부의 복지수준을 주장하는 데 비해 선거를 이유로 증세에는 반대하는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보였다.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가 내세운 ‘우애 정치’를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다. 한·일 간의 갈등을 고려해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더불어 일제의 식민지 지배행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주장한 몇 안 되는 일본 정치인이다.
2014년 11월19일,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서 ‘아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아시아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한 컨퍼런스서 하토야마 전 총리 “아베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일본 정부가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 등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애 강조하는
지한파 정치인
2015년 8월12일,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유관순 열사가 투옥됐던 지하의 여성 옥사 8호실 앞에서 백합 꽃다발을 헌화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5분 동안 머물렀다. 당시 그는 “한 사람의 일본인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며 “고문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일이 벌어졌던 이 자리서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행보 때문에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서 대표적인 지한파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