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스승 곁으로 간 이왕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40:25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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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이 된 플라잉 드롭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국 프로레슬링의 레전드이자 간판스타였던 이왕표가 영면에 들었다. 길지 않은 삶 64세. 하지만 그의 삶은 뜨거웠다.
 

이왕표가 지난 4일, 향년 64세로 별세했다. 이왕표는 2013년 ‘세기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과 빅 매치전을 앞두고 담낭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병을 이겨냈지만 수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인해 120kg에 육박하던 체중이 79kg 가까이 감소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도 최근 이왕표는 암이 재발하면서 갑작스럽게 눈을 감았다. 

갑작스런 별세
사회 각계 애도 

이왕표는 임종을 앞두고 “먼저 가게 돼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역도산, 김일 선배님들이 닦아 놓은 길에서 내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가게 된 것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한다”며 “평소에 레슬링을 사랑하고 중계방송해준 배기완 SBS국장에게 감사한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백 국장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각계 인사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일 이왕표의 빈소에 방문했다. 이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늘 프로레슬러 이왕표님 빈소. 모두 한 시대를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조용히 고별인사를 드렸습니다”고 전했다.  

후배이자 스포츠 해설가인 김남훈도 SNS에 “영원한 프로레슬러 이왕표 회장님께서 다른 세상의 링으로 원정을 떠나셨다. 담도암 등 세 차례 암과 싸우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글을 게재했다. 


JTBC 손석희 앵커도 지난 4일 방송서 “프로레슬링의 끝자락에 서 있던 이왕표가 오늘 세상과 작별했다. 과거 ‘저도 헤드록 해줄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오늘은 좀 참아달라’며 다음을 기약했었다”라며 “조금은 민망하더라도 그때 그냥 해보시라고 할 걸 그랬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왕표는 1954년 6월11일에 충남 천안서 태어났다. 이왕표는 선수 생활 초기에는 일본서 활약을 펼쳤고, 1980년대 국내로 돌아와서는 어린이들 사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운동을 놓지 않으며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2013년 담도암 수술 후 최근 재발
향년 64세…영원한 레슬러 잠들다

190cm의 거구로 링 위를 휘젓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한국 대표 파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40년 동안 1600번의 경기를 치렀다. 7번 아시아 및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신일본프로레슬링(NJPW) 활동 당시 미국 최고의 스타 헐크 호건과도 대결하는 등 한국인으로 국제적인 위상을 지닌 마지막 프로레슬러로 추억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 ‘박치기왕’이라고 불렸던 김일의 1기 제자였다. 김일은 한국의 영웅이었으며 동양레슬링의 거목이었던 역도산의 제자기도 했다. 김일이 역도산 밑에서 동문수학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와 벌인 한일 레슬링 대결은 모든 국민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내 최초의 실내 경기장인 장충체육관서 김일의 레슬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여 열광했다. 김일은 반칙을 당해 피투성이가 돼도 박치기 한 방으로 응징해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조마조마하던 국민은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장면에 환호했다.


국민 영웅의 제자였던 이왕표도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왕표는 21살이던 1975년 김일의 제자로 사각의 링에 입문해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서 활동했을 때엔 오니타 아츠시와 데뷔전을 가지고, 후치 마사노부에게 승리하는 등 유망주였다. 김일의 또 다른 제자 역발산과 함께 이왕표의 장기인 ‘플라잉 드롭킥(뛰어올라 두 발을 모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을 선보이며, 한국레슬링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가 처음 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왕표는 마치 영화 속 ‘슈퍼히어로’처럼 링 위를 펄펄 날아다니는 선수였다. 그의 화려한 공중기술에 많은 팬, 특히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1985년 NWA(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 등극. 1987년에는 NWA 오리엔탈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에도 욕심이 생겼다. 드래곤 스페셜 킥, 파워킥 등 주특기를 강화했다.

1975년 입문
펄펄 날아다녀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프로레슬링은 야구, 축구 등 다양한 프로스포츠의 인기에 밀려 쇄락을 맞이했다. 잊을만하면 불거진 ‘쇼’ 논란은 프로레슬링에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1990년대 GWF(세계레슬링연맹)에 흡수된다. 

이왕표는 미국 남서부의 최강자였던 로드 프라이스를 꺾었다. 1993년 9월,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 빅 존 호크와 GWF(Global wrestling Federation)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겨뤄 이겼다. 처음으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것. 
 

이후 부커T, 마이크 어썸 등과 경기를 가지면서 25번의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했으며 GMF 챔피언 벨트를 영구 보관하고 있다. 2000년에는 자이언트 콜린과 겨뤄 루테스, 역도산, 김일 등이 챔피언을 지녔던 WWA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떨어진 뒤에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프로레슬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링을 설치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알리기에 나섰다. 이왕표는 “프로레슬러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지키기 위해 종합격투기 단체인 울트라FC를 만들었다. 

2008년에 당시 이종격투기 스타였던 밥샙과의 경기를 발표해 검색어 순위 1위까지 올라가는 등 엄청난 흥행을 예고했다. 이왕표는 밥샙을 이긴 후 전적 1전 1승 0패로 울트라FC의 초대 챔피언까지 차지했다. 이후에도 밥샙과 연계해 WWA 흥행에서 프로레슬링 룰로 시합을 가지다가 밥샙에게 패해 벨트를 뺏겼다. 

하지만 이왕표는 2010년에 밥샙을 이기며 또다시 WWA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각본 있는 종합격투기’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엔터테이너로서 판을 짜는 기획력과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대결이었다. 

훨씬 크고 힘이 센 상대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웠던 이왕표를 쓰러뜨린 것은 병마였다. 60세가 가까워 질 즈음 은퇴를 생각하고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지만 2013년 담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계획한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투병을 시작했다. 수술을 통해 암이 전이가 된 담낭과 쓸개, 췌장 1/3을 제거했다. 2차 수술을 마치고 나니 120kg였던 체중이 80kg로 줄었다. 

아시아 넘어 
세계 챔피언

더 이상 링위에 오를 수 없었고 결국 2015년 5월25일, 장충체육관서 은퇴하며 40년 동안의 프로레슬러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왕표는 선수로는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지만 최근까지 대회 유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꿈꿨다. WWA 협회 총재로 레슬링 시합 주선 및 후배 양성에 힘썼다. 암 때문에 운영을 중단했던 이왕표 레슬링 체육관도 다시 운영할 계획이었다. 

이왕표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체육인의 귀감이었다. 특히 생전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쳤다. 다문화가정,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격기도’라는 무예를 만들어 책을 낸 뒤 출판기념회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서 개인 후원 독력에 앞장섰으며 학교 폭력 근절에 앞장섰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서 “폭력을 무예로 오인하는 아이들에게 무인들이 소통에 나서면 효과가 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자신의 각막을 개그맨 이동우에게 기증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3년 KBS2 교양프로그램 <여유만만>서 담도암 수술을 앞두고 “위험한 수술이고, 죽을 확률도 있다고 하니 최후를 생각하게 됐다”며 ‘나 이왕표는 수술 중 잘못되거나 차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 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다. 나의 눈은 이동우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휴대전화 속 유서를 공개했다. 


이동우는 그룹 틴틴파이브 출신 방송인으로 희귀병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지난 2010년 시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왕표 각막은 현행법상 이동우에게 기증될 수 없다.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장기이식법)에 따르면 생전에는 특정인을 지정한 장기 기증이 심사를 거쳐 허용된다. 그러나 안구(각막)의 경우 생전 장기기증이 불가능한 장기로 분류돼 사후 기증만 허용된다. 

국민들에게 희망 주고 떠난 ‘나는 표범’
김일 수제자로 프로레슬링 전성기 이끌어

사후 기증의 경우 안구는 기증자가 뇌사 또는 사망 전 장기 적출에 동의한 경우에만 적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족 및 유족이 장기 등의 적출을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제외된다. 본인의 동의는 고인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나 그 외 민법상 유언의 형식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의가 적법하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장기이식법 제26조는 장기이식대상자 선정기준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식대상자는 법상 선정기준에 따라 이식대기자 중에서 선정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안구의 경우 병원장(의료기관장)이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 병원장이 선정하는 경우 이식대상자 선정사유와 선정결과를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에 통보해야 한다.

즉 사망자가 특정인을 지정해 안구를 이식하려는 유언 등을 남겼다 해도 이는 병원장에 대한 촉구의 의미만 갖게 된다. 단 가족을 지정해 안구 이식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선순위로 이식이 가능하다.
 

의학적으로도 이동우의 질환은 각막 이식으로 치료될 수 없다. 이동우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 RP)’이라는 질환으로 시력을 잃었다. 이는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광수용체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전성 망막질환’이다. 

문제는 망막 이식을 해도 시력 회복이 어렵다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의 주인공 임재신씨도 이동우에게 망막 기증을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우세준, 주광식 교수팀이 발표한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법에 대한 최신 지견’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질환은 인구 3000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실명하게 되는 ‘난치성 질환’이다. 

우리의 챔프
링과 ‘작별’

현재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 ▲유전자치료 ▲줄기세포치료 ▲인공망막이식의 4가지 방법이 존재하는데, 이 중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유전자치료’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유전성 망막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제가 유전자치료 분야서 처음으로 미국 식약청 FDA에 의해 승인됐지만,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치료효과도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비록 이왕표의 각막 기증은 무산됐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이왕표의 장지는 고양시 청아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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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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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