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쇠창살만 보면 아픈 총수들

‘비틀비틀’ 그렇게 건강했던 영감이…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대형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재벌그룹 총수들의 잔혹사엔 특별한 패턴이 있다. 일단 구속 후 이런저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풀려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휠체어는 꼭 등장한다. 무사귀환을 위한 일종의 필수 퍼포먼스다. 물론 혐의 내용과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법정을 거쳐 간 총수들의 귀환 사례는 거의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사법처리 앞둔 회장님들 잇달아 지병 악화 ‘병원행’
재판장 휠체어 타고 나타나…사건 마무리되면 멀쩡


청부 폭행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재 피죤 회장은 환자복을 입고 경찰에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소환된 두 번 모두 마스크를 쓰고 병원 환자복에 베이지색 점퍼 차림이었다. 이 회장은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에 들어섰다.

조사 전 돌연 입원
마스크에 부축받아
 
이 회장은 경찰 조사를 앞두고 갑자기 지난달 29일 지병인 뇌동맥경화 등을 이유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 회장 측은 “이 회장이 77세의 고령으로 지병이 악화해 응급실을 통해 입원 치료 중”이라며 “뇌동맥경화 등으로 올해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회장이 고령인데다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구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해 지난 11일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천억원대 세금 탈루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선박왕’권혁 시도상선 회장도 검찰 조사 도중 돌연 입원했다. 권 회장은 지난 7월 검찰이 출석을 통보했으나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권 회장은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기로 돼 있었지만, 당뇨와 고혈압 등을 이유로 출석에 불응한 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11일 2200억원대 탈세와 900억원대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권 회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거나 법정에 선 총수들이 자주 꺼내드는 카드가 바로 ‘아픈 척’이다. 동정심 유발로 곤란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묘책이다. 다리에 힘을 풀고 동공을 흐린 표정은 기본.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채로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링거 주사를 꽂기도 한다.

실제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이동해야 한다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안이 마무리되는 시점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닌다는 점에서 동정 여론을 미리 계산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휠체어 탄 총수들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총수들은 죄를 지으면 사법부의 관대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휠체어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그 속이 훤히 보이는 촌극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적중해 자유의 몸이 된다”며 “기업인에 대한 무차별적 봐주기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당연시되는 세태를 재확인시켜 대다수 국민에게 좌절감을 주는 한편 기업인들의 불법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휠체어 퍼포먼스’의 원조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정 전 회장은 정계와 관계, 금융계 등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엮었던 1997년 한보 비리 사태가 터졌을 때 마스크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청문회장과 공판장에 나타났다. 고령에 지병까지 겹쳤다는 사유를 갖다 붙였다.

정 전 회장은 매번 법정에 설 때마다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한때 재계를 주름 잡던 재벌 총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당뇨와 고혈압, 심장질환 등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변호인 측은 “정 전 회장의 혈당치가 355∼400㎎/㎗까지, 혈압은 170∼200㎜Hg까지 올랐다”며 “또 당뇨로 눈과 심장에도 이상 증세가 생겼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자신의 주치의에게 사례비를 주고 허위 소견서를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 소견서에 없던 내용을 추가하거나 병세를 과장한 것. 그는 1999년 8월과 2002년 6월 주치의 이모씨에게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사례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주고 고혈압, 협심증 등의 소견서를 부탁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결국 1997년 1월 구속된 정 전 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6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출소 이후엔 운동까지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항간엔 재기설까지 돌았다. 정 전 회장은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신병 치료를 위해 해외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정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휠체어에 앉는 총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1999년 10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도피성 출국을 한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귀국해 분식회계, 횡령, 자산 국외 도피,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개월 뒤 건강악화 이유로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받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심장수술과 담석제거수술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2대의 링거를 왼손에 꽂은 채 환자용 들것에 실려 법정에 나타났다. 줄곧 입원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2006년 11월 징역 8년6월을 최종적으로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징역형에 대해 사면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두 발로 잘 걸어 다닌다. 김 전 회장은 최근까지 ‘대우인’행사 등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원조는 한보 정태수
풀려나자 ‘팔팔’

앞서 2005년 6월엔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휠체어에 탄 채 인천공항 입·출국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 전 회장과 동반 귀국하기 위한 출국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이후 입국한 김 전 회장 역시 휠체어나 침대를 이용해 입국하려 했으나 여론 악화를 의식해 계획을 철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휠체어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삼성 X파일’과 ‘에버랜드 편법 증여’사건으로 한창 시끄럽던 2005년 9월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던 이 회장은 이듬해 2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입국했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허리엔 복대를 둘렀다.

일본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산책하던 중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의 인대가 늘어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삼성 측은 “이 회장은 당분간 자택에서 요양할 계획으로 가급적 외부 출입을 자제, 대내외 행사에도 참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선 동정 여론을 일으켜 책임을 덜어보자는 계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 회장은 두 사건 때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당시 이 회장은 서면조사만 받은 채 불기소 처리됐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때도 검찰은 이 회장 소환을 검토했으나 33명의 피고발인 중 이 회장만 조사를 면했다.

동정심 유발? “이제 씨알도 안 먹힌다”
십중팔구 환자복서 죄수복으로 갈아입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한 바 있다. 2006년 4월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정 회장은 그해 6월 보석 결정으로 석방된 뒤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열린 첫 공판에서 흰색 환자복에 한쪽 팔에 링거를 꽂은 채 휠체어에 실려 법정에 출석했다.

변호인 측은 “정 회장이 협심증과 관상동맥경화협착증, 고혈압과 함께 심장막에 물이 고여 있고 좌측 폐에 혹이 있는 것으로 진단받았다”며 “심하면 돌연사 가능성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8월 광복절 특별사면 당시 면죄부를 받았다.

2007년 5월 ‘보복 폭행’사건으로 구속된 김 회장은 같은해 7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심한 우울증과 충동조절 장애 등이 있다고 주장해 구속집행정지가 떨어졌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김 회장은 2개월 뒤 열린 2심 선고 재판장에 환자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병원 응급차를 이용, 법원에 도착했으며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들어섰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상태였다. 항상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도 전혀 손질을 하지 않았다. 법원은 김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김 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2008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MB정부 들어 최대 스캔들 메이커 박연차-천신일-곽영욱 ‘3인방’도 낯설지 않은 광경을 연출했다. 이들은 모두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08년 12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009년 11월 병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계속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섰다. 지난해 1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박 회장은 최근 나무지팡이를 짚고 의사들의 부축을 받아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지난 6월16일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섰다. 그전에도 고혈압 증세 등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구속된 천 회장은 이날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구속기소)로부터 워크아웃 조기 종료 등 청탁과 함께 46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불법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천 회장은 건강 악화 등의 사유로 지난 1월 보석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도 휠체어를 탄 채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준 혐의로 기소된 곽 전 사장은 손에 링거액 바늘을 꽂고 마스크를 낀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서고 있다.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이) 말도 잘 안 들릴 정도로 매우 건강이 안 좋다”고 전했다.

최근엔 태광그룹 오너 모자가 나란히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출석해 시선을 모았다. 지난 6월22일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태광그룹 전·현직 고위 간부들의 첫 공판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구급차를 이용해 법원에 도착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환자복 차림으로 이동식 침대에서 휠체어로 갈아타고 재판장에 들어갔다. 지난 4월 간암수술을 받고 구속집행이 정지돼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이 회장은 헝클어진 머리에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 회장은 링거 주사를 팔에 꽂은 채 피고인석에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이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이보다 먼저 승용차를 타고와 역시 휠체어에 올라 법원 안으로 향했다. 이 전 상무는 지난 1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당시에도 구급차 환자 이송용 침대에 누운 채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점퍼에 달린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려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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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