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망가지는 신동들

천재 소리 듣다가 어느 날 ‘범재’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천재의 사전적 의미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워낙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진짜 천재’에 관심을 쏟는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린 사람들은 그런 열띤 기대 속에 성장한다. 하지만 천재의 삶이 늘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천재의 등장은 늘 이슈가 된다. 공부를 탁월하게 잘하는 천재의 경우 공부법과 부모의 교육법이 유행한다. 예체능 분야서 특출한 재능의 소유자가 나오면 그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천재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천재로 불리는 이들에게 동경, 선망, 기대,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을 품는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실망

최근 ‘천재소년’으로 불렸던 송유근 군이 올해 말 현역으로 군에 입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송군이 지난 6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졸업을 위한 박사학위 논문 최종 심사에 불합격한 것을 군입대의 이유로 들고 있다. 

<중앙일보>는 UST 관계자가 “송유근이 블랙홀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 발표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해 심사서 불합격 처리됐다”고 보도했다.

송군의 아버지는 이 같은 상황에 반발하고 있다. 


그는 “2015년 논문 표절 논란 이후 지도교수도 없이 블랙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지난해 6월 영국의 <천체물리학저널(Astrophysical Journal, ApJ)>에 논문을 실었다”며 “외국 과학자와 함께 연구하고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는데도 불구하고 불합격 처리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주장했다.

사실 송군에겐 현역 입대 말고도 여러 갈래의 군복무 방법이 있다. 다른 박사과정을 밟거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대체복무제도인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할 수도 있다. 

병역법에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석사학위 및 박사학위 과정이 통합된 과정을 수료한 사람을 포함한다)은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된 연구기관에 복무할 수 있다고 돼있다.

송군은 석·박사 통합과정에 있다. 논문 심사의 불합격 처리로 제때 졸업을 하지 못하더라도 통합과정을 수료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 또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업을 이유로 최대 28세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

송군은 예전부터 현역 입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왔다. 지난 2015년 인터뷰서 송군은 “군대에 꼭 가고 싶다”며 “(군대는) 대한민국서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서 여러 가지 훈련도 해보고 싶다. 물론 힘들겠지만 인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송군이 현역 입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많은 관심 속에 숱한 부침을 겪으면서 지친 심신에 일종의 휴식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송군은 8세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천재소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만 6세의 나이로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서 역대 최연소로 합격했다. 이후 2005년 5월 최연소 고입,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해 10월 인하대 2학기 수시 ‘21세기 글로벌리더 전형’ 특이경력 분야로 자연과학대학 자연계열에 지원, 2006년 최연소 합격자가 됐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송군은 돌연 인하대를 자퇴했다. 당시 송군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유근이가 1학년을 마치던 2006년 말부터 ‘반복되는 강의실 교육이 재미없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밤새 실험하고 연구해서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대학 수업은 그렇지 않다더라”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과도한 관심

이후 송군이 만 11세의 나이로 UST에 입학, 최연소 석사과정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13세에는 최연소 박사학위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논문 표절 논란이 두 차례에 걸쳐 불거지면서 부침이 시작됐다. 

해당 논란은 송군의 경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15년 11월 송군이 국제학술지 <ApJ>에 발표한 블랙홀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송군의 논문이 지도교수인 박석재 한국천문위원회 연구위원의 2002년 학술대회 발표자료와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당시 박 교수는 “유근이 논문과 제 발표자료는 많은 부분이 같거나 유사해 일반인은 표절로 의심할 수 있다”며 “하지만 유근이가 유도해낸 편미분 방정식 부분은 이 논문의 핵심이고 학문적 성과”라고 주장,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천재소년 송유근 숱한 논란의 중심
부모의 과욕과 지나친 관심의 결말?

그러나 <ApJ>의 조치는 달랐다. 미 저널은 같은 해 11월24일(현지시각) 송군의 논문을 게재 철회했다. 저널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준 셈이다. 송군과 박 연구위원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제출한 논문에 2002년 박 연구위원의 학술대회 발표자료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사용됐지만 인용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당시 송군의 박사학위 취득도 물 건너갔다. UST는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졸업자격 요건으로 제1저자로 참여한 논문 1편 이상을 SCI급 저널에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 게재가 철회되면서 자격 미달로 졸업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송군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징계를 받았다. UST는 대학위원회를 열어 송군에게 2주 근신과 반성문 작성 징계를 결정했다. 지도교수인 박 연구위원은 해임조치됐다. 

일각에서는 박 연구위원에 대한 조치가 가혹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UST는 “논문표절 등 연구 윤리 위반은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중대한 잘못으로 보고 엄정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6년 송군의 새 논문은 또 다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불거진 논문에는 우주 초기 퍼져 나간 중력파가 방향에 따라 세기가 달리지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에도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었다. 이들은 송군의 논문이 조용승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2011년 논문과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가 공저자에 없으니 표절이라는 주장이다. 

아카이브 자체 검사 시스템에서도 두 논문의 글이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논문에 이름을 같이 올린 박 연구위원은 “절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느냐”며 표절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또 표절 대상으로 지목된 조 교수는 원래 공저자였지만 (조 교수가)굳이 필요 없다고 해서 뺐다고 해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긴 해명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지도교수 없이 연구를 계속해왔던 송군은 끝내 UST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수료’ 상태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 
 

정현철 카이스트 영재교육원 부원장은 <중앙일보>에 “유근이는 뛰어나긴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주목과 지나친 기대를 받은 것이 독이 된 것 같다”며 “지금 새로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니,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가 천천히 공부해도 얼마든지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송군보다 더 똑똑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웅용 신한대학교 교수는 어린 시절 천재로 주목받은 이후 혹독한 유명세를 치렀다. 

최근에는 방송 출연 등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지만 과거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그의 이름 앞에는 ‘실패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천재로 불릴 만큼 똑똑했던 그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성공하지 못해 붙은 말이다.

IQ210, 5세 때 4개 국어 통달, 6세 때 일본 후지TV에 출연 미적분 풀이, 8세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초청으로 유학 등 세간에 알려진 김 교수의 어린 시절은 화려하다. 김 교수의 과거 행적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김 교수에 대한 관심은 전국구였다고 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그는 나사에서 일하다 홀로 하는 외국생활에 지쳐 8년 만에 귀국했다. 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정말 외로웠다. 아무도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충북대에 입학했다. 이후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성과 압박에
멍드는 아이

언론은 김 교수가 주장하는 화려한 과거 이력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그의 삶을 두고 ‘실패한 천재’라고 혹평했다. 잘못된 영재교육의 폐단으로 김 교수를 지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실패한 인생이 아닌데 실패자로 취급해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모든 걸 다 내려놓자’고 하니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측근들의 과욕과 지나친 관심이 천재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업적을 이뤄야 한다는 측근의 욕심이 되레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송군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지도교수였던 박 연구위원이 “유근이가 하루 빨리 조금 더 넓은 무대서 능력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에 서두른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측근에 휘둘려 정신병까지
한국 못 품어 해외로 나가

송군이 겪은 공기정화기 논란 역시 측근의 지나친 욕심으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2005년 송군의 아버지는 오명 당시 과학기술부총리 앞에서 송군이 발명했다는 공기정화시스템을 시연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송군의 아버지는 이 물건에 대해 “유근이가 만든 공기정화기가 몇 개월 안에 상용화되면 나라가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군이 개발했다던 해당 공기정화기는 한 중소기업서 빌려온 제품으로 확인됐다. 해당 중소기업 관계자는 송군의 아버지가 회사에 찾아와 연구원들이 만들어 놓은 장비를 빌려갔다고 밝혔다. 

이에 송군의 아버지는 “대규모 기자회견은 처음이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장비에 대해 잘못 표현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해명한 바 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유진박씨는 전 매니저의 감금, 폭행 등의 행위로 망가졌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회복 중이다. 

박씨는 3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8세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할 만큼 천재적인 음악성을 드러냈다. 이후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하고 여러 음악대회서 우승하는 등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2009년 박씨의 감금, 학대설이 터져 나왔다. 박씨가 소규모 행사장과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소속사에 의해 착복과 착취를 당하는 것은 물론 맞기까지 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또 오랜 감금 생활로 박씨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말이 함께 나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망가진 천재’에 안타까움을 느낀 누리꾼들이 구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천재 해커’ 이정훈씨는 국내를 떠나 해외로 나갔다. 이씨는 국내 화이트 해커 중 1인자로 꼽히던 실력자다. 화이트 해커는 일종의 ‘좋은’ 해커를 지칭하는 말로 민관서 활동하는 보안전문가들을 통칭한다. 

고의적으로 인터넷을 파괴하는 블랙해커와 대비된다. 서버의 취약점을 찾아 보안 기술을 만드는 보안전문가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씨는 20세 때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해킹 올림픽 ‘제21회 데프콘’서 3위에 오르며 깜짝 등장했다. 2015년 3월에는 캐나다서 열린 해킹 대회에 홀로 참여, 1위에 올라 해킹 대회 역사상 최대 상금(22만5000달러, 한화로 약 2억5000만원)을 획득했다. 이 대회서 그는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보안망을 다 뚫었다.

이씨는 2015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냉장고 등 삼성전자가 만드는 모든 전자제품의 보안 취약점을 찾고, 이를 개선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그는 삼성을 떠나 구글로 이직했다.

당시 이씨의 소식이 전해지자 화이트 해커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기업 문화가 이직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직을 결정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연봉은 삼성이 더 많지만 보안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구글이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돈 더 줘도
해외로 간다

이씨는 최근 구글 소속으로 DEFKOR00T팀에 참여했다. 지난 1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라온시큐어는 DEFKOR00T팀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열린 국제해킹방어대회서 다른 23개 팀을 제치고 우승했다고 밝혔다. 이 대회는 해킹 올림픽 중에서도 최고 권위로 인정받는 국제 해킹방어대회로 2015년에 이어 3년 만에 한국 팀이 우승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국 한인계 ‘천재소녀’ 사기극

하버드-스탠퍼드 동시합격 했다더니…

2015년 6월, 미국 한인사회가 ‘천재소녀’ 사연으로 떠들썩했다. 

미국의 한 교민언론사가 한국 고교생이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 합격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다. 국내 언론이 기사를 받아쓰면서 판이 커졌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인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김○○양을 하버드와 스탠퍼드서 서로 데려가려 했고, 학년을 쪼개 두 학교에 모두 다닐 수 있도록 협의했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김양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됐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종 의혹이 제기됐고, 하버드와 스탠퍼드가 공식적으로 해당 내용을 부인하면서 사기 의혹이 불거졌다. 드러난 사실은 김양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점. 결국 김양의 아버지가 딸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허위임을 인정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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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