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큰 그림 그리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8.10 16:46:59
  • 호수 1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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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깨지고 풍찬노숙 끝 부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동영 의원이 민주평화당 신임 당 대표가 됐다. 2007년 현 여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뒤 오랜 풍찬노숙 끝의 복귀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 당 신임 대표로 존립의 기로에 선 민주평화당을 살릴 수 있을까.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이 지난 5일, 창당 후 첫 전당대회를 열어 정동영 후보를 당의 새로운 얼굴로 내세웠다. 정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IZ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서 열린 전당대회서 68.57%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68.57% 최고득표
압도적으로 당선 

정 대표에 이어 유성엽 의원 41.45%, 최경환 의원 29.97%, 허영 인천시당 위원장 21.02%, 민영삼 전 최고위원 19.96%로 각각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이윤석 전 의원은 19.04%로 최하위를 기록,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청년위원장에는 서진희 후보가 57.50%로 승리했고 여성위원장은 양미강 후보가 단독 출마해 당선을 확정지었다.

민평당은 지난 1일부터 전날(4일)까지 당원을 상대로 한 온라인 및 ARS 투표(90%)와 국민여론조사(10%)를 실시해 이를 합산한 결과에 따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6명의 후보자가 나선 민평당 전대의 최대 관심사는 정 대표의 당권 도전 성공 여부였다. 


정 대표는 또 다른 당의 대주주인 박지원·천정배 의원의 출마 반대 요구를 거부하고 당 대표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 의원의 당권도전을 저지하기 위해 유·최 의원에게 반(反)정동영계의 표가 결집하는 양상도 보였다.

이에 민평당 전대는 정동영 후보와 유성엽 후보의 2파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선거 초반 정 대표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후 유 의원의 상승세가 매서워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치열한 당권 경쟁이 전개된 결과, 민평당 당원들은 지난 2007년 대권 후보를 지낸 정 후보의 경륜을 선택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서 참패한 당을 정비해 2020년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선 유 후보가 내건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 대표 수락연설서 정 대표는 “약자 편에 서는 정치를 하라고 제게 10년 만에 기회를 주셨다”며 “최고위원 네 분과 함께 생사 기로에 선 민평당을 살려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명박에 깨지고 풍찬노숙 끝 부활
박지원·천정배 반대 거부하고 출마

민평당의 창당 첫 전당대회로 열린 이날 행사는 당원 1000여명이 결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초반 정인화 전준위원장이 대회사를 낭독하던 중 당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이 단상을 습격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당은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했다.

여야는 정 대표의 당 대표 선출에 대해 축하하며 연대와 협치를 기대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 신임 대표와 새로운 지도부의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상생과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 한반도 평화와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주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발전적 협치를 기대한다”며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출발하는 새 지도부가 오로지 국민을 위하는 정치로 당면한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도 구두논평을 통해 “정 대표와 최고위원들께 축하드린다”며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평당을 비롯한 야당이 함께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정책의 대전환을 끌어낼 수 있도록 상의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도 “시대적 과제인 개헌과 민심 그대로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민평당과의 협력을 기대한다”며 “갈수록 어려운 민생과 경제를 위해 함께할 정당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정 대표 앞에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다당제 정착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당력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 대표는 민평당의 지지율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지지율은 당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변화보다 경륜
민평당 살릴까 

정 의원은 앞서 당 대표 출마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평당을 잘 모르는 분들은 있어도 정동영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없다”며 “정동영하면 민평당이 연상될 수 있게 만들어 지지율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평당의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1∼3%대에 그치고 있다. 낮은 지지율은 6.13 지방선거서 광역단체장 배출에 실패했고, 지지기반은 호남서조차 민주당에 밀리면서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다. 

정 의원은 6일 한 언론과 인터뷰서 “반드시 민평당을 대안 정당으로 이끌어 올릴 것”이라며 “지지율이 있는 존재감이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낼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원내 교섭단체 지위 회복 또한 당면한 주요 과제다.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해 정치권 내에서 민평당의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곧 캐스팅보트로서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사망으로 공동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한 민평당은 이달부터 범여권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무소속 이용호, 손금주 의원은 민평당의 구애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두 의원이 민평당보단 민주당 입당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이번 주 17명의 현역 의원님들과 힘을 합쳐서 모든 수단, 방법을 다해 교섭단체 복원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무소속을 유지하면서 함께 교섭단체만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발 벗고 나서 설득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보다 안정적인
지도력 필요 판단

정 대표는 전당대회서 “민평당을 민생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 선거제도 개혁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정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이유는 보다 다양한 국민들이 제도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는 곧 민평당이 추구하는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당제를 정착시키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 대표는 “민평당의 존재 이유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며 “국회의원 299명이 모두 기득권의 대표인 현재의 국회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당과의 협치 역시 선거제도 개혁을 고리로 삼아야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정 대표는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받아들이면 뭐든지(여당의 제안을) 200% 받아들일 것이고,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한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민생 현안을 놓고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클릭’을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 (민주당이)초심을 지키도록 하겠다”며 ‘정의당보다 더 정의로운’ 개혁정당을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농민과 노동자 곁으로, 630만 자영업자 곁으로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그것이 민평당을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미서 정 대표 등 민평당 신임 지도부는 지난 6일, 부산 한진중공업을 찾아 첫 최고위원회의를 현장서 열고, 이후 고 김주중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가 있는 서울 대한문을 찾았다.

그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로 열린우리당 의장, 통일부장관을 지냈으며, 4선 국회의원이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 지지율이…
다당제 구축

1953년 7월27일 전라북도 순창군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주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 재수로 입학해 국사학과를 전공했다. 학창 시절 반(反)유신독재 투쟁을 벌이다 수감됐다. 

졸업 후 1978년 MBC 문화방송에 입사해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17년간 정치부 기자, 로스앤젤리스 특파원 등을 지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했다. 

1996년 대학 친구이자 총리, 교육부장관 등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권유를 받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이후 제15대 총선서 전주시 덕진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돼 15대 국회에 입성,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를 바탕으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끝까지 완주했으나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밀려 패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고, 이후 동반 탈당파들이 만든 열린우리당에 참여했으며 원내대표를 지냈다.

2004년 총선서 정 대표는 비례대표 22번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4월1일 젊은 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취지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앞으로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는 발언으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노인 폄하 발언’이었다.

“존재감 있는 정당 만들 것” 
 1%대 지지율 극복이 과제

이 무렵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가결 영향으로 상승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취임한 한나라당이 역풍을 엎고 돌풍을 일으키면서 위기를 맞았다. 

결국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 대표는 비례대표직을 사퇴했고 열린우리당은 단독으로 152석이라는 과반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기대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통일부장관으로 재직하다가 2006년 초 열린우리당 당 의장에 취임, 지방선거를 지휘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갈수록 추락했고, 결국 지방선거서 참패하고 만다.

2007년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당시 참여정부의 실정 등으로 사실상 여당(노무현의 탈당으로 법적으로 여당은 없었음)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율은 매우 처참했다. 정 대표는 지지율 20%에도 달하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위기 상태였다.

심지어 이회창 후보가 출마하기 전 여론조사조차 그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50%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달리며 당선 가능성이 유력해 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기도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또다른 범여권의 주자인 이인제와 문국현, 권영길 등과의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비록 막판에 호남 및 범여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며 이회창이 갖고 있던 2위 자리를 탈환, 개표 초반 이명박 후보를 누르고 앞서는 등 역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 26.1%를 득표하며 중도정당(제1당) 역사상 최저 득표율을 기록함과 동시에 이명박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해 낙선했다.

대선 패배 이후 한동안 자숙했으며, 바로 이듬해에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는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으나 정몽준 후보에게 패했다. 2009년 4월29일 재선거서 무소속으로 출마,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때 대선후보
산전수전 겪어 

2010년 2월10일엔 민주당으로 복당한 후 2015년 1월11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서 탈당, 국민모임에 참여, 2016년 2월18일에는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20대 총선서 전북 전주시 병 선거구(구 전주 덕진)에 출마해 현역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전주권 최다표차로 누르고 4선에 성공했다. 2018년 2월5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 반대해 국민의당을 탈당, 2월6일 창당된 민평당의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cmp@ilyosisa.co.kr>

 

[정동영은?]

▲1953년 전북 순창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영국 웨일즈대 저널리즘 석사 ▲MBC 정치부 기자·앵커·특파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의장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통일부 장관 ▲15·16·18·20대 국회의원(전북 전주덕진, 전북 전주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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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