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무늬 철옹성’ 군내 성폭력 막전막후

조용히 묻히는 ‘여군 미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상하·수직관계서 성범죄가 일어날 경우 피해자들은 쉽게 입을 열기 어렵다. 미투(Me Too) 운동은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낸 캠페인. 지난 1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피해자들의 고발로 발칵 뒤집힌 여러 분야에 비해 군대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군대가 성폭력 문제서 자유로웠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3월 군인권센터는 ‘군 성희롱·성폭력 피해 신고 전화’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당시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미투 운동이 유독 군대서 반향이 없는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해도 보호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사건 진행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외부자가 필요하다”고 운영 배경에 대해 밝혔다.

성폭력 근절
부르짖지만

앞서 국방부는 지난 2월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성범죄 특별대책 TF’를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TF는 성범죄 신고 접수부터 피해자 보호, 사건 처리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각급 부대 양성평등담당관과 성고충전문상담관을 통해 군에 복무 중인 여성인력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도 병행한다고 소개했다.


3개월 뒤 국방부는 지난 5월8일 TF 활동에 대해 발표했다. TF장을 맡았던 이명숙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은 국방부 정례브리핑서 “활동기간 중 신고된 사건은 총 29건이고, 그중에 성희롱 15건, 강제추행 11건, 준강간 2건, 인권침해 1건”이라며 “이 중 상급자에 의한 성폭력은 20건”이라고 알렸다.

또 “현재 사건처리는 종결된 것이 2건, 함구 중 3건, 조사 중인 것이 24건”이며 “준강간이 2건 있었는데 긴급구속된 사건이 하나, 한 건은 구속영장 청구를 위해 추가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가해자의 계급은 대부분 피해자보다 높았다.

TF는 군대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양성평등 의식 개선과 신고접수 및 피해자 지원조직 전문성 확보, 사건 및 2차 피해 방지 등을 위해 활동기간 동안 17건의 정책 개선과제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군대 내 다수인 병사를 포함한 전 장병의 성폭력 방지 및 보호를 위한 전담조직 편성, 사건 처리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인력을 보강하고, 징계처리 기준을 세분화해 온정적 처리를 차단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국방부의 노력이 무색하게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터졌다. 심지어 사건은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서 실질적인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양성평등 주간(7월1∼7일)에 일어났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계급과 서열에 의한 성범죄
신고 못한 사건 더 많을 것

지난 3일 해군 장성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준장 계급의 A장성은 과거 같이 근무했던 여군 B장교와 지난달 27일 함께 술을 마셨다. A장성은 B장교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하자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시사했다. 

송 장관은 지난 4일 국방부 대회의실서 ‘긴급 공직기강 점검회의’를 시작에 앞서 “이번 기회에 군대 내 잘못된 성 인식을 완전히 바로잡겠다”며 “최근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강력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근절이 새로운 시대적 과제임을 모두가 인식해야만 한다”며 “오늘 이 자리를 국민 앞에 엄숙히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장관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군대 내 성폭력 문제 개선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여군이 피해자인 성범죄가 드러난 것만 여러 건인데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라고 할 만큼 미미했기 때문이다.

군대는 보수적이면서 폐쇄성을 띠고 있어 실제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가 상당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가해자 대부분
피해자의 상관

2013년 10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한 주차장에서 C대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C대위가 타고 있던 승용차에는 반쯤 탄 번개탄이 남아 있었다. 자살이었다. 

C대위가 자살한 뒤 공개된 유서에는 “10개월 동안 언어폭력, 성추행.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매일 야간 근무시키고 아침 출근하면서 야간 근무 내용은 보지도 않고 서류 던짐. 약혼자가 있는 여장교가 어찌해야 할까요?”라는 내용이 담겨 파장이 일었다.

직속상관인 D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군인권센터가 자살예방센터 등에 C대위의 유서와 일기장을 근거로 심리부검을 의뢰,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을 밝힌 결과도 그랬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기자회견서 “C대위가 D소령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정신질환 상해를 입었고 이것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발표했다.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C대위는 해당 부대로 전입하기 전까지 자살요인이 전혀 없었다.

이 사건은 재판에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에 휩싸였다. 1심 재판에 앞서 군 검찰은 D소령을 성관계 요구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군 수사당국이 피해자인 C대위가 받았다는 성관계 요구를 성적 농담에 따른 모욕으로 판단한 것. 

그 결과 1심서 D소령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유족 측 변호사는 “재판부는 D소령의 언행이 지나쳤다고 설명하면서도 강제 추행의 정도가 약했다고 판단하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놓았다”며 “영관급 장교에 대한 군의 온정론적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고등군사법원은 원심 집행유예를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고, 2015년 7월 대법원서 D소령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C대위 사건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해군서 또 다른 성희롱, 성추행 등 성범죄가 일어났다. 은폐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2014년 3월 해군 초계함에 근무하던 E대위는 여군 숙소 겸 사무실에 무단 침입, 여군 소위를 상대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E대위는 여군 소위의 어깨를 만지는 등의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았다.

문제는 E대위 외에도 이 여군 소위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해군 관계자가 있었던 것. 심지어 성희롱 사건은 E대위의 성추행 사건보다 앞서 일어났다. 부함장인 F소령이 같은 피해 여군 소위에게 한 성희롱 발언으로 감봉 3개월에 처해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F소령은 세면장 등에서 여군 소위에 성적 폭언을 마구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군 상대 성범죄 늘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


피해자 한 명을 상대로 E대위와 F소령의 성범죄가 일어났지만 해군은 E대위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당시, F소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음에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F소령의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가 타부대로 전출된 뒤 고충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났다. 

해군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한 의혹은 없다”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성범죄는 해군에서 연이어 일어났다. 같은 해 7월에는 해군 호위함 함장이 만취 상태에서 부하 여군 간부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보직해임됐다. 경기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소속 호위함 함장인 G중령은 부대 인근 식당에서 부하들과 회식을 한 뒤 2차로 간 주점서 여군 간부 2명을 양옆에 앉혀놓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등 성추행했다.

당시 G중령은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상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해군은 사건을 파악한 뒤 G중령을 보직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G중령은 처음에는 너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부인하다가 이후 성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

같은 해 12월에는 해군사관학교서 영관급 장교들이 여군 부사관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인 여군 부사관은 해사 전 감찰실장과 헌병파견대장이 여군들을 대상으로 범죄예방 상담을 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했다고 신고했다. 

조사과정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국군병원도 성범죄가 일어났다. 2016년 8월 국군병원의 한 간부가 수개월에 걸쳐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기도의 한 국군병원서 근무 중이던 H중령은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 약 5개월간 부하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은 물론 노래방서 신체접촉을 하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6명에 달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병원의 병원장도 여군 대위를 성희롱한 사실이 드러났다. 시기상으로 따지면 H중령이 성추행 혐의로 6월 보직해임되고 조직이 발칵 뒤집힌 상황서 병원장이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국군병원서 일어난 사건들은 군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지휘관들의 안일한 의식 수준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5월, 해군본부 소속 I대위가 자신의 원룸 숙소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해군은 조사과정서 I대위가 친구에게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것을 파악하고 직속상관인 J대령을 체포했다.

I대위는 ‘빈손으로 이렇게 가나보다, 내일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등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도 남겼다. 당시 J대령은 “회식 후 만취상태서 I대위와 성관계를 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1심서 J대령에 징역 17년 및 신상공개 10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난 4월 열린 항소심서 J대령은 징역 15년, 신상정보공개 5년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항소심 단계서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사건 범행은 상관의 지위와 권한을 악용한 중대한 성범죄로서 피해자와 유족에 고통을 준 것은 물론 단결과 사기, 명예에도 해악을 끼친 행위이므로 중형으로 엄단할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고 봐 이같이 선고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6년 군사법원서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최근 5년간 육군 내 여군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 의원에 따르면 육군서 여군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장병은 2012년 16명, 2013년 23명, 2014년 25명, 2015년 29명, 2016년 상반기까지 18명 등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계급별로는 가해자의 대부분이 군 간부로 드러나 군대 내 성폭력이 계급과 서열에 의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은 실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여군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상담, 치료 및 법률 지원, 청원휴가 확대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여군을 상대로 한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군대 내 성폭력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를 바탕으로 국방부장관에게 이같이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발생한 성폭력 형사피해 여군 사건 173건을 반년간 조사했다.

가중처벌하고
“피해자 보호”

그 결과 계급이 낮을수록 상관에 의한 성폭력 위험에 더 노출된다는 사실을 도출했다. 또 군사법원이 가해자에게 군형법 대신 형량이 경미한 일반형법을 적용하는 등 미온적인 처벌 관행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실제 가해자 가운데 징역은 9명에 불과한 반면 집행유예는 22명, 벌금 12명, 기소유예 16명 등 대부분 처벌이 관대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휘관이 성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하고 재판도 신속하게 진행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또 공소제기 뒤 즉각 징계절차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군인징계령을 개정하고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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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