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임 대법관 후보 3인방 김선수·이동원·노정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7.09 10:43:16
  • 호수 1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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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남’대법관 공식 깨졌다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 후보들을 제청했다. 대법관 후보 세 사람은 역대 대법관 다수를 차지했던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의 범주를 모두 벗어났다. 법원·검찰을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출신의 노동·인권 변호사, 법원행정처 근무 없이 재판에만 전념해온 정통 법관, 여성의 지위와 권한에 관해 주목할 판결을 여럿 남긴 여성 법관 등이 대법관 물망에 올랐다. 이번 대법관 인사에 대해 ‘다양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이 다음 달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 김창석(62·13기), 김신(61·12기)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선수(57·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와 이동원(55·17기) 제주지법원장, 노정희(55·19기) 법원도서관장이 지명했다. 

대법원은 지난 2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10명의 후보자 가운데 이들을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해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거치지 않아

대법원은 임명제청 배경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뒀다”며 “사회 정의 실현과 국민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의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 국민과 소통하고 봉사하는 자세, 도덕성,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능력, 전문적 법률지식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들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동의안의 표결절차를 밟는다. 국회서 동의안이 가결되면 문 대통령은 이들을 새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통상 이 과정은 한 달 안팎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안팎에선 이번 임명제청을 두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와 법원행정처 핵심 보직을 맡은 인물이 대법관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61년 전북 진안 출신인 김선수 변호사는 서울 우신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7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김 변호사는 법관이나 검사 등 재조 경력이 없이 지난 1988년 법무법인 시민종합법률사무소서 노동전문 변호사로 출발한 이후 현재까지 30년에 걸쳐 노동·인권 부문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대법원은 김 변호사에 대해 “선후배 동료 법조인들로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인품이 훌륭하며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왔던 후보자의 활동과 인품에 대해 변호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아 고 조영래 변호사 기념사업회 초대 위원장으로 추대됐다”고 소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3명 임명 제청
변호사·여성·비서울대 다양화

김 변호사는 서울대병원 근로자 1000여명을 대리한 법정수당 청구소송은 통상임금 관련 법리를 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당시 재판이 서울지법에 노동전담부를 설치하게 한 계기가 됐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경영상 해고도 엄격한 요건 아래에 허용돼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것도 김 변호사가 맡은 주요 사건 중 하나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사무총장과 회장을 역임했다. 민변 회장 출신 인사 중에서는 송두환(69·12기)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을 지낸 적이 있지만, 대법관에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상고심 개선과 하급심 강화, 노동법원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방안 등 내용을 담은 ‘사법개혁 리포트’를 출간한 경험도 있다. 

당시 노무현정부서 민정수석 등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활동한 시점이다. 

1963년 서울 출신인 이동원 법원장은 경복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17기로 수료했다. 1991년 서울형사법원 판사로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평택지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수원지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올 2월 제주지법원장 겸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부장판사로 있다.

대법원은 이 법원장에 대해 “법원실무제요 민사소송 분과위원장으로서 2017년 민사소송 개정판을 발간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고 도산법·환경법 등 분야서 다수의 논문과 판례평석을 집필해 법학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다”며 “법원 구성원으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고 있고 뛰어난 친화력으로 지역 사회와도 격의 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동변론 30년
‘벽’을 넘다

이 법원장은 위헌정당해산 결정이 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국회의원지위확인 사건서 위헌정당해산 결정의 효과로 소속 국회의원도 당연히 직을 상실한다고 최초로 판결했다. 

그는 위헌정당이라는 판결로 해산이 결정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원직 상실 판결, 북한을 인권·복지국가로 오인하게 할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재미동포를 강제로 퇴거한 조치가 정당했다는 판결 등을 내린 바 있다. 

이외에도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부모와 같이 난민신청을 한 미성년 자녀에 대해 별도의 면접심사를 하지 않은 채 난민불인정 결정한 사건에서 난민법과 우리나라가 비준한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등을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CJ CGV가 계열사에 대해 부당 지원행위를 한 행위에 대해 제재하는 등 판결도 이 법원장이 맡았던 재판들 중 일부다.

법관과 법원 직원들의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 민사소송 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2017년 민사소송 개정판을 발간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도산사건과 행정사건의 전문가로서 도산법 및 환경법 등의 분야서 다수의 논문과 판례평석을 집필, 법학 이론의 발전에 기여했다.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은 광주 출생으로 광주동신여고와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0년 춘천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광주지법·서울중앙지법·서울남부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지내고 현재 법원도서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법원은 노 관장에 대해 “여성과 아동의 권익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 한때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을 활용해 사건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재판을 해왔다”고 밝혔다. 

재야 출신 노동·인권 변호사
재판에만 전념해온 정통 법관
여성 관련 주목할 판결 남겨

노 관장는 여성과 아동 인권에 관해 연구하며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8월 서울고등법원 민사18부 재판장으로 있으면서 어머니의 성으로 바꾼 자녀도 어머니가 소속된 종중의 종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사실은 자연스럽고 과학적”이라며 “종원의 자격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헌법상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의 법칙, 부성주의 및 성불변의 원칙을 완화한 민법의 규정과 개정 취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010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선 탈북자가 귀순사실 및 인적사항의 비공개를 요청했음에도 합동신문기관이 이들의 신원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보고서를 언론에 배포한 경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고 공무원의 직무수행 주의의무의 기준을 제시하고 국가의 인권보호의무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회복지법인의 임원들이 범죄 예방조치 의무와 가해자 분리·고발 및 피해자에 대한 상담 등 보호조치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임 사유가 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노 관장이 임명될 경우 여성 대법관은 김소영·박정화·민유숙 대법관에 이어 역대 가장 많은 4명으로 늘게 된다. 2004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첫 여성 대법관이 된 이후 14년 만에 여성 대법관은 김소영·박정화·민유숙 대법관까지 역대 최다인 4명으로 늘어난다. 

대법원은 전체 대법관 14명 중 여성 비율은 28.57%(4명)로 올라간다.

여성 대법관
4명 역대 최다

이번 대법관 인선을 두고 여야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자유한국당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 대상 후보자로 추천한 10명 중 4명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코드 인사’라고 지적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당은 지난달 26일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법부의 좌편향 인사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신임 대법관 후보 중 한승 전주지방법원장,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이 진보 성향 판사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며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서 통진당을 변호한 김선수 변호사도 편향적 후보”라고 지적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우리법연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며 주목받아왔다”며 “이 모임의 일부 판사는 SNS상에서 전직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민변-우리법연구회-시민단체’라는 ‘삼각편대’를 이용해 사법부를 왼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청와대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를 중단하기를 바란다”며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동,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사안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사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국민적 신뢰를 잃고 있는 대법원을 다시 정치 편향적 인사들로 채운다면 사법부의 국민적 신뢰는 회복 불가능하게 될 것이므로 대법원장은 정치편향적 후보들을 제청 대상서 배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근택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내고 “집시법 위반자는 무조건 유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유죄의 증거가 없으면 무죄판결은 당연한 일”이라며 “집시법 위반자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안에 대해 무조건 유죄 판결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은 인권보장 최후의 보루라고 할 것이므로, 특정 단체 출신인지에 관계없이 그동안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해왔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며 “개개인을 평가하지 않고 특정 단체에 소속돼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돼야 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를 지낸 정당에 소속됐던 국회의원은 당연히 물러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대법관 인선에 대해 바른미래당과 야당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에는 서울대, 남성, 50대라는 천편일률적인 대법관 선정 기준서 벗어났다”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들이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그동안 ‘서오남’으로 불려왔던 ‘서울대-50대-남성’의 대법원 구성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임명제청이라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정치권 환영
한국당만 반대

하지만 여야의 20대 국회 하반기 원 구성 실무협상이 늘어지면서 대법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 자칫 원 구성 협상이 길어지면 사법부 공백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야는 지난달 27일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원 구성 협상을 위한 첫 만남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않고 탐색전만 벌였다. 이튿날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가 실무 협상을 벌였지만 역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cmp@ilyosisa.co.kr>

 

[김성수 변호사]
▲1961년 전북 진안 출생 ▲우신고(서울) 졸업 ▲서울대 법대 졸업 ▲제27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7기) ▲법무법인 시민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중앙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현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이동원 제주지법원장]
▲1963년 서울 출생 ▲경복고 졸업 ▲고려대 법대 졸업 ▲제27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7기) ▲서울형사지법 판사 ▲서울민사지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관 재판연구관 ▲전주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수원지법 평택지원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제주지방법원장,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부장판사(현재)

[노정희 법원도서관장]
▲1963년 광주 출생 ▲광주동신여고 ▲이화여대 법대 ▲제29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19기) ▲춘천지법 ▲춘천지법 원주지원 ▲수원지법 ▲의원면직(변호사 개업) ▲인천지법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 ▲광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수석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고법부장 ▲서울고법 고법부장 ▲법원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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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