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50년 절도사 풀스토리

의적서 잡범으로…좀도둑 된 왕년의 홍길동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대도’ 조세형씨가 또 다시 쇠고랑을 찼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는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 집만 골라서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회자된 인물. 한때 종교에 귀의해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도 잠시. 잇따른 절도 행각으로 철창을 들락날락하면서 일개 ‘좀도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씨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롤러코스터 인생을 되짚어봤다.

금은방 주인 흉기로 위협해 30만원 등 금품 강탈
‘청송 동료’들과 범행…교도소 나와 경찰서 직행

‘대도’ 조세형씨가 이번엔 ‘강도짓’으로 또 다시 감방 신세를 지게 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14일 2년 전 금은방 주인과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로 조씨를 구속했다. 그동안 수차례 절도로 악명을 떨쳤던 조씨가 강도 혐의로 구속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사유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9년 4월 청송교도소 수감 동료인 공범 2명과 함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에 있는 금은방 주인 유모씨 집에 침입, 흉기로 위협해 현금 30만원과 금목걸이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5세 때 구걸 갔다가
은수저 처음 훔쳐

유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 민씨가 흘린 혈흔을 발견하고, 지난해 11월 또 다른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던 민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이때 민씨의 입에서 조씨의 이름이 나왔다. 조씨가 범행에 가담한 것을 파악한 경찰은 장물알선 혐의로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씨를 찾아가 조사를 벌였지만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고, 지난 9일 형을 마치고 출소하던 조씨를 교도소 문 앞에서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금액이 30만원으로 크진 않지만 강도상해 범죄인만큼 죄질이 무겁고 도주 우려가 강하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구속 전 유치장에서 가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평생 도둑질은 했어도 강도는 안 했다”며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단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그가 철창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그랬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 경비를 뚫고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들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올해 73세인 조씨는 출생이 불분명하다. 호적이 없어 생년월일을 정확히 모르고,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학교문턱에도 못 가봤다.

조씨가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5세 때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갔다가 남의 집 부엌에서 은수저를 훔친 일이다. 당연히 나이가 어려 ‘도둑질이 나쁘다’는 범죄 의식이 없었지만,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증명이나 하듯 범죄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조씨는 1963년 특수절도 혐의로 전과자 신세가 된 이후 1970년대까지 절도 혐의로 10여 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16세께 소년원에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면서 도둑질은 나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으나 ‘배가 고파서’ ‘습관적으로’훔쳐온 그는 이미 전문 도둑이 돼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한 절도범에 지나지 않았던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재판받다 6일간 탈주
선교활동 도중 재범

조씨는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수십억원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다. 당시 수십억원은 지금의 수백억원과 맞먹는다. 피해자는 전직 경제부 총리와 국회의원, 그룹 총수,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뭐가 구린지 하나같이 피해 사실을 극구 부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씨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조씨가 한 국회의원 집에서 훔친 수억원대에 달하는 2.2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큰 화제가 됐다. 상류층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던 서민들은 조씨를 ‘의적’이라 불렀다.

1982년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추적 끝에 검거된 조씨는 재판 중 탈주해 또 한 번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1심에서 절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씨는 이듬해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경비 뚫고 ‘신출귀몰’ 고관대작 집만 털어
1963년부터 철창 들락날락 손 씻었다 도벽 다시 도져 장물아비에 푼돈 강도짓도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힌 조씨는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심청구 등을 통해 1998년 만기 출소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조씨의 ‘절도인생’은 청송감호소를 나서며 끝나는 듯 했다. 조씨는 출감하자마자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에 늘빛선교원을 열고 교인으로서 착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999년엔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조씨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대도를 벗은 지 오래됐다”며 “직장인이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약간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또 보안업체에 일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범죄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라며 “회사가 신앙을 통해 변화된 인격을 인정해준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눈앞에 천만금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참회의 눈물은 금세 말랐다. 조씨는 2000년부터 선교활동 명목으로 일본 출장이 잦아졌고, 현지에서 또 절도행각을 벌였다. 신앙간증 차 간 일본 도쿄 시부야의 부촌을 돌며 라디오와 손목시계 등 13만엔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

2001년 그는 출동한 일본 경찰관이 쏜 총에 맞고 체포돼 3년6개월 동안 일본 고부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조씨는 2004년 극비리에 귀국해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랬던 그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경찰서였다. 조씨는 일본에서 출감한 지 1년 만인 200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손목시계 6개 등 165만원 어치의 금품에 손을 댔다.

금품을 훔쳐 나오던 조씨는 집안에 설치된 전자탐지기에 감지됐고, 곧바로 출동한 사설 경비업체와 경찰에 발각됐다. 조씨는 옆집 담을 넘어 달아났지만 경찰이 쏜 공포탄에 놀라 넘어지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자신이 ‘조세형’인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조씨는 경찰에서 “나는 조세형이 아니라 48세 노숙자 ‘박성규’”라며 “노점상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지문감식 결과 신분이 확인되자 그때서야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급주택을 털 계획을 짰다”고 털어놨다.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조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철창신세를 졌다. 이후 다시 종적을 감췄던 조씨는 장물아비 사건으로 ‘대도’란 호칭에 또 한 번 먹칠을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해 5월 훔친 물건을 팔아주고 돈을 챙긴 조씨를 장물알선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방을 함께 쓴 노모씨가 훔친 귀금속을 처분해줬다. 노씨를 포함한 4인조 강도는 지난해 4월 광주 남구 한 금은방에 침입해 현금과 보석 3억원어치를 훔쳤다. 조씨는 노씨 등이 훔친 귀금속 가운데 1000여 돈(시가 1억1000만원)을 서울 종로구 귀금속 상가에 팔아주고 수고비 1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초라한 말년 씁쓸

조씨가 장물아비를 자처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궁핍하게 살다 내연녀와 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다리미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는 후문이다. 70대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조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지난 9일 형을 마치고 출소하던 조씨는 바깥공기도 제대로 맡지 못하고 과거 ‘강도짓’으로 또 다시 감방 신세를 지게 됐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어린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좀도둑과 장물아비 신세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강도짓을 한 ‘잡범’으로 추락했다. 그것도 고작 30만원 때문에 말이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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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