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추적> ‘곽노현 금품파문’ 미스터리 셋

노무현‧한명숙 보면 곽노현 보인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금품파문’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누구보다 청렴해야할 교육계수장이 금품파문에 연루되며 여야 할 것 없이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10‧26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야권에 불리한 검찰수사는 과거부터 되풀이되던 관행이라 ‘표적‧기획수사’라는 의혹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곽 교육감의 검찰 수사 방식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와 오버랩 된다는 점에서 곽노현 사태가 ‘역풍’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주민투표 승리한 야권에 찬물 ‘철퍽’
①‘곽의 3일천하’는 이미 계획 됐었다?
②단일화 대가로 뒷거래 2억 건넸나?
③검찰 대가성 입증 못하면 ‘곽’ 무혐의

지난달 26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작년 교육감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단일화 대가로 돈을 건넨 의혹들이 제기되며 정국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야권에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승리를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다.

검찰 측의 발표에 따르면 8월초 선관위에 곽 교육감에 대한 고발이 접수됐고, 계좌추적을 한 결과 돈이 오간 통로는 단일화 대상이었던 박 교수의 동생과 곽 교육감의 지인인 강 교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검찰은 2011년 2~4월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곽 교육감측에서 1억3000만원이 박 교수 측으로 건너간 정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검찰의 폭로
‘3일천하 곽’

이같은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지며 정국을 강타하자 곽 교육감은 서둘러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 2억원의 돈을 박명기 교수에게 지원했다”며 “선의에 입각한 돈으로 선거와는 무관하게 저와 가장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다”고 밝혔다. 검찰보다도 발 빠르게 나서 검찰이 밝히지 못한 7000만원의 액수까지 더해 돈을 건넨 혐의를 인정하며 사실을 밝혔다.

여기에 박 교수는 검찰 조사 중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사퇴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으며 원래 받기로 한 돈은 7억원이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여야 할 것 없이 곽 교육감의 사퇴 압박이 가해졌고, 대다수의 언론은 앞장서서 연일 곽 교육감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검찰은 2억원의 자금출처를 밝히기 위해 곽 교육감의 주변인들을 소환하며 수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의심 가는 대목은 아무리 선의의 목적이라고 해도 전문 법학자였던 그가 선거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검은 돈을 줬을까 하는 점이다. 2억원의 대가성 입증문제로 법적 시비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교육계의 수장이라 불리는 교육감의 신분으로 억대의 돈 거래가 오고 갔다는 사실은 충분히 곽 교육감에 주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선거운동 도중 경쟁후보가 사퇴하면 최소한의 비용을 사적으로 보전해 주는 게 선거판의 관례로 알려졌다. 그런데 곽 교육감의 경우만 철퇴를 맞고 있어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격 사퇴하며 서울시장 재보선이 확정된 상황에서 폭로된 것과 관련해 검찰수사에 더욱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1. 검찰의 ‘표적‧기획수사’ 의혹

검찰 측은 “선거관리위원회가 8월 초 수사 자료를 넘겼고,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 최근까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수사를 자제했다”며 “공소시효(6개월)가 임박해 투표가 끝나 수사를 시작했다”며 표적‧기획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야권에 대한 검찰수사는 종종 여권에 유리한 결과를 안겨줬다.

18대 총선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연고가 없는 은평을 지역에서 친이계의 좌장이자 이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했던 이재오 특임장관을 이기며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총선자금을 마련하려고 발행한 당채와 관련해 검찰에 고소됐고, 1심에서 재판부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다시 당사랑 채권을 통해 당이 2000만원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받은 것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당을 처벌해야 하는데, 당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인 문 대표가 책임을 져야한다며 다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 문 대표는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에 이 장관은 재보선을 통해 다시 은평을 지역을 꿰찰 수 있었다.

또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는 야권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같은 사건에 휘말린 한 전 총리는 불리한 입장에 놓였고, 여권의 오 전 서울시장에 자리를 내주며 석패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결심공판은 오는 9월19일 열릴 예정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결과는 야권의 승리로 귀결되며, 시장직을 내걸었던 오 전 시장이 전격 사퇴했다. 하지만 10월26일로 예정된 차기 서울시장선거에서 여권의 승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지방권력의 핵심인 서울시장직을 야권에 뺏길 위험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선거를 앞두고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야권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야권연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검찰수사가 표적‧기획수사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2. 청와대 개입 논란

곽 교육감과 관련한 검찰수사 진행상황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수사방식과 오버랩 되면서 현 정권의 보복과 함께 정권에 불리한 사건 무마용 수사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촛불시위로 인해, 곽 교육감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현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수사는 보궐선거 직후에, 곽 교육감 수사는 주민투표 직후에 여권의 패배 상황에서 본격화됐다는 점이 비슷하다. 또한 권양숙 여사를 먼저 소환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듯 이번에도 곽 교육감의 부인 등 주변인들부터 소환하며 당사자를 옥죄는 검찰의 조사방식 역시 똑같다.

여기에 곽 교육감의 상대측인 박 교수의 변호를 맡은 대형로펌이 이전에 노 전 대통령의 상대측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변론을 맡은 곳과 같은 곳이라는 점이 밝혀지며 의혹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 대형로펌은 MB정권 출범 후 여권의 주요한 정치적 사건을 도맡으며 급성장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불거진 도곡동 땅 사건의 실소유주 논란 당시 이 대통령의 처남인 고 김재정씨의 변호를 담당했고,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씨의 공천 로비 사건에서 김옥희씨와 구속된 브로커 김태환씨의 변호를 잠시 맡은 곳으로 알려졌다. 또 이곳 대표인 강훈 변호사는 BBK사건을 직접 담당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BBK사건을 수사했던 특별수사팀이 한 언론사를 고소했는데, 서울고법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BBK 관련 의혹이 있는 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만한 사안이었다.

이 로펌은 당시 ‘서태지-이지아 위자료문제’로 이지아측 변호를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서태지-이지아 결혼 사실이 BBK사건에 대한 판결 발표 약 10분 정도 후에 공개됐다. 때문에 관심을 돌리려 이같은 사건을 터트렸다는 음모론이 제기될 만큼 현 정권에 과잉충성을 보이고 있는 로펌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번 곽 교육감 사태 역시 부산저축은행비리와 관련된 브로커 박태규씨의 입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현 정권의 측근인사들이 연루된 대형비리사건 핵심인물인 박씨의 조사가 시작되자 이번에도 곽 교육감 사태로 시선을 돌리려 했다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

#3. 친이계 음모론

주민투표 패배와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위협받는 친이계가 친박계와 야권을 동시에 잡을 카드로 곽 교육감 금품파문을 터트린 ‘배후세력’이라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측근들에 따르면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수사 착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초기에는 이같은 사실을 공개해 주민투표를 유리하게 끌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권 수뇌부는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로 받아질 경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신중론에 무게가 쏠렸고, 보수층이 결집하면 주민투표도 해볼만 하다는 판단에 사태를 관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진두지휘했던 오 전 시장이 물러나며 친이계는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때문에 다가오는 10‧26재보선에서 친박과 야권을 동시에 잡을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것.

친이계 측에서는 도덕성 시비로 곽 교육감이 사퇴한다면 진보진영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표는 10‧26재보선에서도 무상복지가 논쟁이 된다면 선거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조건부 지원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만약 이번 재보선에서도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면 박 전 대표에 대한 보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친이계가 박 전 대표를 염두에 뒀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 전 시장의 전격 사퇴이후 재빠르게 곽 교육감의 금품파문을 폭로한 배후세력이 친이계라는 설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2억의 대가성 입증에 자심감을 내비치는 검찰과 선의의 목적이기 때문에 떳떳해 사퇴불가 입장을 보이는 곽 교육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0‧26재보선을 앞두고 벌어진 곽 교육감 금품사태를 둘러싸고 검찰의 표적‧기획수사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향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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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