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반면(反面)이란 단어에 대해 살펴보자. 반면은 반필면(反必面)의 준말로, 밖에 나갈 때 반드시 부모에게 말씀드리고 돌아오면 반드시 부모를 찾아뵙는다는 뜻이다. 죽은 이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섬기는 예절을 의미하며 ‘예기(禮記)’에 실려 있다.
그런데 이 단어에 스승의 개념을 지니고 있는 교사(敎師)를 덧붙이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나의 가르침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으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예절을 지칭하는 ‘반면’에 역시 예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교사’가 합해지면 더욱 강한 예절을 의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동떨어진 의미를 만들어내고 만다.
아울러 고문서에 ‘반면’이란 단어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반면교사란 단어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를 감안하면 반면교사란 한자성어는 현대에 들어 누군가 억지로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생각해본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반면교사란 단어는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했다. 마오쩌둥은 부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으로 개선할 때 그 부정적인 것을 반면교사라고 했다고 한다.
이제 제목에 등장하는 ‘방정(方正)’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방정은 언행이 바르고 의젓하고 점잖음을 이른다. 아울러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는 이 말이 낯설지 않을 게다. 졸업식에 받는 표창장 말미에 예외 없이 등장하는 ‘위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성적이 우수해 이 상장을 줌’이란 글귀 때문이다.
이 대목서 ‘방정’에 ‘하다’를 붙이면 말 그대로 원의미를 그대로 지닌다. 그런데 그 방정에 ‘맞다’라는 동사를 접합시켜 보자.
물론 ‘맞다’는 말, 육감, 사실 따위가 틀림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두 단어가 합쳐지면 이외의 뜻으로 변화된다. 즉 ‘방정맞다’로 이는 말이나 행동이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까불어서 가볍고 점잖지 못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교사가 덧붙어 의미가 변질된 것처럼 방정에 ‘맞다’를 덧붙이면 고유의 개념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역의 개념이 형성된다. 참으로 설명하기 난해한 언어의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언행들을 살펴보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느 하나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혹여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가 최근 국민의당을 향해 ‘위장 야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짧지 않은 기간 정치판에 머물렀었던 필자의 입장서 살피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있을 수 없다.
홍 대표의 주장에 의하면 국민의당이 원래는 여당인데 야당으로 위장한 단체라는 말이다. 법에 문외한인 필자가 생각하건데 이는 법리상으로도 모욕죄에 해당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그런 홍 대표에게 ‘방정하다’와 ‘방정맞다’ 중 어느 표현이 더 합당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 조선조 숙종 시절 남인의 영수였던 윤휴가 경신환국으로 유배되자 귀양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서신 내용 중 일부 소개한다.
‘지금 세상살이가 어려워져서 말이 재앙을 부르는데 너희들 혹시 말조심하지 않을까 그것이 늘 걱정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