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미스터리 부부 김광석 & 서해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0.10 11:40:06
  • 호수 1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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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돌팔매…마녀인가 마녀사냥인가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경찰이 ‘가수 김광석의 딸 서연양 사망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광석의 타살 의혹이 조명된데 이어 그의 딸까지 살해됐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두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인물은 김광석의 부인 서혜순씨다.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제작한 영화 <김광석>서 김광석 타살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김광석>은 이 기자가 그의 죽음에 관한 의혹들을 20여년 간 취재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망 당일 기록부터 유족들의 최근 얘기까지 담아내며,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한편의 영화로 
다시 떠오르다

이 영화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로 부인 서해순씨를 지목했다. 지난 8월3일 서울 용산구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서 이 기자는 “탐사보도 쪽 일을 해와서 김광석 자살은 평소 관심을 가져온 사건 중 하나”였다며 “MBC서 다루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건은 공소 시효가 지났다. 진실을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서해순씨가 나에게 소송을 거는 것”이라고 오히려 상대방을 도발했다.

김광석의 갑작스런 사망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1996년 1월6일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당시 아내와 술을 마셨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목에는 전선이 감겨있었다. 사망 원인은 여자 문제로 인한 우울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화는 이 사실을 뒤집는다. 죽은 사람이 남긴 일기를 근거로 아내 서씨가 자신의 고교 동창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것 때문에 김광석이 괴로워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찰은 서씨의 진술에 따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서씨를 제외한 유족들은 모두 “김광석이 자살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 기자는 “처음 김광석 아버지는 취재를 만류하셨다. 그러다 돌아가시기 전에 창신동 집으로 불러 녹음테이프를 꺼내주며 ‘취재를 막은 건 (서씨 때문에) 내 아들에 이어 다른 가족도 해를 입을까 두려워서 그랬다’고 말했다.

공개되지 않은 테이프에는 더한 내용도 담겨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김광석이 사망 직전 지인과 새 앨범을 계획했다는 사실과 누구보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그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는 서씨가 사망 당일과 이후 진술이 오락가락하다는 점에 집중한다. 또한 그가 과거 범죄 전력이 있고 신분 세탁 뒤 김광석과 사기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서해순은 정말 남편과 딸 죽였나  
죽음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들

영화는 어디까지나 의혹 제기일 뿐이다. 사건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기자도 인정했다. 


그는 “심증과 믿음은 100%지만 결정적 단서가 되는 스모킹 건이 없다. 1%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1996년과 달리 지금은 인터넷이 있다. 네티즌 수사대의 힘을 믿는다”며 “영화를 통해 집단 양심을 가지고 진실을 밝히고 싶다. 그런 의도서 제작했다”고 전했다.
 

현장에는 두 명의 변호사가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영화 기획단계부터 법적 부분에 대해 조언을 했다. 작품이 만들어진 후에는 여러 번 반복해 보며 팩트를 체크했다. 

서씨와의 법적 소송에 대해 묻자 한 변호사는 “민감한 사항 가지고 만든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언하며 만들었다. 소송에 대한 모든 부분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광석 타살 의혹에 이어 그의 딸 서연양도 이미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김광석 유가족 등이 지난 19일 용인동부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는 과정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지난 10년간 서연양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서연양이 2007년 12월 23일 집에서 쓰러진 것을 어머니 서씨가 발견해 수원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서연양이 폐질환을 앓고 있었던 병원 진료 기록이 있었고 부검 결과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확실해 변사로 내사 종결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딸 잘 있다’
왜 거짓말?

사망 당시 서연양은 16세였다. 서연양은 김광석과 서씨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자식으로 어릴 때부터 발달장애가 있었다. 김광석 사망 후 아내 서씨와 함께 살았고 서씨는 주위에 ‘딸은 미국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연양은 김광석의 음악 저작권(작사·작곡가가 갖는 권리)과 저작인접권(음반제작자 등이 갖는 권리)의 상속자였다. 김광석과 관련 저작권 수입은 서씨와 서연양에게 귀속되고 있으며 전반적인 저작권 관리는 서씨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서씨는 김광석이 사망한 지 3개월 만에 시아버지를 상대로 저작권 청구 소송을 냈다. 이후 12년 간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2008년 10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은 딸 서연이에게 모든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발달장애’로 금치산자로 지정된 서연양의 경제권은 모두 서씨에게 돌아갔다.  

이에 이 기자는 서연양 사망에 대한 재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유가족과 함께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서씨를 상대로 고소·고발장을 접수했다. 

유족 측의 김성훈 변호사는 “"서연양의 사망과 관련 경찰 발표, 병원진료 기록 검토와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서씨가 김광석 저작권과 관련해 벌인 여러 건의 소송서 서연양의 사망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고발 접수 6일 후에 해당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첩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청이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 인력이 풍부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광수대로 수사 주체를 변경해 지휘한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 6부에 배당했다. 또 서씨의 주소지를 고려해 관할 경찰서인 중부서가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은 서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석의 형 광복씨가 경찰에 출석하며 서씨가 "거짓말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광복씨는 지난달 27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출석해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그분(서씨)이 하는 말이 사실과 너무나 다른 거짓이 많다”며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인 서연양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심경이 어땠냐는 질문에는 “하나밖에 안 남은 광석이 혈육인데 흔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광석이 죽고 나서 미국에 3년 떨어져 있었는데 혼자 얼마나 외로웠겠나. 너무 불쌍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서연양과 왕래가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서씨가 보기 싫어 멀리했을 뿐 서연양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서씨는 이런 의혹에 대해 격앙된 태도로 해명했다. 

지난달 27일 CBS <노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한 서씨는 ‘억울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먼저 서씨는 이 기자에 대해 “ 그분이 왜 나를 20년간 쫓아다니고 괴롭히는지 알 수 없다. 왜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건가”라며 “같이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해 달라. 난 잠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해 안가는
해명과 반박

앞서 서씨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서연양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경황이 없어서”라고 답해 논란에 부채질을 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독일, 미국 등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했다. 그러나 (서연이가) 키도 안 크고 심장도 제대로 작동을 안했다”며 “우리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장애우 키우는 엄마들은 그들이 잘못되면 마음으로 묻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서씨는 서연양의 죽음과 저작권 소송에 대한 의혹에 대해 “서연이 몫(저작권료)이 탐나면 가져가길 바란다. 난 고지만 안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담당 변호사에게까지 서연양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그런 관행을 몰랐다”고 밝혔다.  
 

서씨는 김광석의 부검소견서를 공개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한 비난의 시선에 “국가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날 서씨는 약 30분의 인터뷰 내내 잔뜩 격앙된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심지어 “여자 혼자된 사람을 왜 남자들이 괴롭히는가”라며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 가운데 또 다시 세상은 그를 조명하고 있다. 김광석은 싱어송라이터이다. ‘가객’ ‘노래하는 시인’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렸다.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장이 추서됐다.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등 그가 남긴 명곡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사랑 받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돼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 남성들을 울리고 있다. 군대하면 생각나는 노래다. 이 곡이 김광석 개인에게도 의미가 큰데 그는 군에서 사고사한 형으로 인해 이등병으로 전역했다. 아울러 〈서른 즈음에〉는 2007년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됐다.

그녀가 입 열수록 의문 꼬리
해외 행적까지 추가로 드러나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행정명: 김광석다시그리기길)가 조성돼 350m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명소가 됐다. 

김광석은 1964년 1월22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현재는 종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 서울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며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서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해 활동했다. 

1985년 1월 입대했으나 군 생활 중 큰형(김광동)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해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했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놨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했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했다. 

검찰 재수사
과연 결과는?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 각각 발표했다. 1991년부터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공연했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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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