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격세지감 ‘지하철 신풍속도’ 엿보기

단지 교통수단? 이젠 놀러오세요!

지하철이 확 달라졌다.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하거나 이동할 때만 타던 지하철이 이제는 여행을 위한 수단으로, 또 각종 문화시설을 겸비한 곳으로 바뀌며 이용객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이렇게 단지 교통시설로만 이용되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즐길거리로 변모한 지하철, 그리고 대중들의 편의를 위해 더욱 발전된 모습의 지하철에 대해 취재했다.

지난 6월29일 2호선 왕십리역. 점심시간대인 12시15분. 신도림행 열차가 들어오고 한 70대의 노신사가 지하철에 탔다. 의자에 앉아있던 60대 가량의 할머니가 노신사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일어섰다. 이 노신사는 “내가 더 힘이 센 데 비켜주니 고맙다”며 “전화번호 좀 가르쳐줘”라고 말했다. 자리를 양보해 준 할머니는 노신사의 집요한 요구에 지쳐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당일치기 여행 가능
어르신들 주로 이용

사실 이 노신사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도 승강장에 있던 비슷한 연령의 할머니에게 “나이 먹어서 외로운데 전화번호 좀 알려 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렇게 나이든 어르신들에게 외로움은 달랠 수 없는 서러움이다.

하지만 최근 지하철은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이들은 지하철로 이곳저곳을 무료로 여행한다. 예전 같으면 무료로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현재 지하철은 저 멀리 충남 천안·아산, 강원도 춘천, 경기도 문산까지 운행되고 있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김모(73·남)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아산에 가서 온천을 하고 천안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온다”며 “옛날 같으면 버스로 왔을 거리를 지하철을 통해 편하게 오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러한 곳에서 성매매를 한다는 내용도 불거져 나오면서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10년 12월에는 경춘선이 개통됨으로써 강원도로 향한 발걸음도 한결 쉬워졌다. 물론 이 개통으로 인해 추억 속의 춘천 가는 기차의 로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누구나 더욱 쉽게 춘천을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기고 있다.

충청도·강원도까지 지하철 연결돼 여행하기 좋아
지하철역사에 각종 문화시설 대중공간으로 탈바꿈

특히 방학을 맞아 이날은 학생들로 더욱 붐볐다. 상봉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3·여)씨는 “며칠 전에 시험이 끝나 남자친구랑 바람도 쐴 겸 춘천으로 놀러간다”며 “경춘선이 개통되고 나서는 당일치기로도 춘천에 가는 것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하철은 이제는 단지 교통수단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구, 가족과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하철은 여행수단만이 아니다. 이제는 지하철역 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역이 단지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고 나오고 표를 사는 곳에 그쳤지만 지금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각 거점이 되는 역사마다 각종 문화시설이 꾸며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대중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한걸음 더 젊은 층과 교류하고 공감하기 위해 여러 행사들을 진행한다. 하루의 약 10번, 연간 2500회 정도의 예술무대를 지하철역에서 열어 발을 디딜 틈 없이 갑갑했던 지하철역사를 문화공연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무대에 서는 예술인들도 1년에 한 번 오디션을 통해 발탁돼 페루, 멕시코 등의 외국인 연주가에서부터 댄스동아리, 아카펠라그룹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3군데의 역에 미술관을 설치해 대중들에게 미술작품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시민노래자랑 등도 개최해 장기를 뽐내도록 한다.

역에 미술관 장터 운영
친근감 느끼도록 해

이렇듯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대중들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듦으로 인해 지하철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예술적으로 바꾸고 있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역사마다 새로운 재미를 부여한다. 주요 역사에 서점을 열어 미디어에 중독된 대중들에게 한 번쯤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 팔도 농·특산물을 지하철역에서 판매하며 다양한 지역의 물품들을 맛 볼 수 있는 재미도 제공해준다.

이렇게 지하철역이 어두침침한 공간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누구나가 즐기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로 변모한 것에서 최근 지하철에 달라진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최모(44·여)씨는 “시대가 변할수록 지하철의 분위기도 점점 트렌드에 맞게 변하는 것 같다”며 “약속이 있어 지하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주변에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아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고 답했다.    

지금은 지하철 문화가 다양하게 변모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하면 떠오르는 것은 ‘잡상인’들이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6월29일, 지하철에는 우연찮게 잡상인들이 보였다. 비오는 때를 맞춰서인지 우비·우산을 파는 사람들 일색이었다. “비오는 날의 필수품 우비, 집에 하나씩 갖다놓고 이 장마철에 대비해 보세요”라는 단련된 말투와 어색하지 않은 표정이 많은 연륜을 쌓은 듯 보였다.

최근 잡상인·구걸인들 집중 단속으로 많이 사라져
지하철 위치파악 실시간 가능, 스크린도어도 설치

예전에는 보통 파란색 단프라 박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단속에 신경써서인지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고 있었다.

잡상인들의 단속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하철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단속하려는 역무원·공익요원과 단속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잡상인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에 대한 집중 단속을 하면서 그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이던 잡상인들이 지금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현재 지하철에서 적발되는 잡상인들은 스티커를 발부받고 벌금 10만원을 내게 된다. 잡상인들 외에도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의 공공질서를 저해하는 사람들도 경범죄처벌법에 의거해 통상 3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있다.

유모(36·남)씨는 “요즘에 지하철을 타면 전보다 구걸하는 사람이나 잡상인들이 많이 사라져 지하철 내부가 더욱 쾌적해진 것 같다”며 “일순간의 계도활동으로 끝나지 말고 지하철 관계자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편안한 이동감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잡상인 집중단속 효과
열차위치 모니터 편리

지하철역사의 첨단 편의시설도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 중 하나다. 지하철역 내 열차위치 모니터는 현재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기다리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해소시켜준다. 장모(39·여)씨는 “지하철을 타러가도 앞뒤 열차 간격까지 다 파악이 되고 어디까지 가는 열차인지도 알 수 있어 좋다”며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여유있게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때 지하철역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던 자살 문제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왔다. 지하철의 이미지가 안 좋았던 것도 이 때문. 이를 방지하고자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고, 이후 지하철로 인한 자살률도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생긴 많은 문제점들이 최근 문물의 발달과 시대의 요구와 함께 맞물려 해결되며 지하철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속터미널·충무로역 등지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 문제는 다시 곱씹어볼 문제다. 주로 높은 연령층에서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지하철의 한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판에 발을 내디딜 시 좀 더 주의해야 한다”며 “그러나 에스컬레이터 자체에도 이상이 있는지에 대해서 세부적인 안전검사에도 조금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사당역에서 만난 금모(52·남)씨가 “앞으로 지하철이 대구·부산까지 연결되어서 전국을 하나로 묶는 연결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데서 지하철이 앞으로도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모습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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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