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모르는’ 주민참여예산제 속사정

“인증번호 올려” 모로 가도 투표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힘이 빠진다. 반대로 결과가 좋다 해도 의도가 잘못됐다면 그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의도와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과정에 대한 고민은 쉽게 잊히기 일쑤다. 망가진 과정 끝에 얻어낸 결과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A씨는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중 안내문을 한 장 받았다. ‘동작구 전자투표에 참여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종이에는 주민참여예산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투표 강요?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시민참여를 확대해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예산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2011년 9월부터 의무화됐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달 21일부터 2018년 시민참여예산사업 시민 엠보팅(mVoting)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우리 동네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을 선택할 수 있다. 

이번 사업 규모는 555억원으로 결정됐다. 서울시는 시민 엠보팅 결과 50%, 시민참여예산위원 40%, 예산학교 회원 10% 등 투표를 합산해 시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서 최종 결정했다.


시민 엠보팅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투표가 게재돼있다. ‘2017 동작구 주민참여예산제 투표’ 역시 그중 하나다. 객관식으로 진행되는 이 투표는 구 단위 일반사업 1개, 동 특성화사업 3개, 동 단위 일반사업 2개를 선정하기 위해 동작구청이 게재했다.

A씨가 어린이집을 통해 받은 안내문은 해당 투표를 위한 것이다. 안내문에는 상도1동장 명의로 “동작구에서는 각 동별로 신청한 2018년 사업비를 주민 투표수에 따라 차등 배분해주고 있다”며 “주민 여러분이 투표하는 만큼 상도1동이 많은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주민참여예산 투표하는데
어린이집서 인증번호 요구

또 투표일과 투표 방법, 투표 순서 등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동작구 전자 투표는 휴대폰과 컴퓨터로 접근이 가능하다. 시민 엠보팅 홈페이지에 접속해 총 6개의 사업을 선택한 후 약관과 개인정보 활용 방침에 동의한다고 체크하면 된다. 
 

이후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인증번호를 받을 수 있다. 인증번호를 입력하면 투표는 완료된다.

문제는 해당 안내문을 나눠준 어린이집서 이 인증번호를 어린이집 휴대폰 웹사이트 게시판에 댓글로 적도록 학부모들에게 요청했다는 점이다. 

A씨는 “투표 독려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인증번호를 적으라는 건 투표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인증번호를 통해 투표 내역을 보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학부모 입장서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으니 인증번호를 안 달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엄마들은 다 했는데 나만(댓글을) 안 쓰면 내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투표 강요는 절대 아니다”라며 “독려 차원서 참여 가능한 학부모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증번호 요구에 대해서는 “학부모들이 투표를 얼마나 했는지 어린이집 차원서 확인하려 했다”고 말했다.

A씨가 제기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안내문에는 구 단위 일반사업과 동 특성화사업, 동 단위 일반사업 등 투표대상 사업이 게재돼있다. 동작구청서 올린 투표를 보면 구 단위로 진행하는 일반사업은 총 9개, 동 특성화 사업은 각 동서 1개씩 총 15개다.

그렇지만 안내문에는 9개 사업 중 ‘냄새야 없어져라’만 적어놓았다. 동 특성화사업의 경우도 최대 투표 개수인 3개를 미리 뽑아놨다. ‘동작구 상징의 전통시장과 만나다’ ‘용마무지개길 조성사업’ ‘신대방 어울림 벚꽃 축제’ 등이다. 동 단위 일반 사업의 경우만 총 3개 중 2개에 투표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A씨는 “그것도 모범답안처럼 다 체크를 해놓은 것”이라며 “예를 든 게 아니라 투표대상을 정해줬다. 이게 투표 취지에 맞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우리 동(상도1동)과 관계있는 사업이라 뽑은 것”이라며 “투표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거듭 해명했다.

상도1동 주민센터 관계자 역시 “안내문은 주민들의 투표 참여를 늘리기 위해 우리 주민센터서 만들었다”며 “해당 어린이집에는 협조를 구하는 차원서 안내문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안내문에 투표대상 사업을 뽑아둔 것은 우리 동과 관련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인증번호 요구는 어린이집서 조금 과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투표대상 사업 미리 골라?
“동에 관한 사업이라” 해명

문제가 불거진 것은 상도1동 만이 아니다. 동작구 투표 관련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 자신을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지칭한 주민의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주민은 “동작구 노량진1동 주민센터 현장민원실은 투표를 조작하는 건가요? 사이트에 들어가기 불편하니 휴대폰 번호를 인증하면 동사무소서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줄 알았는데 제 번호로 동사무소서 밀고 있는 것을 투표했네요”라며 “단지 투표 독려 차원서 말한 건 줄만 알았지 제 번호를 인증해서 동사무소가 원하는 항목에 투표하라고는 안했는데 굉장히 불쾌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투표 독려를 명분으로 동이나 구에서 주력하는 사업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어르신들은 어플리케이션 사용에 서투르신 경우가 많아 주민센터서 도움을 드리고 있다”며 “그 과정서 투표대상을 미리 선택해놓고 인증번호만 적을 때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해당 글의 당사자에게는 설명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민참여예산제도를 관리하는 동작구청 기획예산과 관계자는 “주민센터나 어린이집 모두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 과한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며 “다른 의도를 가졌다기보다는 독려가 지나쳐 주민들이 불편함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과한 독려?

동작구청 홍보팀 관계자는 “사실 어플리케이션 등 주민참여예산 투표 시스템은 주민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돼있다”며 “그래서 독려를 하지 않으면 참여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해명했다. 이어 “동작구 주민 40만명 가운데 투표를 할 수 있는 인원은 30만명이 훨씬 넘지만 투표율은 10%에 머무르고 있다”며 “참여를 위해 홍보를 하는 과정서 인증번호를 받아 참여자 수를 파악하기 위한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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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