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사태’ 4당4색 동상이몽 활용법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7.04 08:45:28
  • 호수 1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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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안아야…폭탄 돌리기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대선 이후 정치권에 가장 큰 사건이 터졌다. 국민의당 제보조작 파문 사건이다. 새 정치를 표방했던 국민의당은 ‘당 해체설’까지 나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를 기회로 여기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일요시사>는 여‧야4당의 ‘이유미 활용법’을 살펴봤다. 
 

제보조작 파문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이씨는 지난달 29일 결국 구속됐다.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는 “문준용씨가 고용정보원 입사과정서 특혜를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조작 유포한 혐의의 실체규명을 위해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겠다”며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불러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보조작 파문
시련의 국당

이번 구속으로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대상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던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대선 때 국민의당이 제기했던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입사 의혹과 관련해 “제보된 카카오톡 화면 및 녹음 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공식 사과했다. 

박 위원장은 “당시 관련 자료를 제공한 당원이 직접 조작해 작성한 거짓 자료였다고 어제 고백했다”며 “당사자인 문 대통령과 준용씨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당이 당 차원서 공식 사과했지만 사건은 윗선 개입이 있었는지 혹은 이씨 단독행동이냐를 두고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이씨는 조작 증거를 당에 전달한 이 전 최고위원 지시 아래 조작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문준용 제보조작 파문 진상조사단장)은 지난달 28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22일부터 지난 5월6일까지 이씨와 이 전 최고위원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전체를 공개했다. 

이 의원은 카카오톡 내용을 바탕으로 “이씨와 이 전 최고위원이 제보 내용 조작을 공모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개된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이씨가 제보자들과 준용씨 특혜 채용 관련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은 내용을 캡처해 이 전 최고위원에게 전송하자 이 전 최고위원이 “이름을 보니 둘다 여자냐” “아버지랑 아는 사람 누구냐” 등의 질문을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의원은 “사전에 이씨와 이 전 최고위원이 (증거를) 조작하기로 했다면 이런 내용이 오고갈 수가 없다”며 두 사람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일축했다. 이 의원이 증거를 공개하면서 윗선 개입 의혹에 선을 긋고 있지만 의혹은 쉽사리 식지 않고 있다.

이씨가 안철수 전 대표의 제자라는 점, 이 전 최고위원이 안 전 대표의 인재영입 1호인사라는 점에서 윗선과의 교감설이 제기된다. 특히 대선 막바지에 문재인 당시 후보에 밀리고 있던 국민의당이 반전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선대위 등 당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도 나온다. 

윗선 개입 의혹은 ‘안철수 책임론’으로 번졌다. 당 내에서도 안 전 대표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국민의당 김태일 혁신위원장은 ‘문준용 제보조작 파문’과 관련해 “당의 선거기구가 사실 이것(제보 조작)을 소재로 해 아주 강력한 선거전을 펼쳤다”며 “안 전 대표가 빨리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조작에 직접적으로 가담하거나 그 사실을 인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선거대책기구 전반에 활용됐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설령 (안 전 대표가) 직접 개입이 되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후보라고 하는 분은 선거 과정서 최종적 책임을 지는 분이지 않느냐”라며 “그 과정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사건이 생겼는데 이에 대해 자신이 의사를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지적했다. 

고도의 물타기
막내린 새정치

진실공방과 별개로 정치권에선 이번 제보조작 파문이 특검행을 노린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제보조작 파문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현재 진행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이 나오면 함께 특검에서 더 철저히 규명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입이 열 개라도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지만 이것(제보조작) 자체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된다. (문 대통령 아들인) 준용씨와 관련된 의혹 문제도 차제에 털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 내에선 박 전 대표가 주장하는 특검은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 혁신위원장은 특검 주장을 정면비판하고 있고, 박 비상대책위원장도 “현 단계에선 적절치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특검은 ‘어불성설’ ‘적반하장’이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민주당은 국민의당의 특검 제안에 대해 “고도의 물타기 전략”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구두논평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선 당시 제보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우리가 필요 이상의 공세로 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왜 이 타이밍에 박 전 대표는 특검을 주장하고 나왔을까.

국민의당 특검 언급…민주당 뿔났다
결국 구속…윗선 개입 있다? 없다?

먼저 ‘털 것이 있다면 같이 털고 가자’는 이른바 논개작전이다. 현재 제보조작으로 이씨는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이 전 최고위원은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됐다. 언제 검찰의 칼끝이 국민의당 윗선을 향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만약 준용씨가 특검 조사를 받고 특혜의혹이 드러난다면 여론은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또, 국정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국민의당 일각서 특검을 주장하면서 반전계기 마련에 나서고 있다면 여당인 민주당은 직접적으로 호재를 맞는 모양새다. 최근 국무위원들의 각종 의혹과 낙마로 민주당은 야당에 공세를 취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제보조작을 ‘대선 공작 게이트’로 규정하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새 정치를 표방했던 국민의당이 이러한,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것에 국민들의 충격이 크실 것 같다”며 “그래서 이건 단순히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는 엄중한 상황 인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 제가 당 해체까지 주장하면 또 정치공세라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물타기를 할 것”이라며 ‘당 해체’ 압박 등에 대해선 수위를 조절했다. 

민주당 맹공
한국당 모르쇠


민주당은 국민의당에 당 해체까지 압박하는 것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지만 정계에선 국민의당이 이번 사태로 해체수순에 놓이게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흡수 통합하는 방식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힘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 내부서도 탈당 및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들리고 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당의 존폐가 걸린 심각한 사건이라는 점과 함께 일부는 탈당 후 민주당으로 옮기거나 ‘범여권’ 통합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의원총회 등을 통해 논의과정이 있겠지만 새 정부에 협조하는 자세로 전환하면서 각 의원 별로 지역구 챙기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다다르고 합당이 수면위로 떠오르면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향후 정계개편서 국민의당이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그림을 그려봄직하다. 만약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통합되면 현 야3당 구도는 야2당 구도로 바뀌게 되고 민주당은 과반수 이상 의석을 확보하게 돼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끝까지 간다…해체 또는 통합 수순
눈치 보는 한국당…국당과 도매금?

민주당이 이번 사태를 ‘대선 공작 게이트’로 규정하며 국민의당을 압박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선 전만 해도 준용씨에 대해 지명수배까지 내리며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사태 추이가 발전되면 어디까지 발전이 될지, 또 여러 가지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아 당사자가 아닌 입장서 조금 말을 아끼겠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당은 대선과정서 준용씨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특검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오히려 국민의당 보다 한 발 앞서 준용씨에 대한 의혹을 지적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번에 제보조작 파문으로 한국당은 국민의당과 함께 도매금으로 묶이지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검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 원내대표는 “의혹 조작 사건과 특혜채용 사건을 같이 특검으로 처리할 것인지는 수사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가 수사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수사결과에 따라 한국당도 확실한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이 무너질 경우 야당은 바른정당과 정의당만 남게 된다. 원내 3당으로서 여권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국민의당의 부재는 한국당에게는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할 하나의 창구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바른정당도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달 29일 논평을 통해 "만일 조금이라도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된다고 하면 특검까지도 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국당과 결을 달리했다. 

반전카드는?
좌초 가능성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제보조작 파문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국민의당에 대해 “국민의당의 대선 패배 후유증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찬바람’이 불 때까지는 확실한 반전카드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당이 분열하거나 좌초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철수의 시련

국민의당 제보조작 파문으로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현재 정치권에선 연일 안 전 대표 ‘책임론’이 들끓고 있고, 정계 은퇴에 대한 직간접적 주문도 적잖이 나오고 있다. 

안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에 입장 표명을 하는 것도 늦지 않다는 의견과 당의 존폐위기를 맞제된 데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경론도 등장했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지금은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는 것이 당내 의견으로 볼 수 있다”며 “안 전 대표가 조만간 공식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계은퇴’와 같은 극단의 선택을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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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