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 ③기업의 역습



“더 이상은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온갖 공세에 항상 앉아서 당하기만 했던 기업들이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법이다. 돌발 위기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예외 없이 ‘법적 대응’이란 칼을 꺼낸다. 그 대상도 광범위하다. 타사는 물론 언론을 불문하고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고소·고발을 꺼려온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지난 5월 삼성그룹에 한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 자료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홍모씨는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후배를 사칭해 수십억원을 요구했지만 결국 회사 측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 특검’사태로 뒤숭숭한 시점이었지만 홍씨와 일체 거래(?)없이 바로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농심에도 수상한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다. 허모씨는 농심 제품에서 애벌레가 나왔다며 무작정 돈을 요구했다. 무려 1억원이었다. 그는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언론사와 소비자단체 등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농심 측은 긴장했다. 잇단 이물질 파문 탓이었다. 그러나 농심은 자체 조사 결과 A씨가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주장하며 회사에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로 확인, 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농심 측은 “실제로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온 경우는 몰라도 일부러 이물질을 넣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옛날 같으면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어떡해서든 합의했지만 최근에는 샘플 조사 등 정확한 경로와 경위 조사를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내외 공세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소극적 태도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기업 및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해 ‘벙어리 냉가슴’앓던 과거와 달리 경·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응 방법은 십중팔구 형사상 고소·고발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돌발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기업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언론·정부기관 불문 외부 공세에 지체 없이 ‘법적대응’
“음해세력 추적”수사 의뢰 봇물… 수십억원 민소 뒤따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 불안정 속에서 효과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홍보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있다”며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부당한 입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끙끙 앓던 대외 대응을 강경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의 역습 타깃은 광범위하다. ‘끽해야’ 타사에 그쳤던 소송장 남발은 언론을 불문하고 심지어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한마디로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언론을 상대로 한 법적대응이다. 그동안 언론에 대해 수세적 태도를 보였던 기업들은 공세적 태도로 급선회하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에 악의적 보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이 언론사에 “정정보도문을 1개월 동안 게재할 것,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5백만원을 지급할 것, 이와 별도로 10억원의 손해배상금 및 소장 송부 다음날부터 지급일까지 연 20%의 이자를 지급할 것”등을 요구했다.
농협도 최근 한 주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역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 자사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했다는 까닭이다. 농협은 신문사와 기자에게 각각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언론 소송, 특히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며 “기업으로선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확대 해석되거나 지나친 유추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점에서 충격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대응이란 최후의 카드를 주체 없이 꺼내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위 제재에 불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지만 대부분 공정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삼성화재, 현대해상, LIG, 동부화재 등 10개 손보사들이 보험료 자율화가 시행된 2002년 4월부터 2006년까지 8개 일반손해보험상품의 보험료율 합의를 통해 공동 결정한 혐의(부당공동행위)를 적발해 총 5백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이와 관련 “독자적 부가율을 결정했고, 할인·할증률도 다른 손보사와 현저히 다르게 적용했다”며 공정위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대우건설과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등 4개 건설사도 공정위의 담합 처분에 항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공정위가 꼬리를 내린 기업도 있다. 바로 신세계다. 공정위는 2006년 11월 신세계의 월마트코리아 인수로 인천·부천, 안양·평촌, 포항, 대구 시지·경산 등 4개 지역에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해 점포매각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 9월 공정위 양도명령이 위법하다며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8월 화장품 업체들도 방문판매가 실질적으로 다단계판매라는 공정위의 시정조치처분을 받았으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공정위의 처분이 불합리하다는 취소 처분을 받아낸 바 있다.
기업들은 특히 루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유동성 관련 악성루머는 더더욱 그렇다.
악성루머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대림산업을 꼽을 수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다. 시중에 ‘대림산업이 산업은행의 차입금 만기 연장 거절로 새마을금고에 화의를 신청하면서 파산 절차를 밟을 것’이란 터무니없는 부도설이 퍼진 것.

대림산업의 사실 무근이란 적극적인 해명에도 헛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대림산업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을 색출하기 위해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정한 의도로 음해성 루머와 괴담을 퍼트리는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할 것”이라며 진원지가 밝혀지는 즉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뜻을 밝혔다.
한국 맥도널드도 지난 6월 촛불정국 당시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고 홈페이지가 해킹당하는 등 사이버 공격이 계속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이 고소·고발하는 사례와 반대로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소비자 권리 찾기’를 표방한 피해자들이 해당 기업에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단체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집단분쟁조정제는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단체소송제는 피해 소비자들을 대신해 소비자단체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위법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이들 소송은 소액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도입됐다.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진행되고 있는 소송이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지난달 박상돈(자유선진당) 의원이 국감에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옥션이 중국인 해커에게 1천만명의 회원 정보를 해킹 당했고, 하나로텔레콤 6백만명, GS칼텍스 1천1백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들 3사를 상대로 소송중인 건만 47건으로, 17만여 명이 1천9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해상 유조선 충돌 사고로 기름 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주민 6천8백64명은 15개월간 매달 20만원씩(총 2백5억원)의 생계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기업과 가장 많은 소송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의 실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단체인 자유기업원의 ‘참여연대 소송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1994년 설립 이후 지난 5월말까지 총 2백37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43.2%인 1백4건이 기업과 기업인이 대상이다.
절반이 넘는 53.8%(56건)가 회사 경영 및 지배구조 문제다. 유형별로는 형사 87건(36.7%), 민사 73건(30.8%), 행정 45건(19.0%), 헌법소원 32건(13.5%) 등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피소된 기업은 삼성그룹. 기업소송 1백4건 중 39건으로 34.5%가 삼성그룹 및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이다. 범현대가는 10.6%인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LG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등도 참여연대와 악연을 갖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며 “기업소송 행위는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승소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백4건 중 종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참여연대가 승소한 사건은 31건(29.8%)으로, 패소사건(46건·44.2%)보다 적었다. 기소·불기소 인원의 비율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의 기소 비율은 10.3%에 불과하다. 불기소 인원은 89.7%에 이른다. 참고로 검찰의 전체사건 기소·불기소 인원 비율은 각각 52.5%, 47.5%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기업소송에서 승소율보다 패소율이 높은 것은 사법기관의 재벌 봐주기의 전형이자 단면으로 볼 수 있다”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나는 등 면죄부를 주는 온정적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기업소송은?
정보유출 땐 ‘수만명에 수천억’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소송은 무엇일까.  바로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소송이다. 고객정보 유출사고를 일으킨 옥션과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등 3개사를 상대로 한 집단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47건으로, 17만여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소송금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 중국인 해커에 의해 1천만명 이상의 회원 정보를 해킹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옥션의 경우 총 19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접수된 상태. 소송 인원은 14만여명으로, 소송금액은 1천5백70억원이다. 옥션의 지난해 수수료 매출(1천7백억원)과 맞먹는 액수다.
지난 4월 고객 6백만명의 정보를 제휴 업체에 제공한 하나로텔레콤의 정보유출 사건은 총 18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1만1천여명의 소송인원이 1백23억원을 청구했다.

옥션, 14만여 명에 1천5백70억원
하나로텔, 1만1천명에 1백23억원
GS칼텍스, 3만명에 2백억원 소송

최근 1천1백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샌 GS칼텍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현재까지 10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3만여명이 소송에 참여중이며 소송가액은 2백억원 정도다. 여기에 소송 준비 중인 인원도 1만명에 육박해 소송금액은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확산되면서 소송 제기 인원도 최소 수천명에서 수만명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추가 소송 가능성도 있고, 판결 결과에 따라 청구 금액을 올릴 가능성도 있어 소송가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집단소송 확정판결 사례를 보면 ▲2005년 5월 회원 28만여명 명의가 도용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은 49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10만원 ▲2006년 3월 3만여명의 고객 이름이 유출된 국민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1천여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20만원 ▲2006년 9월 입사지원자 응시정보 일부가 유출된 LG전자 채용 사이트 해킹 사건은 30여 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70만원 등의 피해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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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