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7> 21년 전 그들은…

역사에 묻히고 역사가 살리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 창간 이후 <일요시사>는 격동의 현대사를 겪고 수많은 굴곡을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각계각층 인사들 역시 21년 전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요시사>는 창간을 맞아 유명인사들의 21년 전 모습을 담아봤다.

대중은 유명인사들의 과거에 관심이 많다. 각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이들이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의 눈에 띈 유명인들의 과거가 공개되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다. 대중은 현재 모습에서 한 번, 과거 일화서 한 번 그들을 ‘검증’한다.
 

강산이 두 번
그동안 무슨 일?

▲문재인 대통령 ‘문변’= 1996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서 조선족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당시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던 문 대통령은 페스카마호 사건의 2심부터 변호를 담당했다. 1심 판결에서 피의자 6명은 전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다음 해 4월 항소심에서 주범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주범 역시 노무현정부 말기 특별사면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에게 페스카마호 사건 변론은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노무현정부에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가해자들의 죄가 무겁지만 이들 또한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동포로서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칩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숫자 ‘18’과 묘한 인연이 있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청와대를 장악해 1979년 10·26사태로 죽음을 맞기까지 18년 동안 대통령의 딸로 살았다. 

이후 신당동 사택으로 이사해 1997년까지 18년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15대 대선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8년 만에야 공식적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그는 2007년 자서전서 “지금도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웃음이 나온다”고 표현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불구속 기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째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21년 전 이 회장 역시 감방 신세를 질 뻔했다. 이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서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1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1996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7년 10월 개천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사면됐다.

한치 앞 모를 리더들의 희로애락
인생 완전히 뒤바뀐 경우도 있어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MBC맨’=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언론계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는 손 사장은 21년 전에는 MBC맨이었다. 손 사장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수의를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한차례 큰 관심을 받았다. 1996년에도 MBC는 파업 여파에 휘말렸다. 

MBC를 살리고자 했던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손 사장은 1996년 11월 <말>지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변화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했다.
 

▲조국 민정수석 ‘미국 유학’=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서 승리한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누구를 등용할지를 두고 관심이 컸다. 박근혜정부서 검찰이 보여준 행태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선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정수석은 말 그대로 칼자루를 쥔, 검찰개혁을 수행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일 만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깜짝 발탁했다. 그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조 수석의 등용은 파격 인사라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 수석은 누구보다 빠른 삶을 살았다.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26세 나이로 최연소 교수가 됐다. 1996년에 그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1994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97년 1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국 수석의 말에 따르면 지독히 공부만 하던 시기였다고.
 

▲김훈 작가 ‘첫 장편’= 김훈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는 한국 대표 문인이다. 수사를 극도로 절제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한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판매순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시작, 불명예…
가지각색 과거

김 작가는 1994년, 47세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는데, 1996년엔 <TV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해 자신의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내놓았다. 작품은 문명에 지배당하는 한 소방관과 신석기 여인으로 비유된 장님 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문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현대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늘 뭉툭하게 깎은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에 써내려가는 그는 올해 1월, 첫 장편을 내놓은 지 21년 만에 9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신경숙 작가 ‘<전설>’= 신경숙 작가는 표절 논란을 겪으며 한국 대표 작가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품 <전설>을 1996년에 발표했다. 신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응준 작가가 두 작품의 문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시작된 표절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됐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이 있기 전 <엄마를 부탁해> <외딴 방> <리진> 등으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초특급 작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큰 노력
유명인사로 우뚝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두 작품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신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문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굴곡 경험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

 

▲배우 송강호 ‘영화 데뷔’= 지난해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의 관객수가 700만명을 돌파했다. 송강호는 극 중 조선인 일본 경찰로 출연해 생존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밀정>의 흥행 성공으로 송강호는 주연작 합산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첫 주연작인 <조용한 가족>부터 <밀정>에 이르기까지 22편의 작품에 동원한 관객수를 합한 것이다. 


그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부터 완성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강호는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해 이미 잔뼈가 굵은 배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연극배우의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송강호는 배고팠던 시절 열정과 노력으로 무대에 올랐고, 21년이 지난 현재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대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축구 박지성 ‘스승과 만남’= 1996년 박지성은 수원공고 1학년이었다. 박지성은 그 당시 축구에 대한 열정은 충만했지만 왜소한 체격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그런 그를 알아본 게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이다. 

이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키가 165㎝밖에 되지 않아 체격조건이 나빴지만 천부적인 지구력을 갖췄고 경기 운용 능력이 뛰어나 훌륭한 재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을 원하는 대학이 없자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니는 등 제자를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간신히 명지대에 진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전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월드컵서 골을 넣고, 해외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서 활약하는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발돋움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시작’= 1996년 7세의 김연아는 과천의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고모가 선물해준 낡고 빨간 피겨 부츠를 신은 채 빙판을 누볐다. 소녀는 14년 후 2010년 캐나다 밴쿠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서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여왕’으로 우뚝 섰다.

무대 내려오고
끝없는 추락도

현역 선수로 뛰는 내내 출전한 모든 경기서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압도적 기량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던 만큼 더욱 값졌다. 김연아는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김연아의 모든 관심은 내년에 있을 2018 평창 올림픽에 가 있다.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김연아는 “평창올림픽은 꽁꽁 얼어붙은 분단의 강을 건너 인종과 언어, 지역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인류애가 꽃피는 감동적인 순간을 꿈꾼다”며 “평창 대회는 인류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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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