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7> 21년 전 그들은…

역사에 묻히고 역사가 살리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 창간 이후 <일요시사>는 격동의 현대사를 겪고 수많은 굴곡을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각계각층 인사들 역시 21년 전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요시사>는 창간을 맞아 유명인사들의 21년 전 모습을 담아봤다.

대중은 유명인사들의 과거에 관심이 많다. 각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이들이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의 눈에 띈 유명인들의 과거가 공개되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다. 대중은 현재 모습에서 한 번, 과거 일화서 한 번 그들을 ‘검증’한다.
 

강산이 두 번
그동안 무슨 일?

▲문재인 대통령 ‘문변’= 1996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서 조선족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당시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던 문 대통령은 페스카마호 사건의 2심부터 변호를 담당했다. 1심 판결에서 피의자 6명은 전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다음 해 4월 항소심에서 주범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주범 역시 노무현정부 말기 특별사면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에게 페스카마호 사건 변론은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노무현정부에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가해자들의 죄가 무겁지만 이들 또한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동포로서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칩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숫자 ‘18’과 묘한 인연이 있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청와대를 장악해 1979년 10·26사태로 죽음을 맞기까지 18년 동안 대통령의 딸로 살았다. 

이후 신당동 사택으로 이사해 1997년까지 18년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15대 대선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8년 만에야 공식적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그는 2007년 자서전서 “지금도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웃음이 나온다”고 표현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불구속 기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째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21년 전 이 회장 역시 감방 신세를 질 뻔했다. 이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서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1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1996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7년 10월 개천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사면됐다.

한치 앞 모를 리더들의 희로애락
인생 완전히 뒤바뀐 경우도 있어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MBC맨’=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언론계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는 손 사장은 21년 전에는 MBC맨이었다. 손 사장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수의를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한차례 큰 관심을 받았다. 1996년에도 MBC는 파업 여파에 휘말렸다. 

MBC를 살리고자 했던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손 사장은 1996년 11월 <말>지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변화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했다.
 

▲조국 민정수석 ‘미국 유학’=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서 승리한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누구를 등용할지를 두고 관심이 컸다. 박근혜정부서 검찰이 보여준 행태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선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정수석은 말 그대로 칼자루를 쥔, 검찰개혁을 수행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일 만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깜짝 발탁했다. 그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조 수석의 등용은 파격 인사라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 수석은 누구보다 빠른 삶을 살았다.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26세 나이로 최연소 교수가 됐다. 1996년에 그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1994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97년 1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국 수석의 말에 따르면 지독히 공부만 하던 시기였다고.
 

▲김훈 작가 ‘첫 장편’= 김훈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는 한국 대표 문인이다. 수사를 극도로 절제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한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판매순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시작, 불명예…
가지각색 과거

김 작가는 1994년, 47세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는데, 1996년엔 <TV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해 자신의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내놓았다. 작품은 문명에 지배당하는 한 소방관과 신석기 여인으로 비유된 장님 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문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현대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늘 뭉툭하게 깎은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에 써내려가는 그는 올해 1월, 첫 장편을 내놓은 지 21년 만에 9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신경숙 작가 ‘<전설>’= 신경숙 작가는 표절 논란을 겪으며 한국 대표 작가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품 <전설>을 1996년에 발표했다. 신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응준 작가가 두 작품의 문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시작된 표절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됐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이 있기 전 <엄마를 부탁해> <외딴 방> <리진> 등으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초특급 작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큰 노력
유명인사로 우뚝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두 작품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신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문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굴곡 경험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

 

▲배우 송강호 ‘영화 데뷔’= 지난해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의 관객수가 700만명을 돌파했다. 송강호는 극 중 조선인 일본 경찰로 출연해 생존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밀정>의 흥행 성공으로 송강호는 주연작 합산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첫 주연작인 <조용한 가족>부터 <밀정>에 이르기까지 22편의 작품에 동원한 관객수를 합한 것이다. 


그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부터 완성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강호는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해 이미 잔뼈가 굵은 배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연극배우의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송강호는 배고팠던 시절 열정과 노력으로 무대에 올랐고, 21년이 지난 현재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대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축구 박지성 ‘스승과 만남’= 1996년 박지성은 수원공고 1학년이었다. 박지성은 그 당시 축구에 대한 열정은 충만했지만 왜소한 체격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그런 그를 알아본 게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이다. 

이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키가 165㎝밖에 되지 않아 체격조건이 나빴지만 천부적인 지구력을 갖췄고 경기 운용 능력이 뛰어나 훌륭한 재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을 원하는 대학이 없자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니는 등 제자를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간신히 명지대에 진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전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월드컵서 골을 넣고, 해외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서 활약하는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발돋움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시작’= 1996년 7세의 김연아는 과천의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고모가 선물해준 낡고 빨간 피겨 부츠를 신은 채 빙판을 누볐다. 소녀는 14년 후 2010년 캐나다 밴쿠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서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여왕’으로 우뚝 섰다.

무대 내려오고
끝없는 추락도

현역 선수로 뛰는 내내 출전한 모든 경기서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압도적 기량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던 만큼 더욱 값졌다. 김연아는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김연아의 모든 관심은 내년에 있을 2018 평창 올림픽에 가 있다.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김연아는 “평창올림픽은 꽁꽁 얼어붙은 분단의 강을 건너 인종과 언어, 지역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인류애가 꽃피는 감동적인 순간을 꿈꾼다”며 “평창 대회는 인류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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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