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적폐청산 퍼스트 플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5.16 09:49:31
  • 호수 1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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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부터 정리…숙청 피바람 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촛불의 승리다.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적폐청산’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민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문재인정권이 향후 이명박, 박근혜 전임 정권에서 묻혔던 각종 비리를 제대로 손볼지 관심이 쏠린 이유다. 이 외에도 정·재계를 향한 대대적인 사정드라이브를 걸지 초미의 관심사다.
 

‘제가 여태까지 쓴 글과 댓글 삭제를 부탁드립니다.’ 최근 ‘일베’(일간베스트)서 재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종료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9일 오후 일베 ‘건의게시판’에 1분 단위로 글, 답글 등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는 것.

이 ‘4대강’
박 ‘세월호’

한 일베 사용자는 게시물 제목으로 ‘댓글은 모두 삭제했다. 일베 간 글들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남겼다. 또 다른 사용자는 ‘증거 안 남게 지금부터 정리하자’고 쓰기도 했다. ‘내 댓글과 문의 글만 삭제 하는 건가?’ 등 운영 방침에 관한 질문도 이어지고 있다.

일베는 그동안 폐륜적 언행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사회악’ 혹은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곤 했다. 적폐청산은 문 대표의 1호 공약이다. 그 대상에 일베도 포함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삭제 요청을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적폐청산은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대선 당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적폐청산과 개혁(35.2%)을 우선 투표 기준으로 꼽았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적폐청산을 열망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런 민심은 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우선 지난 이명박, 박근혜정권 9년간 묻혔던 부패 의혹과 정책 실패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할지가 관심사다.

이명박 정권에선 4대강 사업이 적폐의 대상으로 보인다. 정치권 등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공약발표와 TV 토론 등을 통해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가려내기 위한 민관 공동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는 구상을 제시한 상태다. 이를 통해 4대강의 수질오염 실태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보·댐의 상시개방이나 보 철거 및 재자연화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직자 수사 공수처 설치 가시화
사실상 최대 권력기관 검찰 겨냥?

또 4대강이 온통 녹조로 덮여버리는 상황을 빗댄 ‘녹조 라테’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자 댐과 저수지, 보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방류량을 늘리는 댐-보-저수지 연계운영 방안을 추진하는 등 녹조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연초에는 16개 보의 방류 한도를 기존 ‘양수제약’ 수위에서 ‘지하수 제약’ 수위까지 낮추고 시기도 녹조 창궐 기간인 6~7월에서 연중 수시로 확대한 바 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게 됨으로써 보를 유지하면서 수질을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를 아예 걷어내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4대강 사업 과정서 제기된 혈세낭비 등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이명박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된 4대강사업은 국민적인 반대에도 강행된 토목사업인데 지금도 혈세가 더 투입돼야 한다는 점에서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불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치적으로 내세우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는 정반대로 엇갈린다.
 

환경학자들은 4대강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국토환경에 대한 반역’이라고 각각 규정했다. 수십조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됐지만 4대강사업에 대한 수사는 지금껏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정권에선 세월호 진상규명이 초미의 관심사다.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세월호 재수사’ 의지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세월호의 침몰과 인양에 대한 의혹,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참사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이 묘연한 상태다. 당장 세월호 침몰 원인부터 불명확하다.

책임자 색출
진상규명부터

정부가 실시한 각종 조사는 세월호의 복원성 저하, 과적, 고박 불량, 급변침 등을 이유로 꼽고 있지만, 법원은 조타기 이상 등 선체 결함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인양한 선체를 정밀조사해야 하지만 증거 훼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구조 실패 역시 진상규명의 중요한 줄기다. 각종 자료는 당시 해경이 충분히 더 많은 승객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책임자 처벌은 참사를 딛고 앞으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세월호 선장·선원과 선사인 청해진해운 간부 등을 제외하면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는 현장에 출동한 김경일 전 123정 정장이 유일하다. 김 전 정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반면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과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목포해경서장 등 지휘 계통의 책임자들은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게 다였다. 이들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지시를 내리는 등 책임을 방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구조활동을 벌이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세월호 수사를 방해한 의혹이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재수사도 적폐청산의 대상에 올라와 있다. 검찰 조사 중간에 검사와 수사관 앞에서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민정수석 시절 자신의 수사 내용을 보고받아 ‘셀프 수사’ 의혹이 불거진 것도 국민적 공분의 근거가 됐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미진한 수사를 지적하며 각종 의혹을 추가로 조사할 특별검사팀 발족을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45명이 최근 ‘우병우 특검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특검 대신 특임검사를 임명해 사건을 재수사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 전 수석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관련자 중 홀로 구속을 피해가자 검찰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때문에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와중에 차기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내정되면서 검찰은 충격에 빠졌다.


조 교수는 검찰 출신이 아닌 데다 고강도 검찰 개혁을 외쳐온 대표적 인사다. 조 교수의 민정수석 임명이 이뤄질 경우 이는 곧 검찰이 적폐청산을 외쳐온 문 대통령의 첫 개혁 타깃이 된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검찰을 공공연히 지목해왔다.

‘친박’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숙청도 진행 중이다. 먼저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특혜 채용 의혹으로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재판 중이다. 그런데 재판 상황이 최 의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진공 특혜 채용 관련 위증 교사를 한 혐의로 구속된 최 의원 비서관 재판서 ‘최 의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진공은 2013년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인턴 직원 출신인 황모씨를 신입사원으로 채용했다. 1차 서류 심사의 합격선은 170등이었다. 황씨는 2299등으로 전체 응시자 중에서도 하위권이었다. 중진공은 자격이 안 되는 황씨를 합격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 시험 성적을 조작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2016년 1월 중진공 직원 채용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박 전 이사장과 권모 운영지원실장을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검찰은 최 의원을 한 차례 서면조사만으로 채용 압력과 무관하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요주의 사람들
걸리면 끝이다


최 의원 채용 외압 사건은 잊혀졌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이 법정서 진술을 바꾸면서 사건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2016년 9월 중순 열린 공판서 “면접 결과를 확인하고 황씨를 불합격 처리하겠다고 최 의원에게 보고했다. 최 의원은 ‘황씨가 성실하고 괜찮으니 믿고 써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최 의원 비서관 정모씨가 중진공 청탁 채용의 핵심 증인에게 최 의원이 연루되지 않도록 위증 교사한 혐의로 지난해 12월16일 구속됐다. 현재 정씨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 의원의 첫 재판은 오는 19일에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최 의원 측의 요청으로 6월2일로 연기됐다.

또 다른 친박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도 선거법 위반혐의로 재판 중이다. 김 의원은 제20대 총선 당내 경선 기간 개시일인 지난해 3월 12일 선거구민 9만1158명에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이행평가 71.4%로 강원도 3위’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됐으나 춘천시 선관위가 이에 불복해 재정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의 공소 제기 결정으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이명박근혜 정권 잃어버린 10년 
조직·인적 쇄신 ‘탈탈 털린다’

향후 문재인정권에선 재계를 향한 사정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재확인 되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통령 취임선서에 “선거 과정서 약속했듯이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다. 동시에 재벌 개혁에도 앞장서겠다”며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정경유착이란 말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 내부서도 새 정권을 맞이해 사냥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선거 끝난 직후라 공안 사건이 주류를 이루겠지만, 기업 수사도 현재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서 삼성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 중 일부에 추가로 뇌물공여 혐의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기업에 대한 정경유착형 비리 척결을 위해 대대적인 사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수사에서 검찰은 롯데를 주목했다. 2016년 3월14일 박 전 대통령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청탁을 받고 면세점을 추가로 허가한 의혹이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2015년 11월 면세점 특허심사서 탈락했지만, 이듬해 4월 정부가 대기업 3곳에 추가로 면세점을 내주기로 하면서 특허권을 찾아왔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일,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같은 달 19일 장선욱 롯데면세점 대표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됐다.
 

검찰은 신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지난해 박 전 대통령과 독대 당시에 오간 대화 내용과 이후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과정에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또 2015년 11월 면세점 갱신 심사서 탈락한 롯데가 출연금 등을 낸 후 정부의 신규 사업자 공고를 통해 면세점 사업자로 추가 선정된 게 아닌지를 의심하고 조사했다.

‘재벌개혁’
재계도 긴장

검찰은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서 롯데가 낸 출연금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만 적용했지만 추가 조사 과정에 정황이 드러날 경우 혐의가 추가될 수도 있다.

CJ그룹도 손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경우 관련자 조사를 통해 수사 가능성이 거론된 만큼 이재현 CJ그룹 회장 사면 등 현안 해결을 위해 재단에 출연했다는 ‘사면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 부처도 피바람 예고

정부 부처의 장·차관들이 지난 8일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에 사직서를 제출한 공무원 중에는 임기가 정해져 있는 정무직 공무원도 일부 포함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인사처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문 대통령에게 이들 공무원의 사표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들 정무직 공무원에 대한 사표 수리 여부는 전적으로 문 대통령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일각에선 차기 정부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표를 선별적으로 수리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의 각료를 모두 해임한다면 상당 기간 국무회의를 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헌법 제88조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된다. 현재 국무회의의 정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18명 등 20명이고, 회의를 열기 위한 정족수는 과반수인 11명이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 출범 초기에는 상당 기간 박근혜 정부 각료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인사청문회가 필요하지 않은 국무조정실장(장관급)과 각 부처 차관의 경우 가능한 한 빨리 임명 절차를 마무리하고, 당분간은 차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황 권한대행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문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하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와 함께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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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