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 기획특집>⑫돌연 은퇴선언 ‘10대들의 대통령’ 서태지

박수 칠 때 떠나자?

서태지는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2년 데뷔 당시 한국에서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풍의 음악으로 나타나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현재는 탤런트 이지아와의 소송문제로 인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북공고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던 서태지. 이미 데뷔 전 그룹 시나위에서 김종서와 함께 베이스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며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었다. 이후 서태지는 91년 당시 최고의 춤꾼으로 활약하던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게 돼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을 결성,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랩 댄스곡’ 풍의 데뷔곡 난 알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현란한 안무로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혜성같이 가요계에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서태지에게는 ‘10대들의 대통령’ ‘X세대 문화의 상징’ 등 수 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여진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당시 많지는 않았고 당시 음악관계자들조차도 그들의 음악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1996년 돌연 은퇴 선언

그러나 10대들에게 서태지는 하나의 문화아이콘이었다. 각종 사회현실을 비판하던 노래 가사와 당시 파격적인 옷차림 등이 신세대들에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표한 2집 하여가 3집 교실이데아 4집 컴백 홈도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끌며 서태지는 가요계 최고의 인기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서태지가 한국 가요계의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당시 트로트와 발라드로 일관되던 가요계에 서태지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장르를 한국적인 색깔을 잘 입혀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R&B, 힙합, 댄스, 미디엄 템포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가진 후배 가수들이 나오며 서태지의 음악은 한국가요계 시장의 흐름을 바꿔놓는 기폭제가 되었다. 

계속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던 서태지는 그러나 1996년 1월22일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은퇴선언에 팬들은 물론 사회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은퇴 선언은 특별한 이유도 내놓지 않은 채 소속사를 통해서 밝힌 것이라 그의 은퇴심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서태지의 팬들은 엄청난 히스테리 증상을 보였다. 그 당시 전국의 팬들이 서태지의 집 앞에 몰려와 장사진을 이뤘고 기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우는 사람, 자살하겠다는 사람 등으로 전국이 들썩였다.

은퇴 배경에 ‘조폭개입설’ 등 온갖 설 난무
최근 이지와와 소송 문제로 이미지 치명적 타격

또 서태지의 은퇴선언에 다양한 루머도 떠돌았다. 조폭이 연루됐다는 ‘조폭개입설’ 팀원 간의 사이가 안 좋았다는 ‘팀불화설’ 서태지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건강악화설’ 등의 여러 소문들이 퍼다하게 흘러나갔다. 특히 이 중에 서태지의 은퇴에 조폭이 개입됐다는 ‘조폭개입설’이 큰 관심을 모았다. 이에 경찰은 본격적으로 서태지의 은퇴와 조폭간의 연루 연부에 대해 집중 수사했으나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수사는 마무리됐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은퇴 선언 후 계속 잠적 해오던 서태지는 은퇴를 선언한 지 9일 뒤인 1월31일 오전 10시 45분 서울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에서 고별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그는 “4년간의 가수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간다”며 심경을 털어놓았다.

은퇴 이유에 대해서는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창조의 고통이 너무 커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지금,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태지는 “여행을 통해 아픈 마음을 안정시키고 폭넓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며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미국 LA로 떠난다. 이후 서태지의 은퇴 심경을 담은 고별 앨범, 타이틀곡 굿바이가 나오고 이 음악을 마지막으로 팬들은 서태지의 음악과 이별하게 된다.    

이지아와 결혼·이혼 충격

이렇게 팬들의 사랑을 뒤로 한 채 은퇴를 선언했던 서태지는 1998년 7월 한국 가요계에 다시 문을 두드린다. 이번엔 솔로가수로 변신해 5집 앨범(솔로 1집) Seo tai ji를 발표하며 큰 화제를 모으게 된다. 비록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5집 음반은 마치 날개가 돋친 듯이 팔리며 그의 변함없는 인기를 실감케 했다. 이후 잠잠하게 있던 서태지는 은퇴를 선언한지 4년 7개월 만인 2000년. 본격적인 컴백을 알리며 한국에 입국한다. 그는 6집 앨범 울트라맨이야로 돌아왔고 그를 기다렸던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같은 해 9월 컴백기념 콘서트도 여는 등 꾸준한 활동을 한다. 2004년 7집 앨범 7th Issue 2009년 8집 앨범 Seotaiji 8th Atomos도 내며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지난 4월 서태지는 팬들에게 1996년 은퇴를 선언했을 때보다 더 큰 메가톤급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서태지가 탤런트 이지아와 부부관계였다는 것. 이 사실은 이지아가 지난 4월 18일 서태지에게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사실에 대해 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서태지가 데뷔 후 지금까지도 일절 신비주의를 유지한 채 자신의 사생활을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태지가 결혼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또 그 상대가 이지아란 사실만으로도 팬들은 아연실색했다.

서태지와의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고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이지아는 지난 4월30일 ‘소 취하’를 결정하며 이번 사건의 확대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5월17일 서태지는 이지아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 취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며 이 사건에 대해 종지부를 찍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앞으로 이 사건이 또 재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해두겠다는 것.

그간 이 사건이 진행되오며 서태지는 여배우 염문설, 10억+α설 등의 각종 루머에 휩싸이기도 해 이번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지금껏 ‘신비주의’로 쌓아 왔던 이미지에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으로 데뷔 20주년을 맞는 서태지는 현재 9집 앨범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팬들은 이번 사태가 무사히 마무리되어 서태지의 음악을 하루빨리 들을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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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