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듣보잡’ 대선후보들 열전

안 될 줄 알면서도…3억짜리 얼굴도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후보에 대한 주목도는 ‘빈익빈 부익부’다. 대선 레이스가 막판에 접어들수록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은 지지율이 높은 후보에게 집중된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외면받기 일쑤다. 그럼에도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있다. <일요시사>가 현재 주목도가 높은 원내 5당 후보들을 제외한 10명의 후보를 조명해봤다.

19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달 9일이면 국민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게 된다. 15∼16일은 대선 후보 등록기간이었다. 양일간 등록한 후보는 15명에 달했다. 역대 최다 후보 등록으로, 17대 대선 때 12명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통일한국당 남재준 후보,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후보, 홍익당 윤홍식 후보, 무소속 김민찬 후보(기호순) 등이다.

역대 최다 후보
투표용지만 30센티

선거법상 국회 원내 의석이 있는 정당 후보가 우선 순위이며 원내 정당의 경우 의석수 순으로 기호를 배정받는다. 원외 정당 후보들은 정당명의 가나다순이다. 무소속 후보는 추첨을 통해 기호가 정해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후보자 15명 기준 투표용지의 길이는 약 28.5㎝에 이른다. 선관위 안내문을 포함, 16장에 이르는 벽보를 이어 붙이면 그 길이만 10m가 넘는다.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 조 후보는 지난 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박(친 박근혜) 세력이 주축이 돼 만든 신생 정당이다. 이후 새누리당은 지난 11일 조 후보를 19대 대선 후보로 추대했다.


새누리당은 “단독 입후보한 조 의원을 당헌당규 규정에 따라 별도 국민 참여경선 없이 후보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조 후보는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해주셔서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시밭길에 큰 짐을 지고 가는 것 같다”며 “새누리당 돌풍이 실감날 정도의 관심과 지지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원내 1석을 배경으로 기호 6번을 배정받은 조 후보는 유세송, 선거 포스터 등을 이용,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 후보는 태극무늬 티셔츠를 입은 곰을 넣은 공식 선거 포스터나 동요 ‘곰 세 마리’를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을 넣어 개사한 유세송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 장 후보는 DJ의 젊은 가신, 국회의원, 시사 프로그램 MC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졌다. 그는 지난 1월 서울장충체육관서 자신의 책 <중국의 밀어내기 미국의 버티기> <큰 바위 얼굴>로 북콘서트를 열고 세를 과시했다. 당시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장 후보는 국민의당 입당을 타진했으나 종편 TV 프로그램 진행 중 5·18 민주화운동 폄훼발언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이후 3월14일 광주시의회서 공식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고, 국민대통합당 창당을 선언했다. 올해 53세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젊은 편인 장 후보는 SNS, 유튜브 등을 통해 표심 잡기에 나섰다.

유튜브 공식채널을 개설, 자신의 정책을 담은 동영상으로 홍보 효과를 노리고 있다. 장 후보는 지난 18일 대전 중앙시장을 찾아 “1%의 기득권이 아닌 골목상권과 제조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99%의 서민들의 희망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강력한 경제성장 정책으로 쪼들린 경제와 복지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 5선 국회의원이자 MB정부 시절 특임장관을 지낸 이 후보 역시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후보는 지난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복면을 쓴 뒤 “소속 당과 이름, 얼굴을 가리고 누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릴 수 있는 후보인지 정책토론을 하자”며 복면토론을 요구했다.

3월20일 이 후보는 “대통령이 돼 1년 안에 나라의 틀을 바꾸고 물러나겠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늘푸른한국당은 원외정당이기 때문에 국고지원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또 창당 3개월 만에 치르는 선거라 조직력서도 열세다.


역대 최다 15명 등록 ‘후보 난립’
군소후보들도 메이저·마이너 갈려

늘푸른한국당 측은 5억원 규모의 ‘초절약’ 대선을 치르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이라며 “대선서 돈 덜 쓰고 선거운동하는 새로운 기록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밝혔다.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김 후보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 출신이다. 앞서 2011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서 최루탄을 터트린 사건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대법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후보는 지난해 3월 흙수저당, 비정규직철폐당, 농민당이 연합해 창당한 민중연합당에 입당, 1년 뒤인 올 3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17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유세를 펼치며 “대통령이 되면 전시작전지휘권을 환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어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 없이 미국의 압력에 굴종해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통일한국당 남재준 후보= 박근혜정부 첫 국정원장 출신인 남 후보도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남 후보는 서해 북방한계선 논란과 관련해 2013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을 당시 원장이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한창 피어오를 무렵이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드 배치를 넘어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전술핵 재배치와 경우에 따라 독자적인 핵무장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안홍준 전 의원이 2015년 창당한 통일한국당은 남 후보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한국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건국 정신 및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족중흥 정신 등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보수 정당이다.

남 후보는 14일 “지금 제도로는 무소속 후보의 승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충고를 토대로 정체성과 일치하는 통일한국당의 후보 추대 제의를 받아들인다”며 수락 의사를 밝혔다.

이색 홍보로
한 표만 호소

조원진·장성민·이재오·김선동·남재준(기호순) 후보는 정치에 관심 있는 유권자들에게는 미약하나마 지명도가 있는 경우다.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국정 요직을 맡는 등 언론에 오르내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목도가 절정에 이른 원내 5당 후보나 미미하게라도 알려진 5명의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는 말 그대로 ‘누구세요’ 수준의 인지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직선거 기탁금 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탁금 납부제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선거 등에서 후보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후보등록 신청 시 관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법률이 정한 일정금액을 기탁하도록 하는 제도다. 후보자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경우 기탁금을 반액 또는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

기탁금 3억 내야
득표율 10% 이하 ‘0원’


공직선거법 제56조에 따르면 대선 후보는 기탁금으로 3억원을 내야 한다. 후보들은 최종득표율이 15% 이상인 경우 전액, 10% 이상 15% 미만인 경우 반액을 선거일 후 30일 이내에 보전받을 수 있다. 10% 이하일 경우 기탁금은 국고로 귀속된다. TV토론회에 출연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원내 5당 후보 중에도 기탁금 반환 여부가 불분명한 후보가 있을 정도로 득표율 10%는 매우 높은 수치다. 반전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군소정당 후보들에게는 꿈의 득표율이나 다름없다.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 포털사이트서 오 후보를 검색하면 ‘하하그룹 회장’이라는 이력이 나온다. 하하그룹은 의료용 대장 세정기를 판매하는 업체다. 오 후보는 국제금융 혁신 주도국을 건설하겠다는 이색 공약을 내놨다. “지구촌을 운영하는 국제금융그룹 산하의 금융·법리·재단·과학 등 7개 본부를 유치해 한국을 글로벌 중심축으로 우뚝 세우겠다”는 공약이다.

방문판매 등과 관련한 법령을 개정하고 폐지해 유통업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공약은 자신의 사업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는다. 오 후보는 이 공약을 통해 800만명 이상의 사업자를 구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후보는 1976년과 1982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각각 징역 1년6월과 집행유예 3년,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0년에는 사기죄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는 등 대선후보들 중에서 전과 이력으로는 공동 2위다. 또 후보들 중 여성인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이 후보는 전과 이력에 있어서만큼은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후보는 2004년 공직선거법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으로 벌금 1500만원, 2005년에는 소음진동규제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8년 8·15특사로 사면받았다. 이후 2010년 업무방해와 권리행사방해로 벌금 100만원, 2012년 상해죄로 벌금 300만원, 2014년 식품위생법과 공중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 전과 5범의 이력이 있다. 벌금 총합계만 2500만원에 이른다.

올해 43세로 최연소 후보인 이 후보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고, 2004년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떨어졌다. 부동산개발업 및 임대업을 해왔다는 이 후보는 65억3947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안철수 후보(1196억9000여만원)에 이어 재산 순위 2위를 기록했다.


그는 국정원장·대법원장·감사원장 선거로 선출, 초·중·고·대학교 통폐합, 군 복무기간 16개월로 단축 등의 공약을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후보가 바로 나”라며 “선거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당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후보= 국가보훈처 산하 제대군인지원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 후보는 김영란법 폐지, 기초의원 폐지, 사이버특수군 10만명 양병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각양각색 이력과 출마 이유
인지도 높이려 훗날 도모?

김 후보는 사기 2건 등 전과 3범의 이력을 갖고 있다. 2002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듬해에도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 2003년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후보 측은 서울, 경기지역 외 일부 지방에 벽보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지역에선 김 후보의 벽보 없이 14명 후보자들의 것만 부착됐다.

▲홍익당 윤홍식 후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보도 있다. 윤 후보는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자는 정신을 사회 제반 분야를 넘어 정치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대학서 사학과 철학을 전공한 후 13년간 20대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인문학 학원을 운영해왔다. 5년 전부터는 유튜브서 무료 인문학 강의도 진행했다.

그가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지난해 11월 윤 후보는 창당발기인 서명 작업에 돌입하면서 대권을 꿈꿨다. 독립운동가·순직자·의인 등의 후손에 최대한 지원, 공직자 채용 시 양심평가지표 도입, 방산비리 추적 전담조직 구성 등의 공약을 앞세웠다.

윤 후보는 대선 기탁금 3억원을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강의를 듣는 해외동포들이 선거 자금을 후원해 4억원 정도를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는 “최순실 사태 이후 기존 정치권서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됐다”며 “평범한 국민도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출마했다”고 밝혔다.

▲무소속 김민찬 후보= 김 후보는 15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당적이 없는 무소속 후보다. 원광디지털대 자연건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템플턴대 상담심리학과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문화예술학회인 ‘월드마스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월드마스터위원회는 김 후보가 국내외를 오가며 발굴한 장인들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단체다.

비무장지대(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설, 전통 문화 보존에 전념하는 각계 명인 및 명장 발굴, 문화예술인을 위한 다각적인 일자리 창출 등 주요 공약은 문화예술 분야에 치중돼있다. 그는 한국을 세계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외에도 부처 및 공공기관 내부서 이뤄지는 상시 감사 체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국가진단위원회 설치 등을 주장했다. 빚을 내 기탁금을 마련했다는 김 후보는 “장난으로 출마한 게 아니다”며 “국민은 국정에 참여할 수 없다는 열패감을 타파하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24일 군소후보 10명을 대상으로 비초청 후보자 토론회를 진행한다. 공중파, 종편, 선관위 등이 주관하는 총 6번의 토론회 중 군소후보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이번 한 번에 불과하다.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는 이른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식으로 대선 주자를 나눠 TV토론회를 실시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마이너 후보들
토론도 한 번뿐

이 후보는 “후보자들이 3억원의 기탁금을 동일하게 냈음에도 똑같은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하다”며 “특히 토론회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눠 후보자를 차별하면 선거 결과에 치명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82조는 국회 5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이 추천한 후보만 초청후보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다.

한편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이들 군소후보의 눈은 대선 너머에 고정돼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 후보들은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등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으로 출사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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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