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같은 특검’ 90일 총결산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3.06 10:27:16
  • 호수 1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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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턱밑까지 역대급 칼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90일간의 특검수사가 막을 내렸다. 정권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무엇보다 성역이라 불렸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시키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않아 아직 수사가 미진한 부역자들을 엄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특검팀이 지난달 28일을 끝으로 90일 만에 해체됐다. 지난달 27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측은 이날 오전 공식 브리핑을 통해 “황 권한대행이 특검연장을 불수용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공식발표했다. 황 권한대행의 연장 불승인에 따라 특검팀도 종료 수순에 돌입했다.

역대 특검 중
단연 최고 평가

특검팀은 박근혜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원하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 지난해 12월1일 출범했다. 특검팀은 특검 외에 특검보 4명, 파견 검사 20명, 특별수사관 40명, 검찰수사관과 파견 공무원 40명 등 105명에 달해 ‘블록버스터 특검’이란 평을 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윤석열 수사팀장(58·사법연수원 23기)과 한동훈(44·사법연수원 27기) 등 검찰 대표적 ‘특수통’들을 비롯해 공인회계사 출신인 이복현(45·사법연수원 32기) 검사 등 수사력과 전문성을 갖춘 에이스들이 모여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의혹들을 파헤쳤다. 지난 11번의 특검팀과 비교할 때 성과도 뚜렷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1일 황 권한대행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첫발을 뗐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6일 3만5000쪽 분량의 수사기록을 검찰로부터 넘겨받으면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범위와 기록이 방대한 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특검팀은 상당히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김기춘, 안종범, 정호성…
정권 실세들 줄줄이 구속

특검팀은 그간 뇌물죄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수사의 중심축으로 뒀다. 이 외에도 정유라씨 이화여대 입시비리, 비선 진료 의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도 동시다발 수사를 벌였다. 뇌물죄 수사의 핵심은 삼성그룹이었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는 데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고, 최순실씨 일가에 가장 적극적으로 뇌물을 건넸다.

이후 현재까지 전·현직 장관급 인사 5명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13명을 구속하고 13명을 기소하는 성과를 남겼다.
 

특검팀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시작으로 13명을 재판에 넘겼다. 최씨 딸 정씨의 부정입학 등 특혜 의혹과 관련해 남궁곤 이화여대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 류철균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과 관련해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덕·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5명을 구속기소했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2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팀은 또 최씨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인 김영재씨의 부인이자 의료용품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인 박채윤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성과 뚜렷
한계도 또렷

하지만 삼성 수사과정엔 위기가 있었다. 특검팀은 1월16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19일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특검팀의 수사동력이 급격히 휘청이며 최대 위기로 꼽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특검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수사대상을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으로 넓혔다. 이때 특검팀은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 자체를 뇌물의 대가로 판단하면서 보다 수사를 확대했다.

1월20일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대한승마협회 부회장), 같은달 25일 김종중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김신 삼성물산 사장이 소환됐다. 2월8일에는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정찬우 전 금융위 부위원장을 불렀고, 다음날인 9일에는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최순실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13일 특검은 이 부회장을  재소환한 뒤 14일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면서 승부수를 띄웠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삼성그룹의 총수가 처음으로 구속되는 순간이자, 뇌물죄 수사의법리적 소명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신호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도 뇌물죄 부문과 함께 특검팀이 가장 공들인 수사로 꼽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우호적인 문화계 인사 약 1만명의 명단을 적은 문서를 일컫는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수사로 김 전 비서실장, 조 전 장관 등 5명을 구속했다. 구속자의 숫자는 이화여대 입시비리와 같지만, 블랙리스트 수사로 구속된 인물들은 모조리 전·현직 장관급이라는 점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

수사기간 내내 특검팀은 거의 매일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조사하며 수사에 힘을 쏟았다. 블랙리스트 수사 대상에는 전·현직 청와대, 문체부 고위공무원들이 오르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28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울 소환 조사했고,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지난해 12월29일), 김희범 전 문체부 제1차관(지난해 12월31일), 유동훈 문체부 2차관 소환 조사(1월3일),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1월7일), 김 전 장관, 김 전 수석(1월8일)을 순서대로 불렀다.

이후 특검팀은 1월17일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을 소환조사한 뒤 각각 직권남용, 위증 등의 혐의로 이들을 구속했다. 특검팀은 이 수사를 통해 박근혜정부가 조직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들을 관리한 사실을 파악했다. 그 꼭짓점에는 박근혜정부의 실세였던 김 전 비서실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하는 영화제나 영화관은 정부지원 사업서 배제를 지시했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세계적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했다.

비선 진료 의혹도 상당부분 성과를 냈다. 특검팀은 비선 진료 의혹 수사과정서 최씨의 단골 성형외과 의사인 김영재 원장이 박 대통령에게 필러와 보톡스 등 수차례에 걸쳐 미용 시술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팀은 김 원장에게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국회서 위증한 혐의 등도 포함해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또 안 전 청와대 수석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씨를 구속했다.

국민적 관심
우병우 놓쳐

이처럼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박 대통령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 불발로 핵심 수사 대상인 박 대통령은 전혀 건드리지 못한 채 수사를 마친 게 대표적 한계다.

삼성 말고 다른 대기업들도 박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졌으나 특검팀의 ‘삼성 올인’ 전략에 손대지 못했다. SK·롯데·CJ 등 다른 재벌그룹들에 대한 수사는 향후 검찰이 넘겨받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비서실장과 나란히 ‘법꾸라지’로 지목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 역시 ‘옥에 티’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을 소환조사한 뒤 직권남용과 특별감찰관법 위반,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서 기각했다. 법원은 “혐의 소명이 불충분하고 일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규명도 미흡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 박 대통령이 비선진료를 받았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박 대통령의 비선진료에 깊이 관여한 단서를 잡고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날 “수집된 증거에 비춰볼 때 구속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숨 가쁘게 달려 막내린 수사
뇌물·블랙리 기소 20명 넘어

특검팀이 수사 기간 종료를 하루 앞두고 박 대통령 대면조사 무산 경위도 언론에 공개했다. 특검팀이 요구한 조사 전 과정의 녹음·녹화를 청와대가 거부한 것이 조사 불발의 핵심 원인이라는 게 특검팀 설명이다.
특검팀이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위해 법원서 발부받은 영장은 지난달 28일까지 유효했지만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법원에 반환했다. 특검팀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현행 형사소송법 체계 정비를 국회에 촉구했다.

특검팀의 수사가 종료됨에 따라 풀어야할 과제도 막중하다. 특검팀은 이제 90일간의 수사기록을 검찰에 넘긴다.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잔류 파견 검사 규모 등에 대한 협의도 벌여야 한다.

이번 특검은 여느 특검보다 많은 수사대상과 많은 피고인을 떠맡은 만큼 수사기간보다 더 긴 공소유지 여정이 남았다.

법무부가 현재 특검에 파견된 인력에 대해 복귀 결정을 내리면 이들은 검찰로 돌아가야 한다. 역대 특검은 대부분 수사 기간 종료 후 파견인력이 곧바로 복귀했다. 이럴 경우 특검팀은 수십 건에 달하는 재판의 공소유지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특검팀은 수사 대상과 기록이 방대하고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만큼 공소유지 인력으로 파견 검사 20명의 절반 수준인 10명 정도가 잔류하길 희망하고 있다. 수사 준비 기간을 포함해 모두 90일 동안 관련 사건을 파헤쳤던 검사들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바통 받은
검찰로 시선

이규철 특검보도 브리핑서 “파견 검사의 잔류 여부가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유지에 필수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파견 검사가 없다면) 삼성 뇌물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 특별검사보 한 명만 남게 된다”며 “특검보 혼자서 (삼성 측) 변호사 수십 명과 상대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특검은 법무부에 검사 파견을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보내 둔 상태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특검 연장 거부’ 황교안 탄핵 가능성은?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의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탄핵을 추진할 경우 총 166석으로, 바른정당이 참여하지 않아도 정족수를 충족할 수 있다. 게다가 무소속 의원 7명 중 야권 성향의 5명 의원이 참여할 경우 171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탄핵소추 정족수를 국무총리 기준으로 할지 대통령 기준으로 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헌법 65조 제1항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황 대행에 대한 탄핵의 기준을 ‘대통령 탄핵’으로 해석할 경우, 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첫 단추부터 법적 해석이 필요하다. 또 본회의 개회를 위해서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탄핵안을 보고하고 72시간 이내 투표가 이뤄지려면 두 차례의 본회의가 필요하다. 자유한국당이 야4당 합의 사안인 3월 임시국회 본회의 일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황 대행에 대한 탄핵은 의결 시도조차 못할 수도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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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