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북한이 노리는’ 김정은의 데스노트

다음은 누구? 암살 타깃 리스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몰래 사람을 죽임’ 암살의 사전적 의미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서 여성 2명에게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사망한 김정남을 보면 암살의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대담한 범행이었다. 사건 내용이 조금씩 구체화되면서 ‘북한 배후설’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다음 타깃은 누가 될 것인지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방이 뻥 뚫린 공항서 여성 2명이 스쳐갔을 뿐이다. 그 한 번의 스침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쓰러졌다.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한국시각 오전 10시)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독극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고 실신,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오전 11시께 사망했다. 김정남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용의자와 그 배후를 둘러싸고 수많은 억측이 쏟아졌다.

김정남 피살
북 배후 확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15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도안 티흐엉,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 등 여성 용의자 2명을 체포했다. 범행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여성 용의자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용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지난 17일 북한 국적의 리정철을 체포했고, 19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리정철 등 신원이 확인된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 5명 중 4명은 모두 사건 직후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17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북한이 배후가 아니다”(20일)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22일 경찰청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이 김정남 피살 사건에 연루돼 있다고 공개했다. 또 앞서 지목한 5명의 남성 용의자 중 4명은 이미 북한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또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말레이시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서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용의자, 북한 국적자들의 행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배후는 북한인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통일부는 강철 북한대사가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한국”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21일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 주장이자 궤변”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주요 탈북인사들의 안전 문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서 열린 김정남 피살 사건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국내에도 북한서 보낸 암살자가 잠입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말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현재 국내서 활동 중인 암살자는 남성 2명으로 국적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내놨다. 또 지난해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두고 “워낙 고위급 인사였고 최근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암살) 타깃 1순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눈엣가시’ 꼽히는 탈북인사 초긴장
이미 암살자 잡입? 경찰 경계 강화

‘암살 타깃 1순위’로 지목된 태 전 공사는 지난해 8월17일, 영국 주재 공사로 지내던 중 일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공사는 대사 다음 서열로, 태 전 공사는 탈북 외교관 중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주 이집트 대사 다음으로 최고위직이다. 그는 10년 이상 덴마크와 영국 등 서방 세계서 북한 체제 선전 등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태 전 공사는 서유럽 사정에 정통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평가받았다. 2001년 6월 벨기에 브뤼셀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의 인권대화 때 대표단 단장으로 나서면서 외교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학창시절 중국 유학을 통해 중국어를 익힌 태 전 공사는 평양 국제관계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 굵직한 직무를 맡았던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서 현학봉 대사에 이어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 그에 대한 북한의 신임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탈북은 북한 당국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북한 대남 매체들은 그를 가리켜 ‘특급 범죄자’라고 맹비난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MBC와 인터뷰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 체제에는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김정은은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처럼 행동하고 있다”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을 이유로 탈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 전 공사는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정권의 사악성을 알리는 데 기여한 사건”이라며 “체제 붕괴에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오늘까지 테러를 생존 수준으로 간주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고 있는 태 전 공사에 대한 경호 수위는 김정남 피살 사건 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 전 공사 측은 암살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외부활동을 잠정 중단키로 했지만 태 전 공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공개활동을 계속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태 전 공사는 “어떤 위협이 조성된다 해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활동을 한 순간도 중지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한 방송과 인터뷰서 진행자가 “(김정은이) 당신을 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느냐”고 묻자 “물론이다. 나도 암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 암살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고백했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역시 표적 1순위로 거론된다. 하 의원은 지난 16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사실 후지산 혈통”이라며 “(김정남 피살 사건은) 백두혈통에 대한 김정은의 열등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두혈통은 김일성 주석과 부인 김정숙이 백두산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고 주장하며 신격화한 내용으로 일종의 권력 정통성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김정남은 백두혈통의 장자이자 그의 아들인 김한솔도 백두혈통이다.

하 의원의 말대로 김정은이 권력 정통성을 위해 이복형을 암살했다면 김한솔은 ‘또 다른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태영호 1순위
“그래도 활동”

현재 김한솔의 행방은 묘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이 비밀리에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변장한 채 영안실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돌았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정보는 없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이 입국하면 신변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한솔은 김정남이 1995년 동거녀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2011년부터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분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이후 프랑스 르아브르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9월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한솔은 대학원 등록 전 중국 정부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진학을 포기했다고 알려졌다. 영국서 생활할 경우 북한의 암살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김정남을 따라 외국서 자란 김한솔은 10대 때부터 머리를 염색하는 등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때 자신의 SNS에 “나는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이후 미국 공영방송과 인터뷰에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모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2012년에는 김정은에 대해 독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대사관이 피살된 남자가 김정남이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는 것을 두고 시신의 신원 확인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김한솔을 찾아 DNA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것.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을 비롯한 김정남의 가족들이 사건 이후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면서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현지 정부의 엄밀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 중이다.

김정은의 숙부 김평일 주 체코 북한대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콩 인터넷매체 <홍콩01>은 김평일과 김정남은 유사한 점이 많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세계탈북자대회서 김평일을 망명정부 지도자로 추대했다는 설이 그에게 치명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서 “지난해 10월 체코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통해 현지서 열린 외교행사에 참석한 김평일 대사에게 ‘국제탈북민연대가 망명정부 수립을 위해 당신과 접촉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구두로 전했다”고 밝혔다. 김평일은 당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두혈통 김한솔
행방 묘연한 상황

홍콩의 시사평론가는 김평일이 공개적으로 탈북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행동을 조심하고 있지만 김정은정권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가 다음 암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체코 정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체코 당국은 김평일이 외부 약속 등으로 외출할 때마다 동향을 점검하는 등 관련 정보를 수집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국내 주요 탈북 인사들에 대한 북한의 테러 경계령을 최고 수위로 올렸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서 “대테러센터 등 관계기관은 테러 대응 태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탈북 인사의 신변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북한이 노리는 국내 주요 탈북인사는 1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년 전 독살 위기를 넘겼고, 지금도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11년 독침으로 박 대표를 암살하려 한 혐의로 탈북자 출신 공작원 안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안씨는 독총과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침에는 10㎎만 인체에 들어가도 즉사할 수 있는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이라는 독약 성분이 묻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법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박 대표 독살 위협 사건은 김정남 피살 사건서 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대담한 범행 방식은 20여년 전 자신의 집 앞에서 피살된 이한영 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이한영은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과는 이종사촌 간이다.

1978년 모스크바 외국어대 어문학부를 전공한 엘리트 출신 이한영은 1982년 한국으로 망명했다. KBS 국제국 러시아어 방송 PD로 근무했던 이한영은 1996년 김정일의 사생활을 담은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출간해 관심을 끌었다.

거슬렸다간 소리소문 없이…
친인척도 가차 없이 제거

그로부터 1년 뒤인 1997년 2월15일 이한영은 망명 15년 만에 경기도 자택서 피살당했다. 현장서 북한제 권총에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됐고 이한영이 의식을 잃기 전 ‘간첩’이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범인은 검거하지 못했다.

이한영은 ‘한국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의미로 이름까지 개명한 상황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이후 2003년 2월 이한영의 아내 김모씨는 국가를 상대로 약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김씨는 “남편은 국가가 철저히 신분을 보호해야 하는 요시찰 보호 대상이었지만 북한 암살단이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남편의 신상정보를 빼내 그를 살해할 때까지 이를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는 남편이 사망한 후 추가 테러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가족의 활동을 제한해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힌 바 있다.

2008년 대법원은 “국가는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만류를 무시하고 언론 인터뷰와 TV 출연 등을 통해 자신을 노출한 이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국가 책임을 60%로 제한, 유족에게 9699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 2010년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97년 망명한 이래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황장엽은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권력층 중 최고위직으로 꼽힌다. 망명 당시 직책은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였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에 ‘주체사상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황장엽은 망명 이후 북한 체제 비판과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던 황장엽은 북한으로선 꼭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실제 2010년 국내에 탈북자로 위장한 ‘황장엽 암살 2인조’가 침투했다가 사정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공작원으로, 황씨를 살해하라는 북한 고위직의 지시를 받고 중국과 태국을 거쳐 입국했다가 잡혔다.

북한은 지난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한 북한 배후설은 ‘음모책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김정남 사망 이후 열흘 만에 나온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다. 북한 측은 담화에서 김정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로 지칭했다.

북한은 담화문서 사망한 공화국 공민은 심장 쇼크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부검을 할 필요가 없고, 말레이시아 당국의 시신 부검은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자 인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이한영 피살과
대담수법 닮아

또 북한 배후설과 관련해 “남조선 당국이 이번 사건을 이미 전부터 예견하고 있었고 그 대본까지 미리 짜놓고 있었다”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박근혜 역도의 숨통을 열어주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보려는 시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반응에 통일부 관계자는 “억지주장이자 궤변”이라며 “(북한 반응은) 예상해왔던 것이고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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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