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위기 ④

불황늪에 빠진 연예계 들춰보기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 출연한 배우 김주혁은 최근 인터뷰에서 “2007년에 출연하려 했던 4편의 영화가 제작이 취소되는 바람에 2년 동안 공백기를 가진 것처럼 돼버렸다”며 “처음 엑스트라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조급증은 별로 없지만, 4번째 영화도 제작이 무산되고 나니 조급증이 나더라”고 밝혀 지난 2006년 개봉된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후 2년 동안 관객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출연작품도 없고돈가뭄에 시달리고 “도대체 끝은 어디야”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연예계도 가는 곳마다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며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들이 조금만 모이면 ‘극심한 불황’ 이야기뿐이다. 제작자는 돈을 구하러 동분서주하고 연예인들은 출연작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잘나가는 톱 배우들에게 고민거리가 있을까. 남부럽지 않을 부를 축적했고,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도 많고, 그저 자기 관리만 잘하면 사고 없이 무사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요즘 톱 배우들에게도 고민거리가 생겼다. 출연할 작품이 점점 적어지고, 그렇다고 아무 작품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작품 고를 때마다 더욱 고민이 쌓인다. 작품의 선택이 향후 행보를 좌우하는 경우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들이 해외 활동에 눈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톱 탤런트 A양이 출연하려던 영화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이유는 투자가 안돼서다. 영화계, 드라마계가 블루칩으로 떠오른 A양을 잡기 위해 혈투를 벌였지만 그가 2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투자를 못 받아 제작을 못하게 됐다는 것은 연예계 불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양 측은 “영화가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부터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데 고민이다”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스타들은 “출연할 작품이 없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요즘 스타들은 말 그대로 작품이 없어 출연을 못하고 있다. 제작이 들어가는 작품 자체가 현저히 줄어든 탓이다.
영화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요사이 배우들로부터 제발 영화 좀 제작해달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 다들 출연작이 없어 고민인 모양이다”다며 “불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A양 매니저는 “요즘 같아서는 작품 안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다. 무턱대고 했다가 어느 순간 엎어지기 일쑤고, 개봉하거나 방송해도 망하면 주인공 탓으로 돌아가면서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뭔가 확실하지 않으면 배우들이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A양처럼 특히 여배우들은 더욱 갈 데가 없다. 요즘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남성 주연 전성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 주연 작품은 영화 <미쓰 홍당무>와 <미인도> 정도다.
톱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의 수도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많게는 1년에 세 편, 적게는 한 편씩 출연하던 배우들이 요즘엔 1년에 한 편도 안 하는 경우가 늘었고, 몇몇 톱 배우들은 벌써 몇 년째 작품 출연을 안 하고 있다.

연예계 가는 곳마다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
배우들 출연작 없어 발 동동… 제작사는 돈 가뭄


드라마 <대장금>과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는 차기작 선정이 늦어져 이제 ‘왕년의 스타’가 될 지경이고, 고소영 역시 오랜만의 복귀작들이 하나 둘 참패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없다. 한때 영화판을 종횡무진하던 하지원, 강동원 등도 최근에야 차기작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고, 최민식, 장동건, 배용준, 이미연, 이나영, 김태희 등은 아직 새 작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 연예관계자는 “지금 기획 개발 중인 영화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확실한 작품이 별로 없다. 작품성 있는 시나리오가 있거나 제작비 투자와 배급이 완료된 작품으로 확인돼야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출연을 하기로 했느니, 출연 번복으로 작품을 못 만들게 됐다느니 엉뚱한 소리를 듣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 드라마로 상을 받은 인기 작가 B씨. 그가 제작사에 제출한 기획안이 별도 검토도 되지 못하고 무기한 ‘보류’ 상태가 됐다. 이유는 스케일이 큰 드라마이기 때문. B씨는 스타 캐스팅 능력이 있는 작가지만 그가 이번에 낸 기획안은 해외 로케이션이 대부분인 이야기. 제작사는 “아무리 기획안이 좋고 대본이 잘 나온다고 해도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오냐”면서 난색을 표한 뒤 “제발 다른 소재로 기획안을 내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했다.
최근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해외 로케이션이다. 이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최근에 선보이는 대작들은 스케일을 위한 스케일을 내세우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내실은 없고 오로지 보여지기 위한 스케일만 추구하다보면 돈만 잔뜩 쓰고 결과는 안 좋을 위험성이 크다”며 “한류를 겨냥한다면서 비싼 배우를 기용해 그들을 폼 나게 해주려 규모를 키우다보면 그 규모에 치우쳐 정작 인간은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야기보다는 배우에 의존해 대작을 끌고 가려다 실패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로비스트>다. 또 <태왕사신기>도 배용준이 없었다면 일본에서 그만큼의 성적이라도 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시청자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일본 시청자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었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또 드라마를 영화처럼 만들려고 하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은 분명히 다른데 요즘에는 자꾸 영화 같은 스케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의 질이 특별히 좋아지지도 않는다”며 “대작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대작을 외치며 제작비만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영화계와 드라마계의 불황보다 더 심각한 곳이 가요계이다. 가요계 불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음반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조성모 3집이 가장 최근의 밀리언셀러다. 8년째 1백만 장 이상 판매한 앨범이 없을 정도로 한국음반업계가 깊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황 탓인지 가수들이 연기나 뮤지컬 쪽으로 진출한데 이어 요즘에는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가수들의 연기 데뷔는 가수들의 돌파구로 많이 활용되었다. 비, 에릭, 탁재훈 등이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대중적인 입지를 굳힌 이후 뮤지컬로 진출하는 가수들도 많아졌다. 옥주현은 뮤지컬 <시카고>로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손호영, 빅뱅의 승리, 대성, 앤디, 왁스, 리사 등도 뮤지컬에서 변신한 모습을 보여줬다. 버라이어티 출연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소위 짝짓기 프로그램을 통해 주로 홍보를 해왔다면 최근에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로 새롭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버라이어티 출연이 실제 앨범 판매량에 영향은 줄까.
한 가요 관계자는 “가요 프로그램에 여러 번 출연하는 것보다 버라이어티 한 번 출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단 시청률 면에서 더 뛰어나기 때문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과 가요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알렉스가 신애에게 김동률의 ‘아이처럼’을 불러준 뒤 김동률의 음반 판매량이 늘어났다. 또 지난 2006년 발표됐던 러브홀릭의 ‘화분’은 알렉스가 같은 프로그램에서 부른 뒤 온라인 판매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가요계 불황으로 가수들의 침체된 분위기는 변화하는 주위 환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밴을 타고 다니는 톱 가수도 일반 승합차로 차를 바꾸는 경우도 심심찮다.
톱 가수 C양 매니저는 “음반을 발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싱글이나 연기 활동 등 다른 돌파구를 찾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다”며 “아울러 부업을 찾거나 이직을 고민하는 매니저들도 많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음반 관계자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음악산업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음악산업 자체는 더욱 커졌다. 다만 MP3의 발달로 CD시장이 죽으면서 음반제작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불법복제와 P2P로 인한 불법유통으로 인해 창작의 대가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고 무상으로 공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통구조가 바뀌고 또한 저작권 보호를 위한 가요계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해외에서는 한국 음악의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만큼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접근을 한다면 느린 속도나마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연예계 불황 탈출 해법은-“내 몫만 챙겨선 설 자리 없다”

연예계 불황 탈출구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스타들이 스스로 몸값을 낮추며 어려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초유의 불황을 겪고있는 스크린에서 스타들의 개런티 삭감 트렌드가 특히 두드러진다. 영화 <고死-피의 중간고사>에 출연한 이범수는 개런티를 1억2천만원에 맞췄다. 톱스타들의 영화 한 편 출연료가 4억∼5억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이범수는 영화 <그들이 온다> 때도 김민선과 함께 출연료를 낮춰 부르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개런티 삭감에 앞장 서온 배우로 손꼽힌다. ‘스크린 여왕’ 전도연은 저예산 영화 <멋진 하루>에서 트렌드를 주도했고, 한지혜는 저예산 영화 <허밍>에서 미덕을 보여줬다. 영화 <아들>의 차승원, <열한번째 엄마>와 <모던보이>의 김혜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김정은 문소리 등도 몸값 낮추기에 적극 동참했던 주역들이다. <밤과 낮>의 박은혜는 아예 노 개런티 출연으로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개봉된 1백12편의 한국 영화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겨우 13편에 불과하다. ‘나부터 한발씩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 점점 더 많은 스타들이 출연료 삭감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도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준호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평소의 4분의 1 정도를 떼냈고, 송윤아, 이범수, 박용하, 김하늘 등은 <온에어>에서 절반이나 잘라냈다. <에덴의 동쪽>은 한류스타 송승헌, 연정훈, 이다해, 한지혜 등 대다수 출연진들이 30, 40%의 개런티 삭감을 해줬다. <밤이면 밤마다>의 이동건은 평소 출연료보다 회당 6백만원 정도 낮은 금액에 계약서를 썼다.
스타들의 고액 개런티가 막대한 드라마 제작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돼 온데다 최근 열악한 스태프나 일반 연기자들의 처우에 사회적 이목이 쏠리면서 내 몫만 챙겨선 설 자리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상황이다.
방송사와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의 달라진 제작 방침 또한 이같은 트렌드를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외주제작사들은 “앞으로 적자 드라마는 만들지 않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불황 타계를 위한 스타들의 몸값을 낮추기도 중요하지만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느냐도 관건이다.
현재 제작되는 대작 드라마는 모두 한류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해외를 공략한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해외 시장이라는 것은 결국 일본을 겨냥한다는 의미로, 일본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나 수출이 제작의 성패를 사실상 결정짓는다.
<태왕사신기>는 4백50억원, <로비스트>는 1백20억원, <에덴의 동쪽>은 2뱍50억원, <아이리스>는 2백억원, <카인과 아벨>은 80억원의 제작비를 각각 내세운다. 회당 제작비가 적게는 4억원에서 많게는 18억원까지 투입되는 프로젝트다. 국내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회당 평균 제작비는 1억5천만원에서 2억원 사이다.

연예계 몸값 ‘세일중’… 업계 불황에 스타들 개런티 자진 삭감
송승헌·이병헌 등 한류스타 내세운 드라마 제작… 일본에 승부

이 돈은 다 어디서 조달할 수 있을까.
송승헌 주연의 <에덴의 동쪽>은 방송 및 OST 판권을 일본에 60억원에 판매했다고 밝혔다. 또 송승헌의 초상권 등과 관련된 수익도 제작사에 일정 부분 돌아가게 장치를 해놓았다는 설명.
이병헌을 캐스팅해 내년 1월 초 촬영을 시작하는 <아이리스>의 태원엔터테인먼트는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를 제외하고, 80억원가량은 일본에서 조달할 것으로 보이고 또 80억원 가량도 국내 지자체 등의 협찬을 통해 해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욘사마를 내세운 <태왕사신기>가 일본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고, <로비스트>는 국내에서도 흥행에 실패했던 점을 볼 때 과연 앞으로도 일본 투자를 낙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